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5화 시스템 없는 궤적
콰아아아앙-!
신서울의 밤하늘을 갈라놓은 거대한 섬광이 티타늄 타워 120층의 돔 외벽을 가루로 만들었다. 사방으로 흩날리는 티타늄 합금 파편들과 핏빛 마기(魔氣)의 여파 속에서, 두 개의 거대한 기운이 허공을 짓밟으며 맞부딪쳤다.
"크하하하! 기계의 연산을 버렸다고? 제멋대로 뛰는 심장 하나에 의존하는 원시적인 육신이 내 전술 AI의 초고속 데이터 맵을 따라올 수 있을 것 같나, 실험체 07호!"
진무극의 입가에서 비틀린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의 등 뒤로 전개된 여섯 개의 암흑물질 날개가 미친 듯이 진동하며 사방으로 척력장을 뿜어냈다.
그의 몸을 감싼 [오리진] 수트는 단순한 방어구가 아니었다. 티타늄 그룹이 수십 년간 축적해 온 전술 인공지능의 정수. 상대의 근육 수축 속도, 혈류의 흐름, 심장박동의 주파수까지 밀리초 단위로 계산하여 다음 타격 궤적을 0.1초 앞서 예측하는 괴물 같은 시스템이었다.
휘리릭- 슈우우웅!
진무극의 주먹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공간이 일그러졌다. 32,000 MW에 달하는 암흑물질의 출력이 전술 AI의 초정밀 계산과 맞물려 강진혁의 사각지대를 정확히 후벼 파고들었다. 방어벽도, 나노마갑도 소용없었다. AI가 예측한 궤적 앞에 강진혁의 움직임은 완벽하게 봉쇄당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끄럽군."
강진혁의 흑안(黑眼)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의 시야에는 더 이상 푸른빛의 HUD 인터페이스나 시스템의 경고 메시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인공지능이 계산하는 확률의 세계가 아니라, 만물의 결이 날것 그대로 드러나는 절대의 영안(靈眼).
[마신경(魔神境) - 진천(眞天)].
시스템이 꺼진 그 자리에는 순수한 무도(武道)의 직관만이 남았다.
스으으…….
진무극의 주먹이 진혁의 관자놀이를 노리고 파고들었다. 전술 AI가 계산한 100% 명중 궤적. 인간의 반사 신경으로는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초음속의 일격이었다.
그러나 진혁은 몸을 뒤로 꺾지 않았다. 대신, 그는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내력을 발목의 혈자리로 순식간에 낙하(落下)시켰다.
투두둑, 콰직!
인공근육과 뼈가 비틀리는 고통이 전신을 엄습했지만, 진혁의 표정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것은 기계가 계산한 최적의 회피 경로가 아니었다. 구무림의 마지막 노고수 독고운이 남긴 잔향과, 천마 프로토콜의 데이터 밑바닥에 파묻혀 있던 고대 마교의 본질적인 보법.
[마광신보(魔光神步)] - 개(改).
슈우우욱-
진무극의 주먹이 진혁의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초정밀의 엇갈림. 전술 AI의 예측 궤적 안에서, 진혁은 오직 '기(氣)의 흐름'만을 읽어내어 알고리즘의 사각지대이자 허를 찌르는 단 1인치의 공간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뭐……?!"
진무극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스쳤다. AI는 분명 이 궤적을 예측하지 못했다. 아니, 계산식에 존재하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기계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 스스로 혈도를 비틀어 만들어낸 '비합리적 궤적'이었으니까.
"네놈의 시스템은 과거의 데이터에 갇혀 있다, 진무극."
진혁의 입술이 찢어지며 서늘한 검광이 피어올랐다. 그의 오른손에 엉겨 붙은 검붉은 마기가 소용돌이치며 칠흑빛의 검강(劍剛)으로 응축되었다. 고주파 플라즈마와 나노머신의 물리적 강도가 마기의 압축력과 결합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흉기로 변모하는 순간이었다.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 제10식 - 압도(壓倒)].
콰아아아앙-!
진혁의 손바닥이 진무극의 어깨를 그대로 찍어 내렸다. 단순한 물리적 타격이 아니었다. 흡원천공(吸元天功)의 원리를 역으로 응용하여, 상대의 체내에 흐르는 암흑물질의 공진 주파수를 강제로 흐트러뜨리는 파괴적인 마기 중력장이 진무극의 전신을 덮쳤다.
"크윽……!"
진무극의 몸이 마구간에 처박히듯 아래로 가라앉았다. 오리진 수트의 방어 필드가 요란한 경고음을 울리며 사방으로 스파크를 튀겼다. 하지만 진무극은 노련했다. 그는 밀려나는 반동을 이용해 즉시 몸을 회전시키며 반대쪽 팔로 거대한 암흑물질의 검기를 휘둘렀다.
콰콰콰쾅!
타워 120층의 바닥이 통째로 박살 나며 수백 톤의 콘크리트 잔해가 허공으로 흩날렸다. 두 마인의 싸움은 더 이상 인간의 경기가 아니었다. 신서울 상공 수백 미터의 허공을 발판 삼아, 끊임없이 서로의 혈도를 노리는 잔혹한 사투가 이어졌다.
챙강-! 슈우우욱! 콰아아앙!
진무극의 주먹이 빛의 속도로 난무했다. 전술 AI는 진혁이 회피할 때마다 새로운 연산값을 쏟아내며 그를 압박하려 했다. 하지만 진혁은 이미 시스템의 속도를 초월해 있었다. AI가 다음 수를 계산하기 전에, 진혁은 바람의 밀도와 대기의 진동을 읽고 먼저 움직였다.
기계가 계산으로 세상을 지배하려 한다면, 진혁은 그 세상을 몸으로 느끼고 지배했다. 그것이 바로 시스템을 벗어난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마신경]의 진면모였다.
"이 버러지 같은 것이……!"
진무극의 얼굴이 분노와 광기로 일그러졌다. 자신이 만든 완벽한 시스템, 전 세계의 자본과 기술을 갈아 넣어 만든 이 '오리진' 수트가 한낱 실험체 07호의 원시적인 무공에 밀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이이잉-!
진무극의 가슴팍에 박힌 5세대 암흑물질 프라임 코어가 견딜 수 없는 고주파음을 내며 폭주하기 시작했다. 수트 전체의 리미터가 강제로 해제되면서, 그의 전투력 출력이 35,000 MW를 돌파했다.
콰아아아앙!
사방의 공간이 암흑빛으로 물들었다. 진무극의 등 뒤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와 암흑물질이 거대한 괴수의 형상을 이루며 진혁을 집어삼킬 듯이 포효했다.
"끝내주마, 진혁! 네놈의 그 건방진 육신을 내 것으로 만들어 영원히 소모해 주마!"
진무극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신서울 전체의 전력을 흡수하는 듯했다. 하늘을 뒤덮은 차원 균열 속의 붉은 눈동자들조차 이 거대한 에너지의 폭발에 반응해 꿈틀거릴 정도였다.
하지만 진혁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두 눈에 더욱 깊고 짙은 흑색 광채가 서렸다.
투두두둑-!
진혁의 전신 혈관이 터지며 검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지만, 그 즉시 [천마무상체]의 권능에 의해 나노머신과 마기가 그 상처를 완벽하게 메워버렸다. 세포가 파괴되고 재조합되는 고통 속에서, 진혁의 단전은 태양처럼 뜨겁게 요동쳤다.
'기계의 계산 따위는 필요 없다.'
진혁은 검을 고쳐 쥐었다. 대기 중에 떠 있는 수십만 개의 나노입자, 허공을 가르는 암흑물질의 잔해, 그리고 머리 위로 찢겨 나간 차원의 틈새까지. 세상의 모든 결이 진혁의 손끝 하나에 온전히 담겼다.
"네가 가진 건 자본과 기술로 훔친 껍데기뿐이다, 진무극."
진혁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올라갔다.
"진정한 무(武)란,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의 칼끝에서 완성되는 법이다."
슈우우웅-
진혁의 발밑에서 공간이 비명을 질렀다. [마광신보]의 극의. 빛보다 빠르게, 아니, 인공지능의 연산 속도를 비웃듯 진혁의 형상이 단 한 점으로 압축되었다.
눈이 멀 것 같은 섬광과 함께, 두 마인의 최종 충돌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세상의 모든 소음이 단 하나의 폭발음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진무극의 가슴 중심에서 뿜어져 나온 35,000 MW급 암흑물질의 폭풍과, 강진혁이 전신의 혈도를 압축해 뿜어낸 흑색 마강(魔剛)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공간이 비명을 지르며 찌그러졌고, 티타늄 타워 120층의 잔해들은 형태를 유지하지 못한 채 분자 단위로 흩날렸다.
"크아아아아!"
진무극이 핏발 선 눈을 부릅뜨며 괴성을 질렀다. 그의 등 뒤에 펼쳐진 여섯 장의 암흑물질 날개가 미친 듯이 회전하며 진혁을 압박해 들어왔다. 전술 AI의 연산 능력이 한계를 넘어 과부하를 일으키며 진무극의 시야 HUD를 붉은 경고등으로 물들였다.
[Warning! 프라임 코어 출력 한계 초과!]
[임계점 도달! 제어 시스템 손상률 89.4%!]
"웃기지 마라! 내게서 힘을 빼앗을 수는 없다! 나는 이 세상을 지배할 천마(天魔)다!"
진무극의 절규는 허공에서 흩어졌다. 기계의 논리와 자본으로 쌓아 올린 가짜 천마의 권위는, 순수한 수련과 고통으로 단련된 진혁의 무력 앞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진혁의 표정은 차가울 정도로 평온했다. 그의 눈동자에 비친 진무극의 모습은 거대한 기계 장치에 매달린 벌거벗은 광대일 뿐이었다.
"천마? 웃기는 소리."
진혁의 입술이 낮게 울렸다. 그는 후퇴하는 대신, 오히려 전신의 마기를 끌어모아 진무극의 폭풍 속으로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투두두둑, 콰아아직-!
살이 타들어가고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이 덮쳤지만, [천마무상체(天魔無相體)]의 권능은 그 즉시 파괴된 세포를 마기로 치환하며 진혁의 육체를 강철보다 단단하게 재조립했다. 고통은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혁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자, 무기를 더욱 날카롭게 가는 숫돌일 뿐이었다.
"받아라, 진무극."
진혁의 오른손에 쥐인 흑색 검강이 태양보다 밝고 어두운 빛을 동시에 뿜어냈다. 고주파 플라즈마의 쇄신 기술, 나노머신의 물리적 강도, 그리고 구무림의 노고수 독고운이 남긴 무도의 심법이 마침내 하나의 정점으로 융합되는 순간.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 제13식 - 파천검강(破天劍罡)].
취익- 우웅!
소리조차 먹어 치우는 절대의 검기가 진무극의 오리진 수트 정중앙을 강타했다. 35,000 MW의 암흑물질 방어 필드가 겨우 0.1초도 버티지 못하고 유리조각처럼 박살 났다.
"커헉……?!"
진무극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그의 가슴속, 생명의 근원이자 티타늄 그룹의 기술적 집약체인 5세대 암흑물질 프라임 코어가 진혁의 검강에 의해 정중앙이 관통당한 것이다.
지직, 지지직…….
수트 전체를 감싸던 푸른빛과 붉은빛의 스파크가 일제히 사그라들었다. 전술 AI의 목소리가 끊어진 마비된 스피커에서 기괴한 잡음만이 새어 나왔다.
[시스템…… 오프라인. 코어…… 파괴…….]
"이럴 수가…… 내가…… 내가 완벽한……!"
진무극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그의 몸을 지탱하던 암흑물질 날개가 힘없이 부서지며 흩어졌다. 기계의 힘에 의존해 불멸을 꿈꾸었던 늙은 독재자의 육신은, 이제 중력의 법칙에 따라 추락하는 일개 추한 인간에 불과했다.
진혁은 차가운 눈으로 그런 진무극을 내려다보았다. 자비를 베풀 생각 따위는 없었다. 애초에 이 세계에 그런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끝이다."
진혁의 검이 한 번 더 허공을 그었다.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 제17식 - 참단(斬斷)].
스으으으……. 툭.
진무극의 목이 몸통과 분리되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의 잘려 나간 단면에서 뿜어져 나온 암흑에너지는 사방으로 비산하며 티타늄 타워의 최상층을 완전히 지상에서 지워버렸다.
스스로 신이 되고자 했던 자의 최후는 허무한 잿더미에 불과했다. 진무극의 잔해는 거센 바람을 타고 신서울의 밤하늘 속으로 부서져 내렸다.
하늘을 뒤덮은 연기와 마기의 여파 속에서, 진혁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검을 내렸다. 온몸이 피투성이였지만, 그의 흑안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빛났다.
시스템의 도움 없이, 오직 자신의 의지와 무력만으로 거대 기업의 절대권력을 꺾어버린 순간이었다.
하지만…… 승리의 여운을 즐길 새도 없었다.
콰르릉- 쿠구구구궁!
진무극의 프라임 코어가 완전 소멸하면서 발생한 차원 여파가 상공의 균열을 더욱 넓혀놓았다. 아까 전부터 하늘의 틈새에서 번뜩이던 수만 개의 붉은 눈동자들. 그것이 단순한 환영이나 기상 이변이 아니라는 사실이 마침내 증명되었다.
슈우우우우-!
찢겨 나간 차원의 벽 너머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함의 함선 군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행체라기보다는 거대한 생명체의 뼈와 금속이 기괴하게 융합된 듯한, 우주적 포식자들의 본대가 지구의 대기권을 향해 마침내 강하를 시작한 것이다.
어둠으로 물든 신서울의 상공 전체가 그 거대한 그림자에 의해 완전히 덮였다.
아래쪽에서, 타워의 잔해를 붙잡고 간신히 숨을 몰아쉬던 윤아영과 송수연, 그리고 마기 장막 속에서 정신을 차린 진세린이 경악 어린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저게 뭐야……?!"
"우주에서…… 뭔가 내려오고 있어……!"
지상의 저항군과 시민들이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티타늄 그룹이라는 거대한 악을 무너뜨린 기쁨은 단 몇 초 만에 차원 너머에서 불어닥친 진짜 재앙의 공포 앞에 빛을 잃었다.
하지만 진혁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의 등 뒤로, 방금 전 진무극을 베어낸 검붉은 마기가 천 리를 뒤덮을 기세로 피어올랐다.
기계가 지배하던 시대도 끝났고, 이제는 자본과 기술의 시대마저 끝났다. 남은 것은 오직 힘과 힘의 충돌, 그리고 이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 증명하는 싸움뿐이었다.
진혁은 하늘을 향해 천천히 시선을 던졌다. 차원 침공군의 선두에 선 거대 함선들이 내뿜는 압도적인 억압감이 대기를 짓누르듯 다가왔다.
진혁이 차갑게 입꼬리를 올리며 검자루를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
"오냐. 기어들어 왔다면, 전부 썰어주마."
신서울의 상공, 찢어진 하늘 아래서 진정한 '신천마(新天魔)'의 마지막이자 가장 거대한 전쟁이 비로소 그 막을 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