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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299화목차

제299화 <전설의 귀환>

“……이게 정말 끝난 건가.”

신서울, 제13구역의 낡은 철판 가옥가.

희뿌옇게 내려앉은 새벽안개 속에서, 낡은 가죽 자켓을 걸친 사내가 멍하니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더 이상 거대 기업 티타늄 그룹의 로고를 빛내던 거대 홀로그램 광고판이 존재하지 않았다.

세계를 쥐락펴락하던 마천루들은 차갑게 식은 채 거대한 무덤처럼 솟아 있을 뿐이었다.

세상은 바뀌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간 것뿐이었다.

돈이 곧 법이고, 생체 코어의 출력이 곧 인간의 계급을 결정하던 가혹한 디스토피아.

그 철옹성 같던 자본의 바벨탑을 무너뜨린 것은 대단한 혁명군도, 거국적인 정치적 합의도 아니었다.

오직 한 사내의 주먹과 검이었다.

“……신천마(新天魔).”

누가 먼저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는지는 몰랐다.

하층 슬럼가의 아이들 사이에서, 그리고 기업의 압제에서 벗어난 민중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그 이름.

시스템의 족쇄와 핏줄의 굴레를 스스로의 힘으로 박살 내고, 마침내 만물의 결을 지배하는 경지에 오른 사내.

강진혁.

그의 존재는 이제 신서울을 넘어 대륙 연방 전역의 신화가 되어 있었다.

북방의 불모지, 닿는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드는 거대한 설산.

바람마저 칼날처럼 휘몰아치는 그 고립된 절경의 중턱에서, 강진혁은 천천히 눈을 떴다.

콰아아아-!

설산을 뒤흔드는 눈보라 속에서도 그의 눈동자만큼은 티 없이 고요하고 깊었다.

흑암(黑暗)보다 더 짙고 단단한 눈빛.

그 안에는 더 이상 인공지능의 보조 연산을 알리는 푸른빛의 HUD 인터페이스도, 시스템의 잔여 오류 코드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순수한 육감과, 스스로의 단전에서 소용돌이치는 거대한 내력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시스템은 꺼졌다.’

진무극이 남긴 마스터 코드도, 이현도가 설계했던 천마 프로토콜의 잔재도 완전히 소멸했다.

그것은 곧 강진혁이 더 이상 무엇의 도움도 받지 않는 완전한 독립된 존재가 되었음을 뜻했다.

슈우우웅-

진혁이 가볍게 팔을 휘두르자, 허공에 미세한 공간의 파문이 일어났다.

내력을 담은 손끝 하나 스쳤을 뿐인데, 눈앞의 거대한 빙벽이 두부처럼 부드럽게 갈라지며 속살을 드러냈다.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 나노머신의 자동 수복 기능에 의존하지도 않았다.

오직 마신경(魔神境)의 극치에 달한 신체와, 스스로 개척한 기혈의 궤적만으로 이뤄낸 결과였다.

쿵, 쿠구구구-

빙벽의 갈라진 틈새에서 천 년 동안 봉인되어 있던 고대 마교의 원시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검붉은 오라가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진혁의 전신을 감쌌다.

일반적인 무인이었다면 그 지독한 마기의 압박에 혈관이 터지고 단전이 박살 났을 터였다.

그러나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와라.”

진혁의 입술이 낮게 달싹였다.

그와 동시에, 그의 단전 부근에서 거대한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흡원천공(吸元天功)]

콰르릉-!

설산 전체를 뒤흔들며 뿜어져 나오던 고대의 마기가 마치 거대한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진혁의 몸 안으로 쇄도했다.

사방에 흩어져 있던 방대한 에너지의 파편들이 일시에 그의 혈관을 타고 흘러들었다.

보통이라면 주화입마에 빠져 미쳐 날뛰어야 할 기운이었다.

하지만 진혁의 육체는 [제11식 천마무상체(天魔無相體)]의 권능으로 그 모든 에너지를 완벽하게 흡수하고 재조립했다.

근육의 밀도가 한 단계 더 치밀해지고, 뼈마디마다 은은한 칠흑빛 광채가 서렸다.

단전에 머무는 내력의 양이 눈에 띄게 불어남과 동시에, 그것을 다루는 감각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슈아아아악-

고대의 마기와 진혁의 순수한 의지가 하나로 융합되는 순간이었다.

이것은 그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고, 그 어떤 시스템도 계산해낼 수 없는 오직 강진혁만의 영역이었다.

신서울, 티타늄 타워의 잔해 앞에 세워진 임시 집결지.

“……진혁 오빠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어?”

윤아영이 모니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그녀의 손가락은 끊임없이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지만, 사실상 신서울의 전산망은 평화로웠다. 메이저 기업들의 잔당이 소탕된 이후, 네트워크는 더 이상 인간을 통제하는 감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옆에서 무기를 손질하던 송수연이 픽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 마, 아영아. 그 양반이 어디 길이라도 잃겠어? 애초에 이 세상에 그를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이제 없어.”

“그래도…….”

진세린이 묵묵히 자리에 앉아 자신의 팔목을 내려다보았다.

한때 생체 코어의 과부하로 언제 터질지 몰랐던 그녀의 팔목은, 진혁이 남겨준 마기의 잔재 덕분에 완전히 안정되어 있었다.

진세린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비록 아버지를 잃었지만, 그녀는 슬퍼하지 않았다. 그것은 구태의연한 과거와의 결별이었고, 새로운 시대를 향한 진정한 시작이었으니까.

“아버지가 남긴 데이터 파편을 노리고 대륙 연방의 잔당들이 움직여서 첩보가 들어왔어.”

진세린의 말에 송수연이 눈매를 가늘게 떴다.

“벌레들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네. 어디로 기어오고 있대?”

“센트럴 시티 외곽. 그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발악이겠지.”

그 순간, 집결지 안의 모든 공기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지축이 울리는 소리도 아니었고, 거대한 폭발음도 아니었다.

단지 대기 중에 흐르는 '기운'의 결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웅고고고고고……!

마치 하늘이 열리는 듯한 거대한 압박감이 온 사방을 짓눌렀다.

집결지 안의 모든 이들이 동시에 고개를 들어 북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북방의 설산 방향에서, 세상의 모든 빛을 흡수할 듯한 칠흑빛 뇌전이 밤하늘을 갈라놓으며 이쪽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저건……!”

윤아영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것은 초음속을 아득히 초월한 속도로 대기를 찢으며 날아오는 하나의 거대한 검강(劍罡)이었다.

콰아아아앙-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신 칠흑빛 섬광이 신서울의 상공을 가로지르며 정중앙에 내리꽂혔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거대한 진동이 일었지만, 놀랍게도 주변의 건물이나 사람들에게는 단 하나의 상처조차 입히지 않았다. 오직 대기의 흐름과 공간의 진동만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미친 제어력.

빛이 걷힌 자리.

그곳에는 먼지 하나 묻지 않은 말끔한 차림의 사내가 서 있었다.

칠흑 같은 검은 머리, 차가운 흑안.

목과 손목을 따라 은은하게 흐르던 회로의 선은 이제 완전히 동화되어 마치 그의 육체 일부인 것처럼 자연스러운 문양으로 빛나고 있었다.

강진혁.

그가 돌아왔다.

“……다녀왔다.”

진혁의 나지막한 음성이 넓은 광장에 울려 퍼졌다.

그 짧은 한마디에 집결지에 모여 있던 모든 이들의 숨이 멎었다.

송수연이 허리춤의 도검을 고쳐 잡으며 입꼬리를 씨익 말아 올렸다.

“이야, 귀신같이 돌아오네. 기다리다 목 빠지는 줄 알았다, 진혁아.”

윤아영은 안도감에 눈물을 살짝 글썽이며 모니터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빠……!”

진세린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진혁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녀의 눈빛에는 경외감과 함께 깊은 신뢰가 담겨 있었다.

진혁은 가벼운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스템이 없어도, 프로토콜이 없어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선명하고 생동감 있게 눈에 들어왔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다.’

자본과 기술, 그리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굴레를 씌우던 시대는 완전히 끝났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넓었고, 대륙 연방의 잔존 세력들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거대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진혁이 천천히 시선을 들어 멀리 남쪽, 대륙 연방의 심장부가 위치한 곳을 바라보았다.

그의 흑안 속에서 짙은 마기가 소용돌이쳤다.

“끝이 아니야.”

진혁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시스템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던진 사내가, 새로운 세상을 향해 다시 한번 발걸음을 내딛었다.

“……잔챙이들이 움직인다면, 싹 쓸어버리면 그뿐이다.”

강진혁의 나지막한 선언이 밤하늘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그의 목소리는 거칠거나 요란하지 않았으나, 그 안에 담긴 파동은 대기를 타고 흘러 주변 수 킬로미터의 공간을 완벽하게 지배했다.

시스템의 보조 없이 오직 자신의 의지만으로 기혈을 통제하는 경지.

마신경(魔神境)의 정점에 이른 자만이 구사할 수 있는 절대의 기세였다.

윤아영이 숨을 고르며 재빨리 홀로그램 단말기를 펼쳤다.

메인 서버의 자율 제어 기능은 꺼졌지만, 그녀가 독자적으로 구축한 국소적인 정보망에는 여전히 대륙 연방 잔당들의 움직임이 실시간으로 포착되고 있었다.

“오빠, 센트럴 시티 외곽으로 향하던 메이저 연합의 잔존 PMC들이 진형을 재구축하고 있어. 단순히 도망치는 게 아니야. 아까 오빠가 북방 설산에서 흡수했던 고대 마교의 에너지 파동을 추적해서 이곳으로 역공을 준비하고 있어.”

“역공이라.”

진혁이 낮게 콧방귀를 뀌었다.

자본의 힘으로 세계를 쥐고 흔들던 메이저 기업들의 이사진과 PMC 수뇌부들은, 자신들이 쌓아 올린 바벨탑이 무너졌음에도 여전히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천마 프로토콜의 원천 데이터가 자신들의 손에 들어오면 예전의 권력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욕심에 눈이 멀어 제 무덤을 파는구나.”

진세린이 차가운 눈빛으로 칼자루를 쥐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일점의 망설임도 없었다.

“내가 선발대를 맡을까, 진혁. 신서울의 잔재를 정리하면서 몸이 굳었는데, 몸풀기로 딱 좋겠어.”

“아니.”

진혁이 가저 저지하듯 손을 내저었다.

그는 북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직 대지의 끝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 속에는 메이저 연합이 끌고 오는 중장갑 전차와 고출력 생체 코어의 진동이 미세하게 섞여 있었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라. 신서울의 기틀을 다지고, 자본의 굴레에서 벗어난 이들을 규합하는 게 먼저다.”

“그럼 오빠 혼자서 그 대부대를 상대하겠다는 거야?”

윤아영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무리 강진혁이 신천마라 불리며 경지에 올랐다 한들, 대륙 연방 전역에 남은 모든 군사 자본이 결집한 연합군을 상대로 홀로 나서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진혁은 피식 웃을 뿐이었다.

그의 흑안 깊은 곳에서 칠흑빛 뇌전이 아스라이 스쳐 지나갔다.

“혼자가 아니다.”

진혁이 자신의 단전을 가볍게 두드렸다.

“내 안에는 1,000년 전 마교의 유골에서 발원한 기운과, 이 세상의 모든 기술을 짓밟고 일어선 내 검이 있다. 적들이 많을수록, 흡수할 마기는 더 넘쳐나겠지.”

말을 마친 진혁의 발밑에서 미세한 공간의 파문이 일어났다.

슈우우웅-

폭음조차 나지 않는 지극히 정제된 초음속 이동.

그것이 바로 [마광신보(魔光神步)]의 진정한 극치였다.

잔상조차 남기지 않은 채, 강진혁의 형체는 이미 그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대륙 연방 센트럴 시티 외곽의 황무지.

지평선 끝까지 늘어선 거대한 장갑차들과 수백 기의 전투용 사이보그 부대가 거대한 진형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 최선두에는 4세대 생체 코어를 이식받은 PMC의 에이스들이 오라를 내뿜으며 도열해 있었다.

“목표물은 단 한 명이다!”

PMC의 총사령관이자 전직 티타늄 그룹 특수부대 장교였던 로버트가 고함쳤다.

그의 전신에 장착된 5세대 플라즈마 슈트가 붉은빛을 번뜩였다.

“회장님이 남긴 데이터 파편의 백업 소스가 그 자의 체내에 흡수되어 있다! 살아서 잡든, 토막을 내서 회수하든 상관없다! 총출동해라!”

콰아아아앙-

로버트의 명령과 동시에 수백 기의 중장갑 유닛이 일제히 화력을 개방했다.

하늘을 뒤덮은 플라즈마 탄환과 고주파 빔 포격이 사방의 대지를 융해시키며 거대한 화염 폭풍을 일으켰다.

그 위력은 어지간한 산맥 하나쯤은 흔적 없이 지워버릴 만큼 막대한 양이었다.

하지만――.

“……어?”

최전방에 있던 PMC 대원 하나가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폭격이 집중된 그 황무지의 정중앙, 모든 것이 재로 변해야 마땅한 그 공간에…… 한 사내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서 있었다.

화염과 플라즈마는 사내의 몸에 닿기도 전에 사방으로 튕겨 나가거나, 혹은 빨려 들어가듯 흩어지고 있었다.

“뭐지……? 저건 포격의 충격을 흡수하는 방어막이 아니야……!”

로버트의 얼굴에 경악의 색이 역력했다.

사내의 주변에는 눈에 보이는 보호막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사내가 내뿜는 미세한 기운의 결이, 날아오는 모든 물리적·에너지적 공격의 주파수를 억지로 간파해 무력화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공학의 영역이 아니었다. 물리학의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은 절대의 무도(武道).

[만법귀마(萬法歸魔)]

강진혁이 차갑게 가라앉은 흑안으로 전방의 군대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입가에 옅고도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너희가 가져온 기술이란 게 겨우 이 정도인가.”

진혁이 가볍게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끝에 모인 칠흑빛 마기가 대기를 찢어발기며 거대한 검강의 형태로 뻗어나갔다.

아직 검을 휘두르지도 않았다. 단지 기운을 응축하는 것만으로도 대륙 연방의 정예 부대가 탄원하는 전차의 장갑들이 스스로 찌그러지며 비명을 질렀다.

“쏘…… 쏘라고! 전탄 발사해!”

로버트가 공포에 질려 미친 듯이 방어 시스템을 조작하려 들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진혁의 손가락이 허공을 향해 가볍게 내리그어졌다.

[신천마신공 제13식 파천검강(破天劍罡) - 참단(斬斷)]

쿠구구구구궁――!

빛이 사라졌다.

아니, 세상의 모든 색채가 칠흑빛 검강에 베여 단숨에 지워졌다.

지평선을 가득 채우고 있던 수백 기의 장갑차와 PMC 부대, 그리고 로버트의 몸이 정확히 반으로 갈라졌다.

폭발음조차 늦게 들릴 만큼 압도적인 참격이었다.

사방을 뒤덮었던 거대한 군사 요새와 장비들은 분자 단위로 붕괴하며 한 줌의 먼지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황무지 한가운데, 오직 강진혁 홀로 남았다.

그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 시선이 향하는 끝에는, 아직도 자신들의 권력이 영원할 것이라 믿고 있는 대륙 연방의 진짜 본산, 메이저 기업 연합의 최종 심장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진혁이 낮게 숨을 내쉬며 발걸음을 옮겼다.

“끝을 내주마.”

새로운 시대의 종말이자, 참된 천마의 강림을 알리는 진정한 진격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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