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9화 자폭의 저주와 저지
구름을 찢고 쏟아지는 여명은 잔혹하리만치 선명했다.
신서울의 심장이자, 모든 부조리와 착취의 총체였던 티타늄 타워의 꼭대기.
그 거대한 마천루는 이제 고철 덩어리와 시뻘건 화염이 뒤엉킨 거대한 무덤에 불과했다.
콰앙-! 콰르릉!
타워의 하중을 견디지 못한 철근들이 마지막 비명을 지르며 아래로 함몰해 들어갔다.
그 폐허의 중앙.
“……크학…… 커흑……!”
반으로 꺾인 플라즈마 슈트의 잔해 속에서 흉측하게 일그러진 육신이 경련했다.
티타늄 그룹의 회장, 진무극.
인간의 한계를 넘어 불멸을 칭하던 거대 기업의 절대자는 이제 두 다리가 잘린 채 바닥에 처박혀 있었다.
오직 생명 유지 장치의 비프음만이 그의 숨이 아직 붙어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터벅, 터벅.
정적을 깨는 발소리가 울렸다.
시스템의 붉은 HUD도, 차갑게 속삭이던 인공지능의 목소리도 사라진 칠흑 같은 시야.
그 안에서 오직 자신의 심장 박동과 대기의 흐름만을 느끼며 걷는 이.
강진혁.
그의 발걸음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입가에 묻은 피는 이미 굳어 검붉은 흉터처럼 빛났고, 칠흑 같은 흑안은 바닥에 쓰러진 늙은 괴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진무극.”
진혁의 입술이 열렸다.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지만, 그 속에는 거대한 산을 짓누르는 듯한 중압감이 담겨 있었다.
진무극의 피투성이가 된 고개가 천천히 들렸다.
흐릿한 눈동자 속에서 경외와 분노, 그리고 지독한 광기가 뒤엉켰다.
“가…… 진혁…… 네놈이…….”
“끝이다.”
간결한 두 음절.
그것으로 모든 것이 정립되었다.
진무극의 입꼬리가 비틀리며 기괴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것은 피를 토하는 듯한 쉰 목소리였다.
“하하…… 크하하하! 끝? 네가 이겼다고 생각하나? 강진혁, 이 미련한 실험체 07호 녀석……!”
진무극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그의 남은 의지가 타워 최심부에 박혀 있는 메인 프레임과 연결되었다.
띠리링-! 삐비비비-!
순간, 타워 전체의 잔해 속에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하 깊은 곳에서부터 대지가 진동했다.
붉은색 비상등이 깜빡이며 타워 전체를 에어리어 레드 상태로 물들였다.
[Warning! 최하층 자폭 시퀀스 가동. 남은 시간 60초.]
[메인 코어 오버로드 개시. 신서울 구역 전역 기폭 장치 연동.]
진무극이 피를 토하며 악에 바친 목소리를 질렀다.
“내가 죽는다면…… 이 신서울 전체를 내 무덤으로 삼겠다! 하층민들의 쓰레기통이든, 특권층의 마천루든 전부 함께 날아가는 거야! 네가 지키려 발버둥 치는 그 계집들도, 저항군도, 전부 내 시체와 함께 뼛가루조차 남지 않을 것이다……!”
미친 소리였다.
자신이 소유하지 못한 세계라면 차라리 통째로 폭파시키겠다는 최후의 발악.
티타늄 그룹의 수장이 가진 마지막 저주이자, 신서울 전체를 심판하겠다는 거대한 자폭 코드가 가동된 것이다.
콰쿠궁!
이미 반쯤 무너진 타워의 기초가 추가로 주저앉았다.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저항군과 시민들의 얼굴에 경악이 어린 것은 당연했다.
“저, 저기 발신음은…… 설마 티타늄 타워 전체를 자폭시킬 셈이야?!”
“미쳤어! 이대로라면 신서울 반경 수십 킬로미터가 불바다가 된다!”
송수연이 얼굴을 찡그리며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진혁 씨! 타워 하층부의 서브 네트에서 엄청난 에너지 반응이 감지됩니다! 자폭 코드가 하부 배양조와 핵융합로까지 연동됐어요! 이대로라면 통제 불능입니다!”
윤아영의 손가락이 빛의 속도로 단말기를 두드리며 식은땀을 흘렸다.
“안 돼요! 회장의 메인 권한 코드가 직접 타이머를 쥐고 있어요. 외부에서 해킹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물리적으로 최하층의 메인 통제실 회로를 끊어버리거나 오버라이드해야 하는데…… 남은 시간이 30초도 안 남았어요!”
절체절명의 위기.
진무극은 피를 흘리며 비웃었다.
“흐흐흐…… 늦었다. 네가 검으로 내 목을 베어도, 자폭 시퀀스는 멈추지 않아! 함께 타죽는 거야, 강진혁!”
그 순간, 타워의 잔해 한켠에서 비틀거리며 일어선 이가 있었다.
“……내가 할게.”
목소리의 주인공은 진세린이었다.
그녀의 온몸에는 과부하로 인해 터진 혈관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고, 가슴에 박힌 3세대 생체 코어는 터지기 직전의 경고음을 뿜어내고 있었다.
진무극의 친딸이자, 티타늄 그룹의 후계자였던 여인.
“세린아? 너 미쳤어? 지금 거기로 가면 자폭과 함께 소멸한다고!”
윤아영이 소리쳤지만, 진세린의 눈빛은 확고했다.
“아버지의 코드를 가장 잘 아는 건 나야. 그리고…… 이 비극을 끝내야 하는 것도 나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진세린이 통제실의 잔해로 뛰어들었다.
그녀의 손에 쥐어진 데이터 단말기가 타워의 메인 콘솔과 연결되었다.
[안전 장치 해제 코드 입력. 사용자 인증: 진세린 (Titanium Heir).]
[Warning. 권한 충돌 발생. 자폭 시퀀스 강제 진행 중.]
“큭……!”
진세린의 코어에서 푸른빛이 번쩍이다 이내 검붉은 과부하의 노이즈로 물들었다.
신경망이 불타는 듯한 고통에 그녀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울컥 쏟아졌다.
자폭 코드를 멈추기 위해 자신의 생체 에너지를 역으로 회로에 때려 박고 있는 것이다.
“크아아아악……!”
머리가 터질 듯한 고통 속에서도 진세린은 손가락을 떼지 않았다.
아버지가 만든 지옥을, 자신의 손으로 끝내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내려보던 강진혁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진무극.”
진혁이 낮게 읊조리며 다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진무극의 목덜미를 짓밟았다.
꾸드득-!
“커억?!”
“네놈은 착각하고 있었다.”
진혁의 목소리는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도 얼음과 같이 차가웠다.
“네가 만든 프로토콜이 나를 만들었다고? 네가 쥐어준 기술이 내 힘의 원천이라고?”
“크윽…… 그, 그것은…….”
“틀렸다.”
진혁의 오른손에 칠흑 같은 마기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시스템의 보조도, 인공지능의 연산도 아니었다.
오직 수없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자신의 심장과 혈관으로 깨달은 순수한 기혈의 폭발.
신천마신공 제12식.
[만상귀일(萬象歸一).]
콰아아아앙-!
진혁의 손바닥에서 뿜어진 흡마의 기운이 타워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진무극이 발동시킨 자폭 코드의 잔류 에너지와 하부 메인 프레임의 전류가 역류하기 시작했다.
자폭을 위해 모이던 막대한 양의 에너지가 진혁의 손바닥 안으로 쑤셔 박히듯 빨려 들어갔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흡원천공(吸元天功)].
단순한 기술의 탈취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기운을 자신의 단전으로 굴복시키는 지배의 권능이었다.
“크아아아악! 내, 에너지가…… 내 코어가……!”
진무극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자신이 심어둔 암흑물질 코어와 자폭 에너지가 역류하며 그의 육체는 부풀어 올랐다.
파지지직-! 쿠궁!
타오르던 화염이 역방향으로 빨려 들어가며 타워 하층부의 폭발음이 뚝 끊겼다.
정적이 찾아왔다.
[Emergency. 자폭 시퀀스 강제 중단. 메인 프레임 붕괴.]
[시스템 경고: 모든 코어 연결 영구 상실.]
타워의 자폭 장치는 완전히 침묵했다.
진세린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며 피를 토했다. 목숨만은 건졌지만, 그녀의 생체 코어는 완전히 정지해 일반인보다 못한 상태가 되었다.
진혁은 그저 차가운 눈으로 제 발밑에 처박힌 진무극을 내려다보았다.
진무극의 육체는 흡원천공에 의해 에너지를 전부 빨려 나간 탓에, 말 그대로 말라비틀어진 미라처럼 쪼그라들어 있었다.
“너는…… 괴물이다…….”
진무극의 입에서 마지막 바람 빠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괴물이 아니.”
진혁이 검을 들어 올렸다.
칠흑빛 검강이 허공을 갈랐다.
“천마(天魔)다.”
스걱-!
눈부신 섬광과 함께 진무극의 목이 몸통과 완전히 분리되었다.
티타늄 그룹의 절대자, 신서울의 지배자였던 진무극의 목숨이 완전히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우르릉…… 쾅!
회장의 죽음을 확인하듯, 티타늄 타워의 최상단 구조물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며 아래로 추락했다.
그 파편 속에서 강진혁은 동료들이 기다리는 잔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윤아영과 송수연, 그리고 쓰러진 진세린을 부축하려는 저항군들의 모습이 보였다.
하늘을 뒤덮었던 먹구름이 걷히고, 신서울의 대지 위로 붉은 여명이 완전히 타올랐다.
기계의 시대가 저물었다.
자본의 족쇄가 부서졌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하나.
새로운 세상의 기준을 세우는 것뿐이었다.
“진혁 씨……!”
무너진 잔해를 뚫고 윤아영이 달려왔다.
그녀의 얼굴은 온통 검댕과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손에 쥔 단말기의 화면은 거짓말처럼 푸른빛 대신 투명한 백색을 띠고 있었다.
더 이상 백신도, 위협 탐지도, 시스템의 간섭도 없었다. 완벽하게 해방된 자유의 네트워크였다.
송수연도 대형 도검을 땅에 짚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다가왔다.
그녀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신서울의 하층 슬럼가.
수십 년 동안 햇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던 그 암흑의 구도심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거리로 기어 나와 마천루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끝났어.”
송수연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러나 뜨거운 눈물이 고인 눈으로 그녀가 폐허가 된 티타늄 타워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끝났어. 그 늙은 괴물이…… 티타늄 그룹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아직 끝이 아니다.”
강진혁의 낮고 묵직한 음성이 그들의 환호를 가라앉혔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신서울의 전역을 내려다보았다.
황폐화된 마천루의 숲, 그리고 그 너머로 펼쳐진 거대 기업들의 연합 구역.
비록 진무극은 소멸했고 메인 타워는 박살 났으나, 그가 전 세계 지하 네트워크로 뿌려놓은 데이터 파편과 잔류 주파수들은 여전히 대륙 곳곳의 하이에나들을 자극하고 있었다.
티타늄 그룹이라는 거대한 나무가 쓰러진 자리에, 또 다른 괴물들이 아귀처럼 입을 벌리고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회장은 죽었지만, 세상은 아직 안 바뀐 거나 다름없어.”
윤아영이 입술을 깨물며 단말기를 두드렸다.
그녀의 화면 위로 전 세계 메이저 기업들의 암호화된 통신망이 실시간으로 포착되고 있었다.
“맞아요…… 진무극이 남긴 데이터 백업본이 대륙 연방의 다른 자본가들에게 넘어갔어요. 그 자들도 천마 프로토콜의 원리와 실험 데이터를 노리고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당장 다음 타겟을 고를 채비를 하고 있네요.”
“놔둬라.”
진혁이 칠흑 같은 흑안을 번뜩이며 차갑게 뇌까렸다.
“기어오르는 놈이 있다면, 목을 치면 그만이다.”
과거에는 시스템의 연산에 의존했고, 프로토콜이라는 족쇄가 육신을 옭아맸다.
그러나 지금의 강진혁은 다르다.
모든 족쇄를 부수고 마신경(魔神境)의 극치에 도달한 그에게, 기업의 자본이나 최첨단 군사 슈트는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오직 무(武)의 본질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때, 진혁의 등 뒤에서 약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크윽…….”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진세린이었다.
그녀는 생체 코어의 과부하로 인해 온몸의 감각이 마비된 채 간신히 숨만 쉬고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본 후계자의 눈동자는 허망함과 묘한 해방감으로 물들어 있었다.
“진세린.”
진혁이 그녀의 앞에 멈춰 섰다.
칠흑 같은 그림자가 쓰러진 여인의 위로 드리워졌다.
진세린이 떨리는 눈으로 진혁을 올려다보았다.
“……나를 죽일 거냐?”
“네가 자폭 코드를 멈추지 않았다면, 이 타워와 함께 신서울 전체가 날아갔겠지.”
진혁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이내 손을 뻗어 진세린의 어깨를 가볍게 짚었다.
그 손끝에서 부드러운 마기가 흘러들어 가 그녀의 폭주 직전이던 신경망과 잔류 코어를 진정시켰다.
“살고 싶다면, 네 손으로 일어섭니다. 이 거무죽죽한 타워의 잔해 위에서 무엇을 세울지는…… 이제 네 선택이다.”
진세린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녀는 진혁의 서늘하면서도 묵직한 시선 속에서, 단순히 복수만을 향하던 살기 대신 세상을 압도하는 절대자의 여유를 보았다.
진세린은 이를 악물며 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완전히 망가진 생체 코어 대신, 그녀 자신의 순수한 의지로 두 발을 지탱한 채.
“……알아.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끝내겠어.”
그녀의 비장한 목소리에 진혁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앞을 향했다.
“가자.”
진혁의 선언과 함께, 윤아영과 송수연, 그리고 부축을 받으며 일어선 진세린이 그의 뒤를 따랐다.
붉은 여명이 신서울의 썩어빠진 대지 위를 완전히 덮었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지배당하지 않고, 오직 스스로의 힘과 의지만으로 개척해야 하는 새로운 시대.
그 가장 앞에, 진정한 천마(天魔)가 걸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