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화 블랙 가드 3대장, 거구의 기계 마수
지하 공장 전체가 거대한 철판이 뜯겨 나가는 고음의 비명으로 가득 찼다.
지직, 지지직—!
천장 배관에서 흘러내린 냉각수가 고압 전류와 섞이며 파란 불꽃을 사방으로 튀겼다. 그 불꽃의 세례 속에서 강진혁의 칠흑 같은 머리카락이 거센 마기의 역류에 밀려 사방으로 흩날렸다.
스으으읍.
진혁이 낮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입가에서 뿜어져 나온 탁한 회색의 독무(毒霧)가 주변의 공기와 반응하며 바닥의 철제 그레이팅을 순식간에 녹여버렸다.
직전까지 그를 집어삼키려 들었던 생화학 독소 [네크로-신스].
티타늄 그룹의 연구원들이 슬럼가와 저항군을 한 번에 말살하기 위해 밀폐된 지하 공간에 살포했던 살인적인 맹독이었다. 일반적인 인간은 물론이고, 3세대 생체 코어를 이식한 고출력 초인조차 피부가 썩어 문드러지며 단 몇 초 만에 심장이 멈추게 설계된 악랄한 물건.
하지만 강진혁에게 그것은 독이 아니었다.
[SYSTEM INFO: 경고. 사용자 체내 흡수된 미지의 생화학 독소 분석 중.]
[분석 완료. '네크로-신스'의 세포 파괴 펩타이드 구조를 마기로 역치환합니다.]
[사용자의 '흡원천공(吸元天功)' 및 '천마무상체(天魔無相體)'가 독소를 영양원으로 재정제합니다.]
머릿속에 떠오른 반투명한 푸른빛의 HUD 창이 번쩍였다.
비록 지금의 진혁은 시스템의 통제를 거부하고 오직 자신의 직관과 의지만으로 움직이고 있었으나, 프로토콜의 잔재인 연산 기능은 여전히 그의 육체에 흡수된 에너지를 완벽하게 분석해 내고 있었다.
독소의 화학적 결합 고리를 마기로 끊어내고, 그 안에 담긴 부식성 에너지를 단전으로 끌어들였다.
쿠구구구구—!
단전의 깊은 곳에서 태동하던 9,600 MW의 마기가 비대해지며 요동쳤다.
독기가 혈관을 타고 온몸을 돌자, 피부 표면을 따라 흐르던 은빛 회로 선이 핏빛에 가까운 검붉은 색으로 짙게 물들었다.
“……크흡.”
진혁의 뒤편, 철제 기둥에 기대어 숨을 몰아쉬던 송수연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녀는 반(反)기업 저항군 '니르바나'의 총수로서 수많은 전투를 겪어왔고, 티타늄 그룹의 잔혹함도 뼈저리게 목격해 온 베테랑이었다. 하지만 지금 진혁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인간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 움직이는 재앙이자, 지옥의 아가리에서 기어 나온 마신(魔神)의 형상 그 자체였다.
“진혁 씨…… 몸 상태가……?”
“신경 쓰지 마.”
진혁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평온한 음성이었으나, 그 속에는 타오르는 불길보다 더 뜨거운 살기가 응축되어 있었다.
“기분 나쁜 찌꺼기들이 말끔히 청소됐군.”
진혁이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그의 칠흑 같은 흑안이 공장 중앙의 어둠을 꿰뚫었다.
독소가 걷힌 자리에 남아 있던 공장 내부의 공기마저 그의 살기에 눌려 짓이겨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압도적인 기세였다.
바로 그때.
콰아아앙—!
공장 정면의 거대한 강화 콘크리트 벽이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박살 났다.
먼지와 파편이 사방으로 튀는 폭음과 함께, 대기를 뒤흔드는 기괴한 중저음의 구동음이 울려 퍼졌다.
휘이익— 쿵! 쿵! 쿵!
지면이 울릴 때마다 공장 전체가 비명을 질렀다.
거대한 어둠 속에서 나타난 것은 인간의 형상을 아득히 초월한 거구였다.
“크하하하하! 쥐새끼들 마냥 기어 다니더니, 드디어 꼬리를 잡았구나!”
지독한 금속 마찰음과 합성 음성 변조기가 섞인 기괴한 목소리.
티타늄 그룹 블랙 가드 3대장 중 하나.
코드네임 [오거(Ogre)].
그의 전신은 일반적인 전술 수트와는 격이 달랐다.
순도 100%의 우주 항공용 타이타늄 합금에 두께만 수 센티미터에 달하는 리액티브 장갑이 겹겹이 용접되어 있었다. 키는 3미터에 육박했고, 어깨 부위에는 적의 미사일 요격용 개틀링 건과 함께, 흉부 중앙에 붉은색 고출력 플라즈마 캐논의 총구가 번뜩이고 있었다.
그것은 보병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움직이는 요새이자 거대한 '기계 마수'였다.
“실험체 07호…… 아니, 이젠 미친 개새끼라고 불러야 하나?”
오거의 거대한 철갑 어깨가 덜컥거리며 회전했다. 그의 손에 들린 거대한 체인쏘우 형태의 고주파 절단기가 허공을 가르며 날카로운 파열음을 냈다.
“회장님께서 네 녀석의 뇌를 뽑아다 메인 서버에 꽂으라고 엄명을 내리셨지. 네가 아무리 발광을 해봐야, 우릴 만나기 전의 그 허접한 폐기물 신세로 돌아갈 뿐이다!”
오거의 등 뒤로 블랙 가드의 잔당들이 일렬로 전개되며 진혁과 저항군을 포위했다.
그들이 장착한 4세대형 생체 코어와 특수 나노 무기들이 일제히 푸른빛의 조준 레이저를 내뿜었다.
상황은 최악이었다.
하지만 진혁의 입꼬리는 오히려 싸늘하게 호선을 그리며 말려 올라갔다.
“말이 많더군.”
슈우욱.
진혁의 손에 쥐여진 [천마검]의 검신을 따라 검붉은 마기가 물결치듯 일렁였다.
고대 마교의 심법과 현대 군사 기술의 극단이 융합되어 탄생한 전용 검. 검신 자체가 진혁의 맥박과 동기화되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시끄러운 건 질색이다.”
콰아앙!
진혁의 발밑이 폭발하듯 꺼졌다.
빛의 잔상조차 남지 않는 극한의 고속 보법, [마광신보(魔光身影)]의 전개였다.
“이 자식이—?!”
오거의 반사 신경이 채 반응하기도 전에, 진혁의 형상은 이미 그의 거대한 장갑 코앞까지 파고들었다.
공기의 압력이 찢어지는 백색의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건방진 게!”
오거가 흉부에 장착된 플라즈마 캐논을 그대로 강탈하듯 내지르며 방아쇠를 당겼다.
콰아아아앙—!
수천 도에 달하는 초고압 플라즈마 에너지가 일직선으로 뿜어져 나오며 공장 내부를 백색으로 태웠다.
주변의 철제 구조물들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증발해 버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화력.
하지만 그 한가운데서,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플라즈마의 전자기 성질…… 그리고 고압 전류.’
직전까지 독소를 흡수하며 정제해 낸 단전의 마기가 역류했다.
진혁의 왼손이 허공으로 뻗어나가며 오거의 플라즈마 캐논 포신을 그대로 움켜쥐었다.
찌지직- 지직, 파파팟!
살과 플라즈마 에너지가 부딪치며 불꽃의 장벽이 사방으로 튀었다. 일반적인 인간이었다면 손목부터 어깨까지의 뼈와 살이 흔적도 없이 증발했을 터였다.
그러나 진혁의 손바닥 위에서 회전하는 것은 단순한 육신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기와 흡원천공의 원리가 결합된 절대적인 '에너지의 흡수 지점'이었다.
“뭐……? 내 캐논의 출력을 흡수하고 있다고……? 말도 안 돼!”
오거의 거대한 안면 장갑이 경악으로 번쩍였다.
자신이 뿜어낸 초고압 플라즈마 에너지가 오히려 진혁의 손바닥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잦아들고 있었던 것이다.
진혁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네놈이 준 에너지다. 고스란히 돌려주마.”
우우우웅—!
진혁의 단전에서 폭등한 11,200 MW의 마기가 [천마검]의 검신으로 집약되었다.
거기에 직전 흡수했던 독소의 부식성과 오거의 플라즈마 전자기 주파수까지 완벽하게 역산되어 융합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단순한 참격이 아니다.
현대의 물리 공학과 고대의 마교 비기가 완전히 융합되는 과도기, 그 정점에 선 일격.
[SYSTEM INFO: 경고. 사용자 단전 부하 임계점 초과 위험.]
[현재 출력: 11,200 MW → 한계 돌파 진행 중.]
[독자적 융합 무공의 프로토타입 구동을 개시합니다.]
시스템의 경고음 따위는 더 이상 진혁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의지는 오직 눈앞의 거대한 철갑 요새를 양쪽으로 쪼개버리는 것뿐이었다.
“받아라.”
진혁의 입술이 낮게 달싹였다.
퍼어어어엉—!
칠흑의 마기와 푸른빛의 플라즈마 전기가 하나로 얽힌 거대한 참격이 오거의 거대한 장갑을 정면으로 강타했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 속에서, 거대한 기계 마수의 흉부 장갑이 중심부터 거미줄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콰작, 우두둑-!
순도 100%의 우주 항공용 타이타늄 합금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오거가 장착한 리액티브 장갑의 방어막은 진혁의 일격 앞에서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크아아아악……?!”
오거의 입에서 쇳소리와 함께 피가 쏟아져 나왔다.
흉부 중앙에 박혀 있던 붉은색 플라즈마 캐논의 동력원이 진혁의 검 끝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魔氣)와 충돌하며 내부에서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쿠구구구구—!
지축을 울리는 폭음과 함께 오거의 거대한 상체가 뒤로 나자빠졌다.
3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기계 마수가 바닥에 내리꽂히며 사방으로 시뻘건 불꽃과 파편이 비처럼 쏟아졌다.
[SYSTEM INFO: 블랙 가드 3대장 '오거'의 생체 코어 출력 정지.]
[대상을 무력화했습니다.]
머릿속에 떠오른 HUD 창의 텍스트는 보지도 않은 채, 진혁은 차가운 눈빛으로 바닥에 나뒹구는 잔해를 내려다보았다.
오거의 거대한 몸뚱이에서 아직 채 빠져나가지 못한 잔여 에너지가 공기 중에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콰드득-
진혁이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흡원천공의 여파가 미치자, 오거의 부서진 생체 코어에 남아 있던 마지막 출력까지 진혁의 손바닥으로 빨려 들어왔다.
[단전 마기 출력 11,400 MW 돌파.]
[육체의 세포 밀도가 한계치에 근접합니다.]
온몸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에너지가 폭발할 듯 요동쳤다.
하지만 진혁의 표정에는 일그러짐조차 없었다.
오히려 그의 흑안은 더욱 선명하게 빛나며 전방을 응시했다.
공장 내부의 어둠 속에서, 남은 블랙 가드의 정예 요원들이 경악에 찬 눈으로 후퇴하고 있었다.
불과 몇 초 전까지 자신들의 최정예 지휘관이었던 오거가 일격에 고철 무더기로 전락하는 것을 본 그들의 손발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괴…… 괴물……!”
“저 자식의 출력이 미쳤어! 코어 감지가 안 된다, 아예 단전의 규격이 달라!”
요원들이 공포에 질려 개틀링 건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다다다—!
사방으로 튀는 고주파 탄환들이 진혁의 잔상을 뚫고 지나갔지만, 이미 [마광신보]를 전개한 진혁의 형상은 그 자리에 없었다.
슈우우욱!
빛의 궤적조차 남지 않는 칠흑의 잔상.
진혁은 그저 눈을 깜빡이는 순간에 이미 최전방에 있던 요원의 코앞으로 파고들었다.
“크윽?!”
요원이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진혁의 손이 그대로 그 녀석의 흉부를 관통했다.
[천마무상체]로 단단하게 압축된 손끝은 방탄 수트의 장갑을 두부 썰듯 가르고 들어가 심장 부근의 생체 코어를 통째로 움켜쥐었다.
찌르륵, 퍼지직-!
“커하…….”
요원의 입에서 검붉은 거품이 터져 나왔다.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자의 코어에서 에너지를 남김없이 흡수해 버렸다.
껍데기만 남은 시체가 쓰러지기도 전에 진혁의 몸은 이미 다음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학살이었다.
아니, 그것은 일방적인 사냥에 가까웠다.
티타늄 그룹의 살인병기라 불리던 블랙 가드들은 진혁의 마기 앞에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었다.
흡원천공으로 적의 에너지를 마시고, 그 에너지를 다시 자신의 무공으로 승화시켜 다음 적을 부수어 버리는 악순환의 연쇄.
수십 명의 정예 요원들이 쓰러지는 데 걸린 시간은 1분도 되지 않았다.
콰아앙!
마지막 남은 장갑차가 진혁의 일격에 두 쪽으로 갈라지며 폭발했다.
사방이 불바다가 된 지하 공장의 한복판, 그 중심에 강진혁이 홀로 서 있었다.
스읍, 하아-.
진혁이 낮게 숨을 몰아쉬었다.
온몸을 감싸고 있던 검붉은 마기가 잦아들며 피부 표면의 은빛 회로 선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단전의 출력은 이미 11,500 MW를 넘어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진혁 씨.”
멀리서 지켜보던 송수연이 숨을 죽인 채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안도감보다는 깊은 경외와 서늘한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블랙 가드 3대장 중 하나인 오거를 저렇게까지 손쉽게 처리할 줄은 그녀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주변 정리 끝났어.”
윤아영이 휴대용 태블릿을 두드리며 재빨리 걸어왔다.
그녀의 숏컷 분홍 머리가 땀에 젖어 있었지만, 화면을 바라보는 눈빛만큼은 예의 그 날카로움을 유지하고 있었다.
“티타늄 타워 최상층으로 통하는 메인 승강기 통로의 방어 프로토콜이 해제됐어. 아까 오거의 마스터 암호 코드가 서버에 연동되면서 방화벽에 빈틈이 생겼거든.”
윤아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혁은 고개를 들어 공장의 천장 위, 아득히 높은 곳을 올려다보았다.
이 지하 500층의 밑바닥을 부수고 올라가면, 신서울의 밤하늘을 가르는 거대한 마천루—티타늄 그룹의 본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의 최정점에 앉아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있을 만악의 근원.
진무극이 남긴 잔당들과, 아직 끝나지 않은 [헤븐리 파운데이션]의 음모가 그곳에 있었다.
“시간이 없다.”
진혁이 낮게 읊조렸다.
“하층민 320만 명의 생체 코어가 묶여 있는 메인 서버실의 카운트다운은 아직 멈추지 않았어.”
“응! 타워 상층부로 진입하려면 지금이 골든타임이야. 방어 시스템이 완전히 재부팅되기 전에 진입해야 해.”
윤아영이 주먹을 꽉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송수연 역시 도검의 손잡이를 고쳐 잡으며 진혁의 뒤로 다가섰다.
“니르바나의 잔류 부대도 상층부 외곽 진입로를 확보하고 있다. 진혁 씨, 이번에야말로 끝장을 내지.”
진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품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의 흐름을 느끼며 천천히 [천마검]을 들어 올렸다.
검신을 따라 흐르는 서늘한 검강이 어둠 속에서 푸른빛과 붉은빛이 혼합된 광채를 내뿜었다.
스으응- 쾅!
진혁의 발밑에서 다시 한번 공기가 짓이겨졌다.
더 이상 시스템의 보조 따위는 필요 없었다.
오직 자신의 의지와 직관만으로 단전을 지배한 사내가, 신서울의 밤을 뒤흔들기 위해 다시 한번 검은 유성처럼 날아올랐다.
목적지는 티타늄 타워의 심장부.
모든 악의 근원이 도사리고 있는 그곳을 향해, '천마'의 발걸음이 마천루의 어둠을 찢으며 가속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