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화 신마교 수호자, 쌍도(雙刀) 바론
슈우우우—!
푸른빛의 플라즈마 네온이 찢어지며 서울 하층 도시의 밤공기가 매캐한 탄내로 물들었다.
티타늄 타워 지하 3층으로 향하는 메인 송수관 구역.
강진혁의 발밑에서 터져 나온 마기(魔氣)의 여파로 바닥의 강화 콘크리트가 거미줄처럼 갈라져 나갔다.
"저 자식의 움직임을 잡아라! 주파수 스캔 100% 도달!"
지하 통로의 어둠 속에서 정예 블랙 가드들의 기계음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들과 함께 사방에서 쏟아지는 레이저 포화와 전자기 펄스(EMP) 탄막.
하지만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콰아아앙!
진혁의 몸을 둘러싼 [천마무상체]의 은빛 회로가 어둠 속에서 유독 선명하게 번뜩였다.
시스템의 보조 HUD가 영구 차단된 상태.
이제 그의 시야에 떠오르는 것은 인공지능이 계산해 준 데이터가 아니었다.
오직 오감(五感)과 육체에 새겨진 무공의 궤적, 그리고 적들이 뿜어내는 미세한 기혈의 파동뿐이었다.
'늦다.'
두두두두두!
기관총의 탄각이 허공을 갈랐지만, 진혁의 잔상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마광신보 - 극(極)]
슈파파팍!
빛의 궤적조차 남지 않는 초고속 보법.
지하 통로의 철제 벽면을 짓밟고 날아오른 진혁의 손에 쥐인 [천마검]이 푸른 검강을 머금은 채 허공을 그었다.
챙강-!
카아아아앙!
"크윽?!"
앞을 가로막던 블랙 가드 사이보그의 전신 장갑이 두 쪼가리로 갈라지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단전에서 소용돌이치는 9,850 MW의 마기 코어가 폭발적인 출력을 뿜어내며 진혁의 근육과 골격을 끊임없이 재조립하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지하 통로 상층부에 설치되어 있던 정찰용 자율 드론 편대가 일제히 경보음을 울렸다.
[Warning! 고에너지 반응 포착.]
[대상: 신마교 수호대장 '바론'.]
위이이잉—!
어둠에 잠겨 있던 거대한 철문이 찢어지듯 열렸다.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단순한 기계의 냉기가 아니었다.
시뻘건 혈기(血氣)와 고주파 진동이 뒤섞인, 1,000년 전 마교의 유골 데이터에서 파생된 기괴한 마기였다.
쿵-! 쿵-!
지하 바닥이 울릴 정도의 거구.
전신에 티타늄 합금과 군용 나노 슈트를 겹겹이 껴입은 사내가 걸어 나왔다.
그의 양손에는 일반 검의 세 배는 족히 넘는 두께의 거대한 단검, 고주파 쌍도가 들려 있었다.
"흐흐……."
사내의 입술 사이로 시뻘건 타액이 흘러내렸다.
티타늄 그룹이 폐기한 실험체들을 규합해 만든 사이버 범죄 마피아, 신마교의 실질적 수호자이자 거구의 살인병기인 '쌍도 바론'이었다.
"네놈이 바로 그 쥐새끼 같은 실험체 07호인가? 회장님께서 직접 네놈의 목을 가져오라 명하셨다만…… 내 보기엔 소문만 무성한 허섭스레기 같군."
바론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그의 손에 쥐인 쌍도 표면에 미세한 전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슈우우우웅—!
초당 5,000회의 진동.
닿는 모든 것을 입자 단위로 찢어발기는 고주파 진동 도검이었다.
일반적인 생체 코어 이식자라면 그 진동파에 휘말리는 것만으로도 단전의 코어가 공진을 일으켜 터져 나갈 터였다.
하지만 진혁은 차가운 눈빛으로 바론을 응시할 뿐이었다.
"말이 많더군."
진혁의 낮고 묵직한 음성이 지하 통로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오오, 눈빛 하나는 마음에 드는군! 그 오만한 눈깔을 뽑아주마!"
콰아아앙!
바론의 거대한 몸집이 폭발적인 나노머신 출력을 등지고 채찍처럼 튀어나왔다.
보이지 않을 정도의 고주파 진동을 머금은 쌍도가 공기를 찢으며 진혁의 측면을 무자비하게 후려쳤다.
스으읍, 하-!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필요가 없었다.
바론이 휘두르는 쌍도의 궤적, 그리고 그 칼날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공기의 진동 주파수가 진혁의 감각망 속으로 고스란히 흘러들어 왔다.
시스템의 도움 없이, 온전히 자신의 육감과 [만법귀마]의 직관으로 연산된 주파수였다.
'초당 5,000회의 공진. 과연 티타늄 그룹의 기술력답군.'
챙라라랑-!
진혁이 가볍게 들어 올린 [천마검]과 바론의 쌍도가 정면으로 부딪쳤다.
순간, 두 검의 접점에서 눈이 멀 정도로 찬란한 플라즈마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었다.
"크하하하! 내 쌍도의 진동을 직접 맞고도 무사할 줄 알았느냐? 네놈의 검은 곧 산산조각 날 것이다!"
바론이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리며 출력을 더욱 끌어올렸다.
고주파 진동이 진혁의 팔뚝을 타고 올라와 뼈를 시리게 만들었다.
[천마무상체]의 나노 회로가 파르르 떨리며 충격을 분산시키려 애썼다.
하지만 진혁의 표정은 흔들림 하나 없이 평온했다.
"착각이더군."
"뭐……?"
"네놈의 검이 진동하는 주파수."
진혁의 흑안이 깊게 가라앉았다.
"내가 모를 줄 알았나."
투둑-!
진혁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온 9,850 MW의 마기가 [천마검]의 검신을 타고 역류했다.
단순한 물리적 충돌이 아니었다.
바론의 쌍도가 내뿜는 고주파 진동의 파장과 정확히 반대되는 위상을 가진 마기 파동이 진혁의 검 끝에서 응축되기 시작했다.
바론의 얼굴에 떠 있던 광기가 순식간에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 이건……?! 미친, 내 진동 주파수를 어떻게 읽은 거냐?!"
진동과 진동이 부딪칠 때 발생하는 간섭 현상.
그것을 무공의 운기조식과 결합해 완벽한 역상(逆相) 파동으로 변환하는 기술.
[만법귀마(萬法歸魔)]의 진정한 응용기였다.
"공진(共振)."
진혁의 입술이 낮게 으스러졌다.
"파쇄(破碎)."
콰아아아아궁—!
지하 통로의 천장이 무너질 듯한 엄청난 폭음과 함께, 바론의 쌍도에서 흘러나오던 고주파 진동이 완전히 꼬여버렸다.
주파수가 충돌하며 발생한 어마어마한 공진 에너지가 역으로 바론의 양팔을 타고 흘러 들어갔다.
챙강-! 챙가방-!
"크아아아아악—!"
바론의 손에 들려 있던 초고주파 쌍도가 마치 유리창처럼 산산조각 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도검의 파편이 바론의 전신 나노 슈트를 뚫고 들어가며 시뻘건 피를 뿜어냈다.
"커헉……! 내, 내 무기가……?!"
바론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의 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공포가 서려 있었다.
인간의 감각만으로 기계의 고주파 진동 주파수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역상 파동을 실시간으로 구현해 내다니. 그것은 인간의 영역을 아득히 벗어난 괴물의 짓이었다.
하지만 진혁의 공세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슈우우욱—!
부서진 쌍도의 파편을 짓밟고 선 진혁의 손바닥이 바론의 가슴팍을 향해 뻗어 나왔다.
"기다려라."
진혁의 입가에 서늘한 살소가 걸렸다.
"흡수할 차례니까."
콰드득-!
[흡원천공(吸元天功)]!
바론의 흉부에 장착된 4세대 생체 코어와 전신을 감싸고 있던 군용 나노머신 회로가 진혁의 손바닥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지독한 마기가 바론의 혈관을 거꾸로 타고 역류했다.
"아, 안 돼……! 멈춰라! 커헉, 내 코어가…… 내 에너지가……!"
바론의 비명이 지하 통로를 메웠다.
하지만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의 생체 에너지를 남김없이 짜내기 시작했다.
[현재 단전 마기 출력: 9,850 MW → 9,920 MW 돌파.]
출력이 한계치를 향해 치솟았다.
바론의 몸은 순식간에 미라처럼 바짝 말라비틀어지며 바닥으로 무력하게 쓰러졌다.
쿵.
거구의 사내가 힘없이 쓰러지는 것을 내려다보며, 진혁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지하 통로의 끝, 티타늄 타워의 심장부로 이어지는 거대한 철문이었다.
지하 500층.
그리고 그 위에서 하층민 320만 명의 생명을 제물 삼아 영생을 꿈꾸는 진무극의 영지.
진혁의 등 뒤로 니르바나 저항군의 송수연과 윤아영이 숨을 몰쉬며 따라붙었다.
"진혁 씨! 앞쪽의 방어선이 전부 무너졌어! 메인 서버실까지 앞으로 남은 시간은 단 3시간이야!"
송수연의 다급한 목소리에 진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없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충분했다.
"가자."
진혁이 [천마검]을 다시 고쳐 잡으며 어둠을 찢고 나아갔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칠흑 같은 마기가 티타늄 타워의 지하 공기를 집어삼킬 듯 거세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지하 통로의 공기가 시커먼 마기(魔氣)로 완전히 짓눌렸다.
바론이 쓰러진 자리에서 피어오른 잔류 에너지까지 남김없이 흡수한 강진혁의 단전은 이제 터져 나갈 듯 팽창해 있었다.
9,920 MW.
인간의 육신이 담아낼 수 있는 한계의 임계점을 아득히 넘어선 수치였다. 만약 평범한 개조체나 일반적인 초인이었다면 이미 단전이 파열되고 전신의 혈관이 터져 사망했을 경지였다.
하지만 진혁은 달랐다.
[천마무상체]의 나노 회로와 세포 조직은 폭발적인 마기를 완벽하게 압축하여 근골과 혈맥 구석구석에 안착시켰다.
그의 흑안이 어둠 속에서 푸르스름한 광채를 발하며 전방을 응시했다.
"진혁 씨, 방금 그 녀석의 코어를 흡수하면서 티타늄 타워 내부의 방범 네트워크 주파수가 요동쳤어!"
윤아영이 품에서 꺼낸 홀로그램 단말기를 급하게 두드리며 소리쳤다.
화면 위로 복잡하게 얽힌 회로도와 함께 붉은색 경고등이 점멸하고 있었다.
"이동 경로가 노출됐다는 뜻인가."
"노출 정도가 아니야! 바론이 가지고 있던 마스터 암호코드가 진혁 씨의 흡원천공에 딸려 들어오면서, 타워 내부의 메인 방어 시스템이 완전히 리셋됐어. 지금 당장 전력 공급원인 제3 코어실의 자동 방위 포탑들이 일제히 활성화될 거야!"
윤아영의 경고가 채 끝나기도 전에, 진혁과 저항군이 서 있는 지하 통로의 천장과 벽면에서 묵직한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위이이잉— 컥, 컥!
벽면의 장갑판이 스르륵 밀려나며 양자 포탑과 대구경 개틀링 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반적인 경비 로봇과는 차원이 다른, 티타늄 그룹이 본사 방어를 위해 아껴둔 최종 보안 병기들이었다.
[Warning. 침입자 감지.]
[보안 레벨 0. 구역 방위 프로토콜을 개시합니다.]
치이익-!
포탑의 총구가 일제히 진혁을 향해 회전했다.
그 순간, 송수연의 얼굴에 짙은 경조가 스쳤다.
"저건……! 티타늄 그룹의 군수 공장에서 만든 5세대 대(對)초인용 플라즈마 포탑이야! 저런 게 한두 대가 아닌데……!"
초인이라 할지라도 저 포탑들이 일제히 불을 뿜어내면 그 원자 분해 광선에 순식간에 잿더미가 될 터였다.
하지만 진혁은 두려움 대신 입꼬리를 미소처럼 말아 올렸다.
"기다렸군."
"뭐?"
진혁이 차갑게 뇌까리며 발을 구르다.
[마광신보 - 극(極)]
슈우우웅-!
잔상조차 남지 않는 도약.
진혁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치는 것과 동시에, 수십 대의 플라즈마 포탑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콰아아아앙!
시뻘건 플라즈마 에너지광이 지하 통로를 하얗게 백색으로 물들였다.
사방이 폭발의 열기와 파편으로 뒤덮였다.
송수연과 저항군 대원들은 본능적으로 눈을 감으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진혁 씨-!"
하지만 폭연이 걷히고 드러난 광경은 그야말로 경악 그 자체였다.
플라즈마 광선이 집중되었던 한가운데.
진혁은 단 하나의 상처도 입지 않은 채, [천마무상체]의 은빛 회로를 온몸에 휘감은 채 허공에 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포탑이 뿜어낸 플라즈마 에너지를 자신의 [천마검]으로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다.
"불, 불순물을 걸러내고 에너지를 역류시킨다고……?!"
윤아영이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진혁은 포탑들이 뿜어내는 고열의 플라즈마 에너지를 [만법귀마]의 연산으로 분석하고, [흡원천공]의 원리로 그 출력 주파수를 자신의 단전 속으로 그대로 빨아들이고 있었다.
공격당하면 당할수록 그의 마기 출력은 오히려 더욱 기하급수적으로 폭등했다.
[현재 단전 마기 출력: 9,920 MW → 10,050 MW 돌파.]
10,000 MW의 벽이 마침내 깨졌다.
진혁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시커먼 폭풍이 되어 지하 통로의 천장을 박살 냈다.
콰아아앙!
"끝났나."
진혁의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그가 손에 쥔 [천마검]을 허공을 향해 가볍게 휘둘렀다.
[마검기·개(開)]
쉬익-!
단 한 번의 검휘.
하지만 그것은 검의 물리적 궤적이 아니었다.
10,050 MW의 압도적인 마기가 플라즈마의 파장과 결합하여 전방의 공간을 완전히 반으로 쪼개버렸다.
챙그랑-! 콰르릉-!
벽면에 설치되어 있던 수십 대의 대구경 포탑들이 단 한 번의 참격에 일제히 두 쪽으로 갈라지며 폭발했다.
사방으로 튀는 고철 덩어리와 불티 사이로, 티타늄 타워의 진짜 심장부로 통하는 거대한 철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철문 위엔 선명하게 새겨진 붉은색 글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HEADQUARTERS - LEVEL 500]
[HEAVENLY FOUNDATION MAIN SERVER]
"저기야……."
송수연이 숨을 몰아쉬며 철문을 바라보았다.
저 문 너머에 수백만 하층민의 생체 코어를 볼모로 잡은 메인 서버와, 이 모든 음모를 꾸민 만악의 근원인 진무극이 존재하고 있었다.
진혁은 말없이 철문 앞에 멈춰 섰다.
그의 손에 쥐인 [천마검]의 검신을 따라 옅은 은빛 회로가 흐르고 있었다.
시스템의 안내창 따윈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심장 고동 소리와, 단전에서 들끓는 순수한 마기의 흐름만이 그의 오감을 지배하고 있었다.
뚜우우- 뚜우우-!
타워 전체에 울려 퍼지는 경고음이 더욱 요란해졌다.
하지만 진혁의 표정에는 추호의 흔들림도 없었다.
"열어라."
진혁이 나지막이 읊조리며 검을 들어 올렸다.
그의 등 뒤로, 마침내 신서울의 밤을 뒤바꿀 마지막 전쟁의 서막이 완전히 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