제40화 뇌전마강(雷電魔剛)의 맹아
지하 500층의 거대한 철골 공장은 고요에 잠겨 있었다.
아니, 그야말로 압도적인 침묵이었다.
공기의 흐름마저 얼어붙은 듯한 공간 속에서, 거구의 사이보그 병기 오거의 가슴팍에 박힌 검은 칼날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지이잉-!
전선이 끊어진 기계 장치처럼 불꽃이 튀었다.
오거의 두 눈에 박혀 있던 붉은색 센서 라이트가 점멸을 반복하더니, 이내 푸석한 먼지와 함께 완전히 꺼졌다.
쾅-!
살과 뼈 대신 티타늄 합금과 유압 실린더로 채워진 거대한 몸뚱이가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바닥이 울릴 정도의 묵직한 충격이었지만, 강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SYSTEM INFO: 목표 대상 ‘오거’의 생체 코어 출력이 정지되었습니다.]
[흡원천공(吸元天功)의 기동 효과로 잔류 에너지를 강제 흡수합니다.]
후우우-!
바닥에 쓰러진 오거의 가슴 부근에서 푸르스름한 전류와 함께 짙은 열기가 뱀처럼 피어올랐다.
강진혁의 목과 손목을 따라 옅게 흐르던 은빛 회로 선이 일렁이며 칠흑 같은 마기와 뒤섞였다.
지오딕!
단전 부근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팽창감.
순간적으로 치솟은 에너지가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현재 단전 마기 출력: 11,500 MW 돌파.]
[육체 동기화율 및 나노머신 밀도가 일시적으로 상향 조정됩니다.]
압도적인 힘의 흐름이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거구의 사이보그가 뿜어내던 고출력 플라즈마 에너지와 고주파 진동 데이터가 진혁의 뇌리에 주사바늘처럼 파고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물리적 흡수가 아니었다.
티타늄 그룹의 최정예 살인병기들이 수십 년간 갈고닦은 전투 데이터와, 고대 마공의 운기조법이 충돌하며 새로운 파형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
‘이것이 플라즈마의 공진 주파수인가.’
강진혁의 흑안이 깊게 가라앉았다.
눈앞에 떠오르는 푸른빛의 HUD 창을 무시한 채, 진혁은 오로지 자신의 감각과 뼈마디로 전해지는 에너지만을 의식했다.
현대의 과학 기술은 에너지를 기계적으로 압축하고 폭발시키는 데 특화되어 있다. 반면 고대 마공은 인체의 기혈을 통해 에너지를 유기적으로 순환시키고 극대화한다.
그 둘은 겉보기엔 전혀 다른 세계의 산물이었지만, 에너지를 다루는 근본적인 원리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맞닿아 있었다.
분석(Analysis).
이해(Understanding).
수련(Training).
진혁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연산 회전이 일어났다.
오거가 마지막으로 발사하려던 초고압 플라즈마 캐논의 전자기 성질이 마기의 운기 경로와 겹쳐지기 시작했다.
지직-! 지지직-!
진혁의 오른손 검지 끝에 튀어나온 칠흑 같은 마기 사이로, 실처럼 가늘고 푸른 전류가 얽혀들기 시작했다.
"……저게 뭐야?"
뒤쪽에서 숨을 몰아쉬며 다가오던 송수연이 그 광경을 보고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반(反)기업 저항군 '니르바나'의 총수로 수많은 전장을 겪어온 그녀였지만, 인간의 육체에서 이토록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것은 처음 보았다.
칠흑의 암전(暗電) 속에 꿈틀거리는 푸른빛의 번개.
그것은 현대 군사 장비의 출력을 아득히 초월한, 완벽한 파괴의 응축체였다.
윤아영은 태블릿 PC의 화면을 손가락으로 튕기며 경악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잠깐만……! 진혁 오빠의 단전 출력 데이터가 또 요동치고 있어! 이건 단순한 흡수가 아니야. 적의 플라즈마 제어 코드를... 마공의 운기 궤적과 실시간으로 동기화시키고 있다고?!"
"동기화라고? 인간의 몸으로 그런 짓이 가능해?"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혈관이 버티지 못하고 터져버릴 거야. 하지만 저 사람은……."
윤아영의 말끝이 흐려졌다.
강진혁의 몸을 두르고 있는 것은 단순한 나노머신이 아니었다. 마기와 육체가 하나로 융합된 [천마무상체(天魔無相體)]. 그 극한의 내구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미친 짓이었다.
바로 그때.
-크르르릉……!
지하 500층 공장의 반대편 어둠 속에서 낮고 기괴한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오거가 쓰러지면서 발생한 충격파와 에너지 파동을 감지한 블랙 가드의 잔당들이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콰아아앙-!
거대한 철제 벽이 통째로 우그러지며 안쪽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 너머로 나타난 것은 인간의 형상을 완전히 벗어난 전신 사이보그 사단이었다. 수십 명의 블랙 가드 정예병들이 일제히 고출력 레이저 라이플과 고주파 검을 치켜들고 진혁을 향해 포메이션을 잡았다.
"타겟 확인. 실험체 07호의 신체 반응 지속 중. 사살하라!"
기계음 섞인 냉혹한 목소리와 함께 수십 정의 총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슈우우우-! 쾅쾅쾅쾅!
공간을 찢는 듯한 섬광과 함께 수백 발의 플라즈마 탄과 고열 광선이 진혁을 향해 쏟아졌다.
하층민의 생체 코어를 볼모로 잡고 있는 티타늄 타워의 심장부로 향하는 길목을 완전히 지우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진혁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공격의 홍수를 향해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갔다.
"무모해요!"
송수연이 검을 뽑아들며 외쳤지만, 진혁의 움직임은 그녀의 예측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파직! 팟-!
[마광신보 - 극(極)]
빛의 궤적조차 남지 않았다.
진혁의 잔상이 허공에 찢어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적들이 발사한 플라즈마 탄들은 진혁이 스쳐 지나간 빈자리에 내리꽂히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을 뿐이다.
"어디 갔지……?!"
최전방에 있던 블랙 가드 대장의 시야가 급격히 흔들렸다.
시야의 상단에 경고등이 붉게 점멸했다.
[Warning! 대상의 접근 속도가 시각 센서의 연산 한계를 초과했습니다!]
"늦었다."
냉혹한 음성이 귀가 아닌 고막의 진동을 통해 직접 때려 박혔다.
블랙 가드 대장이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그의 시야 한가운데로 칠흑과 푸른빛이 얽힌 검신이 파고들었다.
강진혁이 손에 쥔 것은 완성되지 않은 [천마검(프로토 타입)]이었다. 하지만 그 검의 날끝에는 방금 전 오거에게서 흡수한 플라즈마 에너지와 자신의 마기가 완벽하게 융합된 새로운 힘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신기술 연산 중……]
[기뢰(氣雷)와 마기의 공진 주파수 일치율 89%!]
[임시 명칭: 뇌전마강(雷電魔剛) 맹아 단계 발동.]
치이익-!
검신을 따라 흐르던 칠흑의 마기가 폭발적인 전류와 함께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마치 성난 용의 발톱처럼 푸른 뇌전이 검끝에서 뿜어져 나와 주변을 뒤덮었다.
콰아아아궁-!
단 한 번의 휘두름.
그것으로 충분했다.
검강이 스쳐 지나간 자리의 공간이 기형적으로 뒤틀렸다.
고주파 진동과 마기가 결합한 참격은 최첨단 티타늄 합금으로 제작된 블랙 가드들의 방어막을 마치 종잇장처럼 무참히 찢어발겼다.
"크아아악……!"
최전방에 있던 수십 명의 사이보그 병사들이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두 쪽으로 갈라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들이 장착하고 있던 4세대 생체 코어와 나노머신 회로들은 뇌전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내부에서부터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콰광, 콰광방!
눈이 멀 것 같은 섬광이 지하 공장을 가득 채웠다.
연기와 자지러지는 기계음 속에서, 강진혁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고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손바닥 위에서 꿈틀거리는 푸른빛의 뇌전과 칠흑의 마기.
그 두 가지 에너지가 서로를 밀어내면서도 완벽하게 하나의 궤도 안에서 회전하고 있었다.
‘이것이 뇌전마강의 감각이다.’
완성된 것은 아니다.
아직 미완의 맹아(萌芽)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감각만 있으면 충분했다. 현대 군사 기술의 극치인 플라즈마와 뇌전을 고대 마공의 운기조법으로 완전히 굴복시키는 데 성공한 이상, 이 다음 단계는 명확했다.
[SYSTEM INFO: 사용자 강진혁의 융합 무공 데이터가 업데이트되었습니다.]
[‘뇌전마강(雷電魔剛)’의 원리 이해도가 45%를 돌파했습니다.]
후우……, 하고 가벼운 숨을 내쉰 진혁이 고개를 들어 타워의 상층부를 올려다보았다.
이 지하 500층의 공장을 지나면, 하층민 320만 명의 생체 코어가 묶여 있는 [헤븐리 파운데이션]의 메인 서버실과 최상층으로 향하는 고속 엘리베이터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곳의 끝에는 티타늄 그룹의 모든 음모와, 자신을 '그릇'으로 삼으려 했던 만악의 근원이 기다리고 있다.
"진혁 오빠!"
윤아영이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함께 짙은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메인 서버실의 방화벽이 스스로 재부팅되고 있어! 진무극 그 영감이 죽기 전에 설정해 둔 최종 자폭 프로토콜이 작동하기 시작했어. 남은 시간은…… 단 3시간이야!"
3시간.
하층민 320만 명의 목숨이 걸린 카운트다운이 본격적으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송수연 역시 검을 고쳐 잡으며 이를 악물었다.
"가자, 진혁. 여기서 멈출 순 없어."
진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손에서 타오르던 칠흑의 마기와 푸른 뇌전이 잔잔하게 가라앉으며 검신 속으로 스며들었다.
단전의 출력은 이미 11,500 MW를 넘어 12,000 MW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시스템의 보조 없이, 오직 자신의 의지와 직관만으로 단련된 '초월천마경'의 힘이 혈관 속에서 요동쳤다.
"쓸어버린다."
낮게 가라앉은 진혁의 목소리가 지하 공장을 울렸다.
그와 동시에, 진혁의 발밑에서 다시 한번 칠흑의 잔상이 폭발했다.
[마광신보 - 극(極)]
콰아아앙-!
강진혁의 몸이 검은 유성처럼 공중을 찢으며 [헤븐리 파운데이션]의 메인 서버실을 향해 돌진했다.
티타늄 그룹의 심장부를 향한 마지막 사냥의 막이, 비명을 지르는 기계음 속에서 처절하게 열리고 있었다.
타워의 상층부로 이어지는 수직 승강기 샤프트는 이미 정상적인 작동을 멈춘 지 오래였다. 티타늄 그룹의 중앙 메인프레임이 자폭 프로토콜을 가동하면서 모든 전력망이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슈우우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오직 강진혁의 손끝에 맺힌 푸른 뇌전만이 유일한 광원이었다.
벽면에 고정된 비상 케이블을 발판 삼아, 진혁은 [마광신보]의 극한을 전개하며 수직으로 솟구쳤다. 수백 층에 달하는 샤프트를 단숨에 주파하는 진혁의 속도는 이미 음속을 아득히 돌파하고 있었다.
- 제100구역 방어벽 접근 감지.
- 적대 세력의 침입 속도, 연산 범위를 초과.
자동 방어 포탑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리며 진혁을 조준했다.
수십 문의 개틀링 건과 플라즈마 포신이 동시에 불을 뿜으려 하는 그 찰나의 순간.
"시끄럽다."
진혁의 입에서 짧은 일갈이 터져 나왔다.
손에 쥔 [천마검]이 허공을 가르는 것과 동시에, 검신에 깃들어 있던 칠흑의 마기와 푸른 뇌전이 채찍처럼 뻗어 나갔다.
콰아아앙-!
[만법귀마(萬法歸魔)]의 연산식이 진혁의 뇌리를 스쳤다. 포탑들이 뿜어내는 에너지 탄의 공진 주파수를 단 0.1초 만에 파악한 결과였다.
참격이 스쳐 지나간 자리마다 방어 포탑들은 내부 회로가 통째로 역류하며 기괴한 폭발을 일으켰다. 쇠붙이의 잔해가 비처럼 쏟아졌지만, 진혁의 검은 잔상은 그 파편조차 건드리지 못한 채 상층부를 향해 맹렬히 파고들었다.
지하 300층.
다시 200층.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속도였지만, 진혁의 단전은 오히려 더욱 거대한 열기를 뿜어내며 출력을 증폭시켰다.
[SYSTEM INFO: 사용자 강진혁의 융합 마공 코어 출력, 11,800 MW 재돌파.]
[육체 내구도 97% 유지. ‘천마무상체’가 고속 이동에 따른 마찰열을 완벽하게 상쇄합니다.]
밑에서 숨 가쁘게 쫓아오던 윤아영과 송수연의 모습은 이미 시야에서 멀어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진혁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모든 감각은 오직 하나의 목표를 향해 곧게 곤두서 있었다.
마침내, 거대한 철제 바리케이드가 가로막고 있는 최상층 진입로가 눈에 들어왔다.
티타늄 타워의 핵심인 [헤븐리 파운데이션] 메인 서버실로 통하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 경고. 침입자는 즉시 물러서십시오.
- 본 구역은 티타늄 그룹의 영원한 자산입니다.
바리케이드 너머에서 기계음 섞인 인공지능의 경고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철제 벽이 사방으로 갈라지며, 지금까지 마주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슈우우- 쾅!
그것은 전신이 순도 100%의 차세대 다이아몬드 티타늄 합금으로 뒤덮인 거대 인형 병기, [아마게돈 MK-II]였다.
회장 진무극이 자신의 친위대를 위해 아껴두었던 최종 방어 시나리오의 주역이자, 단 한 기만으로도 도시 하나를 초토화할 수 있는 재난급 병기였다.
[타겟 명칭: 아마게돈 MK-II.]
[생체 코어 출력: 20,000 MW (외부 코어 연동형).]
압도적인 출력의 차이가 공간을 무겁게 짓눌렀다.
아마게돈 MK-II의 가슴 부근에 장착된 거대한 코어가 붉은빛을 번뜩이며 주변의 에너지를 강제로 흡수하기 시작했다.
- 사제를 집행한다.
기계음이 울리며 아마게돈의 거대한 양팔이 변형되었다.
팔 전체가 거대한 고주파 플라즈마 블레이드로 변하며 고막을 찢는 듯한 파열음을 토해냈다.
콰아아아궁-!
아마게돈이 거대한 발을 구르며 진혁을 향해 돌진했다.
단 한 번의 휘두름만으로도 타워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폭풍압이 밀려왔다.
하지만 강진혁은 두려움 대신, 입꼬리를 미소처럼 말아 올렸다.
"출력 2만 MW짜리 장난감인가."
지독하게 차가운 흑안이 번뜩였다.
진혁은 물러서는 대신, 오히려 그 거대한 괴물을 향해 정면으로 발을 디뎠다.
파직-! 파직지지직-!
오거와의 싸움에서 얻어낸 데이터와 [뇌전마강]의 맹아가 진혁의 단전 속에서 거세게 소용돌이쳤다.
칠흑 같은 마기와 푸른 뇌전이 [천마검]의 검신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단전 출력 12,000 MW.
여기에 적의 거대한 에너지를 역류시켜 흡수할 [흡원천공]의 기류가 손끝에서부터 요동치기 시작했다.
"받아라."
진혁의 몸이 한 줄기의 검은 섬광으로 변했다.
스스로의 의지로 시스템의 한계를 돌파한 신천마신공의 참격이, 거대한 재난을 향해 거침없이 내리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