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1화 허물어지는 마신
쿠구구구구——!
신서울의 심장부, 티타늄 타워의 120층 상공.
찢어진 차원의 균열 너머로 넘실거리던 거대한 붉은 눈동자들의 사념이 대기권을 뒤흔드는 동안, 타워 내부의 공기는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지독한 진공 상태처럼 숨이 턱턱 막히는 중압감.
그 한가운데에서 진무극은 자신의 가슴 부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드득, 타닥.
“……크흑.”
만물의 결을 거스르는 최고급 나노머신과 고대 천마의 심장 세포를 융합해 만든 전신 생체 수트, [오리진].
그 절대적인 방어의 허브이자 3만 MW의 출력을 뿜어내야 마땅한 흉부 장갑의 정중앙이 쩍 갈라져 있었다.
강진혁이 날린 검강의 여파였다.
시스템 AI의 보조 HUD 없이, 오직 자신의 육감과 마신경(魔神境)의 절대적인 직관만으로 벼려낸 제13식 파천검강(破天劍罡). 그것은 단순히 기계의 내구도를 찢어발긴 것이 아니었다. 수트 내부를 지탱하던 분자 결합 배열 그 자체를 강제로 뒤틀어버린 끔찍한 일격이었다.
진무극의 은발이 흩날렸다. 완벽한 신사로서의 위엄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의 핏발 선 눈동자에는 분노를 넘어선 경악과, 그 밑바닥에 도사린 원초적인 공포가 역력히 피어올라 있었다.
“어떻게…….”
자신이 만든 최고급 기예의 집약체이자, 천마의 그릇을 강탈하기 위해 수십 년간 갈고닦은 최후의 수트였다. 그 압도적인 출력 앞에서 인간의 육신이 버텨낼 리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강진혁은 멀쩡했다. 아니, 멀쩡한 정도가 아니었다.
그의 온몸을 두르고 있는 칠흑빛 마기는 오히려 진무극이 쏟아낸 암흑물질의 파동을 양분 삼아 더욱 진득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네놈의 착각이지.”
강진혁의 입술이 낮게 호선을 그렸다.
차가운 흑안에는 일점의 흔들림도 없었다. 시스템의 지시 사항이나 연산 데이터 따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대기의 흐름, 진무극의 심장박동, 그리고 그가 뿜어내는 마기의 궤적까지 전부 다 강진혁의 오감 안에서 투명하게 읽히고 있을 뿐이었다.
“기술은 자본으로 살 수 있어도, 무(武)의 경지는 돈으로 사들이지 못한다.”
콰아아앙!
진혁의 발이 허공을 박찼다.
마광신보(魔光神步).
소리도, 빛도 남지 않는 초음속의 이동.
진무극이 반사적으로 양팔을 들어 올리며 5세대 암흑물질 코어의 출력을 끌어올리려 했다.
“크아아아아크! 오리진! 출력을 120%로 과열시켜라! 모든 에너지를 코어로 집결해!”
휘이잉-!
지이잉, 지지지직-!
진무극의 고함과 함께 수트 전체에서 붉은색 경고등이 미친 듯이 깜빡였다.
과부하.
정상적인 기계라면 단 1초도 버티지 못하고 폭발할 극단적인 한계 출력. 하지만 진무극은 자신의 목숨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눈앞의 괴물을 짓밟고, 저 완벽한 육체를 온전히 차지하겠다는 광기만이 그의 뇌수를 지배하고 있었다.
우우우웅!
수트의 어깨 부근에 장착된 다중 플라즈마 포열이 전개되며, 공간을 태워버릴 듯한 고열의 에너지 구체가 급속도로 팽창했다.
주변의 공기가 순식간에 증발하며 거대한 열풍이 타워 내부의 잔해를 사방으로 날려버렸다.
직격당하면 신서울의 절반이 통째로 증발할 만한 파괴력.
하지만 강진혁은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단전의 기혈을 역류시키듯 미세하게 틀어쥐었을 뿐이다.
[마신경 - 진천(眞天).]
만물의 결이 멈춰 선다.
진무극이 발사한 3만 MW급 플라즈마 포격이 세상의 모든 속도를 잃은 채, 느릿느릿한 궤적으로 강진혁을 향해 밀려들었다.
그 거대한 에너지의 폭류 속에서, 강진혁은 정확히 에너지의 '결합점'과 '공진 주파수'를 직관으로 꿰뚫어 보았다.
“헛소리.”
지익-.
강진혁의 오른손 검지가 허공을 가볍게 스쳤다.
그것은 무기술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할 만큼 간결한 동작이었다. 단지 손가락 하나를 허공에 그었을 뿐인데, 그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칠흑빛 검강이 공간의 이음새를 그대로 도려냈다.
쿠궁!
만법귀마(萬法歸魔).
진무극이 사력을 다해 쏘아 올린 플라즈마 에너지 구체가, 강진혁의 손가락 끝에 닿는 순간 거짓말처럼 정지했다.
그리고는 흡원천공(吸元天功)의 운기 궤적을 따라, 마치 거대한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는 물줄기처럼 강진혁의 단전으로 통째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크…… 크윽?! 내, 내 에너지를…… 흡수해?!”
진무극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그것은 단순한 방어가 아니었다. 적이 쏟아낸 최후의 일격을 온전히 자신의 내공으로 제련하여 소화해 버리는, 천마(天魔)만이 구사할 수 있는 경지의 약탈이었다.
흡원천공(吸元天功).
적의 생명력과 내공, 기술의 에너지를 강탈하여 자신의 것으로 치환하는 이 마공은, 이제 단순한 시스템의 보조 연산을 초월하여 강진혁의 본능적인 육체 감각과 완전히 동화되어 있었다.
파바박!
“크아악!”
에너지를 역으로 강탈당한 오리진 수트가 비명을 질렀다.
내부 회로가 융해되면서 사방으로 스파크가 튀었고, 진무극의 어깨를 감싸고 있던 티타늄-탄소 분자 장갑이 눈 녹듯 바스러져 내렸다.
강진혁의 형체가 진무극의 코앞으로 순식간에 밀착했다.
마광신보의 극의.
눈을 깜박이는 것조차 사치인 시간 속에서, 진혁의 손바닥이 진무극의 우측 어깨 장갑을 그대로 움켜쥐었다.
뚜둑, 우드득-!
“크아아아아액!”
인간의 비명이 아니라, 기계가 처참하게 찌그러지는 단말마였다.
강진혁의 손아귀에서 뿜어져 나온 칠흑빛 마기가 오리진 수트의 관절 부위를 파고들어 내부의 유압 실린더와 나노 회로를 단숨에 분쇄해 버렸다.
우측 어깨에서 팔꿈치로 이어지는 거대한 장갑 부위가 완전히 떨어져 나가며, 그 안에서 피투성이가 된 진무극의 실제 팔목이 덜렁거렸다.
“내…… 내 몸에…… 이 감히……!”
진무극은 피를 토하며 뒤로 비틀거렸다.
완벽한 지배자, 신서울의 군주로 군림하던 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남은 것은 처참하게 부서진 철갑을 두른 채 공포에 질린 늙은이의 추한 잔해뿐이었다.
오리진 수트의 경고음이 타워 전체에 귀를 찢는 듯한 경보음을 울려댔다.
[Warning! Warning!]
[코어 출력 15% 미만 하락.]
[오리진 수트의 핵심 제어 회로 붕괴 임박.]
[긴급 프로토콜 구동. 최후의 비상 수단을 가동합니다.]
시스템 음성이 깨진 노이즈와 함께 흘러나왔다.
진무극의 눈동자에 광기가 서렸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던 천마의 육체는커녕, 이 괴물의 손에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신세가 될 판이었다.
“크하하…… 크하하하하! 잘도 내 수트를 부수었구나, 진혁아!”
진무극이 피투성이가 된 입술을 비틀며 미친 듯이 웃었다.
그의 남은 왼손이 연구동 바닥의 비밀 콘솔을 강하게 내리찍었다.
카아아아앙-!
바닥의 거대한 철판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그 밑에 숨겨져 있던 거대한 원형 격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티타늄 그룹의 본사 최심부에만 설치된 최종 방어 시스템이자, 도시 전체의 전자기기를 한 번에 태워버릴 수 있는 초고출력 마스터 전자기 펄스(EMP) 제너레이터였다.
“이 안에는 신서울 전체를 백지로 만들 수 있는 출력이 잠들어 있다! 내 수트가 멈추더라도, 네놈의 그 나노머신과 마기 회로 또한 이 안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진무극의 눈이 핏발로 물들었다.
그가 격벽의 마스터 레버를 완전히 잡아당기려 손을 뻗었다.
“같이 죽는 거다, 진혁아! 네가 가진 모든 것과 함께 이 타워의 밑바닥으로 가라앉아라!”
콰아아앙-!
진무극이 레버를 내리누르는 순간, 연구동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충격파와 함께 눈이 멀 정도로 강렬한 푸른빛의 전자기 폭풍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타오르는 마기와 찢어진 차원의 틈새, 그리고 신서울의 운명을 가를 최후의 EMP 폭풍이 두 사람을 집어삼키기 위해 맹렬하게 포효하고 있었다.
치이이익——!
공간을 태우는 듯한 섬광과 함께, 신서울 전체의 전력망을 통째로 뒤흔들 만한 초고출력 전자기 펄스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수만 볼트의 전류가 대기를 가르며 타워 내부의 철근 구조물을 타고 흐르는 소리가 귀를 찢었다.
지이잉, 지지직-!
오리진 수트의 잔해에 박혀 있던 미세한 나노머신 회로들이 먼저 반응했다.
순간적으로 쏟아진 EMP의 폭풍은 현대 군사 기술의 집약체인 기계 장치들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수트 내부의 자동 제어 시스템이 처참한 노이즈를 내뿜으며 일제히 암전되었고, 진무극이 장착한 5세대 암흑물질 코어마저 출력이 강제로 차단되며 털썩 주저앉았다.
“크흑…… 쿠하하하! 봤느냐? 현대 기술의 정점 앞에선 그 어떤 무공도 무력할 뿐이다!”
진무극이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악에 받친 웃음을 터뜨렸다.
수트의 동력이 완전히 끊어져 움직이지 않게 되었음에도, 그의 입가에는 광기 어린 승리감이 서려 있었다. 신서울의 모든 전자 회로와 기계식 나노머신이 멈춰 선 이 순간, 인간의 육신만으로는 그 어떤 반정도 부릴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진혁은 그 폭풍의 중심에 선 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치익, 타닷-.
나노머신의 자동 제어가 멈추고, 시야를 보조하던 HUD의 푸른빛이 완전히 꺼져버린 암흑 같은 시야.
그러나 진혁의 표정에는 당황스러움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 칠흑 같은 흑안은 더욱 깊고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기계가 멈췄다고 내 무(武)까지 멈출 줄 알았나.”
낮게 읊조린 강진혁의 목소리가 EMP의 잡음 속에서도 진무극의 고막을 정확히 때렸다.
후우우웅-.
진혁의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른 진정한 마기(魔氣)가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시스템의 보조 없이, 오직 수십 년간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단련해 온 자신의 의지와 기혈의 흐름만으로 끌어올린 순수한 내공의 힘.
나노머신이 없으면 어떠한가.
인공적인 회로가 타버렸다면, 육체의 세포 하나하나를 직접 회로 삼아 마기를 운용하면 그만이다.
이것이 바로 시스템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난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마신경(魔神境)]의 진면목이었다.
“말도 안 돼……! 나노 회로가 정지했는데, 어떻게 네가 스스로……!”
진무극의 눈에 경악의 빛이 완벽한 절망으로 물들었다.
기계의 도움 없이 오직 무공의 원리만으로 신체의 출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리는 괴물. 그것은 그가 수십 년간 데이터로만 추구해 왔으나 결코 도달하지 못한 천마의 영역 그 자체였다.
타박, 타박.
강진혁이 파괴된 격벽의 잔해를 밟으며 진무극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섰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대기가 짓눌리며 묵직한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내게 남긴 건 기술이 아니라 지옥이었다, 진무극.”
“크…… 큭, 오지 마라……!”
공포에 질린 진무극이 주저앉은 채 뒷걸음질을 쳤다.
오리진 수트는 이미 거대한 고철 덩어리로 전락해 그의 사지를 짓누르고 있었고, 더 이상 그를 보호해 줄 방패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다.
지이잉- 탁!
죽음의 직전까지 몰린 진무극의 손이 수트 흉부 장갑의 안쪽에 숨겨져 있던 수동 비상 탈출 레버를 더듬어 찾아냈다.
전자기기가 멈추었기에 오직 물리적인 힘으로만 작동하는 최후의 비상 회로.
쾅-!
진무극이 레버를 전력으로 내려찍었다.
그러자 티타늄 타워의 바닥 격벽이 완전히 무너지며, 타워의 가장 깊은 곳, 모든 실험체들의 시체가 버려졌던 지하 최심부의 어둠 속으로 두 사람의 발밑이 통째로 꺼져내렸다.
쿠구구구구----!
상공의 차원 틈새에서 쏟아지는 사념과 타워의 붕괴 속에서, 강진혁은 도망치는 진무극의 등 뒤로 차갑게 시선을 고정하며 마광신보로 허공을 박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