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전용 사이트예요. 댓글·로그인·좋아요는 준비 중이에요.
‹프로토콜: 천마 · 273화목차

제273화 폭풍 속의 독대

시공간이 일그러진 자리에 남은 것은 거대한 파멸의 잔해뿐이었다.

슈우우웅—!

신서울의 상공.

천 마일 높이의 마천루 정상, 티타늄 타워의 헬리패드는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으깨져 있었다.

고대 마교의 본단 터에서부터 이어져 온 거대한 지맥의 에너지는 완전히 고갈되었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차원 균열 너머에서 밀려드는 칠흑 같은 암흑의 사념이었다.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비는 땅에 닿기도 전에 강진혁과 진무극, 두 사람의 몸 주변에서 피어오르는 엄청난 고열과 마기(魔氣)에 증발해 하얀 백중으로 변해 흩어졌다.

쿠구구구구—!

신서울 전역의 전력망이 과부하로 인해 일제히 다운되었다.

수천만 개의 불빛이 반짝이던 네오-서울의 야경이 순식간에 암흑에 잠겼다.

오직 찢어진 차원 균열 사이로 쏟아지는 붉은빛과, 두 사람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채만이 이 거대한 디스토피아의 밤을 비추고 있었다.

진혁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지 않았다.

그의 호흡은 완벽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신경(魔神境)의 경지에 도달한 이후, 그의 육체는 이미 단순한 생체 조직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섰다.

피부 아래로 흐르는 은빛 회로와 검붉은 마기는 호흡 한 번에 대기의 플라즈마를 정제하여 완벽한 에너지 순환을 이뤄내고 있었다.

그의 앞에 서 있는 자.

모든 악의 근원이자, 천마 프로토콜을 설계하고 진혁을 이 세상의 지옥으로 밀어 넣었던 창조주.

진무극.

"……후우."

진무극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것은 피비린내 섞인 한숨이었다.

방금 전, 진혁의 [제13식 파천검강 - 참단]에 의해 [오리진 풀 아머드] 슈트의 흉갑이 반으로 쪼개졌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아니, 아물 수 없었다. 그 상처의 단면에는 단순한 물리적 절단이 아니라, 만물의 결을 파괴하는 순수한 마기(魔氣)의 독소가 집요하게 세포를 갉아먹고 있었으니까.

바스락, 바스락―.

진무극의 어깨를 감싸고 있던 티타늄-탄소 복합 장갑이 모래성처럼 부서져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동자는 빛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미쳐 날뛰는 짐승의 것마냥 핏발이 선 채, 광기 어린 집념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강진혁……."

진무극의 목소리는 탁했지만, 신서울 전체의 공기를 진동시키기에 충분한 압박감을 품고 있었다.

"네놈은 정말 내 예상을 단 한 순간도 벗어나지 않는군. 아니, 어쩌면…… 내가 만든 그 어떤 피조물보다도 완벽한 괴물이야."

"괴물을 만든 게 누구지."

진혁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감정의 파동조차 느껴지지 않는, 칠흑처럼 고요한 음성.

"네가 심어놓은 프로토콜의 족쇄는 이미 부서졌다. 진무극. 네가 바라던 불멸과 천마의 육체는 영원히 네 손에 들어오지 않아."

"하하하……! 하하핫!"

진무극이 고개를 젖히며 미친 듯이 웃어댔다.

그의 웃음소리가 상공의 천둥소리와 겹쳐지며 사방으로 찢어져 나갔다.

"프로토콜? 시스템? 그런 장난감 같은 코드 따위에 내가 집착할 줄 알았나, 진혁아?"

진무극이 부서진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검붉은빛을 띤 고대 마교의 유골 가스, 그리고 5세대 암흑물질 코어의 잔해가 뒤섞인 기괴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천마 프로토콜은 말이다…… 애초에 완성을 위한 기획이 아니었어.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억지로 늘려주는 '그릇'을 빚어내는 과정일 뿐이었지. 그리고 지금, 그 완벽한 그릇이 내 앞에 서 있다."

지이이잉―!

진무극의 등 뒤에서 흉측하게 변형된 기계 장치와 생체 코어가 마지막 출력을 끌어올렸다.

타워 지하 300미터의 마혈에서 끌어올린 지맥의 마지막 잔여 에너지가 그의 사지를 타고 역류했다. 피부가 터지고 혈관이 튀어나오는 고통 속에서도 진무극의 눈빛은 오직 오만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너는 내가 만든 진흙 인형에 불과하다. 네가 아무리 마신경의 경지에 올랐다 한들, 네가 흘리는 피의 냄새, 네 단전에서 고동치는 마기의 주파수…… 그 모든 것은 이 천마의 핏줄 안에서 시작된 것이야!"

콰아아앙!

진무극의 발밑에서 폭발적인 반동이 일어났다.

그는 순간적으로 공간의 밀도를 왜곡하며 진혁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과거라면 인공지능 HUD의 경보음과 함께 겨우 반응했을 속도.

하지만 지금의 강진혁에게 그것은 너무나 느렸다.

'느려.'

진혁의 눈동자가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시스템의 보조 계산 따위는 필요 없었다. 바람의 저항, 대기 중 마기의 흐름, 진무극의 근육이 수축하는 미세한 진동까지. 만물의 결이 그의 뇌리에 완벽한 시각 데이터로 펼쳐져 있었다.

챙―!

진혁의 손에 들린 칠흑빛 검강이 허공을 그었다.

단 한 번의 휘룸.

그것만으로도 진무극이 사출한 암흑마광파의 격류가 정확히 두 쪽으로 갈라져 양옆으로 터져 나갔다.

크아아악―!

진무극의 얼굴에 경악이 스쳤다.

자신의 전력을 담아낸 일격이 이토록 허무하게 무력화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내 핏줄? 내 육체?"

진혁이 차갑게 읊조리며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그의 걸음걸이마다 대지가 진동했고, 사방에 흩날리던 빗방울들이 마기의 압력에 밀려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착각하지 마라, 진무극."

진혁의 오른손에서 [흡원천공(吸元天功)]의 와류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단순히 에너지를 빼앗는 기술이 아니었다. 적의 기예와 공진 주파수를 완벽하게 해체하고, 자신의 것으로 재정립하는 신천마신공의 핵심 권능이었다.

슈우우욱!

진무극의 슈트에서 흘러나오는 암흑물질의 잔여 에너지가 진혁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진무극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이…… 이게 무슨 짓이지?! 내 코어의 출력이……!"

"네가 준 것은 철사와 나노머신, 그리고 썩어빠진 유골의 데이터 조각뿐이다."

진혁의 눈빛이 수천 년의 심연처럼 깊어졌다.

"그 찌꺼기들을 모아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내 의지다. 네가 만든 것은 단 한 번도 없었어. 그러니……."

진혁의 검끝이 진무극의 미간을 겨눴다.

"이제 그 빚을 갚을 시간이다."

쿠구구구구궁―!

두 사람의 기가 정면으로 충돌하며 티타늄 타워의 최정상부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상공의 차원 균열은 더욱 거대하게 벌어지고 있었고, 그 균열 너머에서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사념체의 눈동자들이 일제히 두 사람을 향해 쏟아졌다.

폭풍 속의 독대는 끝났다.

이제 모든 인과를 끊어낼 마지막 일격만이 남았다.

콰광-!

티타늄 타워의 첨탑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허공으로 무너져 내렸다.

시공간의 뒤틀림 속에서 진무극의 몸이 덜덜 떨렸다.

그의 단전에 이식되어 있던 5세대 암흑물질 코어가 과부하로 인해 비명을 질렀다.

피부 표면을 덮고 있던 나노머신 회로가 툭툭 끊어지며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하지만 진무극은 통증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 핏발 선 눈으로 강진혁을 노려보았다.

"크큭…… 크하하하! 대단하군. 정말로 대단해!"

진무극의 입가에서 검붉은 피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그러나 그의 웃음소리는 점점 더 광기를 띠며 폭풍우 속으로 퍼져 나갔다.

"네가 말하는 그 '의지'라는 것 말이다…… 그게 과연 얼마나 버틸 것 같나, 진혁아?"

손을 뻗은 진무극의 등 뒤로, 찢어진 차원 균열 속에서 거대한 붉은빛의 사념체들이 일제히 요동쳤다.

우주적 포식자들의 본대가 강하하는 압력이 신서울 전체의 중력을 왜곡하고 있었다.

지면이 가라앉고, 타워의 잔해들이 중력을 거스른 채 허공으로 떠올랐다.

"네가 나를 죽인다 한들, 저 하늘의 주인들이 내려오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 같나? 이 세상은 이미 끝났다. 나와 너, 우리 모두는 그저 거대한 파멸의 서곡에 불과해!"

"시끄럽다."

진혁의 입에서 짧은 단호함이 터져 나왔다.

그는 진무극의 광기 어린 설교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일 생각이 없었다.

장황한 말은 필요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세상의 모든 부조리와 폭력을 규정해 온 것은 자본과 권력, 그리고 그들이 만든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진무극은 그 꼭대기에 군림하며 수많은 이들의 삶을 데이터로 소비해 온 괴물이었다.

휴우우웅―!

진혁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암흑색의 화염처럼 타올랐다.

마신경(魔神境)의 경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순수한 자아의 힘은 더 이상 외부의 시스템이나 코어의 출력에 의존하지 않았다.

그의 심장 박동 자체가 곧 천마의 심법이었고, 그의 혈관을 흐르는 피가 곧 만류를 지배하는 기운이었다.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

'제13식 파천검강(破天劍罡) - 참단(斬斷).'

진혁이 검을 치켜들었다.

화려한 이펙트도, 불필요한 연산의 보조도 없었다.

오직 만물의 결을 꿰뚫는 직관과, 칠흑빛 뇌전이 융합된 절대의 검강만이 허공을 갈랐다.

스으윽…….

소리조차 나지 않는 지극히 고요한 일격.

하지만 그 검강이 스쳐 지나간 자리의 공간은 완전히 두 쪽으로 쪼개져 진공의 틈새를 만들어냈다.

"크…… 아아……."

진무극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오리진] 슈트의 잔해와 단전의 코어, 그리고 영원불멸을 꿈꾸며 수집했던 모든 고대 마교의 유골 에너지가 단 한 번의 검광에 의해 분자 단위로 해체되기 시작했다.

반으로 갈라진 육체.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붉은 피가 아니라, 차원 균열의 이질적인 흑색 광채였다.

"내…… 야망이…… 여기서…… 끝난단 말인가……?"

진무극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그의 손끝이 허공을 향해 뻗어 나갔지만, 그 손은 이미 형체를 잃고 모래알처럼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너는 괴물을 만들었으나, 그 괴물을 통제할 그릇은 되지 못했다."

진혁이 차갑게 시선을 내리꽂으며 검을 완전히 거두어들였다.

"애초에 너에게는 천마의 자격 따위 없었어."

퍼어어어어어어엉―!

진무극의 육체가 견딜 수 없는 압력 속에서 완전히 폭발했다.

그것은 거대한 버섯구름을 그리며 신서울 상공의 밤하늘을 일시에 대낮처럼 밝혀버렸다.

티타늄 그룹의 회장이자, 천마 프로토콜을 통해 세상의 절대자로 군림하려 했던 진무극의 존재가 마침내 역사 속에서 완전히 소멸하는 순간이었다.

쿠구구구구구―!

진무극이 소멸함과 동시에, 그가 타워 지하와 연결해 두었던 모든 제어 코드가 연쇄적으로 붕괴했다.

신서울 전역을 뒤덮고 있던 티타늄 그룹의 방위 네트워크가 일제히 오프라인 상태로 전환되었다.

하층 슬럼가에서 고통받던 이들, 저항군 '니르바나'의 거점, 그리고 마천루의 잔해 위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진세린과 윤아영의 시야에 마침내 자유의 빛이 스며들었다.

하지만 감흥에 젖어 있을 시간은 단 1초도 없었다.

콰아아앙! 쿠르릉―!

진무극이 죽으며 열어젖힌 차원의 문은 오히려 더욱 거대하게 벌어져 있었다.

그 균열 너머, 인간의 인식 범위를 아득히 벗어난 거대한 상위 사념체가 마침내 본대의 전면 강하를 시작했다.

키에에에엑―!

기괴하고도 소름 끼치는 고주파의 울음소리가 신서울 상공을 뒤흔들었다.

수만 마리의 붉은 눈동자가 허공에 떠오르며, 지상을 향해 압도적인 파멸의 공포를 투사하기 시작했다.

도시 전체가 가라앉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과 기업의 싸움이 아니었다. 이 세계의 존재 자체를 지우려는 우주적 재앙과의 전면전이었다.

"……."

진혁은 무너져 내리는 티타늄 타워의 잔해 위에서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칠흑 같은 흑안에는 조금의 두려움도 없었다.

오히려 그 깊은 눈동자 속에는 모든 것을 자신의 손으로 끝내겠다는 차가운 투지가 타오르고 있었다.

시스템의 족쇄도, 창조주의 간계도, 이제는 없다.

남은 것은 오직 자신과, 이 땅을 지켜내야 할 '신천마'로서의 숙명뿐.

슈우우웅―!

진혁의 발밑에서 [마광신보(魔光神步)]가 터져 나왔다.

그는 중력을 거스르며 허공을 박차고 올랐다.

무너지는 타워의 잔해를 디딤돌 삼아, 그는 거대한 차원의 균열과 우주적 포식자들의 본대가 도사리고 있는 심연을 향해 단신으로 몸을 날렸다.

스스로의 힘으로 빚어낸 참천마멸(斬天魔滅)의 검강이 그의 손에서 다시 한번 맹렬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폭풍우 치는 신서울의 밤하늘.

세상의 주인을 결정지을 최후의 전쟁이, 진정한 천마의 검끝에서 비로소 그 막을 올리고 있었다.

다음 화 바로보기 ›
이 작품, 여기까지 어떠셨나요? ★ 별점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