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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288화목차

제288화 최후의 낙하

우-웅, 지이잉…….

신서울의 밤하늘을 오색으로 물들이던 거대한 마력 가시광선들이 순식간에 빛을 잃었다.

천지를 뒤흔들던 공명음이 멎고, 고요만이 내려앉은 마천루의 꼭대기.

더 이상 푸른색의 인공지능 HUD나 뇌내를 간지럽히던 시스템의 기계음은 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곧 진정한 의미의 침묵이었다.

쿠르릉, 쿠구구궁!

기초 설계부터 완벽하게 뒤틀린 티타늄 타워의 첨탑 부위가 참혹한 비명을 지르며 반으로 꺾였다.

강철의 대지가 무너져 내리고, 그 파편 사이로 잿빛 시멘트 가루와 매캐한 오존 냄새가 소용돌이쳤다.

"크헉……! 윽……!"

피를 거칠게 토해내는 소리.

화려한 은발은 피와 먼지로 엉겨 붙었고, 완벽주의적인 미소를 짓던 중년 신사의 얼굴은 이제 한낱 늙은이의 추한 주름으로 가득했다.

진무극.

티타늄 그룹의 회장이자, 스스로를 불멸의 천마로 참칭하려던 독재자.

그의 가슴팍에 박혀 있던 5세대 암흑물질 코어는 이미 강진혁이 구사한 [흡원천공(吸元天功)]에 의해 껍데기만 남은 채 바스라져 있었다.

내부의 고에너지 플라즈마와 생체 데이터는 단 한 방울도 남김없이 강진혁의 단전으로 빨려 들어간 지 오래였다.

"어…… 어째서……."

진무극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짚었다.

뼈가 부러지고 내장이 파열되는 고통 속에서도, 그가 진정으로 믿을 수 없는 것은 육체의 파괴가 아니었다.

데이터의 부재.

자신을 지탱해주던 방대한 서브넷과 언제나 완벽한 확률을 계산해주던 프로토콜의 반응이 완전히 끊어졌다는 사실이었다.

"내…… 내 시스템이…… 왜 응답하지 않는 거지? 내가, 내가 바로 천마의 그릇인데……!"

진무극의 눈에 깃든 것은 경외가 아니라 처절한 공포였다.

그것은 수십 년 동안 자본과 기술로 타인의 생명을 장난감처럼 다루어온 자가 마침내 순수한 폭력과 섭리 앞에 직면했을 때 느끼는 원시적인 두려움이었다.

슈우우-.

상층부의 대기압이 급격히 무너지며 차가운 밤바람이 몰아쳤다.

진무극의 상체가 타워의 무너진 난간 너머로 기울어졌다.

만 미터 아래.

햇빛조차 닿지 않는 하층 슬럼가의 불빛들이 마치 먼지처럼 아득하게 반짝였다.

그가 평생 내려다보며 짓밟고 통제하려 했던 이들의 거주지가 이제는 그를 집어삼키기 위해 입을 벌리고 있는 아가리처럼 느껴졌다.

"떨어지는군."

낮고 차분한 목소리.

그 소리에 진무극이 고개를 획 꺾었다.

무너져 내리는 철근과 콘크리트의 파편 위.

피투성이가 된 도복 차림의 청년이 서 있었다.

강진혁.

그의 온몸을 감싸고 있던 나노머신 회로는 이제 은빛이 아니라 칠흑 같은 마기(魔氣)와 동화되어 거대한 우주의 심연처럼 묵직하게 고동치고 있었다.

시스템의 보조 없이 오직 자신의 의지와 직관만으로 단전을 다스리는 자만이 뿜어낼 수 있는 절대적인 마신경(魔神境)의 압박감.

진혁의 흑안에는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의 통쾌함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거기에 있는 것은 오직 태고의 진리를 깨달은 자의 냉정한 무심함뿐이었다.

"강…… 진혁……!"

진무극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그는 추락하는 몸을 지탱하려 발버둥 쳤으나, 이미 [만법귀마(萬法歸魔)]의 여파로 주변의 모든 중력장과 전자기 회로가 교란되어 어떤 비행 슈트나 보조 장치도 작동하지 않았다.

기술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단 한 걸음도 스스로 설 수 없었던 남자.

그것이 바로 티타늄 그룹의 회장이자 천마 프로토콜을 설계한 진무극의 본모습이었다.

"네놈이 말했지. 내가 만든 잔에 불과하다고."

진혁이 천천히 발을 옮겼다.

그의 걸음걸이는 무너지는 타워의 진동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바닥을 파고들었다.

"……크학, 크하하……! 그래! 네 몸의 뼈 한 조각, 네 혈관을 흐르는 나노머신 하나까지 모두 내가 설계한 데이터야! 내가 없었으면 너는 폐기장에서 썩어 죽었을 벌레에 불과했다고!"

진무극이 허공으로 추락하며 미친 듯이 웃어젖혔다.

피로 물든 그의 얼굴은 일그러져 악귀와 같았다.

"네가 나를 죽여도, 이미 전 세계 지하 네트워크에는 내 연구 데이터의 파편이 송출되었다! 제2의 진무극, 제3의 프로토콜이 네 목을 죄어올 것이다! 이 디스토피아는 끝나지 않아! 인간은 언제나 자본과 힘의 노예로 살아가게 되어 있다고……!"

추락하는 속도가 빨라지며 진무극의 목소리가 바람에 흩어졌다.

하지만 강진혁은 그 악쓰는 소리를 가만히 내려다볼 뿐, 쫓아가지 않았다.

대신 진혁은 오른손을 들어 올려 허공을 향해 가볍게 쥐었다.

"네가 착각하는 게 하나 있다."

투웅!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른 마기가 팔뚝을 타고 흘러나와 손끝에 집약되었다.

시스템이 계산한 수치도, 프로토콜이 짜준 궤적도 아니었다.

오직 천년 전 마교의 본질과 현대의 사투 속에서 스스로 깨달은 기혈의 흐름 그 자체.

"네가 준 건 이 세상의 이물질일 뿐이다."

진혁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말려 올라갔다.

"그걸 무공으로 빚어낸 건 나다."

파앗-!

진혁의 검지가 진무극을 향해 가로로 그어졌다.

쿠웅-!

공기가 사방으로 찢어지며 시퍼런 뇌전과 칠흑빛 마강이 결합된 압축 파동이 추락하는 진무극의 잔상을 향해 쏘아아아아-!

신천마신공 제13식.

[파천검강(破天劍罡) - 참단(斬斷)].

지상으로 떨어지던 진무극의 시야가 순간적으로 눈이 멀 정도로 환해졌다.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던 마지막 오리진 슈트의 장갑이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종이짝처럼 갈라졌다.

"아…… 아아……."

비명조차 터지지 않았다.

분자 단위로 쪼개진 암흑물질 코어와 육체의 잔해는 신서울의 밤하늘을 가르는 한 줄기 검은 섬광 속에서 흔적도 없이 증발했다.

쾅-!

거대한 폭음과 함께 진무극이 낙하하던 지점, 즉 티타늄 타워의 잔해 아래 구도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곳에 남은 것은 거대 자본과 기계의 독재를 상징하던 거대한 철골 쓰레기 더미뿐이었다.

슈우우웅…….

차가운 새벽바람이 타워의 잔해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상공을 가득 채우던 차원 균열의 잔재와 붉은 사념의 파동들도 진혁의 마지막 검강에 쓸려 나가며 거짓말처럼 맑아졌다.

수십 년 동안 신서울의 태양을 가리고 있던 거대 마천루의 꼭대기가 완전히 사라진 자리.

그곳에는 이제 구름 한 점 없는 새벽의 푸른 하늘이 서서히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끝났어?"

타워의 잔해 한쪽 구석, 무너진 통제실의 잔해 속에서 윤아영이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뺨에는 흑마중과 핏자국이 범벅이 되어 있었다.

옆에서는 송수연이 거대한 도검을 지팡이 삼아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었고, 그 옆으로 진세린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아 있었다.

생체 코어의 과부하로 온몸의 회로가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서도 진세린은 자신의 눈으로 직접 똑같이 목격했다.

아버지를 삼켰던 타워의 꼭대기가, 그리고 그를 옥죄던 모든 족쇄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진혁 씨……."

윤아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와 진혁의 칠흑 같은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그는 피투성이가 된 도복 자락을 휘날리며 타워의 가장 높은 끝자락에 꼲꼲이 서 있었다.

시스템의 푸른빛 HUD 창도, 귓가를 울리던 기계음도 이제는 없다.

오직 스스로의 심장 박동 소리와 온몸을 타고 흐르는 순수한 마기의 고동만이 그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가자."

진혁이 뒤를 돌아보며 낮게 말했다.

그의 흑안이 동쪽 하늘을 향했다.

거기에는 마침내 인공의 빛이 아니라 진짜 붉은 여명이 디스토피아의 밤을 밀어내며 떠오르고 있었다.

자본이 지배하고 기계가 통제하던 시대의 끝.

진정한 천마가 지배하는 새로운 세상의 새벽이 그들의 발밑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투둑, 투두둑.

타워의 잔해에서 떨어진 미세한 시멘트 가루들이 바닥으로 흩어졌다.

신서울의 밤을 지배하던 티타늄 타워의 첨탑이 무너져 내린 자리에는 이제 거대한 철골의 무덤과 차가운 새벽 공기만이 남았다.

윤아영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손목의 홀로그램 단말기를 두드렸다.

그러나 화면은 완전히 먹통이었다.

"……서버가 완전히 죽었어. 티타늄 그룹의 중앙 서브넷은 물론이고 신서울 전역을 묶고 있던 메인 프로토콜의 잔해도 전부 소멸했어."

아영의 목소리에는 경악과 함께 묘한 해방감이 묻어났다.

더 이상 그녀의 시야를 해킹하려 드는 기업의 감시 프로그램도, 뇌를 쥐어짜는 듯한 시스템의 경고음도 울리지 않았다.

"그럼 이제…… 완전히 자유라는 뜻이네."

송수연이 거대한 도검을 바닥에 툭 내려놓으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의 어깨와 팔다리에는 군용 나노머신과의 교전으로 생긴 상처가 가득했지만, 그 얼굴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홀홀단신으로 맑았다.

슬럼가의 하층민들을 억누르던 거대한 족쇄가 부서졌음을 실감한 덕분이리라.

하지만 그 대열 한구석에서 진세린은 미간을 찌푸린 채 자신의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지이잉……!

그녀의 단전 부근에 박힌 3세대 생체 코어가 과부하로 인해 불규칙적인 스파크를 튀기고 있었다.

진무극이 소멸하면서 심어둔 자폭 프로토콜과 비상 연동 회로가 강제로 차단된 여파였다. 코어가 완전히 꺼지거나 폭주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신경계를 타고 흐르는 통증은 여전히 뼛속까지 시렸다.

"세린 씨."

낮은 목소리와 함께 진혁의 시선이 그녀에게 닿았다.

피투성이가 된 도복을 걸친 진혁이 다가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따스한 마기가 진혁의 손끝을 타고 흘러나와 진세린의 요동치는 신경망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마치 거칠게 폭주하던 기관의 기어를 수공으로 조율하듯, 폭발 직전까지 갔던 코어의 열기가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다.

"하아……."

진세린이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흑안에는 복잡한 회한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난…… 아버지의 잔재야. 그 사람이 만든 기술로 태어나 그 사람의 목적을 위해 싸워왔지. 그런데 그 모든 게 무너진 지금, 나는……."

"네가 움직인 건 네 의지였다."

진혁의 단호한 목소리가 세린의 말을 잘라냈다.

"기술은 자르고 부수기만 할 뿐이다. 그걸 붙잡고 누구를 위해 싸울지 결정한 건 너 자신이야."

진세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진혁의 흑안 속에서 그 어떤 동정이나 오만도 읽어낼 수 없었다.

거기에 있는 것은 오직 모든 굴레를 끊어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묵직한 확신뿐이었다.

세린은 입술을 꼭 다물고는 이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처 입은 육신을 이끌고 그녀 역시 진혁의 곁으로 일어섰다.

"그래. 내 손으로 직접 끝을 봐야지."

바로 그때였다.

콰아아앙-!

멀리 떨어진 신서울 상층부의 외곽, 티타늄 그룹의 제2연구소 방면에서 갑작스러운 폭음이 울려 퍼졌다.

밤하늘을 가르는 붉은 경보등과 함께 수십 대의 무인 드론 떼가 사방으로 흩어지듯 날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저건……?"

윤아영이 눈을 가늘게 뜨며 상공을 응시했다.

"진무극이 소멸하기 전에 전 세계 지하 네트워크로 송출했다던 데이터 파편…… 그게 자율 작동을 시작한 거야?"

"아니."

진혁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서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의 흑안이 어둠 속에 숨겨진 거대한 메이저 기업들의 연합 구역을 꿰뚫어 보는 듯 차갑게 가라앉았다.

"진무극이라는 껍데기는 사라졌지만, 그 녀석이 남겨둔 독은 아직 대지 구석구석에 남아 있다."

티타늄 그룹 하나가 무너졌다고 해서 세상의 부조리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리 만만무했다.

신서울의 거대 자본가들과 대륙 연방의 다른 메이저 기업들, 그리고 지하 범죄 조직인 '천마회'의 잔당들이 이 거대한 공백을 차지하기 위해 하이에나처럼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진혁이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는 더 이상 시스템의 연산 보조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것은 오직 그 자신의 의지, 그 자체였다.

"프로토콜은 끝났다."

진혁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이제부터는 내가 기준이다."

우웅-!

진혁의 발걸음이 무너진 타워의 잔해를 박차고 나아갔다.

그의 뒤를 이어 윤아영, 송수연, 그리고 진세린이 나란히 발걸음을 맞추었다.

동쪽 하늘에서 떠오르는 붉은 여명이 신서울의 잿빛 대지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기계와 자본의 족쇄가 부서진 폐허 위에서 진정한 무도의 궤적을 그릴 새로운 전설의 발걸음이 마침내 대지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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