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화 독기(毒氣)를 삼키는 자
쉬익-!
공장 지대의 거대한 철제 환기구에서 불길한 기체의 분출음이 터져 나왔다.
순간, 짙은 회색빛의 안개가 구도심 제3구역의 상공을 무자비하게 짓누르며 밀려들었다. 티타늄 그룹이 하층민의 저항을 일시에 진압하기 위해 살포한 생화학 신경 가스, [네크로-신스].
피부와 접촉하는 즉시 신경계를 마비시키고, 호흡기로 스며드는 순간 혈관을 검게 응고시켜 단수(斷水)된 생선처럼 거품을 물게 만드는 살인적인 독소였다.
"크윽……!"
니르바나 저항군의 최정예 대원들조차 가스에 노출되자마자 방독면의 필터를 부여잡고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방어막을 전개하려 했으나, 며칠에 걸친 총력전으로 생체 코어의 출력이 한계에 달한 그들에게 고순도 군사 독소는 치명적이었다.
"대장님! 가스가…… 너무 진합니다! 이거 보통의 여과기로는 못 걸러냅니다!"
윤아영이 휴대용 단말기의 화면을 두드리며 경악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화면 속 공기 중 독소 농도는 안전 기준치의 수백 배를 아득히 웃돌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몇 분 안에 제3구역 전체가 살아 숨 쉬는 생명체 하나 없는 유령 지대로 변할 판이었다.
하지만 그 무자비한 독무(毒霧)의 폭풍 속에서, 오직 한 사람만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뚜벅.
강진혁의 군화가 아스팔트 바닥을 무겁게 울렸다.
그의 칠흑 같은 흑안은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피부를 찌르는 듯한 맹독의 자극에 반응하여, 단전 깊은 곳에 자리 잡은 10,500 MW의 거대한 마기 코어가 낮고 묵직한 진동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즈으으응-!
진혁의 목과 손목을 따라 흐르던 은빛 회로 선이 핏빛에 가까운 암흑색으로 물들었다.
네크로-신스 독소가 진혁의 코끝을 스치는 순간, 몸속의 나노머신들이 일제히 경보음을 울렸다.
[SYSTEM ALERT: 치명적인 생화학 독소 [네크로-신스]가 체내 침투를 시도합니다.]
[WARNING: 혈관 세포의 14.3%가 급속 응고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제어권 우회 중... 프로토콜 시스템 연산 가동.]
"시스템은 꺼둬."
진혁이 나지막하게 뇌까렸다.
인공지능의 보조 연산에 의존하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진혁은 자신의 의지만으로 혈관을 타고 흐르는 독소의 흐름을 고스란히 응시했다.
기계공학적으로는 백만 번을 분해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합성 독소. 하지만 무공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것 또한 하나의 '기(氣)'이자 '살기(殺氣)'의 변형태에 불과했다.
"독(毒)도 기(氣)다."
진혁의 입꼬리가 비틀리며 차가운 미소가 그려졌다.
심장을 중심으로 온몸의 혈 자리를 꽉 조이고 있던 기혈의 펌프질이 역방향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흡원천공(吸元天功) - 역운기(逆運氣).
보통의 무인이라면 독을 흡수하는 순간 단전이 썩어 문드러지고 주화입마에 빠져 피를 토하며 즉사할 터였다.
하지만 진혁의 육체는 티타늄 그룹의 극한 생체 실험 속에서 단련된 '천마무상체'였고, 그 위에는 이미 5단계 [초월천마경]의 경지에 닿은 거대한 마기가 버티고 있었다.
콰아아앙-!
진혁의 입가와 전신에서 검붉은 노을 같은 마기가 뿜어져 나오며 주변의 공기를 순식간에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진공청소기처럼, 공장 지대 전역을 뒤덮고 있던 회색빛 독무가 일제히 강진혁의 몸을 향해 회오리치며 빨려 들어갔다.
"저, 저기…… 진혁 씨?!"
윤아영이 경악하여 눈을 크게 떴다.
송수연을 비롯한 저항군 대원들도 숨을 멈추고 그 기괴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진혁이 주변의 맹독을 모조리 자신의 몸속으로 들이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사방에 자욱하던 독무가 단 몇 초 만에 거짓말처럼 걷혀 나갔다. 공장 지대의 공기는 맑아졌지만, 그 대신 강진혁의 몸 주변은 지옥에서 불어온 듯한 시커먼 독기(毒氣)의 실루엣으로 뒤덮였다.
쿠구구구구……!
진혁의 눈동자에서 핏빛 섬광이 튀었다.
체내로 들어온 수만 톤 분량의 맹독이 마기와 충돌하며 혈관을 태우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몰려왔다. 세포가 녹아내리고 다시 재생되는 과정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일반인이었다면 이미 육신이 산화해 잿더미가 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진혁의 얼굴에는 고통 대신 압도적인 쾌감이 스쳐 지나갔다.
[생화학 독소 [네크로-신스]의 분자 구조 분석 완료.]
[마기와 나노머신을 통한 독성 정제 프로세스 가동.]
[새로운 독문 마공의 자량이 충족되었습니다.]
[신규 기술: [천마독기(天魔毒氣)]의 융합 각성이 완료됩니다.]
번쩍!
진혁이 입을 벌리자, 그 사이로 시커먼 독염(毒焰)이 뱀의 혀처럼 스쳐 지나갔다.
단전의 마기 출력이 4,000 MW를 가볍게 돌파하며 4,300 MW를 향해 치솟았다. 단순한 에너지의 흡수를 넘어, 적이 준비한 가장 악랄한 살상 무기를 자신의 무기로 완전히 승화시킨 것이다.
"크…… 하하하."
진혁이 낮게 웃었다.
목소리에 섞인 미세한 진동만으로도 주변의 강철 바닥이 잘게 부서져 내렸다.
적들이 하층민을 말살하기 위해 뿌린 독소는, 이제 거꾸로 티타늄 그룹의 잔당들을 심판할 가장 잔혹한 사형 선고가 되었다.
"대, 대장…… 방금 저거, 무슨 짓을 한 거야?"
송수연이 경악에 찬 얼굴로 검을 짚으며 일어섰다.
그녀가 평생토록 보아온 어떤 초인이나 무림 고수도 이런 미친 짓을 벌이는 이는 없었다. 독을 흡수해 자신의 힘으로 바꾼다니, 그것은 인간의 영역을 아득히 넘어선 진정한 '마신(魔神)'의 권능이었다.
"선물은 돌려줘야지."
진혁이 차갑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티타늄 타워로 이어지는 지하 공장의 거대한 메인 게이트였다.
타워 내부에서 들려오는 진동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진무극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티타늄 그룹의 방위 시스템과 살인병기들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회장의 사망 코드에 반응하여 타워 전체가 '최후의 방어 프로토콜'로 전환된 상태였다.
"윤아영."
"어, 어? 불렀어?"
윤아영이 황급히 정신을 차리며 대답했다.
"헤븐리 파운데이션 서버실로 가는 가장 빠른 우회로를 열어라. 320만 명의 코어를 묶고 있는 메인 락(Lock)을 부숴야 한다."
"알, 알았어! 지금 바로 방화벽 뚫을게! 하지만 진혁 씨, 위쪽에서 엄청난 반응이 잡히는데…… 이거 보통 녀석들이 아니야!"
아영의 단말기 화면이 붉은색 경고등으로 가득 채워졌다.
티타늄 타워의 최상층 방어선을 지키는 최종 살인병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히 개조된 인간 수준이 아니었다. 국가 재난급 사태에만 투입된다는 티타늄 그룹의 비장의 카드, 블랙 가드 3대장.
"어차피 다 쓸어버려야 할 쓰레기들이다."
진혁이 천마검을 가볍게 치켜들었다.
검신에 어린 은빛 티타늄 합금의 광채는 온데간데없고, 그 위로는 방금 흡수한 네크로-신스 독소가 엉겨 붙어 기괴한 검붉은 핏빛 오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새롭게 개화한 독문 마공, [천마독기]가 검끝에서 뱀처럼 스물스물 기어올랐다.
파지지직-!
공기가 타들어 가는 소리와 함께, 진혁의 발밑에 거대한 균열이 생겼다.
"가자."
쾅-!
음속을 돌파하는 폭음과 함께 진혁의 형체가 허공에서 증발하듯 사라졌다.
[마광신보 - 극(極)]의 궤적조차 남지 않았다. 남은 것은 오직 암흑 같은 잔상과, 사방을 뒤흔드는 압도적인 마기의 파동뿐이었다.
그가 향하는 곳은 티타늄 타워의 심장부.
신서울의 운명을 쥔 마지막 혈전의 무대로, '천마'가 직접 강림하고 있었다.
슈우우우- 쾅!
거대한 공장 지대의 천장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가며,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다.
지하 500층의 어둠을 뚫고 올라온 진혁의 앞을 가로막듯, 타워의 철제 외벽이 통째로 박살 나며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지상으로 내팽개쳐졌다.
지축이 울리며 사방이 진동했다.
그 충격파의 중심에서, 대지가 쩍쩍 갈라지며 티타늄 그룹이 숨겨둔 또 하나의 괴물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공장 내부의 메인 로비 바닥이 수십 톤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거미줄처럼 부서져 내렸다.
먼지와 매연이 소용돌이치는 그 한가운데,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철갑의 형체가 무거운 숨을 몰아쉬며 일어섰다.
두 다리는 중장갑 트럭의 유압 실린더로 대체되어 있었고, 상체는 생체 코어의 과부하로 인해 시뻘건 플라즈마 열기를 뿜어내는 거구.
티타늄 그룹 블랙 가드의 3대장 중 하나, '기계 마수(機械魔獸)' 오거였다.
"크르르…… 쥐새끼 같은 실험체 놈이……!"
오거의 입에서 쇳소리가 섞인 흉포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그의 어깨에 장착된 4연장 플라즈마 캐논이 일제히 푸른빛의 조준 광선을 발사하며 강진혁의 전신을 락온했다.
일반 초인이었다면 그 붉은 조준점만 스쳐도 영점이 잡혀 원자 단위로 분해될 터였다.
하지만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의 입가에 걸려 있던 차가운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시끄럽군."
진혁이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그의 손에 쥐인 천마검은 이미 네크로-신스 독소와 10,500 MW의 마기가 융합되어 검붉은 실루엣마저 왜곡될 정도의 흉악한 파동을 뿜어내고 있었다.
방금 흡수한 맹독은 단전의 출력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진혁의 검강(劍剛) 자체를 상대를 부식시키는 파멸적인 독검(毒劍)으로 진화시켜 놓은 상태였다.
"죽어라, 벌레 같은 자식!"
오거가 포효하며 방랑자 같은 거대한 주먹을 내질렀다.
쿠구구구구-!
음속을 돌파하는 주먹풍이 공장 내의 남은 철제 기둥들을 종잇장처럼 구겨버렸다.
동시에 어깨의 플라즈마 캐논이 불을 뿜으며 수천 도에 달하는 고열의 에너지 탄막을 진혁의 전방으로 쏟아부었다.
피할 공간조차 없는 전면 폭격.
하지만 진혁은 물러서기는커녕 오히려 전신에 마기를 끌어올리며 정면으로 돌진했다.
[SYSTEM ALERT: 만법귀마(萬法歸魔) 연산 개시.]
[적의 플라즈마 출력 공진 주파수 분석 완료.]
[천마무상체 방어막 동기화 98.7%.]
시스템의 잔여 회로가 스쳐 지나갔지만, 진혁은 그것을 참고용으로만 흘려보냈다.
오직 자신의 육감과 직관.
1,000년 전 마교의 유골에서 추출된 천마의 투지와, 현대 메가 코퍼레이션의 가장 잔혹한 화력이 부딪치는 순간이었다.
화아아악-!
진혁의 몸이 한 마리의 검은 맹수처럼 허공으로 솟구쳤다.
플라즈마 탄막이 진혁의 잔상을 관통하며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었지만, 진혁은 이미 그 폭발의 열기를 뚫고 오거의 거대한 철갑 품 안으로 파고들어 가 있었다.
"뭐……?!"
오거의 붉은 광학 눈동자가 경악으로 크게 흔들렸다.
그의 시야에서 진혁의 형체가 완전히 증발해 있었기 때문이다.
[마광신보 - 극(極)]의 경지.
빛의 잔상조차 따라잡지 못하는 속도로 공간을 유린한 진혁이 오거의 거대한 유압 관절 부근에 검을 겨누었다.
"네놈이 만든 철갑 따위가, 내 마기를 버텨낼 줄 알았나."
진혁의 목소리가 오거의 귓가에 사신(死神)의 귓속말처럼 박혔다.
동시에, 천마검에 엉겨 붙어 있던 시커먼 독기(毒氣)가 일제히 폭발했다.
[신천마신공 - 천마일검(天魔一劍) : 개량형(改)]
콰아아앙-!
세상이 일시적으로 정지한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완벽한 침묵.
그 침묵을 깨고 오거의 우측 유압 실린더와 4세대 생체 코어가 장착된 가슴 부근에서 시커먼 연기와 함께 참혹한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지지직…… 끄르륵……!
티타늄 합금으로 주조된 수천 톤 밀도의 장갑이 진혁의 검끝에서 뿜어져 나온 독문 마기와 고주파 공진 파쇄력 앞에 두부처럼 무력하게 녹아내렸다.
방어막은 한계치를 아득히 초과하여 산산이 조각났고, 그 속살을 드러낸 생체 코어는 진혁의 검붉은 마기에 의해 강제로 역류하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내, 내 코어가……!"
오거가 거대한 두 눈을 뒤집으며 비명을 질렀다.
흡원천공의 역류 회로가 오거의 단전에 박힌 순간, 그가 평생 동안 약탈하고 흡수해 온 무수한 타인의 생체 에너지와 마기가 거꾸로 진혁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사방의 공기가 진혁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쳤다.
오거의 거구는 순식간에 수분이 빠져나간 미라처럼 바짝 마르기 시작했고, 반대로 진혁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 출력은 11,000 MW를 가볍게 돌파해 11,500 MW를 향해 폭등했다.
[단전 마기 출력 11,200 MW 돌파.]
[블랙 가드 '오거'의 생체 코어 에너지 완전 흡수.]
[신체 밀도 재구성 완료. 마기 동기화율 91.5%.]
쿵.
오거의 거대한 육신이 더 이상 에너지를 유지하지 못한 채 바닥으로 무너지며 거대한 먼지 구름을 일으켰다.
단 한 번의 교전.
티타늄 그룹이 자랑하는 국가 재난급 살인병기 중 하나가, 진혁의 손에 단 몇 초 만에 고철 덩어리로 전락한 것이다.
"대…… 대단해……."
후방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윤아영이 마른침을 삼키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송수연 역시 자신의 검을 꽉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감추지 못했다.
진혁이 보여주는 무력은 이미 인간의 단계를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그것은 눈앞의 적을 짓밟는 자가 아니라, 신서울 전체를 지배하던 거대 자본과 시스템 그 자체를 심판하는 '지옥의 군주'의 그것에 가까웠다.
진혁은 쓰러진 오거의 잔해를 싸늘한 눈으로 내려다보다가, 곧바로 시선을 들어 티타늄 타워의 거대한 상층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타워의 최상단에서 또 다른 두 개의 강력한 기계적 반응이 진혁을 향해 맹렬한 속도로 내려오고 있었다.
블랙 가드의 나머지 2대장, 그리고 티타늄 그룹이 숨겨둔 최종 방어선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오라버니……."
진혁의 뇌리에 문득 진세린의 잔상과, 진무극이 남긴 마지막 대사가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 어떤 잔해도, 그 어떤 음모도 지금의 진혁을 막아설 수는 없었다.
진혁의 입가에 짙고 잔인한 미소가 번졌다.
"기다리고 있었다."
파직-!
공기를 찢는 뇌전과 함께, 진혁의 형체가 다시 한번 검은 잔상을 남기며 타워의 심장부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신서울의 밤하늘을 가르는 천마의 검격은, 이제 티타늄 그룹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놓기 위해 더욱 거세게 포효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