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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257화목차

제257화 이질적 융합의 균열

시공이 뒤틀린 티타늄 타워 120층 상공.

사방으로 흩날리는 암흑물질의 잔해와 짓이겨진 철골 구조물 사이로, 얼어붙은 대기가 매섭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진무극의 가슴을 관통했던 칠흑빛 검강이 스러진 자리에 차가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것은 안도감의 침묵이 아니었다.

두 ells 위, 찢어진 차원의 균열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안광들은 거대한 압박감으로 신서울 전체를 짓누르고 있었다. 우주적 포식자들의 본대 함선 군단이 강림하는 전조. 그 흉악한 사념의 파보가 대기권을 가르고 밀려오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강진혁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의 흑안(黑眼)이 향한 곳은 찢어진 하늘이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 그를 향해 만(萬) 메가와트의 출력을 쏟아부었던, 그러나 이제는 형체도 없이 붕괴해 가는 진무극의 잔해였다.

“…….”

진혁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시스템의 보조 HUD가 완전히 꺼진 지 오래였다. 인공지능 '설화'의 기계적인 음성도, 연산 장치의 계산식도 그의 시야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만물의 결을 직관으로 꿰뚫는 절대의 영역.

[마신경(魔神境) - 진천(眞天)]의 경지에 선 진혁의 눈에는, 이 세상의 모든 에너지와 기혈의 흐름이 고스란히 비쳐 보였다.

그리고 그 눈에, 방금 전 진무극이 구사했던 압도적인 출력 공세의 근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스으으…….

진무극의 소멸한 육체 파편에서 아직 다 흩어지지 않은 잔류 에너지가 얽혀 있었다.

그것은 천마의 고대 유전자 코드, 5세대 암흑물질 코어, 그리고 티타늄 그룹이 수십 년간 갈고닦은 최첨단 군사 나노머신의 혼합체였다.

현대 과학과 고대 마공의 정수가 집약된 궁극의 융합체.

남들이 보기에는 완벽한 불멸의 신체이자, 도달할 수 없는 초인의 경지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진혁의 직관은 그 이면에 숨겨진 치명적인 결함을 정확하게 포착해 냈다.

‘이질적인 융합.’

진혁의 입술이 낮게 짓씹혔다.

진무극은 거대 자본과 오만함으로 그 모든 것을 억지로 쑤셔 박았다.

자연스러운 기혈의 순환도, 심법의 조화도 없었다. 오직 출력(MW)이라는 숫자를 높이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의지로 모든 것을 지배하겠다는 뒤틀린 집념 하나만으로 강제 동기화시킨 파국적 산물에 불과했다.

진무극의 정신력이 절대적이었을 때는 그 불협화음이 억눌려 있었다.

하지만 진혁의 [신천마신공 제13식: 파천검강]이 그 코어의 중심을 정확히 꿰뚫었을 때, 그 내부에 잠재되어 있던 균열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다.

콰아아앙-

잔해 속에서 미처 소멸하지 않은 암흑물질의 파편이 불규칙하게 튀었다.

진무극이 죽었음에도 그가 남긴 에너지 장판의 잔재는 여전히 불안정한 공진을 일으키며 주변 공간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커헉…….”

아래쪽, 타워의 무너진 난간 부근에서 진세린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진혁이 펼쳐 둔 마기 장막이 없었더라면 진작에 압사당했을 잔해 속에서, 그녀는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벌벌 떨고 있었다.

진혁은 잠시 시선을 내려 진세린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녀의 단전 부근에서 미세하게 요동치던 잔류 마기가 진혁의 기운과 반응하고 있었다. 진무극에게 버림받고 코어가 적출당한 채 죽어가던 그녀의 생명력은, 진혁이 뿜어내는 마기의 여음 속에서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

상공의 차원 균열은 이미 붉은빛의 거대한 소용돌이로 변해 있었다.

포식자들의 선봉 함선이 진입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터였다.

그 순간이었다.

치익- 팟!

진무극의 잔해 속에서 미처 꺼지지 않은 5세대 암흑물질 코어의 비상 프로토콜이 작동했다.

숙주를 잃은 코어가 폭주하며 주변 공간 에너지를 무차별적으로 빨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 [Warning: 불안정한 고에너지 반응 감지]

- [출력 예상치: 15,000 MW…… 폭발 반경 3 킬로미터]

두뇌 속에서 울리던 시스템의 경고음은 이미 꺼진 지 오래였지만, 진혁의 본능은 그보다 더 선명하게 위험을 경고하고 있었다. 저 코어가 이대로 자폭한다면, 하층에 숨어 있는 저항군들과 윤아영, 그리고 신서울의 잔존 구역 전체가 순식간에 증발할 터였다.

“어리석군.”

진혁이 낮게 뇌까렸다.

진무극은 끝까지 기계와 자본의 힘에 의존하다가 자멸했다. 코어의 출력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것을 통제해야 할 인간의 정신은 오히려 그 기계적 연산에 예속되는 모순.

그것이 바로 티타늄 그룹이 만들어낸 '진짜 결함'이었다.

진혁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발밑에서 짓이겨진 철골이 미세하게 신음했다.

스으으읍.

진혁이 깊게 숨을 들이켰다.

그의 단전, 심장의 기혈이 태동하며 온몸을 감싸고 있던 나노머신과 마기가 거대하게 역류했다.

손을 뻗을 필요도 없었다.

진혁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칠흑빛의 마기가 허공을 향해 거미줄처럼 퍼져 나갔다.

[흡원천공(吸元天功).]

과거, 시스템의 연산 보조를 받으며 간신히 적의 에너지를 쥐어짜듯 흡수하던 시절과는 차원이 달랐다.

지금의 진혁에게 흡원천공은 기술이 아니었다. 만물의 결을 거스르지 않고, 그 흐름 그 자체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는 절대의 권능이었다.

콰아아아궁-

폭주하던 5세대 암흑물질 코어의 에너지가 진혁의 손바닥을 향해 쏠렸다.

만 메가와트에 달하는 초고압 에너지가 혈관을 타고 밀려들었다.

보통의 인간이었다면 단 1초도 버티지 못하고 전신이 찢겨 나갔을 터였다. 진무극조차 이 에너지를 다루기 위해 수십 년간 유전자 조작과 기계 개조를 거듭해야만 했다.

하지만 진혁의 표정은 평온했다.

그의 안에는 기계가 준 오만한 출력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은 무도의 경지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질적인 융합은 억지로 누르는 게 아니다.’

진혁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

‘흐름을 읽고, 상극을 이해하며, 마침내 하나의 진리로 융합하는 것.’

그가 흡수한 암흑물질의 에너지는 거칠게 날뛰며 진혁의 경락을 파괴하려 들었다. 하지만 진혁은 그 에너지를 억지로 짓누르는 대신, [만법귀마(萬法歸魔)]의 감각으로 그 에너지의 공진 주파수를 정확히 파악해 냈다.

기계의 파동과 고대 마공의 파기(破氣) 성질이 부딪치는 지점.

그 미세한 균열을 진혁의 내력이 부드럽게 파고들었다.

지익- 지지지직-

진혁의 팔뚝을 따라 은빛 회로 선과 칠흑빛 마기가 뒤엉켰다.

피부 표면이 미세하게 갈라졌지만, 곧바로 [신천마신공 제11식: 천마무상체]의 권능이 작동하며 상처를 순식간에 메워 나갔다.

에너지는 폭주하지 않았다.

폭주하던 5세대 암흑물질은 진혁의 단전 안에서 완벽하게 길들여진 채, 거대한 흑색의 마강(魔罡)으로 재편성되기 시작했다.

- […….]

세상은 조용했다.

진혁의 손바닥 위에서 태양처럼 이글거리던 암흑물질의 구체가 완전히 압축되어 칠흑빛의 고요한 검(劍) 형태로 응축되었다.

그것은 진무극이 평생을 바쳐도 도달하지 못한 진정한 의미의 '완벽한 융합'이었다.

진혁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더 이상 부서진 타워의 잔해가 아니었다.

신서울 상공을 완전히 뒤덮은, 핏빛으로 물든 차원의 균열.

그 거대한 어둠의 문 너머에서 지구를 집어삼키기 위해 기어 나오는 포식자들의 수천, 수만 개의 붉은 눈동자가 일제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대한 함선들의 저주스러운 진동이 대기를 흔들었다.

지구의 운명을 가를 차원 전쟁의 서막이 비로소 완전히 열린 것이다.

진혁은 오른손에 쥔 칠흑빛 검을 가볍게 쥐었다.

손끝에서 흘러넘치는 마기는 신서울의 밤하늘 전체를 집어삼킬 듯 거대하게 뻗어나가고 있었다.

“기다렸다는 건가.”

진혁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올라갔다.

시스템도, 자본도, 신도 없는 세상.

오직 검과 힘만이 진실인 이 절망의 끝에서, 진정한 천마가 마주할 첫 번째 사냥감이었다.

쾅-

진혁의 발밑이 폭발하듯 부서졌다.

그는 망설임 없이 찢겨 나간 하늘을 향해 몸을 날렸다.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며 쏘아아아아아-!

흑색의 섬광이 차원의 문을 향해 치솟았다.

차원의 벽이 비명을 지르며 찢어졌다.

신서울 상공, 핏빛 안개가 소용돌이치는 허공 한복판으로 거대한 함선 군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인간의 상식을 아득히 초월한 기하학적 형태의 철갑 요새들이었다. 날카로운 첨탑 형태의 함체 표면에는 쉴 새 없이 푸른 번개가 스파크를 튀기고 있었고, 그 거대한 선체 하단부마다 수만 개의 붉은 안광이 일제히 지상을 향해 주시하고 있었다.

- 우우우우우웅……!

대기권 전체가 함선들의 저주스러운 중력 주파수에 짓눌려 신음했다.

지하 슬럼가와 상층 마천루의 잔해 사이에 웅크려 있던 시민들과 살아남은 저항군들은 그 압도적인 광경 앞에 말문이 막힌 채 주저앉았다.

하늘이 무너지고 있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세상의 법칙 자체가 다른 차원의 포식자들에 의해 유린당하고 있었다.

그 절망적인 그림자 속에서 오직 단 한 사람만이 칠흑빛 마강을 두른 채 허공을 박차고 올랐다.

콰아아아앙-

진혁의 발밑에서 공간이 폭발했다.

초광속의 보법 [마광신보(魔光神步)]가 대기와의 마찰을 무시한 채 수직으로 솟구쳤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시공간의 궤적이 은빛 회오리로 남았다가 이내 산산조각 나며 흩어졌다.

슈우우웅-!

최선두에 위치한 거대 포식자 함선에서 경고음 대신 일제히 집속 플라즈마 포격이 쏟아졌다.

신서울 전체를 백은색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무자비한 에너지 탄막이었다. 대기 자체가 끓어오르며 진혁의 진로를 완전히 봉쇄했다.

하지만 진혁은 눈을 깜빡이지도 않았다.

“방해다.”

낮게 울린 목소리가 공간의 진동을 찢었다.

진혁의 오른손에 쥔 칠흑빛 검강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이내 만물의 결을 거스르는 절대의 궤적을 그려냈다.

[신천마신공 제12식: 만상귀일(萬象歸一).]

사방에서 쏟아지는 수만 갈래 플라즈마 포격이 진혁의 주변 십여 미터 반경에 도달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궤도를 잃고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진혁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온 거대한 흡인력이 그 모든 에너지를 한 점으로 압축한 것이다.

적의 공격을 피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모조리 흡수해 자신의 연료로 치환하는 [흡원천공]의 극의.

쿠구구구구궁-

진혁의 검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강의 부피가 순식간에 세 배 이상 부풀어 올랐다.

티타늄 그룹의 5세대 암흑물질 코어와 포식자 함선의 고출력 플라즈마가 완벽하게 융합되며,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파멸적인 검강이 완성되었다.

함선의 사령부인 듯, 전방의 거대한 붉은 눈동자 안광이 격렬하게 깜빡였다.

그것은 기계적인 오류가 아니었다.

자신들의 압도적인 무력이 한 인간의 손에서 역류하여 되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공포'였다.

“크고 요란하기만 하구나.”

진혁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비틀렸다.

기계의 연산 능력이나 자본의 힘으로 쌓아 올린 가짜 무력은 결국 스스로의 무게에 짓눌려 붕괴할 뿐이다.

진정한 힘은 역경 속에서 스스로 통찰하고 융합하여 완성한 자신만의 진리에서 나오는 법.

진혁은 허공에 멈춰 서서 거대한 함선 군단을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신천마신공 제13식: 파천검강(破天劍罡).]

콰아아아아아아궁-!

지상의 모든 이들이 눈을 감을 수밖에 없는 눈부신 흑색의 섬광이 폭발했다.

그것은 단순히 검을 휘두른 것이 아니었다. 진혁이 품은 마신경의 직관이 차원의 벽과 적들의 에너지 코어 '공진 주파수'를 정확히 타격한 결과였다.

빛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하늘을 가득 메우던 최선두의 거대 함선이 멍하니 멈춰 섰다.

선체 중앙부를 관통한 칠흑빛 검강은 그 안의 암흑물질 엔진을 순식간에 분자 단위로 분해해 버렸다.

잠시 후,

콰지지직…… 펑-!

연쇄적인 폭발이 차원의 균열 너머까지 이어졌다.

우주적 포식자의 함선이 대기권 위에서 꽃가루처럼 화려하게 산산조각 나며 흩어졌다.

타워의 잔해 아래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윤아영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 저게 인간이야……?”

송수연 역시 넋을 놓은 채 검은 섬광을 바라보았다.

진세린은 자신의 단전에서 요동치는 마기의 여음을 부여잡고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깨달았다. 진무극이 베어 넘긴 것은 단순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시대의 모든 모순을 짓밟고 일어선 진정한 '신천마(新天魔)'의 탄생이었다.

슈우우우욱-

첫 번째 함선이 추락하는 폭발음 속에서 진혁의 시선은 더 깊은 차원의 틈새를 향했다.

그곳에는 여전히 수백 척의 함선과 그보다 더 거대한 사념의 주인이 지상을 향해 음산한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진혁은 피 묻은 검자루를 더욱 단단히 쥐었다.

온몸의 회로 선이 붉고 검은 마기로 타오르며 웅장한 진동을 토해냈다.

시스템의 지배도, 거대 자본의 굴레도 모두 부서졌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오너라.”

진혁의 목소리가 찢겨 나간 하늘 위로 낮고 묵직하게 울려 퍼졌다.

“네놈들이 어느 별에서 기어 나왔든, 이 땅의 주인은 내가 정한다.”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며 신천마의 두 번째 검이 다시 한번 허공을 향해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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