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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298화목차

제298화 홀로 남는 길

바람이 거세지게 몰아치는 첨탑의 끝.

강진혁의 칠흑 같은 머리카락이 난기류에 흩날렸다.

아래로 펼쳐진 센트럴 시티와 오메가 시티의 야경은 화려했다. 네온사인의 홍수, 끊임없이 오가는 비행선들의 항적, 그리고 자본과 권력이 빚어낸 거대한 콘크리트 정글.

그러나 그 안에는 더 이상 거대 기업의 서슬 퍼런 감시망도, 인공지능이 계산하는 냉혹한 생존 등급도 존재하지 않았다.

슈우우웅-!

차가운 고산의 밤바람이 진혁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과거였다면 눈앞에 파란색 투명 창이 떠오르며 주변의 풍압, 대기 온도, 적의 접근 경로를 0.1초 단위로 분석해 주었을 것이다.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 v3.04...]

환청처럼 머릿속에 울리던 기계음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진무극의 소멸과 함께, 그리고 스스로 시스템의 족쇄를 부수어 버린 그날 이후로 강진혁의 시야는 완전히 순수한 인간의 육감(肉感)으로만 채워져 있었다.

아니,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감각이었다.

"프로토콜은 끝났다."

진혁이 낮게 중얼거렸다.

목소리는 바람 소리에 묻혀 사라졌지만, 그 음성 속에는 대지를 뒤흔들고 남을 만한 묵직한 내력의 파동이 담겨 있었다.

시스템이 없어도, 데이터의 연산이 없어도 그는 강했다.

아니, 오히려 껍데기 같은 보조 장치가 사라졌기에 비로소 완벽한 자아와 무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진혁은 눈을 감았다.

시각이 차단되자, 온몸의 털끝으로 대기의 흐름이 느껴졌다.

수천 미터 아래 도로를 달리는 차량의 미세한 진동, 저 멀리 북쪽 설산에서 불어오는 냉기의 흐름, 그리고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는 인공 에너지 그리드의 미세한 맥박까지.

만물의 결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이것이 마신경(魔神境)의 진정한 경지.

천마 프로토콜이라는 인공의 그릇을 짓밟고 일어선, 순수한 무(武)의 극치였다.

탁.

진혁이 가볍게 발을 옮겼다.

초고층 마천루의 뾰족한 피뢰침 끝. 발 디딜 곳조차 마땅치 않은 그 위에서 그의 신형은 바람에 깃털처럼 가볍게 떠올랐다.

[마광신보(魔光神步)]의 궤적조차 펼칠 필요가 없었다.

단지 의지가 곧 보법이었고, 기가 곧 발걸음이었다.

슈슉-!

소리도 없이 몸이 허공으로 미끄러지듯 솟구쳤다.

지상 수천 미터의 상공. 낙하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밟고 걸어 올라가는 듯한 초월적인 부유감.

진혁은 그저 공중에 멈춰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마치 세상을 초월한 신령(神靈)이라도 된 듯한 고요함이 밀려왔다.

문득, 지난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티타늄 그룹의 어두운 지하 실험실. 살과 뼈를 도려내듯 이식되던 3세대 생체 코어. 그리고 뇌를 짓누르던 시스템의 강제 명령들.

그 모든 고통과 지옥 같은 역경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혁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핏줄처럼 번졌다.

그들은 자신을 완벽한 도구, 혹은 강한 육체를 담기 위한 그릇으로 만들려 했다. 하지만 그 그릇은 너무나 거칠고 단단해 창조주마저 집어삼켰다.

"나는 누군가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인형이 아니다."

바람이 거세지며 진혁의 외투를 거칠게 펄럭였다.

그 순간, 단전의 깊은 곳에서 잠들어 있던 마기(魔氣)가 웅장한 용의 울음소리처럼 요동쳤다.

콰아아앙-!

진혁의 몸 주위로 칠흑 같은 암흑마강(暗黑魔罡)이 소용돌이치듯 피어올랐다.

그것은 현대의 고출력 플라즈마 에너지와 고대 마교의 심법이 완전하게 융합되어 탄생한 신생의 힘,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의 기운이었다.

주변의 공간이 마기의 압력으로 인해 미세하게 뒤틀렸다.

빛이 휘고, 대기의 입자마저 진혁의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지상에서 이 광경을 목격한 이들이 있다면 기절초풍할 노릇이리라.

인간의 육신만으로 대기의 압력을 제어하고, 공간의 흐름을 굴절시키는 존재. 그것은 더 이상 무인의 경지가 아니었다. 신(神)의 영역에 근접한 초월자만이 부릴 수 있는 권능이었다.

하지만 진혁은 도취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힘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힘이란 타인을 지배하기 위한 자본이나 기술이 아니라, 오직 스스로의 흔들리지 않는 의지와 수련에서 나오는 법이다.

"후우……."

진혁이 길게 호흡을 내뱉었다.

내뱉은 숨결이 허공에서 하얀 김이 아니라 푸르스름한 마광(魔光)의 파문으로 퍼져나갔다.

그의 머릿속에 동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신서울의 재건을 위해 밤낮으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을 윤아영, 슬럼가의 아이들을 이끌며 새로운 질서를 다잡아가는 송수연, 그리고 자폭의 후유증을 이겨내며 자신의 길을 찾아낸 진세린까지.

그들은 이제 진혁에게 있어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었다.

자본과 기술이 지배하던 디스토피아의 밤을 함께 뚫고 나온 동반자들이었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다.'

진혁은 조용히 눈을 뜨며 생각했다.

거대 기업들의 연합은 무너졌고, 세상을 옭아매던 프로토콜의 잔재는 완전히 소멸했다. 이제 세상은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야 했다.

더 이상 '천마'라는 절대적인 존재가 모든 것을 대신 해결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진혁은 홀로 남는 길을 택했다.

도시를 구원한 영웅으로 추앙받거나, 새로운 세력의 수장으로 군림하는 것은 그의 성향에 맞지 않았다. 그는 본래 구중심처에서 무의 극치를 쫓던 마인(魔人)의 피를 이어받은 자.

세상의 중심에서 벗어나, 홀로 더 높은 경지를 향해 나아가야 했다.

뚝.

진혁의 손가락 끝에서 미세한 마기 스파크가 튀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대륙 연방의 끝,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미지의 북쪽 설산을 바라보았다.

거기는 고대 마교의 원시적 유적이 잠들어 있는 곳이자, 세상의 모든 기운이 교차하는 극한의 지대였다.

'거기라면…….'

[마신경 - 진천(眞天)]의 경지를 넘어, 더 완전한 무(武)의 진리에 닿을 수 있을지 모른다.

슈우우우-!

문득, 센트럴 시티의 거대한 전광판 중 하나가 바람에 흔들리며 찌그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전광판에는 한때 티타늄 그룹의 로고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으나, 지금은 전력이 끊겨 시커먼 암흑만을 반사하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불빛이 꺼진 자리.

오직 강진혁의 눈동자 속에서만 칠흑 같은 밤하늘의 별들이 차갑고도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진혁이 피식 웃었다.

"기다려라."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그 한마디와 함께, 그의 몸이 돌연 공중에서 사라졌다.

콰아아앙-!

소닉붐을 동반한 초음속의 폭음이 센트럴 시티의 밤하늘을 갈라놓았다.

진혁이 지나간 자리에는 오직 소용돌이치는 마기의 잔상과 함께, 도시의 야경을 가르는 한 줄기 검은 궤적만이 길게 남았다.

그것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고, 그 어떤 시스템도 계산할 수 없는 완벽한 자유의 이동이었다.

시공간의 결을 찢으며 북쪽으로 향하는 발걸음.

시스템도, 프로토콜도, 그 어떤 족쇄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강진혁은 오직 자신만의 검과 의지만을 품은 채 전설 속의 진정한 천마(天魔)를 향해 홀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대륙의 밤은 깊어 갔고, 그 밤하늘 아래에는 이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절대자가 고독한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쿠구구구구구-!

음속을 돌파하며 터져 나오는 폭음이 대륙 연방의 상공을 뒤흔들었다.

지상의 빌딩 숲 사이로 거센 기류의 여파가 들이닥쳤지만, 그 누구도 두려움에 떨며 방공호를 찾지 않았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저 하늘을 가르는 검은 궤적이 자신들을 억압하던 지옥의 족쇄를 끊어낸 구원자이자, 동시에 그 어떤 질서에도 얽매이지 않는 절대적인 초월자의 발걸음이라는 것을.

진혁은 바람을 찢으며 북쪽으로 질주했다.

시속 수만 킬로미터에 달하는 극한의 속도 속에서도 그의 시야는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고 고요했다. 과거라면 뇌속에 박힌 HUD가 과부하 경고를 띄우며 오작동을 일으켰겠지만, 지금의 육신은 그저 대기의 저항마저 자신의 의지로 밀어내고 있었다.

오직 마기(魔氣)와 육감만으로 하늘을 지배하는 경지.

이것이 진정한 마신경(魔神境)의 극치였다.

‘멀어지는군.’

신서울의 불야성이 점차 지평선 아래로 가라앉았다.

윤아영이 모니터 앞에 앉아 밤을 새우고 있을 해커 집단의 아기자기한 기지, 진세린이 낡은 코어의 통증을 꾹 참아내며 슬럼가의 재건을 지휘하고 있는 모습, 그리고 저항군의 깃발 아래 모여든 아이들의 웃음소리까지.

그 모든 소음과 인연들이 뒤로 물러날수록, 진혁의 내면은 오히려 더욱 깊은 고요 속으로 침잠했다.

슈우우우-!

바람 소리가 하나의 거대한 오케스트라처럼 귀를 간지럽혔다.

대기 중에 흩날리는 미세한 수증기, 구름을 형성하는 얼음 결정의 입자, 그리고 지구의 자전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지자기의 흐름까지도 전부 몸으로 느껴졌다.

진혁은 문득 깨달았다.

자신은 지금까지 '천마 프로토콜'이라는 시스템에 의해 강해진 것이 아니었다. 그 시스템은 단지 잠들어 있던 감각을 일깨우고, 육체의 한계를 억지로 늘려주던 임시 방편의 쇠사슬에 불과했다.

진짜 강함은 그 쇠사슬을 끊어버린 순간에 비로소 시작되었다.

-콰광!

진혁이 가볍게 허공을 박차자, 음속의 장벽이 사방으로 산산조각 났다.

그가 향하는 곳은 인류의 발길이 닿지 않은 북방의 대설산, [불모의 지대(Barren Zone)]였다.

거대 기업들이 자원 채굴을 포기하고 버려둔 그곳은 극한의 냉기와 원시적인 마기가 뒤섞여 인류의 생존을 거부하는 죽음의 땅이었다. 하지만 고대 마교의 유적이 묻혀 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기도 했다.

잠시 후.

슈우우웅-!

진혁의 형체가 거대한 설산의 중턱에 깃털처럼 가볍게 내려앉았다.

쿵, 하는 착지음조차 없었다. 그의 발이 닿은 눈밭은 움푹 파이기는커녕, 미세한 기의 파문만을 남긴 채 고요를 유지했다.

주위는 온통 눈과 얼음뿐이었다.

영하 쉰도를 밑도는 극심한 추위가 피부를 파고들었지만, 진혁의 몸을 두르고 있는 [천마무상체(天魔無相體)]는 그 차가운 기운마저 순수한 에너지로 치환해 버렸다. 신체 내부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흑색 마기는 온화한 온도를 유지하며 전신을 순환했다.

“여기가 그곳인가.”

진혁이 낮게 읊조렸다.

눈앞에는 수천 년 동안 세속의 때를 타지 않은 거대한 빙벽이 거대한 장벽처럼 가로막고 있었다.

인공위성의 스캔도, 최첨단 탐사 로봇의 전파도 닿지 않는 완벽한 고립의 공간.

세상의 모든 소음이 차단된 이곳에서, 오직 거친 바람 소리만이 진혁의 귀를 채웠다.

진혁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온몸의 감각을 극한까지 개방했다.

단전의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방대한 마기가 심장의 고동에 맞춰 웅장하게 고동치기 시작했다.

쿵. 쿵. 쿵-!

그 고동 소리는 단순히 한 인간의 심장박동이 아니었다.

대지의 지맥과 공명하고, 우주의 기운과 맞닿는 거대한 진동이었다.

지이잉-.

공간이 미세하게 뒤틀렸다.

진혁의 주변으로 눈송이들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허공에 멈춰 선 채, 완벽한 원을 그리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초능력이 아니었다.

만물의 이치와 무의 진리를 깨달은 자가 의지만으로 물리 법칙을 굴절시키는 '만상귀일(萬象歸一)'의 권능이었다.

[SYSTEM INFO...]

머릿속에서 환청처럼 울리던 푸른빛의 시스템 창은 이제 영원히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이 아쉽거나 허전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눈이 부실 정도로 시원했다.

타인의 계산에 의존하지 않고, 인공지능의 보조 연산에 목을 매지 않으며, 오직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자신의 의지로 검을 휘두르는 삶.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자유'이자, 천마(天魔)가 도달해야 할 궁극의 지향점이었다.

"좋다."

진혁이 입술을 열었다.

그의 흑안에서 칠흑 같은 암흑마광이 번뜩였다.

스으읍- 후우-.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거대한 눈보라가 일순간 멈춰 섰다.

진혁은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끝에 벼락처럼 검은 뇌전과 고밀도의 마기가 엉겨 붙으며 한 자리에 응축되었다.

형태가 없는 공기 중의 입자들을 모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절기를 즉석에서 연성해 내는 경지.

무한연성(無限鍊成)의 극의.

콰아아앙-!

진혁이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그의 손끝에서 쏘아 올려진 칠흑빛의 검강(劍罡)은 단숨에 수천 미터 높이의 거대한 빙벽을 정중앙부터 가로질렀다.

고요를 깨부수는 굉음과 함께, 거대한 빙벽이 두 쪽으로 갈라지며 눈부신 얼음 가루가 폭포수처럼 쏟아내렸다.

빙벽의 단면은 도려낸 것처럼 완벽하게 매끄러웠고, 그 안쪽에서는 천 년 동안 봉인되어 있던 고대 마교의 원시적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크으으응……!

대지가 진동하며 지하 깊은 곳에서부터 거대한 기류가 솟구쳤다.

보통의 무인이었다면 그 압도적인 마기에 정신을 잃거나 주화입마에 빠졌겠지만, 진혁은 오히려 눈을 빛내며 그 거친 기운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흡원천공(吸元天功).

진혁은 별다른 동작을 취하지도 않았다. 단지 마기를 두른 채 서 있는 것만으로도, 대기 중에 흩날리는 고대의 마기와 설산의 정기가 자연스럽게 그의 단전으로 빨려 들어갔다.

[흡수율: 100%.]

[단전의 용량이 한계치를 넘어 확장됩니다.]

몸속의 혈관이 터질 듯한 팽창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진혁의 얼굴에는 일그러짐조차 없었다. 그는 자신의 의지로 그 거대한 에너지를 억눌렀고, 이윽고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단전 속에 안착시켰다.

더 이상 시스템의 연산 보조는 필요 없었다.

육체와 정신, 그리고 마기가 완전무결하게 하나로 융합된 상태.

그것이 바로 강진혁이 스스로 이룩해낸 새로운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의 진정한 완성형이었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진혁이 갈라진 빙벽의 심장부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의 뒤로 쏟아지는 눈발은 더 이상 그를 방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를 경배하듯 흩날리며 길을 터주었다.

세상의 모든 족쇄를 부수고, 스스로의 힘으로 신화의 영역에 올라선 사나이.

자본의 도시를 무너뜨리고 홀로 북방의 설산으로 걸어 들어간 강진혁의 뒷모습은, 그야말로 다가올 새로운 시대의 전설 그 자체였다.

대륙의 밤은 깊어 갔지만, 그 북녘의 설산 위에서는 이제 세상 그 누구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새로운 마신(魔神)의 역사가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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