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9화 마신경(魔神境)의 개안
지구의 대기권이 포효했다.
신서울 상공, 거대하게 찢어진 차원의 균열 너머에서 쏟아져 내리는 것은 단순한 물리적 폭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주의 저편에서 문명과 별들을 소모품처럼 씹어 삼키며 진화해 온, 명백한 '절망'의 사념이었다.
수만 개의 붉은 안구가 신서울의 밤하늘을 가득 메웠다. 거대한 함선 군단이 투사하는 광자 에너지포의 궤적이 대기를 찢고 지상을 향해 비등점을 높여갔다.
콰아아아앙——!
지상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과 폭음은 이미 들리지도 않았다.
티타늄 타워의 잔해 아래, 윤아영은 떨리는 손으로 홀로그램 모니터를 붙잡고 있었다.
"출력… 측정 불가야! 차원 침공군의 에너지 반응이… 지구 전체의 코어 총출력보다 높아!"
송수연은 가죽 재킷 주머니에서 대형 도검을 꺼내 쥐며 이를 악물었다. 그녀의 눈앞에서, 반파된 타워 120층 상공의 허공이 순식간에 암흑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 암흑의 중심에 한 남자가 있었다.
강진혁.
온몸의 피부를 타고 흐르던 은빛 개조 회로는 이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차가울 정도로 정제된 칠흑의 마기(魔氣)와, 그 심연에서 끓어오르는 순수한 금빛의 섬광이었다.
비비비비빙——!
시야를 가득 채우던 푸른색 HUD, 즉 '천마 프로토콜'의 인터페이스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인공지능 설화의 무기질적인 경고음도, 시스템의 보조 연산도 끊긴 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혁의 감각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했다.
아니, 비로소 진짜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주인공의 시스템 자율 제어 권한을 상실했습니다.』
『경고! 심장부 생체 코어 출력, 한계치를 400% 초과!』
기계가 내뱉던 오진(誤診)의 경고 따위는 필요 없었다.
진혁은 자신의 심장 박동 하나하나가 대지의 맥박과 공명하는 것을 느꼈다. 단전 속에 자리 잡은 5세대 암흑물질 코어와 고대 천마의 심장 세포, 그리고 체내를 순환하는 마기가 완벽한 원을 그리며 맞물렸다.
단 하나의 티끌도, 단 한 오라기의 불순물도 남지 않았다.
모든 에너지가 '강진혁'이라는 존재 그 자체로 수렴하고 있었다.
"허……."
상공의 차원 균열 너머, 함선 군단의 선두에 선 거대한 우주적 포식자의 사념체가 진혁을 향해 기괴한 주파수를 내뿜었다. 그것은 언어가 아니었다. 모든 생명체의 정신을 붕괴시키는 파괴의 파장이었다.
주파수가 도달하는 순간, 타워 난간에 기대어 있던 진세린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진혁이 흘려보낸 마기 장막이 없었으면 그 즉시 정신이 붕괴되어 뇌가 녹아내렸을 충격이었다.
진혁은 고개를 살짝 돌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눈을 감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는 진세린의 모습이 완벽하게 시야에 담겼다. 아니, 눈을 감을 필요조차 없었다. 공기의 흐름, 미세한 먼지의 궤적, 심지어 차원 침공군이 발사하려는 에너지포의 전자파 파장까지 전부 머릿속에 '지도'처럼 그려지고 있었다.
이것이 마신경(魔神境).
기계의 계산을 초월한, 무도의 절대 영역.
"시스템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할 줄 알았나."
진혁의 입꼬리가 비틀리며 서늘한 호선을 그렸다.
그의 손에 쥔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흑색 마강이 대기를 태우며 일그러졌다.
쾅-!
진혁의 발밑에서 공간이 터져 나갔다.
[마광신보(魔光神步)]의 궤적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전까지는 나노머신의 신경 전달 속도와 시스템이 계산한 최단 거리에 의존했으나, 지금은 달랐다.
공간 그 자체의 결을 읽고, 그 틈새를 밟고 도약한다.
빛보다 빠른 잔상이 신서울 상공의 칠흑빛 허공에 수십 개로 갈라졌다.
콰아아아앙!
차원 침공군 소속의 거대 함선 하나가 전개한 생체 에너지 방어막이 진혁의 앞을 가로막았다. 함선 외벽을 뒤덮은 수천 개의 붉은 눈동자가 동시에 진혁을 조준하며 파괴 광선을 뿜어냈다.
수천 도에 달하는 플라즈마 광선이 진혁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지상에서 올려다보던 윤아영이 숨을 멈췄다.
"진혁 씨……!"
하지만 광염 속에서 들려온 것은 신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만하고도 잔혹한 폭음이었다.
크르릉……!
진혁의 몸을 감싼 칠흑의 마기가 광선을 그대로 흡수하기 시작했다.
[흡원천공(吸元天功)].
과거에는 적의 기술을 억지로 뜯어내어 시스템으로 정제해야 했지만, 지금의 진혁에게는 그딴 번거로운 절차가 필요 없었다. 단전으로 밀려드는 차원 에너지와 플라즈마는 단숨에 진혁의 피와 살, 그리고 검강의 연료로 변환되었다.
우구구구구궁—!
진혁의 어깨와 팔뚝을 따라 흐르던 칠흑빛 마기가 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신체 표면을 이루고 있던 세포와 나노머신이 마기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 나가는가 싶더니, 그 빈자리를 순수한 의지와 마력으로 재구성된 초월적 육신이 메웠다.
[신천마신공 제11식: 천마무상체(天魔無相體)]의 완전한 발현.
"내 밥그릇을 훔치려 들더니, 기어코 손님들이 많이도 찾아왔군."
진혁의 눈동자가 완전히 금빛으로 물들었다.
그가 허공에 멈춰 서서 검을 들어 올렸다.
대기 중의 모든 에너지가 그의 검끝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신서울 전역의 전력망, 지저에 남겨진 암흑물질 코어의 잔류 파장, 그리고 차원 침공군이 뿜어낸 포격의 에너지까지—만물의 모든 기운이 단 하나의 점으로 압축되었다.
[신천마신공 제12식: 만상귀일(萬象歸一)]
스으으읍—
세상이 침묵했다.
소리도, 빛도, 바람도 사라진 절대의 진공 상태.
그 정적 속에서 진혁의 검이 허공을 향해 가볍게 내찍혔다.
쾅가각-!
공간이 유리처럼 산산조각 났다.
아니, 공간뿐만이 아니었다. 차원 침공군의 선두 함선을 가로막고 있던 수십 겹의 차원 방어막이 단 한 번의 검압(劍壓) 앞에 두부처럼 무너져 내렸다.
[신천마신공 제13식: 파천검강(破天劍罡)]
취익-! 콰아아앙!
빛의 홍수가 차원 균열의 한복판을 강타했다.
선두에 서 있던 거대 함선이 중앙부터 두 쪽으로 갈라지며 폭발했다. 붉은 안구들이 터져 나가며 검붉은 피가 비처럼 신서울의 밤하늘을 적셨다.
함선 군단 전체가 일제히 진동했다.
우주적 포식자들의 사념체 속에서,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공포의 물결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사냥감'이 반격할 리 없다는 오만이 깨졌을 때 찾아오는 원초적인 경악이었다.
차원 균열의 가장 깊은 곳, 핏빛 칠흑의 허공 속에서 더욱 거대한 형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수십 개의 눈동자가 동시에 진혁을 향해 포커스를 맞췄다.
하지만 진혁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검을 거꾸로 잡은 채, 찢어진 하늘을 향해 차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너라."
진혁의 목소리가 마력의 파장에 실려 신서울 전역, 아니 대기권을 넘어 우주까지 울려 퍼졌다.
"네놈들이 어느 별에서 기어 나왔든, 이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 각인시켜주마."
콰르릉-!
진혁의 몸이 한 줄기 흑금색 섬광이 되어, 차원 균열의 심장부를 향해 거침없이 날아올랐다.
마신경의 개안과 함께, 진짜 전쟁의 막이 올랐다.
차원 균열의 심장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력은 대기 자체를 고체로 응축시키는 듯했다.
우주적 포식자들의 본대가 드러낸 형체는 기계와 생명체의 경계가 모호한 거대한 거미 모양의 함선 군단이었다. 그 중심에 자리 잡은 ‘상위 사념체’는 수천 개의 붉은 눈동자를 깜빡이며 진혁을 향해 정신의 나이프를 휘둘렀다.
찌릿—!
정신을 직접 찌르는 사념의 파동이 뇌수를 헤집었지만, 진혁의 눈빛은 흔들림조차 없었다.
[마신경 - 진천(眞天)]의 경지에 도달한 그에게 단순한 정신 공격은 바람에 날리는 먼지와 같았다.
"시끄럽다."
진혁이 낮게 뇌까리며 검을 비틀었다.
허공을 짓누르던 거대한 중력 왜곡장이 [만법귀마(萬法歸魔)]의 원리에 의해 역류했다. 포식자들이 뿜어낸 사념의 파동이 오히려 그들 자신의 회로를 타고 들어가며 선두에 선 함선들의 붉은 눈동자가 연속으로 폭발했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앙!
기계와 유기물이 타들어 가는 악취가 신서울 상공을 채웠다.
지상의 잔해 속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윤아영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게…… 인간의 힘이야?"
시스템의 보조 없이, 오직 자신의 신체와 단전의 내력, 그리고 우주에서 쏟아지는 에너지를 온전히 역이용하여 적의 대함대를 격파하고 있었다. 그것은 무협 속의 전설에 나오는 무인이라기보다는, 차원을 유린하는 마신 그 자체였다.
진세린은 타워 난간에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진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심장 부근에서, 진혁이 불어넣어 준 마기의 잔향이 새로운 단전의 맥을 열어젖히고 있었다.
‘살아남아야 한다…… 저 자가 연어처럼 거슬러 오르는 저 전쟁의 끝에서, 이 세계가 어떻게 변하는지 지켜봐야 해.’
진세린은 이를 악물며 흐려지는 정신을 붙잡았다.
쿵—! 쿵—!
차원 균열의 틈새가 더욱 넓어지며, 거미 모양의 함선들 사이로 비대칭적인 날개를 지닌 거대한 괴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함선이 아니었다. 생체와 기계가 융합된, 차원 침공군의 '선봉장'이었다. 몸길이만 수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괴수의 입에서 푸른색 광자 포가 응축되기 시작했다.
슈우우우웅—!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빛마저 빨려 들어가는 흡입력이 발생했다.
선봉장이 내뿜으려는 일격은 앞서 진무극이 사용했던 오리진 수트의 출력을 아득히 뛰어넘는 규모였다. 지구의 맨틀을 통째로 녹여버릴 수 있는 에너지 덩어리가 마침내 포구에서 발사되었다.
크으으으으엑—!
공기를 태우며 날아오는 거대한 빛의 기둥을 향해, 진혁은 도망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광자 포의 정중앙을 향해 정면으로 가속했다.
[마광신보(魔光神步)]!
진혁의 잔상이 빛의 홍수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지상에서 올려다보던 이들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광자 포의 열기가 신서울 전체를 달구는 그 순간, 진혁의 검끝에서 뿜어져 나온 흑금색의 검강이 빛의 기둥을 정중앙부터 갈라놓기 시작했다.
가아아아아아——!
에너지의 흐름을 읽고, 그 공진 주파수를 찾아내어 단 한 번에 붕괴시킨다.
[만법귀마]와 [파천검강]의 완벽한 융합이었다.
빛의 홍수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신서울 상공에 거대한 오색의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그 불꽃의 여파를 뚫고, 진혁의 형체가 선봉장 괴수의 거대한 미간 앞에 도달했다.
"나의 허락도 없이, 어디에 기어 들어오는가."
진혁의 목소리가 전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가 오른손에 쥔 검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단전 속에 잠들어 있던 고대 천마의 유골 데이터와 5세대 암흑물질 코어의 잔류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연소했다. 진혁의 전신을 감싸던 칠흑빛 마기가 태양보다 밝은 금빛으로 타올랐다.
마신경(魔神境)의 정점.
모든 물리 법칙과 기계적 한계를 부수고, 스스로가 하나의 우주가 되는 경지.
[신천마신공 제17식: 참단(斬斷)]
취이이익——!
소리마저 증발한 절대의 공간 속에서, 진혁의 검이 선봉장 괴수의 미간을 내리찍었다.
단 한 번의 검휘.
시간이 멈춘 듯했다.
괴수의 거대한 몸집이 멈춰 서더니, 미간의 중심부에서 시작된 실금 같은 균열이 순식간에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수백 미터에 달하는 선봉장 괴수가 세 갈래로 쪼개지며 공중에서 대폭발을 일으켰다. 거대한 파편들이 운석처럼 신서울의 외곽으로 쏟아져 내렸지만, 진혁은 그 폭발의 불길 속에서 고개를 돌려 더 깊은 차원의 틈새를 응시했다.
그 틈새 너머에서, 더 거대하고 붉은 수천 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진혁을 향했다.
그것은 경악이자, 분노였고, 동시에 새로운 '사냥꾼'을 향한 경외였다.
진혁은 입술을 깨물며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검자루를 더욱 굳게 쥐었다.
시스템이든, 천마 프로토콜이든, 혹은 우주 너머의 포식자들이든 상관없었다.
이 세계의 목숨줄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자는 오직 자신뿐이었다.
"오너라. 끝까지 찢어주마."
진혁이 다시 한번 허공을 박차며 차원 균열의 심장부를 향해 비상했다.
신천마(新天魔)의 검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