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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264화목차

제264화 마교의 잠든 뿌리

쿠구구구―!

신서울의 심장부, 티타늄 타워의 잔해 아래로 가라앉은 거대한 지반이 굉음을 내며 함몰했다.

지하 300미터.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영겁의 어둠 속에서, 기괴한 열기와 함께 썩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여긴…… 대체 뭐야?"

지하 벙커의 입구에 당도한 송수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검을 더듬었다.

그녀의 얼굴에 맺힌 식은땀이 차가운 형광등 빛 아래서 반짝였다.

그것은 단순한 지하 시설의 공기가 아니었다.

폐부를 찌르는 것은 1,000년의 세월 동안 썩어 문드러진 핏물과, 정체 모를 고열(高熱)의 냉기가 뒤섞인 악취였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인간의 상식을 아득히 깨부수고 있었다.

시멘트와 철골로 이루어진 현대식 벙커의 벽면.

그 흉물스러운 철근 사이로 푸르스름하게 발광하는 거대한 유기물 튜브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지-잉, 지지직―.

전력 공급이 끊겨 깜빡이는 비상등 불빛 아래로, 기괴한 장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대 군사 기술의 극치인 나노 공장 설비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고대 마교의 주술적 석판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한데 융합되어 있었다.

"티타늄 그룹이 숨겨오던 본거지…… 아니, 그 이상이야."

윤아영이 품에서 꺼낸 태블릿의 화면을 미친 듯이 두드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의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화면 속의 데이터 스트림은 이미 제어 불능의 붉은색 경고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보안 방화벽을 뚫으려고 했는데…… 이건 시스템이 아니야. 생체 코드와 마교의 기혈 궤도가 엉켜 있어! 데이터가 스스로 증식하고 있다고!"

그녀의 목소리에는 명백한 공포가 서려 있었다.

인공지능과 해킹 기술로 모든 것을 제어하려던 티타늄 그룹이었지만, 이 지하 최심부만큼은 그들이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이곳은……."

그때, 뒤에서 비틀거리며 걸어오던 진세린이 낮게 신음했다.

그녀의 목에 돋아난 은빛 회로들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진혁이 타워 상공에서 내뿜었던 마기의 잔향 덕분에 간신히 목숨을 건졌으나, 그녀의 몸속에서 새롭게 개방되는 단전은 아직 거친 내력을 온전히 소화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일생 동안 집착했던 곳…… 고대 마교의 본단 터. 전설 속으로 사라진 '마혈(魔穴)'의 좌표가 바로 여기야."

진세린의 시선이 닿은 곳.

지하 최심부의 가장 깊은 곳, 거대한 돔 형태의 홀 중앙에는 가공할 만한 압력을 내뿜는 거대한 흑요석 석탑이 박혀 있었다.

웅웅웅웅―!

석탑의 표면을 따라 흐르는 것은 전류가 아니었다.

그것은 시뻘건 점도로 끓어오르는 태곳적의 마기(魔氣)였다.

살아 숨 쉬듯 고동치는 석탑의 심장부에서는 신서울 상공의 찢어진 차원 틈새와 완벽히 공명하는 미세한 주파수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마침내 기어 나오는군."

앞서 걷던 강진혁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칠흑 같은 흑안에는 시스템 HUD의 푸른빛 대신, 만물의 결을 꿰뚫어 보는 순수한 직관의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시스템의 보조 없이, 오직 자신의 의지와 감각만으로 타워의 바닥을 짓밟고 내려온 강진혁의 발걸음은 소리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적막했다.

피이잉-.

진혁이 가볍게 손가락을 까딱하자, 대기 중에 떠돌던 잔류 마기가 그의 손끝으로 빨려 들어갔다.

흡원천공(吸元天功).

적의 기운을 강탈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제는 대기 중의 잡다한 마기마저 정제하여 자신의 단전을 채우는 경지.

마신경(魔神境)에 오른 그에게 이 지하 300미터의 짙은 마기는 독이 아니라 기름을 부은 것과 같았다.

"진혁 씨, 저 석탑…… 그리고 저 수많은 관(棺)들은 대체……!"

윤아영이 사색이 된 얼굴로 홀의 구석을 가리켰다.

거대한 흑요석 석탑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는 수십 개, 아니 수백 개에 달하는 원통형의 투명한 배양 캡슐이 도열해 있었다.

캡슐 안에는 인간인지 짐승인지 구분할 수 없는 형체들이 기괴한 액체에 담긴 채 잠들어 있었다.

하나같이 몸의 절반 이상이 티타늄 의수로 대체되어 있었고, 가슴팍에는 덜 여문 인공 마핵이 억지로 박혀 박동하고 있었다.

"실패작들이다."

진혁의 입술이 차갑게 일그러졌다.

"티타늄 그룹이 1,000년 전 천마의 유골과 마공 데이터를 해석하겠다고 덤벼들었지. 하지만 그 멍청이들은 몰랐다. 마공이란 건 기계 부품처럼 조립한다고 완성되는 게 아니라는 걸."

진무극은 불멸을 원했다.

자신의 늙어가는 육체를 버리고, 완벽한 천마의 그릇을 강탈해 차원을 지배하려 했다.

그 야욕의 부산물들이 바로 저 배양 캡슐 속에 처박힌 괴물들이었다.

몸은 현대의 나노머신과 고강도 티타늄으로 개조되었으나, 정신은 마기의 폭주를 견디지 못해 붕괴해 버린 불완전한 살인병기들.

"그럼 저것들이 다…… 살아 있는 거야?"

송수연이 대검의 손잡이를 더욱 꽉 움켜쥐었다.

그녀의 직감 역시 경고를 울리고 있었다.

저 수많은 캡슐 속의 존재들이 일제히 눈을 뜨는 순간, 이곳은 지하 무덤이 아니라 지옥의 아가리가 될 터였다.

"살아 있는 게 아니지."

진혁이 낮게 읊조리며 허공으로 시선을 던졌다.

"방금 전까지는 잠들어 있었으나…… 이제 일어날 시간이다."

치이익-!

진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다.

지하 300미터 전체의 조명이 붉은색 비상등으로 일제히 전환되었다.

쿠두두두둥!

중앙의 흑요석 석탑이 정중앙으로 갈라지며, 그 깊은 밑바닥에서부터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거대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기계의 구동음과 짐승의 포효가 뒤섞인 소음.

그것은 1,000년 전 마교의 뿌리에서부터 자라나, 현대의 자본과 기술을 자양분 삼아 마침내 완전한 형태를 갖춘 '사이버 신마교'의 각성을 알리는 서곡이었다.

까드득, 끄드득-.

수백 개의 배양 캡슐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안개처럼 자욱하던 냉기 속에서, 핏빛으로 빛나는 수백 쌍의 눈동자가 일제히 강진혁 일행을 향해 번뜩였다.

"……왔군."

진혁은 두려움 대신, 입가에 엷고도 잔인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의 오른손에 쥐어진 검신을 따라, 세상의 모든 빛을 삼킬 듯한 칠흑빛 마강(魔罡)이 피어올랐다.

시스템의 도움 따위는 처음부터 필요 없었다.

오직 검과 육체, 그리고 스스로 완성한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파지지직-!

공간을 찢는 마기의 파동 속에서, 지하 최심부의 결전이 막을 올리고 있었다.

쿠구구구구―!

중앙의 흑요석 석탑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뿜어낸 붉은빛이 지하 300미터의 거대한 공간을 잔인하게 물들였다.

철골 구조물과 융합된 고대 마교의 주술진법이 마치 심장처럼 거칠게 박동하기 시작했다. 쿵, 쿵, 하는 지저의 진동은 단순히 대지의 울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백 명의 인간이 동시에 토해내는 원한 서린 호흡이자, 마기(魔氣)에 오염된 생체 코어들의 기괴한 공명음이었다.

치익-! 쾅!

수백 개의 배양 캡슐이 일제히 유리를 깨며 터져 나갔다.

안개처럼 자욱한 냉각수 속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인간이 아니었다.

"끄르르……."

짐승의 울음소리와 기계의 유압 장치 소음이 뒤섞인 괴성.

그들의 신체는 완벽한 살인 병기로 개조되어 있었다. 팔다리 대신 장착된 고주파 진동 블레이드, 등골을 따라 노출된 척수 튜브에서는 시뻘건 액체 마기가 펄펄 끓어 넘치고 있었다.

현대 군사 기술의 극치인 나노머신과, 1,000년 전 마교의 금단(禁斷) 비법이 억지로 꿰매어진 불완전한 개조 마인 군단.

'사이버 신마교(新魔敎).'

진무극이 죽음 직전까지 숨겨두었던 최후의 비루한 장난감이 마침내 지상의 빛을 보았다.

"대체…… 이 양이 얼마나 되는 거야!"

송수연이 경악에 찬 목소리로 대검을 고쳐 잡았다.

시야가 닿는 곳마다 붉은 눈동자들이 꿈틀거렸다. 어림잡아도 삼백 기는 족히 넘는 숫자가 지하 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들이 뿜어내는 악취와 압박감만으로도 일반 초인이라면 단전이 오그라들어 주저앉을 지경이었다.

"물량으로 밀어붙일 생각인가 보군."

진세린이 입술을 깨물며 단전을 쥐어짰다.

진혁의 마기 잔향으로 억지로 튼 새 단전이 비명을 질렀다. 핏기가 가신 얼굴이었지만, 그녀의 눈빛만큼은 티타늄 그룹의 후계자다운 오독(傲毒)이 서려 있었다.

"진혁 씨, 저것들은 이미 자아가 없어. 오직 살육과 파괴만 입력된 소모품들이야!"

윤아영 역시 태블릿을 집어던지다시피 하며 등 뒤로 물러섰다.

해킹이나 시스템 간섭은 통하지 않았다. 저 짐승들에게 필요한 건 통신 코드가 아니라 오직 철저한 물리적 분쇄뿐이었다.

그러나 강진혁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칠흑 같은 흑안으로 다가오는 괴물 무리를 찬찬히 훑어볼 뿐이었다.

시스템의 HUD 창이 띄워지던 과거였다면, 적의 전투력 측정치와 약점 분석 데이터가 시야를 어지럽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진혁의 시야는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다.

'필요 없다.'

오직 만물의 결이 보였다.

개조 마인들의 가슴팍에 박힌 불완전한 인공 마핵이 어떻게 에너지를 뿜어내고, 혈관 속의 나노머신이 어떤 궤적으로 근육을 수축시키는지.

그 모든 복잡한 살육의 메커니즘이 진혁의 직관 속에서는 한 장의 정밀한 해부도로 펼쳐지고 있었다.

슈우우-.

진혁이 가볍게 숨을 내쉬자, 주변의 공기가 하얗게 얼어붙었다.

그의 몸을 감싼 마기(魔氣)는 더 이상 제어장치나 시스템의 보조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육체이자 의지 그 자체였다.

"오라."

단 한마디의 낮고 묵직한 음성.

그 순간, 가장 선두에 있던 거구의 개조 마인이 마광신보(魔光神步)의 궤적을 찢으며 포탄처럼 튀어나왔다.

쿠우웅!

음속을 돌파하며 터진 충격파가 지하 벙커의 철제 바닥을 종잇장처럼 구겼다.

개조 마인의 티타늄 의수가 진혁의 머통을 박살 내기 위해 흉포한 기세로 내리꽂혔다.

피할 생각조차 없었다.

콰아아앙!

진혁은 가볍게 고개를 틀며 오른손을 뻗었다.

그의 손바닥이 개조 마인의 가슴팍, 불완전한 마핵이 박힌 부위에 정확히 박혔다.

흡원천공(吸元天功).

빠직, 파지지직-!

"끄아아아악―!"

개조 마인의 입에서 기괴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순간, 마핵의 출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자폭하려던 괴물의 모든 에너지가 진혁의 손바닥을 통해 역류하기 시작했다.

푸르스름한 고주파 전류와 핏빛 마기가 진혁의 팔뚝을 타고 거꾸로 빨려 들어갔다.

단 한 줌의 부하도 없었다.

폭주하던 에너지는 진혁의 단전에 도달하는 순간, 가장 순수한 형태의 마강(魔罡)으로 완벽하게 제련되었다.

"크윽……!"

진혁이 가볍게 손목을 비틀자, 개조 마인의 거대한 육체는 에너지를 완전히 착취당한 채 허물어진 빈 껍데기처럼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저 자식, 괴물인가."

송수연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기계와 마교의 기술이 융합된 최악의 살인병기가 진혁의 손길 한 번에 고철 덩어리로 변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크아아아아!"

"크르르르……!"

선두의 개조 마인이 쓰러지자마자, 뒤를 따르던 수백 기의 사이버 신마교 정예들이 일제히 흉포한 포효를 지르며 사방에서 밀려들었다.

천장을 타고 내리꽂히는 자객형 마인부터, 플라즈마 포를 장전한 중장갑 마인까지.

지하 홀은 순식간에 피와 쇳가루가 난무하는 아수라장으로 변모했다.

"방해하지 마라."

진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콰아아아구궁!

진혁의 발밑에서 폭발적인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마신경(魔神境)의 경지에 도달한 그가 발을 디딘 공간은 순식간에 중력이 뒤틀린 마계(魔界)의 영지로 변했다.

만상귀일(萬象歸一).

사방에서 날아드는 수백 개의 고주파 탄환과 레이저 빔, 그리고 개조 마인들의 참격이 진혁의 코앞에 도달한 그 순간.

쩡-! 쩌정-!

기묘한 공진 주파수가 대기를 타격하며 모든 공격의 궤적이 거짓말처럼 한 점으로 수렴했다.

적들이 쏘아 올린 에너지는 진혁의 방어막을 뚫지 못하고 오히려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말도 안 돼……!"

윤아영이 경악하며 머리를 감쌌다.

물리학의 법칙을 완전히 무시한 현상이었다. 공격의 에너지를 흡수하는 것을 넘어, 주변의 물리적 파동 자체를 진혁의 의지로 굴복시키고 있는 것이다.

"제13식."

진혁의 입술이 나지막하게 움직였다.

그의 오른손에 쥐어진 검신 위로, 신서울 상공의 찢어진 차원 틈새에서 흘러나온 짙은 암흑의 별빛이 내려앉았다.

천마의 기개와 현대 군사 기술의 극단이 융합되어 태어난 참된 절기.

파천검강(破天劍罡).

슈우우우욱-!

진혁의 몸이 한 줄기 칠흑빛 번개처럼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리고 홀의 천장을 가르며 반원을 그리듯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아아아궁―!

단 한 번의 검휘(劍揮).

공간이 종잇장처럼 반으로 갈라졌다.

빛도, 소리도, 심지어 공기의 진동조차 멎어버린 절대의 정적 속에서 진혁의 검강이 수백 기의 개조 마인들을 스쳐 지나갔다.

일(一).

십(十).

백(百).

타다닥, 툭-.

사방으로 뛰어들던 수백 기의 사이버 신마교 정예들의 움직임이 일시에 멈췄다.

그들의 가슴팍에 장착된 5세대 인공 마핵과 티타늄 합금 장갑이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완벽하게 반쪽으로 쪼개져 있었다.

지-익, 지지직…….

불꽃을 튀기며 바닥으로 쏟아지는 고철 덩어리들.

개조 마인들의 육체는 분자 단위로 붕괴하며 검은 재로 화해 흩어졌다.

단 한 명의 부상자도 없이, 삼백 기에 달하는 최정예 살인병기 군단이 완벽하게 소멸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3초였다.

쿵.

진혁이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다.

그의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옷자락 끝조차 더럽히지 않은 채, 진혁은 텅 빈 지하 홀의 가장 안쪽을 바라보았다.

개조 마인들이 쏟아져 나왔던 흑요석 석탑의 진짜 비밀, 그리고 그 지하 최심부의 어둠 속에서 여전히 꿈틀거리는 더 거대한 사념의 뿌리가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군."

진혁이 낮게 뇌까리며 검을 바로잡았다.

"숨어 있어 봤자 소용없다. 이 땅의 모든 것을 끝내러 왔으니."

그의 발걸음이 다시 한번 지하 300미터의 가장 깊은 어둠을 향해 묵직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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