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0화 진무극의 경악
하늘이 두 쪽으로 갈라져 있었다.
신서울의 상공.
천만 평의 대지를 압도하던 티타늄 타워의 첨탑 위에서, 세계의 질서를 쥐락펴락하던 자가 추락하고 있었다.
아니, 추락이라기보다는 침몰이었다.
콰아아아구궁-!
“크윽……!”
진무극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역류했다.
그의 온몸을 감싸고 있던 3만 메가와트급 오리진 수트. 고대 천마의 심장 세포와 현대의 5세대 암흑물질 코어, 그리고 수천 개의 나노머신 회로가 융합되어 인류의 과학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신체라 자부했던 그 장갑이 처참한 갈라짐을 드러내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중앙 흉부.
그곳에 박혀 있던 프라임 코어의 핵이 사방으로 실금을 내며 금이 가고 있었다.
스윽.
허공에 멈춰 선 강진혁의 손가락 끝에서 실눈 같은 흑색 검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시스템의 보조 HUD도, 인공지능 설화의 냉정한 연산 음성도 더 이상 그의 시야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만물의 결이 보였다. 대기 중의 기류, 공간의 미세한 떨림, 그리고 진무극이라는 늙은 야심가의 심장박동까지.
오직 눈과 감각, 그리고 자신의 의지만으로 도달한 절대의 영역.
[마신경(魔神境) - 진천(眞天)].
그 경지에서 내려다보는 진무극은 거대한 신이 아니라 한낱 모래성 위에 올라앉은 광대일 뿐이었다.
“어…… 어째서…….”
진무극의 은발이 땀과 피에 엉겨 붙었다.
그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떨렸다. 오만과 냉혹함으로 가득 차 있던 늙은 지배자의 얼굴에 생전 처음 보는 감정이 서서히 번지고 있었다.
공포(恐怖).
자신이 만든 피조물.
하층 슬럼가에서 짐승처럼 굴러다니다 버려졌어야 할 실험체 07호가 어째서 이토록 거대한 격차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가.
진무극의 시야 구석, 망막에 직접 투사되던 전술 HUD가 미친 듯이 경보음을 울려대고 있었다.
[WARNING! WARNING!]
[오리진 수트 코어 출력 저하: 78% → 42%!]
[대상(강진혁)의 에너지 패턴: 측정 불가(Unmeasurable)!]
[시스템 오류: 분석 루프 붕괴! 경지 등급을 산출할 수 없습니다!]
“측정 불가라니……! 헛소리 집어치워라! 그라운드 제로의 암흑물질 출력은 3만 메가와트다! 인류의 과학이 도달한 궁극의 출력이 어째서 저런 놈의 검끝 하나를 상대로 연산 조각조차 내지 못한단 말인가!”
진무극이 절규하듯 소리치며 양팔을 휘저었다.
지축을 흔들던 중력 왜곡 장판이 다시 한번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타워의 콘크리트 잔해들이 중력에 이끌려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이내 가루가 되어 사방으로 비산했다.
콰앙-! 콰아앙!
공간 자체가 비틀리는 폭발 속에서 진무극은 수트의 출력을 한계치까지 강제로 끌어올렸다.
파지지직-!
오리진 수트의 등 뒤로 뿜어져 나오던 흑색 플라즈마 날개가 거대하게 부풀어 올랐다. 마치 지옥의 아가리를 연 듯한 암흑의 파동이 신서울 상공의 대기를 검게 물들였다.
하지만 강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시끄럽군.”
나지막한 목소리가 폭발음 속에서도 진무극의 고막에 선명하게 박혔다.
진혁이 가볍게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가락 끝에 걸려 있던 검은 기운이 일렁였다.
천마 프로토콜의 알고리즘에 의존하던 시절이었다면 이 정도의 에너지를 다루기 위해선 수십 번의 데이터 연산과 쿨다운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강진혁에게 그런 번거로운 절차는 필요 없었다.
기(氣)와 혈(血), 그리고 우주의 파동이 하나로 융합되는 경지.
[흡원천공(吸元天功)].
진혁이 손을 가볍게 쥐었다가 펴자, 진무극이 뿜어낸 사방의 암흑물질 파동이 거짓말처럼 역류(riptide)를 일으키며 진혁의 손바닥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소용돌이치는 에너지는 진혁의 단전을 거쳐 순식간에 정제되었다.
폭발적인 열기와 살기는 그의 혈관을 타고 돌며 새로운 형태의 마강(魔罡)으로 재편성되었다.
남의 힘을 빼앗아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세계의 이치를 억지로 뒤틀어 내 것으로 만드는 절대의 약탈.
“네놈……! 내 에너지를 흡수한 거냐?!잔인하군.”
진무극이 경악하며 뒤로 물러섰다.
오리진 수트의 리미터가 붉은 경고등을 번쩍이며 과열을 알리고 있었다. 3만 메가와트의 출력이 제어력을 잃고 폭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네가 준 것은 기술과 에너지뿐이다.”
진혁이 차갑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걸 무공으로 승화시킨 건 나다. 진무극, 네가 만든 그릇은 이미 깨졌다.”
스윽.
강진혁의 형체가 허공에서 사라졌다.
[마광신보(魔光神步)].
빛보다 빠르게, 아니 공간의 결을 타고 이동하는 그 보법에 진무극의 동공이 극한으로 수축했다. 눈으로 쫓을 수조차 없었다. 아니, 쫓으려 하면 이미 뇌의 반응 속도가 따라가지 못했다.
퍼억-!
“크헉……!”
진무극의 시야가 한 바퀴 회전했다.
아니, 몸이 회전한 것이었다. 강진혁이 어느새 그의 코앞까지 파고들어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찔러 넣은 검기가 오리진 수트의 우측 어깨 장갑을 두부 썰듯 베어가른 참이었다.
특수 제작된 티타늄과 나노-탄소 복합 장갑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그 안에 내장되어 있던 고압 유압 회로가 터지며 푸른빛의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었다.
“어…… 어떻게…….”
진무극의 입에서 탄식과 함께 검은 피가 쏟아졌다.
자신이 수십 년간 연구하고, 수많은 인간을 실험체로 갈아 넣으며 완성한 불멸의 방어막이었다. 전 세계의 어떤 무인이라도 절대 뚫을 수 없다고 확신했던 장갑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고작 손가락 끝에 실린 검기 한 방에 무력하게 박살 난 것이다.
“강력한 기술과 비싼 코어만 박으면 천마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나.”
진혁의 목소리가 진무극의 귓가에 닿았다.
서늘하고도 잔인한, 그러나 일점의 흔들림도 없는 절대자의 음성.
“힘의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 힘을 통제하는 자의 그릇이 썩어 빠졌다면 그건 그냥 폭발물에 불과하지.”
챙강-!
진혁이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그 충격파만으로도 오리진 수트의 상층부 흉갑 전체가 거미줄처럼 금이 가며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진무극의 가슴살이 드러나고 그 안에서 박동하던 5세대 암흑물질 프라임 코어가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다.
코어의 심장부에서 불규칙한 맥동이 일었다.
과부하.
진혁이 흡원천공으로 에너지를 빼앗고 마신경의 정밀한 마기로 내부 회로를 교란한 결과였다.
[치이익…… 시스템 재부팅 실패.]
[마스터 코어 연결 끊김. 비상 탈출을 권장합니다.]
수트의 인공지능이 절망적인 음성을 내뱉었다.
하지만 탈출구 따위는 없었다. 신서울 상공 120층, 타워의 최정상. 그곳은 이미 진혁과 진무극, 단 두 사람만을 위한 무덤이자 결전장이었다.
“크하하…… 크하하하하!”
진무극이 갑자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의 입가와 턱밑으로 검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은발은 헝클어지고 완벽주의를 고집하던 중년 신사의 품위는 온데간데없었다. 남은 것은 벼랑 끝에 몰린 짐승의 광기뿐이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강진혁. 내가 만든 것은 기술에 불과했겠지! 하지만 잊지 마라! 이 세계의 모든 자본과, 모든 기술과, 모든 피는 내 손을 거쳐 만들어졌다! 네가 나를 죽여도 이 세상은 변하지 않아!”
진무극의 두 눈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의 흉부 중앙에 박힌 암흑물질 코어가 마지막 발악을 하듯 붉은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코어 주변의 공간이 미세하게 뒤틀리며 주변의 공기를 빨아들이는 거대한 중력장이 형성되었다.
자폭(自爆).
자신이 가질 수 없다면 이 신서울 전체와 함께 강진혁을 지옥으로 끌고 가겠다는 마지막 심판의 도구.
“소용없다.”
진혁의 눈동자가 깊고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는 더 이상 말을 섞지 않았다. 손을 들어 올린 그의 검지에 세상의 모든 빛과 마기가 응축되기 시작했다.
대기 중의 나노입자, 부서진 타워의 잔해, 그리고 머리 위에서 울부짖는 차원 침공군의 사념까지.
모든 에너지가 진혁의 검 끝으로 빨려 들어가듯 모여들었다.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 제13식 - 파천검강(破天劍罡)].
시스템의 연산도, 인공지능의 도움도 필요 없는, 오직 강진혁 자신의 손으로 깨달은 참된 절기.
“사라져라, 진무극.”
진혁의 검지가 아래로 뚝 떨어졌다.
팟-!
소리조차 없는 침묵.
그 침묵과 함께 진무극의 가슴에 박힌 5세대 암흑물질 프라임 코어의 정중앙에 실눈 같은 검은 선이 그어졌다.
잠시 동안의 정적.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진무극의 몸이 완전히 두 쪽으로 갈라졌다.
오리진 수트의 티타늄 장갑도, 5세대 암흑물질로 압축된 프라임 코어도, 고대 천마의 심장 세포를 이식해 불멸을 꾀했던 육체도 강진혁의 검강 앞에서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촤악-!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검붉은 혈흔이 신서울의 밤하늘을 일그러뜨렸다.
진무극의 눈동자에 깃들어 있던 오만과 광기는 온데간데없었다. 그저 멍하니 벌어진 입으로 핏덩이를 토해내던 그는 자신이 저지른 파멸의 무게를 온몸으로 실감하듯 허공에서 아래로 스러져 내렸다.
쾅.
타워 최정상의 바닥이 무너져 내리며 진무극의 상하반신이 나뒹굴었다.
그의 숨이 완전히 끊어지는 것을 확인한 강진혁은 낮게 숨을 몰아쉬었다. 가쁜 호흡 속에서도 그의 단전은 거대한 대양처럼 고요하고도 묵직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끝장이었다.
티타늄 그룹의 절대 군주이자 인류의 자본과 기술로 세상을 지배하려 했던 진무극은 그렇게 영구 소멸했다.
하지만 승리의 감흥에 젖어 있을 시간은 단 1초도 없었다.
쿠구구궁-!
진무극의 프라임 코어가 파괴되면서 발생한 차원 왜곡의 여파가 상공의 균열을 더욱 넓혀놓았다.
이미 갈라질 대로 갈라진 하늘 너머에서 인간의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사념체들의 함선 군단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붉은 수천 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신서울의 마천루를 향해 수렴했다.
비릿한 악취가 대기를 타고 내려왔다.
지상의 저항군과 슬럼가에서 이 사태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바람을 타고 아득하게 들려왔다.
“크윽…….”
그때, 타워의 잔해 난간 부근에서 앓는 소리가 들렸다.
진세린이었다. 진혁이 흘려보낸 마기의 장막 덕분에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지만, 코어가 적출된 그녀의 육체는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진혁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진무극을 쓰러뜨린 검을 거두지 않은 채 허공을 박차며 다시 한번 비상했다.
[마광신보(魔光神步)].
빛의 잔상조차 남기지 않는 속도로 상공의 차원 균열을 향해 날아오른 강진혁의 눈에 선봉장을 자처하며 강하하는 거대한 촉수형 포식자의 형체가 들어왔다.
“네놈들이 어느 별에서 기어 나왔든…….”
진혁이 검자루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마신경의 경지에 도달한 그의 눈에 비친 차원 침공군의 진형은 허술하기 그지없었다. 기계와 자본의 지배를 부순 그가 마침내 마주한 진짜 전쟁의 서막이었다.
“이 땅의 주인은 내가 정한다.”
우우우웅-!
진혁의 검끝에서 칠흑빛 마강이 폭발하듯 뻗어나갔다.
하늘을 뒤덮은 우주적 포식자들을 향해 참된 천마의 검이 다시 한번 허공을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