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3계급 구도심, 하층 슬럼가
슈우우- 쾅!
등 뒤에서 거대한 장갑차의 잔해가 화염을 토해내며 찢겨 나갔다.
신서울 상층 마천루의 인공 태양빛이 닿지 않는 하층 구도심. 그곳은 영원한 황혼과 자잘한 네온사인의 네온 독무(毒霧)만이 뒤엉킨 거대한 쓰레기장이었다.
강진혁의 걸음걸이는 묵직하면서도 기괴할 정도로 고요했다.
철컥, 촤르륵.
손목을 따라 뻗어 있던 은빛 회로 선이 붉은색의 과열 신호를 깜빡이며 요동쳤다. 티타늄 그룹의 지하 폐기장에서 도망쳐 나오는 과정에서 무리하게 흡수했던 1세대 생체 코어의 에너지가 문제였다.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전류와 미열이 혈관 속 나노머신과 부딪치며 폭발적인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SYSTEM INFO: 경고. 사용자 단전 구역, 생체 코어 에너지 오버히트 발생.]
[출력: 2,800 MW (불안정)]
[나노머신 동기화율: 62.1% (상승세이나 과부하 위험)]
[현재 상태: 혈관 및 신경계 미세 파열 우려. 즉각적인 운기조식 또는 에너지 분산이 필요합니다.]
눈앞의 시야(HUD) 구석에서 푸른빛의 시스템 아바타, AI ‘설화’가 깜빡이며 경고 문구를 띄웠다.
진혁은 낮게 신음하며 걸음을 멈췄다.
입술을 짓씹자 비릿한 피 맛이 혀끝을 적셨다. 온몸의 모공마다 뜨거운 김이 피어올랐다. 방금 전 탈출 과정에서 처형 부대의 코어를 흡원천공(吸元天功)으로 억지로 쑤셔 넣은 탓이었다. 현대의 고출력 생체 코어와 1,000년 전 마교의 마공(魔功)은 애초에 결합 방식이 달랐다.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이질적인 에너지가 체내에서 충돌하며 심장을 쥐어짜고 있었다.
“크윽……”
진혁의 미간이 깊게 찌그러졌다.
골목의 공기는 퀴퀴한 폐기유 냄새와 썩어가는 합성 단백질의 악취로 가득했다. 상층의 인간들이 버린 쓰레기로 명맥을 이어가는 하층 슬럼가. 이곳의 인간들은 법도, 윤리도 없다. 오직 돈과 코어의 출력만이 가치인 약육강식의 디스토피아였다.
아니나 다를까.
어둡고 좁은 골목길 어귀, 녹슨 파이프와 철판이 나뒹구는 그늘 속에서 몇 개의 시선이 진혁의 등 뒤를 끈질기게 파고들었다.
“야, 저거 봐라.”
“전신 개조도 안 된 놈이 꼴에 핏줄에 회로까지 박았어.”
“기종이 구형이긴 한데…… 저거, 목에 박힌 코어 출력이 보통이 아닌데? 아직 살아 있어!”
낮게 웅성거리는 목소리.
철컹, 철컥.
녹슨 철판을 긁는 소리와 함께 흉측한 무기를 든 사내들이 어둠 속에서 스물스물 걸어나왔다.
총기 밀수꾼이자 하층 슬럼가의 바닥을 쓸고 다니는 장기 매매 및 코어 밀렵꾼들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인간의 형상을 한 진혁이 보이지 않았다. 오직 시뻘겋게 과열되어 가치를 뿜어내는 ‘걸어 다니는 고성능 코어’로만 보일 뿐이었다.
“어이, 거기 신참. 다리가 아작이 났나 보네?”
무리를 이끈 사내가 입술을 혀로 핥으며 걸어 나왔다. 그의 오른쪽 팔은 군용 규격의 거친 유압식 의수로 개조되어 있었다. 덜컹거리는 기계음과 함께 의수 끝에서 시퍼런 고주파 진동 날이 튀어나왔다.
“티타늄 그룹의 폐기장에서 도망쳐 나온 실험체 찌꺼기인가? 하긴, 그 꼴을 하고 여기까지 기어들어 온 걸 보면 영락없지. 그 목덜미에 박힌 은빛 회로랑 단전의 코어, 우리한테 넘기고 가시지?”
사내의 뒤로 세 명의 일당이 퇴로를 차단하며 에워쌌다.
그들의 눈빛은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하층민들에게 상층 기업의 고급 코어는 인생을 한 방에 역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설령 그것이 터지기 직전의 오버히트 상태라 할지라도, 블랙 마켓에 넘기면 당장 수십만 원짜리 합성 마약과 진짜 고기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돈이 되었다.
진혁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칠흑 같은 흑안. 그 눈동자 속에는 두려움이나 당황스러움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오직 차갑게 가라앉은 살기만이 서려 있었다.
“덤벼라.”
낮고 쉰 목소리.
그 한마디에 밀렵꾼 리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미친 새끼가! 제 발로 기어들어 와서 살려달라고 빌어도 시원찮을 판에!”
카아악- 퉤!
사내가 바닥에 침을 뱉으며 유압식 의수를 치켜들었다.
우우우웅—!
고주파 진동음이 골목의 좁은 벽을 타고 귀를 찢을 듯 울려 퍼졌다.
사내의 몸이 폭발적인 스프링 반동과 함께 튀어나왔다. D급 하부 코어의 출력을 끌어올린 돌진 속도는 일반인의 눈에는 단 한 잔상의 잔해로만 보일 만큼 빨랐다.
‘빠르다. 하지만…… 눈에 보인다.’
진혁의 시야 속에서 사내의 근육 수축과 코어의 에너지 출력 궤적이 붉은 선으로 투사되었다. AI 설화의 연산 보조가 아니었다. 이미 진혁의 뇌와 신경계는 그 속도를 직접 눈으로 쫓고 있었다.
콰아아앙!
사내의 고주파 의수가 진혁이 서 있던 자리를 강타했다. 콘크리트 바닥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거대한 구멍이 파였다.
하지만 진혁의 모습은 그 자리에 없었다.
‘마광신보(魔光神步).’
잔상조차 남기지 않는 기묘한 신법.
진혁의 몸이 유령처럼 사내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오버히트로 인해 전신이 불타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지만, 오히려 그 고통이 진혁의 감각을 극한까지 예민하게 만들었다.
“뭐……?”
사내가 경악하며 고개를 돌리려 했다.
이미 늦었다.
진혁의 손바닥이 사내의 가슴팍, 정확히 생체 코어가 박혀 있는 단전 부위에 깊숙이 박혀 들었다.
찌릿-! 후두둑!
“크아아아악-!”
흡원천공(吸元天功).
진혁의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온 시커먼 마기(魔氣)의 소용돌이가 사내의 가슴 부근 나노 회로를 강제로 뜯어내기 시작했다.
“이, 이게 뭐야! 내 코어 출력이……! 몸 안의 에너지가 빠져나간다……!”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쳤지만, 진혁의 손아귀는 티타늄 합금 바이스처럼 굳건했다.
단순히 에너지를 강탈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내의 코어에서 뿜어져 나오는 저급한 생체 전류와 불순한 에너지를 진혁의 몸으로 끌어들인 뒤, 체내에서 충돌하던 오버히트의 열기와 강제로 맞부딪치게 만드는 것이다.
콰과과강!
체내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난 듯 진혁의 입술 사이로 검붉은 피가 왈칵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SYSTEM INFO: 외부 에너지 유입 확인.]
[저급 생체 코어 (D급) 출력 강탈 완료.]
[강탈한 에너지로 체내 오버히트 열기를 중화 및 분산합니다.]
[마기융합 2단계 진입을 위한 임계치 가속화……! 동기화율 71.4% 돌파.]
“크흣……!”
진혁의 눈에 시퍼런 광기가 서렸다.
몸 안에서 타오르던 흉측한 과열 열기가 사내에게서 강탈한 차가운 에너지를 만나며 중화되었다. 불길에 물을 끼얹은 것처럼, 폭주하던 회로가 순식간에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사내의 몸은 이미 바짝 말라 비틀어져 가고 있었다. 단전의 코어가 완전히 파괴되어 에너지를 빨렸기 때문이다.
털썩.
진혁이 손을 거두자마자 사내는 빈대떡처럼 바닥에 고꾸라졌다.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 시체였다.
“대…… 장?”
“저, 저 새끼 뭐야! 괴물이야?! ”
뒤에서 지켜보던 나머지 세 명의 밀렵꾼들이 혼비백산하여 뒤로 물러섰다. 그들의 손에 들린 권총과 개조 나이프가 사정없이 떨렸다. 방금 전까지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가던 놈이, 인간 하나의 코어를 손바닥 하나로 껍데기만 남기고 흡수해 버린 것이다.
“도망쳐! 저건 괴물이다!”
“쏴라! 당장 쏴!”
탕! 타앙-!
슬럼가의 낡은 골목을 울리며 총성이 터졌다.
탄환이 진혁의 어깨와 옆구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나노 장갑이 없는 부위의 피부가 찢어지고 피가 튀었다. 하지만 진혁은 아픔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 차가운 눈으로 그들을 응시했다.
방금 흡수한 에너지가 단전을 거쳐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오버히트가 가라앉고, 혈관 속의 나노머신이 새로운 에너지를 연료 삼아 순식간에 손상된 세포를 복구했다.
‘쓸만하군…….’
진혁의 입꼬리가 비틀어지며 서늘한 호선(弧線)을 그렸다.
현대의 거대 기업 티타늄 그룹이 만든 첨단 군사 기술과, 1,000년 전 마교의 전설적인 흡원천공이 결합한 괴물. 그 첫 번째 실험이 이 저주받은 하층 슬럼가의 쓰레기장에서 성공적으로 마무리를 향해 가고 있었다.
“어디로 가려고.”
진혁의 몸이 한 번 더 튀어 올랐다.
마광신보의 궤적이 어두운 골목의 네온 불빛 속으로 잔상을 남겼다.
퍼억-! 으드득!
“끄아악!”
비명이 골목을 채우기도 전에, 두 번째 밀렵꾼의 목덜미가 진혁의 손에 꺾였다.
도망치려던 마지막 남은 사내는 기겁하며 주저앉았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빌기 시작했다.
“살려, 살려주세요……! 잘못했습니다! 제발……!”
진혁은 그 사내의 앞에 차갑게 멈춰 섰다.
발밑으로 흘러내린 피가 구정물과 섞여 붉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진혁의 목과 손목을 따라 흐르던 은빛 회로는 이제 과열의 붉은빛을 완전히 지우고, 더욱 선명하고 차가운 은백색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진혁이 사내의 턱을 구둣발로 짓밟으며 낮게 물었다.
“묻지. 이 근처에서 가장 거대하게 놀고 있는 놈들 소속이 어디지?”
“하, 하층……?”
“티타늄 그룹의 비자금을 세탁하고, 찌꺼기 실험체들을 처리하는 지하 범죄 조직. 그들의 본거지가 어디지?”
사내는 눈을 희게 뜨며 경악으로 물들었다.
“설마…… 천마회(天魔會)를 찾는 거냐? 그 미치광이 집단을……?”
“천마회.”
진혁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직하게 읊조려졌다.
티타늄 그룹이 마공 실험 과정에서 버린 실패작들과 하층의 범죄자들이 결합해 만든 사이버 범죄 마피아. 자신들을 ‘천마’의 후예라 자칭하는 역겨운 광신도 집단.
그곳이야말로 진혁이 티타늄 그룹을 무너뜨리기 위해 첫 번째로 짓밟고 올라서야 할 장기판이었다.
“거기가 어디지?”
“슬럼가 7구역, 폐쇄된 지하 수력 발전소…… 거기에, 거기가 본거지야…… 제발, 목숨만은…….”
툭.
사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혁의 손이 그의 단전을 관통했다.
추가적인 에너지 흡수.
다시 한번 진혁의 단전에서 거대한 내공(마기)의 파동이 요동치며 온몸을 휘감았다.
[SYSTEM INFO: 마기융합 2단계 [마기융합(魔氣融合)] 안정화 90% 돌파.]
[생체 코어 출력: 4,200 MW (Gen-3 튜닝형 상당 도달)]
[보유 마력(내공): 10년가량의 정제된 마기 축적 완료.]
완벽했다.
오버히트는 완전히 해소되었고, 몸은 폭발적인 힘으로 충만해졌다.
진혁은 쓰러진 시체들을 뒤로 한 채, 피투성이가 된 검을 땅에 끌며 어둡고 깊은 슬럼가 안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등 뒤 멀리서, 상층 마천루의 거대한 탐조등이 신서울의 밤하늘을 가르며 허공을 훑고 지나갔다.
그 빛이 닿지 않는 영원한 어둠 속에서, 진짜 ‘천마’의 발걸음이 시작되고 있었다.
찰칵, 촤르륵.
진혁의 걸음이 멈출 때마다 바닥에 고인 빗물과 핏물이 미세한 파문을 그리며 흩어졌다.
하층 슬럼가 7구역.
상층의 화려한 불빛이 도달하지 못해 언제나 습하고 무거운 어둠만이 내려앉은 그곳은, 티타늄 그룹의 비호 아래 자라난 온갖 범죄의 온원이었다. 그중에서도 ‘천마회’는 슬럼가의 암흑가를 지배하는 가장 거대하고 폭력적인 조직이었다.
고대 마교의 유골 데이터에서 파생된 불법 마공 실험의 부산물들이 흘러들어와 터를 잡은 곳.
“크큭…… 신참인가? 아니, 얼굴이 익숙한데.”
폐쇄된 지하 수력 발전소의 거대한 철문 앞.
전신에 싸구려 사이보그 의수를 두르고, 눈깔 대신 붉은색 광학 렌즈를 박아 넣은 문지기 두 명이 진혁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은 진혁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미세한 마기의 파동을 감지했는지, 낄낄거리며 무기를 뽑아 들었다.
“티타늄의 폐기장에서 도망쳐 나온 07호인가? 회장님이 사냥개를 풀었다더니, 네놈이 그 지독한 잡종이었어?”
문지기의 입가에 비열한 미소가 걸렸다.
그들은 진혁이 단기필마로 이곳을 찾아온 이유를 모른 채, 단지 상부가 내걸었던 거액의 현상금에 눈이 멀어 있었다.
하지만 진혁은 그들의 말을 대답으로 받을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다.
슈우우-!
진혁의 오른손에 감긴 은빛 회로가 순식간에 시커먼 마기로 물들었다. 흡원천공으로 강탈해 정제한 10년 치의 마기가 혈관을 타고 손끝으로 응축되었다.
쿠구구구궁-!
지하 수력 발전소의 거대한 철문이 진혁이 뿜어낸 압도적인 마기의 압력에 못 이겨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문지기들의 광학 렌즈가 경악으로 파르르 떨렸다.
“이, 이게 무슨……”
“내 밑으로 기어들어 온 광신도들에게, 진짜 마공이 뭔지 보여주지.”
진혁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어둠 속에서, 천마회의 본거지를 박살낼 피의 진격이 비로소 그 막을 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