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5화 신서울의 새벽
하늘은 썩어 있었다.
적어도 강진혁이 기억하는 신서울의 하늘은 늘 그러했다.
상층 마천루를 가득 메운 거대 기업들의 네온사인과 홀로그램 광고판이 뿜어내는 인공의 빛은, 하층 슬럼가로 단 한 줄기의 햇살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곳은 밤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 디스토피아였고, 피와 돈, 그리고 기름 냄새만이 진동하는 거대한 사육장이었다.
티타늄 그룹 회장 진무극이 소멸하고, 대륙 연방의 심장부인 센트럴 시티마저 굴복시킨 지금.
세계를 짓누르던 거대한 톱니바퀴가 마침내 멈춰 섰다.
기계의 굉음과 인공지능의 차가운 시스템 보이스가 귓가를 채우던 시대는 저물었다.
그리고 그 폐허 위에, 마침내 진짜 새벽이 찾아오고 있었다.
신서울, 하층 4구역.
과거 티타늄 그룹의 불법 생체 실험 폐기장이 있던 자리이자, 강진혁이 지옥 같은 운명으로부터 첫걸음을 내디뎠던 그곳.
스으으으-.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옅은 바람이 불어왔다.
언제나 매캐한 매연과 오존 냄새로 가득하던 대기가 조금은 맑아져 있었다. 철근이 뒤틀려 부서진 마천루의 거대한 잔해들 사이로, 푸르스름한 여명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구름을 뚫고 내리쬐는 빛.
그것은 인공 홀로그램이 만들어낸 가짜 빛이 아니었다. 수천 년 동안 인류의 머리 위에 존재했으나, 자본과 철골에 가려져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진짜 태양의 빛이었다.
"……."
폐허가 된 콘크리트 바닥 위에 강진혁이 서 있었다.
칠흑 같은 검은 머리칼 위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이 그의 옅은 은빛 회로 선이 흐르는 손등 위로 부서졌다.
더 이상 그의 시야를 어지럽히던 푸른빛의 HUD 인터페이스는 존재하지 않았다.
시스템 AI '설화'의 차가운 기계음도 들리지 않았다.
모든 것은 그의 직관과 호흡, 그리고 단전에 똬리를 튼 순수한 마기(魔氣)의 흐름 안에 있었다.
[마신경(魔神境) - 진천(眞天)].
인공지능의 연산 보조 없이, 오직 자신의 의지만으로 우주의 섭리와 공간의 결을 꿰뚫는 절대의 경지.
진무극의 프라임 코어와 센트럴 시티의 메인 서버 에너지를 [흡원천공(吸元天功)]으로 전소시키며 흡수한 거대한 내력은, 이제 그의 혈관 속에서 거칠게 요동치는 대신 고요하고 깊은 바다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발밑을 내려다보자, 미세한 진동이 전해져 왔다.
그것은 지진이 아니었다. 낡은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대지가 숨을 쉬기 시작하면서 울리는 지각의 박동이었다.
"진혁 씨."
등 뒤에서 가벼운 발소리가 들렸다.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윤아영이었다.
그녀의 숏컷 분홍빛 머리칼이 아침 바람에 가볍게 날리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태블릿 PC의 화면은 완전히 꺼져 있었다. 전 세계를 지배하던 메이저 연합의 네트워크가 붕괴한 이후, 그녀가 평생을 다뤄온 해킹 툴들은 이제 쓸모없는 고철 조각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영의 얼굴에는 그 어떤 절망도 없었다. 오히려 그녀의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나고 있었다.
"신기하네……."
아영이 고개를 들어 진짜 태양이 떠오르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정말 시스템이 꺼졌어. 전 세계의 모든 백업 서버가 정지했고, 티타늄 그룹의 감시 그물망도 완전히 소멸했어. 지금 이 순간, 지구상에 우리를 통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단 하나도 없어."
"처음부터 없었다."
강진혁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아영의 말을 받았다.
그는 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께를 가볍게 짚었다.
"우리를 옭아매던 건 시스템이 아니라, 그것에 굴복했던 인간들의 두려움뿐이었으니까."
"하긴. 네 말이 맞지."
아영이 피식 웃으며 진혁의 옆으로 다가섰다. 그녀는 주머니에 손을 콕 찔러 넣은 채, 사방으로 펼쳐진 신서울의 풍경을 둘러보았다.
상층 마천루의 특권층들이 거주하던 호화 구역의 불빛들은 이미 모두 꺼져 있었다. 그곳에 살던 자들은 권력이 사라지자마자 쥐도 새도 모르게 자취를 감추었거나, 혹은 거리로 내몰렸다. 반면, 햇빛이 들지 않아 늘 어둡고 축축했던 하층 슬럼가의 골목골목에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문을 열고 나오고 있었다.
기계의 눈치나 보며 하루하루를 구걸하던 이들이었다.
얼굴에 시퍼런 개조 회로가 박힌 이들, 변이된 육체를 숨기며 숨죽여 살아가던 하층민들이 마침내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들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걸어오고 있었다.
"여기 있었군."
거친 가죽 자켓을 걸치고 대형 도검을 어깨에 둘러멘 송수연이었다. 반(反)기업 저항군 '니르바나'의 총수인 그녀의 얼굴에는 여전히 전투의 흔적인 옅은 흉터가 남아 있었지만, 그 표정만큼은 홀홀단신으로 전쟁을 끝낸 승전국 장수처럼 시원스러웠다.
수연은 진혁의 코앞까지 다가와 멈춰 서더니, 특유의 털털한 웃음을 터뜨렸다.
"야, 강진혁. 신서울 전체가 뒤집혔어. 메이저 연합의 잔당들은 이미 대륙 연방 북쪽으로 줄행랑을 쳤고, 슬럼가 애들은 지금 광장에 모여서 야단법석이야. 너보고 뭐라 그러는지 아냐?"
"……."
"새로운 천마(天魔)님이시란다. 옛날 마교의 전설이 진짜로 부활했다고 아주 신이가 났어."
진혁은 대답 대신 나직하게 코웃음을 쳤다.
천마.
그 이름은 과거 천년 전,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고자 발버둥 치다 비운에 죽어간 자들의 상징이자, 티타늄 그룹이 실험체들에게 씌운 저주스러운 낙인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단어가 품고 있는 의미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자본이 신(神)이 되고, 기술이 핏줄을 지배하던 디스토피아의 밤을 끝낸 자.
타인의 기준과 시스템의 족쇄를 거부하고, 오직 자신의 힘으로 새로운 무(武)의 진리를 개척한 자.
그것이 바로 지금의 강진혁이었다.
"이름 따위는 상관없다."
진혁이 차갑게 가라앉은 흑안으로 수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중요한 건,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거다."
"시작?"
수연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그래. 진무극은 죽었지만, 그가 남긴 찌꺼기들은 아직 대륙 연방 곳곳에 남아 있어. 메이저 기업 연합의 이사진들은 숨구멍으로 숨어들었고, 천마 프로토콜의 원천 기술을 노리는 PMC 놈들이 벌써부터 북쪽 국경 지대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어."
아영이 태블릿을 툭툭 치며 거들었다.
"맞아. 센트럴 시티의 메인 서버는 날려버렸지만, 대륙 연방 전역에 흩어진 12개 메이저 기업의 서브넷에 파편 데이터가 분산 저장되어 있어. 놈들은 그걸 이용해서 제2의 천마 프로토콜을 만들려고 할 거야."
그 말에 진혁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
인간의 육체를 데이터로 환산하고, 힘을 자본으로 사고팔던 구태의연한 질서.
그 뿌리를 완전히 뽑아내지 않는 한, 세상은 언제든 다시 똑같은 지옥으로 전락할 터였다.
후웅-!
그 순간, 진혁의 단전 안에서 미세한 마기의 파동이 울렸다.
그것은 경고가 아니었다. 웅크리던 용이 하늘을 향해 비상하듯, 뼛속까지 스며든 융합의 무공이 다시 한번 움직일 준비를 마쳤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진세린이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티타늄 그룹 후계자로서의 오만함은 완전히 벗어던진 채, 온몸에 남은 생체 코어 과부하의 여파를 자신의 의지로 억누르며 걸어오는 그녀의 걸음걸이는 결연했다.
세린이 진혁의 곁에 멈춰 서며 낮게 물었다.
"어디로 갈 건가, 진혁."
진혁은 대답 대신 시선을 멀리 북쪽으로 돌렸다.
신서울의 경계를 넘어, 거대한 메이저 자본들이 도사리고 있는 대륙 연방의 중심부.
그곳에서 새로운 쥐새끼들이 또다시 프로토콜의 잔해를 주워 담기 위해 이빨을 갈고 있었다.
스으으윽-.
진혁이 천천히 오른쪽 발을 들었다.
그의 발끝이 콘크리트 바닥에 닿는 순간, 주변의 대기가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마광신보(魔光神步)].
초음속의 경지를 넘어선 이동법.
시각조차 따라잡을 수 없는 잔상이 허공에 흩어지며, 진혁의 입에서 낮고 묵직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대륙 연방의 중심부로 간다."
콰아아앙-!
폭음조차 뒤따르지 않는 고요한 섬광 속에서, 강진혁의 몸이 음속을 돌파하며 북쪽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진짜 태양이 완전히 떠오른 신서울의 새벽 하늘 위로, 칠흑빛 마기가 거대한 궤적을 그리며 뻗어나갔다.
마광신보(魔光神步)의 궤적이 남긴 잔상은 신서울의 상공을 가르는 한 줄기 칠흑빛 섬광이었다.
음속을 아득히 초월한 이동 속도임에도 불구하고, 대기를 찢어발기는 폭음은 들리지 않았다. 공간의 결을 억지로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마신경(魔神境)의 직관으로 대기의 압력과 기압의 차이를 완벽히 통제하며 미끄러지듯 나아간 까닭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신서울의 거대한 철조망과 폐허가 된 외곽 방벽이 등 뒤로 멀어졌다.
지평선 너머로 펼쳐진 것은 거친 황무지와 인공 기후 조절 타워들이 숲처럼 늘어선 대륙 연방의 광활한 영토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거대하고 오만한 자본의 도시, 메이저 연합의 본산인 센트럴 시티를 향해 진혁의 몸이 화살처럼 쏘아져 갔다.
대륙 연방 북부, 철의 요새라 불리는 제2 구역.
메이저 연합 산하의 초대형 군수 기업 '아레스 테크놀로지'의 본사 통제실은 지금 사태의 심각성으로 인해 폭발 직전의 압력솥처럼 끓어오르고 있었다.
"방금 감지된 데이터 리딩은 뭐지?! 센트럴 타워와의 통신이 완전히 끊긴 지 몇 시간이나 지났는데, 신서울 방면에서 비정상적인 에너지 반응이 포착됐어!"
"오차 범위가 없습니다! 이것은…… 생체 코어의 출력이 아닙니다. 인간의 신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魔氣)의 파동입니다!"
"미쳤어? 진무극 회장이 소멸했는데, 그 실험체 놈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말인가? 게다가 센트럴 시티를 박살 낸 것만으로는 성이 안 차서 여기까지 오겠다는 거냐!"
통제실의 대형 홀로그램 스크린 앞에는 메이저 연합의 잔류 이사진과 자율형 PMC '아이언 헌터'의 총사령관인 하워드가 핏발 선 눈으로 화면을 노리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진무극이 소멸 직전 전 세계의 블랙 마켓 서버로 분산 송출했던 '천마 프로토콜'의 원천 데이터 파편이 쥐어져 있었다.
인간의 육체를 무한히 개조하고, 나노머신을 통해 타인의 무공과 에너지를 강탈해 낸다는 고대 마공의 궁극적인 설계도.
그들은 그것을 '신인류의 청사진'이라 불렀고, 세상을 영원히 지배할 수 있는 절대적인 열쇠라 믿었다.
"두려워할 필요 없다."
하워드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전신에 이식된 4.5세대 중장갑 사이보그 의수를 쿵 소리 나게 부딪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본이 부여한 오만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진무극 그 늙은이는 완벽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한 거다. 우리에게는 진무극이 남긴 데이터와 전 세계 백업 서버의 자원이 있어. 게다가 저 요새 전체가 네오 티타늄 합금과 플라즈마 방어막으로 둘러싸여 있다. 설령 진짜 천마가 부활했다 한들, 이 요새의 화력을 뚫을 수는 없다!"
하워드의 호기로운 일갈에 이사진들의 불안한 눈빛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그렇다. 이곳은 단순한 기업 건물이 아니었다. 대륙 연방 전체의 군사 물자와 최첨단 방위 시스템이 집약된 절대 방어선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안도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쿠구구구구—!
갑자기 통제실 전체의 바닥이 거대하게 흔들렸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천장에서 먼지가 쏟아지고, 사방의 모니터 화면들이 일제히 지직거리며 붉은색 경고 메시지를 뿜어냈다.
[Warning! 외곽 1차 방어선 철조망 및 EMP 배리어 소실!]
[Warning! 2차 방어벽의 네오 티타늄 장갑이 고열에 의해 용해 중입니다!]
[Critical Error! 대상의 접근 속도가 관측 한계를 초과했습니다!]
"뭐야?! 벌써 외곽을 뚫렸다고? 방어막을 최대 출력으로 올려! 전 부대, 즉시 요격 태세에 들어가라!"
하워드가 경악에 찬 얼굴로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쾅—!
요새의 정중앙에 위치한 칠흑 같은 철문이 안쪽으로 거대하게 함몰되며 산산조각이 났다.
비산하는 철골 파편들 사이로, 칠흑 같은 검은 머리칼과 차가운 흑안을 지닌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강진혁이었다.
그의 손에는 특별한 무기도, 거대한 장비도 들려 있지 않았다. 오직 그의 손등을 따라 흐르는 옅은 은빛 회로 선과, 온몸을 감싼 칠흑빛 마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을 뿐이었다.
"네…… 놈……!"
하워드가 이를 악물며 의수의 블래스터 포구를 진혁을 향해 겨눴다. 통제실에 있던 수십 명의 정예 PMC 대원들도 일제히 고출력 라이플을 치켜들었다.
진혁은 그들을 향해 시선조차 제대로 주지 않았다.
그저 무심한 눈으로 통제실 중앙에 떠 있는 거대한 홀로그램 서버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곳에서 진무극이 남긴 데이터 파편들이 끊임없이 깜빡이고 있었다.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군."
진혁의 입에서 낮고 건조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시스템의 족쇄를 끊어주니, 이번에는 데이터 쪼가리에 목을 매는가."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저 자식을 흔적도 없이 태워버려라! 발사!"
하워드의 명령과 동시에 통제실 안의 모든 화기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수십 발의 고주파 플라즈마 탄환과 분자 파쇄 광선이 일제히 진혁의 몸을 향해 쇄도했다. 공간 자체가 뜨거운 열기로 일그러지며 모든 것을 태워버릴 기세였다.
하지만.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서 있던 진혁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제11식 천마무상체(天魔無相體)].
슈우우욱-!
진혁의 피부 표면을 감싸고 있던 마기와 나노머신의 분자 결합체가 순식간에 고밀도로 압축되었다. 사방에서 날아온 플라즈마 탄환이 그의 육체에 닿는 순간, 거대한 폭발 대신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탄환의 고열 에너지가 진혁의 몸을 뚫지 못하고, 오히려 그의 피부 위로 소용돌이치며 흡수되기 시작한 것이다.
[흡원천공(吸元天功)].
적의 공격에서 방출된 에너지를 역류시켜 자신의 단전으로 채우는 절대의 흡수법.
하워드와 이사진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자신들의 최정예 무기가 발사한 고출력 에너지가 저 남자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오히려 그의 기세를 더더욱 증폭시키고 있었다.
"말도 안 돼……! 공격의 에너지를 저렇게 흡수한다고?!"
"내공과 기술은 자본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진혁이 스르륵 눈을 감았다가 뜨며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쿠웅!
단 한 걸음이었음에도 통제실 전체의 중력이 수십 배로 불어난 것처럼 바닥이 꺼져 내렸다. 사방에 서 있던 PMC 대원들은 압도적인 마기의 압박감에 이기지 못하고 무릎을 꿇거나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하워드는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며 블래스터의 방아쇠를 미친 듯이 당겼으나, 이미 그의 의수 회로는 진혁이 뿜어낸 미세한 마기 파동에 의해 완전히 마비된 상태였다.
"내…… 내 힘은…… 메이저 연합의……!"
"끝내마."
진혁이 손을 가볍게 허공으로 휘저었다.
그의 손끝에서 칠흑빛 뇌전과 마강이 결합된 검강이 가늘고 예리한 호선을 그리며 뻗어 나갔다.
[신천마신공 제13식 파천검강 - 참단(斬斷)].
피식-!
소리조차 나지 않는 지극히 정제된 절단면이 통제실의 공기를 갈랐다.
하워드의 중장갑 사이보그 의수와, 그 뒤로 웅장하게 서 있던 메인 서버의 거대한 홀로그램 장치, 그리고 진무극이 남긴 데이터 파편의 백업 장치까지.
모든 것이 일순간에 정지했다.
잠시 후.
툭-.
하워드의 몸이 상하로 반동강 나며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 뒤를 이어 메이저 연합의 백업 서버와 데이터 파편들이 분자 단위로 곱게 부서져 검은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통제실 안은 사방의 모니터가 꺼지며 완벽한 침묵에 잠겼다.
잔존 세력의 마지막 보루였던 요새는, 강진혁이라는 거대한 존재 앞에 단 몇 분 만에 완전히 붕괴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통제실의 창가에 진혁이 조용히 섰다.
창밖으로는 대륙 연방의 끝없는 지평선 너머로 진짜 태양이 완전히 떠올라 눈부신 빛을 사방으로 흩뿌리고 있었다.
시스템도, 자본도, 그 어떤 족쇄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
진혁은 서늘한 눈빛으로 세상을 내려다보며 낮게 속삭였다.
"이제 남은 건…… 하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