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0화 <기업의 해체>
치직—! 지지직—!
신서울의 하늘을 찌르듯 솟아 있던 티타늄 타워의 첨탑이 두 쪽으로 갈라져 무너져 내렸다. 그 거대한 철골 구조물들이 대지를 뒤흔들며 추락할 때, 도시를 지탱하던 거대한 정보망의 중추가 산산조각 났다.
시스템의 눈, 도시를 지배하던 거대한 뇌가 멈춘 것이다.
"……쿨럭."
진세린이 피를 토하며 무릎을 짚었다. 그녀의 가슴팍에 박혀 있던 3세대 생체 코어의 푸른 불빛이 깜빡였다. 완전히 꺼지기 직전의 풍전등화 같은 상태.
하지만 그 과부하의 고통 속에서도 진세린은 눈을 부릅뜬 채 전방을 응시했다.
타워의 잔해 한가운데.
진무극이 남긴 자국은 단 한 톨의 재조차 남지 않았다. 그를 감싸고 있던 오리진 슈트와 암흑물질 코어는 강진혁의 손길 한 번에 완전히 분자 단위로 분해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시스템의 족쇄는 완전히 부서졌다.
강진혁의 시야는 푸른색 HUD의 숫자와 경고창으로 채워지던 과거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오직 날카로운 흑안의 직관만이 만물의 이치와 바람의 결, 그리고 대기의 미세한 진동까지 온전히 읽어내고 있었다.
마신경(魔神境)의 정점.
인공지능의 연산 보조 따위는 개미 눈물만큼의 쓸모도 없는, 순수한 무(武)의 신역(神域).
"진혁 씨."
윤아영이 숨을 몰아쉬며 다가왔다. 그녀의 단말기 화면은 지금 이 순간에도 미친 듯이 깜빡이고 있었다. 화면 속의 데이터 스트림은 신서울을 넘어 대륙 연방 전역으로 뻗어나가는 중이었다.
"이동해야 해. 티타늄 그룹의 메인 서버실에 남아 있던 자동 백업 프로토콜이 작동했어. 진무극 그 영감이 죽기 직전에 전 세계 12개 메이저 기업 연합의 블랙 마켓 서버로 생체 실험 데이터랑 마공 프로토콜의 파편을 송출했어."
송수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검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하이에나들이 냄새를 맡고 몰려오겠군. 티타늄이 무너졌다고 해서 자본가들의 본성이 어디 가겠어? 또 다른 괴물들이 튀어나올 거야."
"상관없다."
강진혁의 입술이 낮게 열렸다.
그의 목소리는 고요했지만, 그 안에는 거역할 수 없는 절대적인 무게가 실려 있었다.
"어떤 괴물이 기어 나오든, 밟아 부수면 그만이다."
그가 손을 가볍게 털어내자, 공중에 남아 있던 진무극의 잔류 마기와 파편들이 순식간에 빨려 들어왔다.
[SYSTEM INFO: 경고. 외부 데이터 스트림 감지.]
[수신지: 글로벌 에너지 기업 '헬리오스', 군산복합체 '발키리 인더스트리' 외 10개 메이저 자본.]
[현재 전송률: 89.2%… 94.7%…]
윤아영이 이를 악물었다.
"전송이 완전히 끝나는 건 막았지만, 이미 놈들의 손에 티타늄의 기초 설계도와 마공 데이터의 절반 이상이 넘어갔어! 이러다간 제2의 티타늄이 생겨나는 건 시간문제야!"
"막을 필요 없다."
강진혁이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그 차가운 미소에는 자본과 권력으로 세상을 쥐고 흔들던 자들에 대한 극도의 경멸이 담겨 있었다.
"그 찌꺼기들을 주워담는 놈들이 있다면, 그것들 역시 내 손으로 직접 짓밟아 주면 될 일이다. 애초에 썩어 빠진 뿌리를 도려내려면, 그 밑에 고인 시커먼 피까지 모조리 밖으로 끌어내야 하는 법이지."
진혁의 시선이 하층 슬럼가를 향했다.
지하 100층의 어둠 속에서 평생을 태양도 구경 못한 채 티타늄 그룹의 배터리로 살아가던 이들.
그들이 지금, 타워의 붕괴와 함께 울리는 경보음을 들으며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신서울 상층 마천루.
유리 궁전 속에서 평생을 특권층으로 군림하며 하층민들을 벌레 보듯 하던 기업 임원들과 고위 관료들의 얼굴에 사색이 감돌았다.
"이, 이게 무슨 소리야! 방위 시스템이 왜 다운된 거지?!"
"티타늄 타워가 무너졌다고? 회장님은? 회장님은 어디 가셨어!"
"당장 헬기를 준비해! 자산들을 해외 서버로 이전하고 이 도시를 떠난다!"
그들은 패닉에 빠져 비명을 질렀다.
수십 년간 자신들을 지켜주던 철옹성 같은 방벽, 사방을 둘러싼 무인 드론 부대, 그리고 시민들을 억압하던 생체 코어 감시 네트워크가 강진혁이 날린 단 한 번의 검강에 의해 완전히 무력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통제하던 전력과 통신은 이미 바닥을 쳤고, 상층부의 화려한 네온사인들은 일제히 꺼져 내렸다.
삐유우우-!
도시 전체에 울리던 비상 경보가 뚝 끊기며 찾아온 것은, 기괴할 정도로 무거운 침묵이었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깬 것은, 수십 년간 억눌려 있던 하층민들의 함성이었다.
"와아아아아아아——!"
"열렸다! 방벽이 열렸어!"
"티타늄이 망했다! 그 악마 같은 새끼들이 진짜로 끝났다고!"
슬럼가의 골목마다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떤 이는 눈물을 흘렸고, 어떤 이는 쇠파이프를 집어 들고 상층부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두드렸으며, 또 어떤 이는 수십 년간 그들을 옭아매던 전자 팔찌를 맨손으로 뜯어내어 바닥에 내팽개쳤다.
자본이 만든 철옹성은, 무력과 의지로 무장한 단 한 명의 사나이에 의해 하룻밤 사이 고철 덩어리로 전락했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진세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기업의 해체야."
그녀는 티타늄 그룹의 후계자였다. 누구보다 이 거대한 제1계급의 권력에 익숙했고,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그 거대한 제국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며 그녀는 두려움이 아닌 오히려 묘한 해방감을 느끼고 있었다.
"너희 가문이 쌓아 올린 탑은 애초부터 모래성 위에 지어진 허상에 불과했지."
강진혁이 차갑게 일갈했다.
"돈으로 사람의 목숨을 사고, 기술로 영혼을 개조하려 들었던 그 오만함이 결국 스스로를 집어삼킨 것이다."
진혁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공중에 잔류하던 흑빛 마기가 물결처럼 흩어졌다.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의 모든 프로세스가 완전히 소멸되었습니다.]
[사용자의 자가 연산 코어 작동률: 100%]
[현재 상태: 완전한 자립(自立) 및 절대의 경지 도달.]
머릿속에서 들리던 인공지능의 기계적인 음성 따위는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심장 고동 소리와, 피를 타고 흐르는 순수한 마기의 울림만이 진혁의 내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것은 완전한 독립이자, 시스템의 굴레를 영원히 끊어낸 진정한 '천마'의 탄생이었다.
"진혁."
뒤를 따르던 송수연이 칼집을 고쳐 잡으며 물었다.
"신서울의 네트워크는 마비됐고, 상층부의 찌꺼기들은 도망치기에 바빠. 하지만 대륙 연방의 다른 기업들이 이 틈을 타서 군대를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어. 당장 이 도시를 장악할 행정 체계가 필요해."
"필요 없다."
진혁은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낮게 뇌였다.
"나라든 기업이든, 누군가 위에 군림하여 규율을 만들고 프로토콜을 강제하려 든다면…… 그 녀석들도 똑같이 부수면 그만이다."
그의 흑안이 서늘하게 빛났다.
"이 땅에 더 이상 짐승들의 사육장은 없다. 이제부터 이 세상의 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강진혁의 손끝에서 칠흑 같은 검강이 가볍게 일렁였다.
그것은 기계의 코드가 아니었다. 인간의 한계를 부수고 스스로의 힘으로 도달한, 절대적인 무(武)의 의지였다.
새로운 세대의 여명이, 피로 얼룩진 폐허의 대지 위로 서서히 붉게 떠오르고 있었다.
타워의 잔해가 내뿜는 매캐한 잿더미 속에서, 강진혁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신서울의 동쪽 하늘.
수십 년 동안 네온사인과 인공 대기 정화 장비의 매연에 가려져 단 한 번도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붉은 태양이, 그 거대한 구름을 뚫고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빛은 따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치 모든 부조리함과 썩어 문드러진 자본의 잔해를 태워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날카롭고 핏빛으로 물든 서늘한 여명이었다.
"……하."
윤아영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주저앉았다.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해커로서, 세상을 지배하는 거대 기업의 시스템에 맞서 평생을 그림자처럼 숨어 살아야 했던 그녀였다. 언제 수배되거나, 언제 데이터의 바다 속에서 흔적도 없이 지워질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버텨온 세월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단말기 화면은 완전히 깨끗했다.
티타늄 그룹의 중앙 메인프레임이 분자 단위로 분해되면서, 신서울을 옥죄던 모든 감시 프로그램과 개인 정보 추적 프로토콜이 영구적으로 소멸했기 때문이다.
"정말… 끝난 거야?"
윤아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끝났다."
강진혁이 낮게 대답하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등 뒤로 송수연과 진세린, 그리고 슬럼가에서 기어나온 수많은 무인들과 저항군들이 일제히 숨을 죽인 채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누구도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방금 전까지 도시 전체를 지배하던 티타늄 그룹의 절대 권력은 단 한 명의 사나이에 의해 완전히 짓밟혔다. 그 과정에서 그 어떤 법률도, 그 어떤 최첨단 군사 시스템도 그를 막아내지 못했다.
이것은 단순한 권력의 교체가 아니었다.
자본과 기술이 인간의 목숨을 짓밟던 디스토피아의 시대가 완전히 종언을 고하고, 오직 힘과 의지가 세상을 지배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렸음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그때, 진세린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강진혁의 곁으로 다가왔다.
"진혁."
그녀의 입술은 피투성이였고, 가슴팍에 내장된 3세대 생체 코어는 완전히 기능을 상실해 칠흑같이 식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고 강렬했다.
"티타늄의 본사 서버는 날아갔지만, 대륙 연방 전역에 퍼져 있는 계열사들과 이사진들은 아직 살아 있어. 놈들은 지금 이 혼란을 틈타 제2의 티타늄 타워를 세우려고 군대를 소집하고 있지."
"알고 있다."
진혁이 시선을 멀리 돌렸다.
신서울의 외곽, 거대한 방벽 너머의 지평선 위로 거대한 먼지 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티타늄 그룹의 붕괴를 감지한 대륙 연방의 메이저 기업들과 민간 군사 기업(PMC)들이 하이에나처럼 냄새를 맡고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썩어 빠진 티타늄의 시체를 뜯어먹고, 다시 그 자리를 차지하여 신서울을 새로운 사육장으로 만들 작정이었다.
"놈들이 올 것이다."
진혁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걸렸다.
그 미소는 악의나 광기가 아니었다. 사냥감을 마주한 포식자의 여유이자, 모든 것을 초월한 자만이 지니는 절대적인 오만함이었다.
"기다릴 필요 없다. 우리가 먼저 찾아가면 그만이니까."
"……어디로?"
진세린의 물음에, 강진혁은 대답 대신 자신의 단전 부근을 가볍게 짚었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마기는 이제 인공적인 나노머신의 보조나 시스템의 연산 없이도 완벽하게 그의 의지에 복종하고 있었다.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
기계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오직 고대 마공의 본질과 인간의 육신이 극한으로 융합하여 완성된 진정한 무학(武學).
"대륙 연방의 중심부."
진혁의 목소리가 대기를 울렸다.
"자본이라는 이름의 목줄을 채우고 세상을 지배하려 드는 모든 쥐새끼들의 본거지. 그 원흉들의 머리통을 하나도 빠짐없이 으깨버린다."
그의 선언과 동시에, 진혁의 신형(身形)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쾅—!
음속을 돌파하는 폭음과 함께, 그가 딛고 섰던 타워의 잔해가 완벽한 가루로 부서져 사방으로 비산했다.
마광신보(魔光神步)의 극치.
시각적인 잔상조차 남기지 않는 초고속의 이동 궤적이 붉은 여명이 밝아오는 신서울의 상층부를 가르며 대륙 연방을 향해 뻗어나갔다.
"따라온다!"
송수연이 대검을 둘러메며 소리쳤다. 그녀의 얼굴에 거칠지만 통쾌한 웃음이 번져 있었다.
"보이지 않나? 저 사나이가 가는 길이 곧 새로운 법이다!"
윤아영과 진세린, 그리고 수많은 저항군들과 하층민들이 그 뒤를 따르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더 이상 뒤를 돌아보는 이는 없었다.
기계와 자본의 족쇄는 부서졌다.
이제 세상은 강진혁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천마(天魔)가 내딛는 발걸음에 따라 새롭게 쓰여질 것이다.
지평선 너머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속에서, 새로운 전설의 진정한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