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1화 4부 개막 - 신천마(新天魔)의 도래
콰르릉-!
지하 300미터의 깊은 심연.
티타늄 그룹의 심장부이자, 인류의 역사가 비밀리에 비틀려 온 유적의 밑바닥이 완전히 박살 났다.
대지는 구토하듯 검붉은 마기를 토해냈고, 사방으로 튀는 고주파 플라즈마의 파편은 콘크리트 벽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겼다. 그 잔해와 먼지가 휘몰아치는 중심부에서, 강진혁은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
시야 한구석에 떠 있던 시스템 인터페이스, 즉 천마 프로토콜의 청색 보조 HUD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스스로 지워버렸다.
자신의 눈동자는 칠흑 같은 흑안(黑眼).
그 속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마기는 더 이상 인공지능의 연산식에 의존하지 않았다. 완벽한 자아와 직관, 오직 만물의 결을 꿰뚫는 마신경(魔神境)의 절대적인 감각만이 그의 전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
진혁의 숨소리는 고요했다.
하지만 그가 내뿜는 호흡 한 번에 주변의 공간이 미세하게 뒤틀렸다. 심장 부근에서 고동치는 단전은 억겁의 회전을 거듭하며 거대한 폭풍의 눈처럼 에너지를 압축하고 있었다.
그 순간, 무너진 격벽 너머에서 기괴한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위이이잉— 즈으으트!
지하 지기(地氣)의 흐름이 역류했다.
수백 미터 크기에 달하는 거대한 고대 마교의 영맥(靈脈) 흡수 장치가 강렬한 광선을 내뿜으며 가동되기 시작했다. 티타늄 그룹이 수십 년간 지하 깊은 곳에서 갈취해 온 지맥의 에너지가 사방의 파이프라인을 타고 폭발적으로 끓어올랐다.
파지지직! 쾅!
장치의 중앙, 거대한 증기 밸브가 열리며 압축된 마기와 암흑물질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자리에, 세상의 모든 금속과 기술의 집대성이라 불릴 만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큭…… 크하하하하!"
낮고 거칠며, 기괴한 메아리를 동반한 웃음소리.
그것은 단순히 성대의 떨림이 아니었다. 인공 신경망과 초고출력 5세대 생체 코어가 공명하며 발생하는 음파의 폭풍이었다.
스으으읍-!
거대한 장치 속에서 걸어 나오는 자가 있었다.
그의 외견은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를 수 없었다.
티타늄 그룹 회장, 진무극.
그는 전신에 티타늄-카바이드 합금과 압축 마기가 융합된 거대한 슈트를 두르고 있었다. 이름하여 [오리진 풀 아머드(Origin Full-Armored)].
지하 300미터의 영맥 에너지를 실시간으로 흡수하며 작동하는 이 궁극의 전투 슈트는, 표면에 흐르는 푸른빛의 코어 전류만으로도 주변의 중력을 왜곡시키고 있었다.
지이잉!
진무극의 은발은 역류하는 마기에 의해 사방으로 곤두서 있었고, 그의 양눈은 인간의 그것이 아닌, 짐승의 붉은 광채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장하구나, 강진혁. 과연 내 손으로 빚어낸 최상의 걸작, 아니…… 그 이상의 괴물이야."
진무극의 입술이 비틀리며 섬뜩한 미소를 그렸다.
그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지하 지반이 가라앉으며 거대한 거미줄 같은 균열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내 생체 코어와 천마 프로토콜의 마스터 코드가 네 안에서 어떻게 소화되었는지 궁금하더군. 시스템의 족쇄를 끊어냈다고 자만하지 마라. 네가 숨을 쉴 때마다 네 혈관 속을 흐르는 마기는 결국 내가 발견한 고대의 유물에서 기원한 것이니까!"
"……."
강진혁은 말없이 검을 내렸다.
그의 손에 들린 칠흑 같은 검강은 요란한 소리를 내지 않았다. 다만 검신 주변의 공간이 찢어질 듯 미세하게 진동할 뿐이었다.
진혁은 진무극의 장황한 자아도취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 눈빛은 차갑다 못해 얼어붙어 있었다.
"말이 많더군."
진혁의 입술이 열렸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단 한마디는 지하 전체의 마기를 압도하며 진무극의 고막을 직격했다.
"네가 뭘 발견했든, 네가 뭘 쥐었든 상관없다. 그건 처음부터 네가 가진 것이 아니었으니까."
"방자한 놈……!"
진무극의 얼굴에 일그러진 분노가 스쳤다.
그의 가슴팍에 박힌 5세대 암흑물질 코어가 굉음을 내며 출력을 100%에서 200%로 끌어올렸다.
콰아아아앙-!
압도적인 출력이 지표면을 강타했다.
진무극의 몸이 마광신보를 아득히 뛰어넘는 초고속으로 사라졌다. 공간을 찢는 듯한 음속의 폭음이 터진 순간, 진무극의 거대한 철갑 주먹이 진혁의 안면을 향해 내리꽂혔다.
그것은 4단계 마신경의 반응 속도조차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는 초출력의 폭격이었다.
하지만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필요가 없었다.
슈우우우욱-
진혁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수축했다.
시스템의 자동 연산창은 없었다. 하지만 만물의 결을 읽는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의 직관이 진무극의 주먹이 그리는 궤적과 기혈의 흐름, 그리고 코어의 출력 진동수를 실시간으로 꿰뚫어 보았다.
탕-!
진혁의 몸이 유령처럼 옆으로 반 치수 비껴났다.
진무극의 주먹이 스쳐 지나간 자리의 공기가 압축되며 거대한 진공 폭발을 일으켰다.
"어디를!"
진무극이 눈을 부릅뜨며 왼손을 뻗었다.
그의 손바닥에서 수천 도에 달하는 플라즈마 레이저와 고압 마기가 소용돌이치며 진혁의 전신을 옭아맸다. 티타늄 그룹이 보유한 최첨단 군사 기술과 고대 마공의 파괴적인 에너지가 결합된 절기, [암흑마광파(暗黑魔光破)]였다.
지이익-!
주위의 바위와 철제 구조물이 단숨에 기화하여 먼지가 되었다.
진혁의 전신을 감싸 안은 플라즈마 폭풍은 모든 것을 태워버릴 기세로 맹렬하게 타올랐다.
진무극의 입가에 승자의 미소가 번졌다.
"잡았다! 네가 아무리 신진기경에 오랐다 한들, 이 출력의 에너지를 직격으로 맞고 버틸 수 있을 줄……!"
"시끄럽군."
그 순간, 플라즈마의 폭풍 속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진무극의 눈이 경악으로 크게 벌어졌다.
불길 속에서 진혁의 피부 위로 옅은 은빛 회로와 검붉은 마기가 동시에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신체 재구성 능력을 극대화한 [제11식 천마무상체(天魔無相體)]였다.
진혁의 육체는 플라즈마의 고열에 그을리기는커녕, 오히려 그 에너지를 자신의 혈관 속으로 빨아들이고 있었다.
진혁의 손바닥이 펼쳐졌다.
그의 손바닥 중심에서 거대한 회오리가 일었다.
[흡원천공(吸元天功)]
쿠구구구구궁-!
진무극이 뿜어낸 암흑마광파의 에너지가 오히려 역류하기 시작했다.
진무극이 당황하며 출력을 높이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진혁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흡입력은 진무극의 [오리진 풀 아머드] 슈트와 연결된 지맥의 마기까지 통째로 빨아들이고 있었다.
"크윽……! 이, 이게 무슨 짓이지?! 내 코어의 출력을 흡수한다고……?!"
"네가 준 기술이다. 허나 그걸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법은 가르쳐준 적이 없겠지."
진혁의 눈동자에 시퍼런 뇌전과 칠흑빛 마기가 얽혀들었다.
단전이 터져 나갈 듯 팽창하며, 진혁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수십 배로 급등했다. 마신경의 정점에서 다져진 에너지가 육체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콰아아앙!
지하 300미터의 바닥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진무극은 자신이 뿜어낸 에너지에 역으로 제압당하며 뒤로 십여 미터 밀려났다. 그의 슈트 표면에 미세한 균열이 가며 스파크가 튀었다.
"크하하……! 대단하군, 정말로 대단해! 과연 내 손으로 키워낸 최고의 그릇이다!"
진무극은 입가에 피를 흘리면서도 미치광이 같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두 팔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의 등 뒤로 연결된 지하 마교 영맥 흡수 장치가 마침내 한계 출력을 돌파했다.
위이이잉— 콰아아아아앙!
타오르는 검붉은 마력의 기둥이 지하의 천장을 뚫고 수직으로 솟구쳤다.
그것은 단순히 지하 지하실을 부주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신서울의 상징이자 티타늄 그룹의 본거지인 거대한 '티타늄 타워' 전체를 밑바닥부터 관통하는 거대한 에너지 기둥이었다.
지하에서 지상 수천 미터 상공을 향해 치솟는 마력의 홍수.
진무극의 몸이 그 에너지 기둥과 동기화되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의 목소리가 타워 전체의 스피커와 마기의 공명으로 신서울 전역에 울려 퍼졌다.
"강진혁!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다!"
진무극이 에너지 기둥을 타고 위로 쏘아 올려졌다.
그것은 지상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티타늄 타워의 최정상, 밤하늘의 차원 균열이 찢어져 내리는 야외 헬리패드로 이어지는 수직의 전장.
진혁은 그 거대한 에너지 기둥을 올려다보았다.
눈앞에는 타워 전체를 집어삼킬 듯 맹렬하게 끓어오르는 마기의 소용돌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하 300미터의 심연에서 지상의 최정상을 향해, 두 사람의 마지막 사투를 위한 역류가 시작되었다.
"도망칠 곳은 없다."
진혁은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단전을 가라앉혔다.
그의 발밑에서 마광신보가 터져 나왔다.
콰광-!
진혁의 몸이 진무극이 만든 거대한 에너지 기둥을 따라, 타워의 최정상을 향해 역류하듯 쏘아 올려졌다.
세상의 운명을 결정할 최종 결전의 무대가, 밤하늘의 찢어진 차원 균열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제271화 4부 개막 - 신천마(新天魔)의 도래 (하)
수직으로 뻗어 오른 마력의 기둥은 티타늄 타워의 콘크리트와 강화 철판을 종잇장처럼 구겨버리며 상층부로 치솟았다.
오십 층, 백 층, 그리고 이백 층.
강철과 유리로 빚어진 신서울의 마천루가 두 괴물이 뿜어내는 압력에 못 이겨 비명을 질렀다. 타워 내부의 비상 경보음은 이미 고장 난 지 오래였고, 철제 벽면은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스파크와 함께 녹아내렸다.
"크하하하! 느껴지나, 강진혁! 이 타워 전체가 나의 심장이고, 이 신서울의 자본이 곧 나의 내력이다!"
에너지 기둥의 최선두에서 진무극의 광기 어린 목소리가 역풍을 뚫고 내리꽂혔다.
그의 [오리진 풀 아머드] 슈트는 타워의 각 층에 설치된 메인 서버와 융합하며 끊임없이 출력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수천 명의 인원이 일시에 소모하는 전력과 지하 영맥의 마기가 결합한 괴물 같은 출력. 그것은 현대 기술의 정점과 고대 마공의 타락한 결정체가 빚어낸 거대한 재앙이었다.
하지만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는 진무극이 만든 마력 기둥의 파동을 몸으로 받아내며, 오히려 그 거대한 에너지를 자신의 단전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슈우우우욱-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마기는 이미 뜨거운 용암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마신경(魔神境)의 경지에 오른 진혁의 육체는 그 폭발적인 열기를 묵묵히 통제했다. 시스템의 보조 HUD가 없어도 상관없었다. 심장의 박동, 근육의 수축, 대기의 진동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하나의 감각으로 직관되고 있었다.
콰르릉-!
마침내 두 사람의 몸이 최상층의 천장을 박살 내며 솟구쳤다.
지상 수천 미터 상공.
신서울의 밤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티타늄 타워의 최정상, 야외 헬리패드였다.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지만, 그 위로는 세상의 끝을 알리듯 찢어진 차원 균열이 거대한 붉은 눈동자처럼 벌어져 있었다. 균열 너머에서 쏟아지는 우주적 포식자들의 사념과 짓누르는 듯한 중력이 헬리패드의 바닥을 사정없이 짓눌렀다.
쾅-! 쿠구구궁!
진무극의 거대한 철갑 슈트가 헬리패드의 중앙에 착지하며 사방으로 철근을 튀겼다.
그의 등 뒤로 타워 내부에서 솟구친 마력 기둥이 거대한 오라처럼 이글거렸다.
진무극은 숨을 몰아쉬며 붉은 광채가 서린 눈동자로 진혁을 노려보았다. 그의 슈트 전면부에는 진혁이 흡수하고 남은 충격으로 인해 거미줄 같은 균열이 나 있었지만, 지하 영맥과 타워의 에너지를 실시간으로 보충받으며 빠르게 재생되고 있었다.
"여기가 네 무덤이다, 진혁아."
진무극의 입가에 잔인한 조소가 걸렸다.
그가 두 손을 넓게 벌리자, 헬리패드 상공의 차원 균열에서 쏟아지던 붉은 사념들이 그의 슈트로 빨려 들어갔다. 우주적 포식자들의 기운까지 강제로 융합하려는 미치광이 같은 짓거리였다.
"이 타워의 모든 데이터와 전력, 그리고 이 하늘의 주인이 내뿜는 힘까지!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 너는 그저 내 불멸을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제물일 뿐이다!"
진무극의 몸이 마기와 암흑물질, 그리고 외계의 사념까지 뒤섞여 기괴한 거인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가 내뿜는 압력만으로도 헬리패드의 바닥 철판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휘어졌다.
그에 비해, 강진혁은 너무나도 고요했다.
챙-.
진혁이 손에 쥔 칠흑 같은 검강이 밤하늘의 별빛을 삼키듯 어둡고 깊은 빛을 발했다.
그는 진무극의 장황한 선언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착각이 심하군."
진혁의 목소리는 바람결에 흩어지지 않고 진무극의 고막에 정확히 내리꽂혔다.
"네가 쥐고 있는 건 이 세상의 부서진 조각들과 남의 힘을 훔쳐 모은 찌꺼기뿐이다. 그 거대한 장치도, 그 요란한 슈트도…… 결국 네가 스스로를 믿지 못해 걸쳐 둔 껍데기에 불과해."
"……뭐라고?"
"내 힘은 시스템이 준 것도, 네가 빚어낸 것도 아니다."
진혁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발걸음이 헬리패드의 철판에 닿는 순간, 주변의 공간이 거짓말처럼 고요해졌다.
진무극이 뿜어내던 폭풍 같은 마기와 암흑물질의 파동이 진혁의 발목 앞에서 거짓말처럼 멎어버렸다. 만물의 결을 지배하는 마신경의 절대적 영역이 사방 삼백 미터를 완전히 장악한 것이다.
진혁의 눈동자가 칠흑 같은 심연처럼 깊어졌고, 그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하늘의 차원 균열마저 위협할 만큼 거대하게 팽창했다.
"내가 겪은 고통과, 내가 밟아온 궤적, 그리고 내 손으로 깨달은 무도(武道)만이 내 진짜 힘이다."
진혁이 검을 치켜들었다.
그의 등 뒤로 천마(天魔)의 형상이 환영처럼 떠올랐다. 그것은 시스템이 만들어낸 데이터가 아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오직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빚어낸, 참된 '신천마(新天魔)'의 강림이었다.
"네가 만든 그 껍데기를, 내 검으로 완전히 부수어 주마."
진무극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감과 분노가 서렸다.
그의 코어가 미친 듯이 경고음을 울려댔다.
"이 건방진 놈……! 죽어라, 진혁-!"
콰아아아앙-!
진무극의 거대한 슈트가 마력 기둥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지상 수천 미터의 야외 헬리패드, 찢어진 차원 균열 아래서 두 사람의 검과 주먹이 마침내 정면으로 충돌했다.
세상의 끝을 알리는 칠흑과 붉은 광채의 대격돌이 신서울의 밤하늘을 두 쪽으로 갈라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