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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296화목차

제296화 방황하는 잔당들

대륙 연방 북부의 철의 요새.

아레스 테크놀로지의 거대 본사가 불타는 잔해와 함께 주저앉은 그곳에는, 한때 세계를 쥐락펴락하던 자본가들의 비명 대신 가라앉은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스으으-….

지면을 타고 흐르는 냉각 가스 사이로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강진혁.

더 이상 그의 시야에는 푸른빛의 HUD 창도, 인공지능 '설화'의 기계적인 브리핑도 존재하지 않았다. 시스템의 족쇄는 이미 진무극의 소멸과 함께 산산조각 났다.

남은 것은 오직 하나.

자신의 심장박동과 호흡, 그리고 만물의 결을 완벽하게 꿰뚫어 보는 절대의 직관.

마신경(魔神境)의 극치에 도달한 진혁의 존재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자연 현상과도 같았다.

"거기까지다, 강진혁!"

콰광-!

화염에 휩싸인 요새의 무너진 외벽 뒤편에서 요란한 기계음과 함께 거칠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메이저 기업 연합의 잔류 병력? 아니, 그보다 더 흉악하고 기형적인 기운을 뿜어내는 자들이었다.

지하 범죄 조직이자, 티타늄 그룹이 마공 실험 과정에서 버린 실패자들과 범법자들이 규합해 만든 사이버 마피아.

일명 '천마회(天魔會)'의 잔당들이었다.

"크큭… 제기랄! 회장 늙은이가 죽고 자본의 세상이 뒤집혔다고 해서 우리가 끝난 줄 알았나!"

천마회의 수장이자, 전신에 불법 군용 개조 시술을 거쳐 이형의 괴물처럼 변모한 사내가 거대한 플라즈마 개틀링 건을 겨누며 포효했다. 그의 몸을 감싼 사이보그 외골격은 과열로 인해 붉은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의 뒤로 수십 명의 잔당들이 저마다 고출력 생체 코어의 출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며 진혁을 에워쌌다. 눈동자에는 광기와 복수심이 시뻘겋게 번득였다.

"우린 네놈이 흡수하고 버린 데이터의 파편을 주워담았다! 네놈이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도, 이 천마회의 '진짜 마공'을 개조한 화력 앞에선 뼈도 못 추릴 거다!"

그들의 손에 들린 무기들은 과거 마교의 잔해와 현대 군사 기술이 흉측하게 뒤틀린 난잡한 프로토콜의 부산물들이었다. 스스로를 '천마'의 적통이라 자칭하는 그들은, 자본이 무너진 공백기를 틈타 다시 한번 신서울과 대륙 연방의 어둠을 집어삼킬 야욕에 눈이 멀어 있었다.

하지만 진혁은 멈춰 선 채, 그들을 향해 고개조차 제대로 돌리지 않았다.

단지 서늘한 흑안으로 그들의 흉측한 외형과 무기 내부의 에너지 회로를 훑어볼 뿐이었다.

시린 바람이 폐허의 대지를 스쳐 지나갔다.

"천마회."

진혁의 입술이 낮게 호선을 그리며 열렸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 담긴 마기는 공간의 진동을 미세하게 왜곡시키고 있었다.

"너희 같은 기생충들이 아직도 자리에 붙어 있었군."

"입만 살아가지고는! 찢어 죽여라! 발화 코드 개시, 마탄 발사!"

천마회 수장의 악다구니와 함께 수십 정의 화기에서 시뻘건 플라즈마 탄환과 고주파 빔이 동시에 쏟아져 내렸다.

주변의 공기가 순간적으로 끓어오르며 진혁이 서 있는 자리를 순식간에 화염의 바다로 만들었다.

콰아아앙-!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화력의 세례.

대지가 움푹 패이고, 철근이 녹아내리는 지옥도가 펼쳐졌다. 천마회 잔당들의 얼굴에는 마침내 승리했다는 광기 어린 환희가 피어올랐다.

"하하하! 봤냐?! 저게 바로 우리가 손에 넣은 새로운 프로토콜의 힘이다! 괴물 자식, 결국 원자 단위로 증발해 버렸…."

환희에 찬 목소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화염이 걷히고 드러난 그곳.

진혁은 그저 제자리에 선 채였다.

옷자락 하나 그슬리지 않았고, 숨소리조차 흐트러지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폭발의 에너지는 진혁에게 닿기도 전에 그의 주변을 감싼 보이지 않는 기류에 의해 모조리 흡수되고 있었다.

지-익, 스스습-.

진혁의 단전 부근에서 미세한 소용돌이가 일었다.

적들이 쏘아 올린 플라즈마의 고열과 생체 코어의 출력 에너지가 고스란히 진혁의 [흡원천공(吸元天功)]에 의해 역류하여 그의 혈맥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뭐, 뭐야?"

천마회 수장의 얼굴에서 환희가 순식간에 경악으로 물들었다.

자신들이 전력을 다해 쏟아부은 공격이, 저 남자의 내공을 채워주는 보약 따위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진혁이 천천히 고개를 들며 그들을 응시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저 마신경(魔神境)의 경지에서 뿜어져 나온 순수한 의지와 미세한 마기 파동(魔氣波動)이 허공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나갔을 뿐이다.

투두두둑-!

"크윽……?"

천마회 잔당들이 손에 쥐고 있던 최첨단 화기와 개조된 무기들의 외골격이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진혁이 뿜어낸 미세한 마기 파동이 그들의 무기 내부의 나노 회로와 분자 결합을 무자비하게 교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철로 된 총신이 마치 과자로 만든 것처럼 바스라지기 시작했다.

고출력 생체 코어들은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붉은 경고음을 울리며 내부에서부터 파열됐다.

"카아악!"

"내, 내 몸이…… 왜 이래?!"

무기가 먼지가 되어 손아래로 흘러내렸다.

더 끔찍한 것은 그들의 육체였다. 진혁이 지배하는 공간의 물리 법칙 속에서, 천마회가 주워섬기던 짝퉁 마공의 기혈 궤적은 너무나도 조잡하고 어설펐다.

진혁이 가볍게 손가락을 까딱했다.

파앗-!

공간을 가르는 흑빛의 검강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하게 튕겨 나갔다.

그것은 누군가를 베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들이 지닌 흉포한 기를 억누르고, 단전에 엉켜 있던 조잡한 마기를 일순간에 정화(정확히는 분해)해 버리는 파동이었다.

쿠구구구궁-!

"커헉!"

"끄아아아악!"

천마회 잔당 수십 명이 동시에 피를 토하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들의 단전에 억지로 이식되었던 불법 생체 코어들이 완전히 박살 나며, 그동안 누리던 기괴한 폭력성과 신체 강화 능력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남은 것은 극심한 허탈감과, 뼈저린 공포뿐이었다.

"크… 크윽……."

천마회 수장이 바닥에 엎드린 채 부서진 총신의 잔해를 쥐어뜯었다.

손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본도, 기술도, 흉포한 무력도 아니었다. 그토록 갈망하던 '힘'은 진혁의 눈빛 하나, 호흡 한 번에 완벽하게 무력화되었다.

진혁이 그들 앞에 다가와 멈춰 섰다.

차가운 군홧발이 잿더미 위를 밟는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너희는 착각했다."

진혁의 목소리가 뇌리에 내리꽂혔다.

"힘은 자본을 주고 사들이거나, 남이 만든 프로토콜을 주워섬긴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1,000년 전의 천마도, 그리고 진무극이라는 거대 악도 깨닫지 못했던 진리였다.

진혁은 엎드려 떨고 있는 천마회 수장의 턱 끝을 내려다보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스스로의 통찰과 역경 속에서 완성하지 못한 힘은, 결국 껍데기에 불과하다."

"……살려… 살려줘……."

수장은 더 이상 반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자신들이 믿었던 모든 기술과 폭력이 한낱 모래성보다 못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정신마저 붕괴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혁은 그들을 더 이상 바라보지 않았다.

가치 없는 잔당들에게 소모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꺼져라."

단 한 마디의 명령.

그것은 살생보다도 더 무거운 굴욕과 절망을 담은 선고였다.

진혁이 등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그의 등 뒤에서, 천마회의 잔당들은 더 이상 무기를 들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서로를 부축하며 폐허의 어둠 속으로 비참하게 기어 도망치기 시작했다.

힘과 자본의 시대가 저물고, 잔당들이 허겁지겁 도망치는 그 폐허의 지평선 너머로 붉은 태양이 서서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스윽-.

진혁이 고개를 들어 대륙 연방의 중심부, 센트럴 시티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시스템의 족쇄도, 핏줄의 굴레도, 이제는 지독하게 얽히던 과거의 잔재마저 모두 정돈되었다.

"이제 남은 건 하나뿐이다."

바람을 가르는 가벼운 발걸음과 함께, 진혁의 형체가 음속을 돌파하며 대륙의 심장부를 향해 비상했다.

쿠구구구궁-!

진혁의 몸이 음속의 장벽을 두 번, 세 번 연달아 짓뭉개며 센트럴 시티 외곽의 고속철도 상공을 가로질렀다.

그가 지나간 자리마다 대기의 기압차가 만들어낸 거대한 충격파가 양옆의 빌딩 숲을 강타하며 유리창을 사정없이 박살 냈다.

아래에서 그 광경을 목격한 대륙 연방의 민간인들과 치안 유지용 오토마톤 부대들은 경악에 찬 함성조차 내뱉지 못했다.

그저 하늘을 가르는 한 줄기 칠흑빛 섬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본능적으로 깨닫고 침묵할 뿐이었다.

-경고. 미확인 초음속 비행 물체 감지. 대공 방어 시스템 가동 불가. 에너지 반응… 측정 불가!

센트럴 시티 내부의 자율형 방위망 AI들이 일제히 비명 같은 경고음을 토해냈지만, 이미 진혁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진무극이 소멸하고 전 세계 메이저 기업 연합의 서버가 마비된 지금, 그들이 믿을 수 있는 것은 허울뿐인 철갑 요새와 녹슨 총구뿐이었다.

퍼어어어어어어어-!

진혁이 마광신보(魔光神步)의 궤적을 꺾으며 센트럴 시티의 중심, 거대한 구체 형태의 종합 지휘 통제소 '팬타곤 돔' 상공에 정지했다.

허공에 가볍게 선 채, 진혁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거대한 방어 돔 주변으로 수십 대의 중(重)장갑 전술 폭격기들과 PMC 용병들의 에너자이저 탱크가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진무극이 남긴 데이터 파편의 잔여 주파수를 쫓아 마지막 남은 프로토콜을 독점하려 발악하는 메이저 연합의 하수인들이었다.

"목표가 상공에 나타났다! 전 화력 집중! 저 괴물을 격추해라!"

지상의 통제탑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수십 문의 고주파 입자포와 레일건이 일제히 하늘을 향해 포구를 치켜세웠다.

콰광, 콰과광-!

눈이 멀 정도로 찬란한 플라즈마 섬광이 돔 상공을 하얗게 물들였다.

인간의 육체로는 분자 단위까지 증발해 마땅한 탄막의 세례가 진혁의 사방을 완벽하게 포위하며 짓눌렀다.

하지만 진혁은 눈썹 하나 까릿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나직하게 숨을 내쉬며, 단전 깊은 곳에서 요동치는 마기를 전신으로 끌어올렸다.

[제11식 천마무상체(天魔無相體).]

피와 뼈, 그리고 나노머신의 잔재가 완벽한 유기적 결합을 이뤄내며 진혁의 피부 위로 칠흑빛의 투명한 막을 형성했다.

그것은 현대 군사 기술의 집약체인 플라즈마 고열조차 단순한 영양분으로 치환해 버리는 절대 방어의 영역이었다.

슈우우우-!

쏟아지던 입자포의 에너지가 진혁의 몸에 닿는 순간, 거짓말처럼 흡수되기 시작했다.

[흡원천공(吸元天功)]이 발동하며 지상에서 올라온 막대한 화력의 전력이 진혁의 혈맥을 타고 단전으로 밀려 들어왔다.

"뭐……?!"

지상의 포병대장이 모니터 화면을 보며 경악으로 눈을 부릅떴다.

적의 공격을 흡수해 자신의 동력으로 삼는 괴물. 그것은 기술이나 자본으로 만들어진 병기가 아니었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완전한 무(武)의 지배자였다.

진혁이 차갑게 가라앉은 흑안으로 지상의 돔을 응시하며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손끝에 모인 것은 흡수한 플라즈마 에너지와 마신경의 극치에서 뿜어져 나온 순수한 의지였다.

"끝내자."

웅장한 음성과 함께 진혁의 검지가 아래를 향해 가볍게 내리그어졌다.

[신천마신공 제13식 파천검강(破天劍罡) - 참단(斬斷).]

취이이익-!

공간 자체가 종잇장처럼 반으로 갈라지는 극소의 파열음.

그 뒤를 이어, 대기를 진동시키는 엄청난 폭음과 함께 칠흑빛의 초거대 검강이 돔의 중앙을 직격했다.

쿠구구구구궁-! 콰아아앙-!

센트럴 시티의 심장부로 불리던 거대한 '팬타곤 돔'이 단 한 번의 검강에 의해 정중앙부터 두 쪽으로 갈라져 무너져 내렸다.

지반이 뒤틀리고, 내부의 메인 서버 랙들이 폭발하며 연쇄적인 화재가 일어났다. 자본의 권력과 기술의 오만이 집약되어 있던 요새가 무력하게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지상의 용병들과 잔류 임원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기 바빴지만, 진혁은 그들을 추격조차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세상을 지배할 힘도, 의미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으읍, 후우-.

진혁이 가쁜 숨을 고르며 허공에 내려섰다.

폐허가 된 돔의 파편 위로 내려앉은 그의 발걸음은 더없이 가벼웠다.

시스템의 족쇄도, 진무극의 음모도, 그리고 자본이 지배하던 디스토피아의 어둠도 모두 그의 손으로 끝맺어졌다.

멀리, 대륙 연방의 끝없는 지평선 너머로 태양이 완전히 떠오르며 세상의 구석구석을 환하게 밝혔다.

더 이상 차가운 인공지능의 목소리나, 감시하는 시스템의 눈동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인간의 의지와, 스스로 갈고닦은 무(武)의 길만이 남은 새로운 시대.

진혁은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며, 앞으로 펼쳐질 길을 향해 묵직하고도 당당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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