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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254화목차

제254화 무상체(無相體)의 재편

티타늄 타워 백이십 층 상공은 이미 현세의 풍경이 아니었다.

갈기갈기 찢겨 나간 차원의 균열 너머, 핏빛으로 물든 칠흑의 허공에서 기괴한 형태의 암흑물질 덩어리들이 신서울의 마천루를 차갑게 굽어보고 있었다. 대기를 짓누르는 절대적인 중력 왜곡과 살갗을 태울 듯한 초고열의 잔해 속에서, 부서진 중심 기둥의 콘크리트 파편들은 지상으로 낙하하지 못한 채 허공을 부유하며 기괴한 궤도를 그렸다. 고도 수천 미터 상공의 매서운 칼바람조차 공간을 메운 농밀한 살기에 짓눌려 숨을 죽인 상태였다.

쿠구구구궁―!

무너져 내린 기둥의 중심, 시뻘겋게 달아오른 잿더미와 짓이겨진 H빔 철골 더미 한가운데에 강진혁이 처박혀 있었다.

"쿨럭……!"

진혁의 메마른 입술 사이로 검붉은 선혈이 왈칵 터져 나왔다.

피 섞인 숨을 헐떡이며 내쉴 때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덜컹거리는 불길한 이물감이 뼈저리게 전해졌다.

진세린과 타워 하층의 저항군들을 보호하기 위해, 진무극이 쏘아낸 암흑 플라즈마 포격을 정면에서 온몸으로 받아낸 대가는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우측 늑골 여섯 개가 흔적도 없이 바스러졌고, 부러진 골편들은 여지없이 우폐와 간벽을 사정없이 후벼 파며 파고들었다. 인공근육 섬유는 팔십 퍼센트 이상이 고열에 타서 흉측하게 끊어졌으며, 척추를 따라 흐르던 티타늄 나노 전도 케이블마저 통제 불능의 과전류로 인해 핏줄 속에서 녹아붙어 있었다.

일반적인 생체 개조 초인이라면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치명상.

생체 코어의 출력이 영으로 곤두박질치고 뇌파가 정지되며 즉각적인 사망 판정이 내려졌어야 할 궤멸적 손상이었다.

치지지직, 팟!

머릿속 시야 한구석, 이미 오래전에 꺼져 버린 시스템 HUD의 잔상 대신 순수한 의식의 영안(靈眼)만이 어둠 속에서 푸르게 번뜩였다.

인공지능의 차가운 기계음 따위는 진작에 들려오지 않았다.

위험을 알리는 붉은 경고창도, 수치화된 신체 손상률도 시야에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진혁은 그 어느 때보다 명료하고 투명하게 제 육체의 모든 상태를 손바닥 보듯 꿰뚫어 보고 있었다. 만물의 결을 읽고 섭리를 통찰하는 마신경(魔神境)의 감각이 제 몸속 기혈과 세포, 나아가 혈관을 타고 미약하게 잔류하는 수조 개의 나노머신 하나하나를 낱낱이 비추고 있었다.

스스스스―

허공에서 여섯 개의 암흑물질 날개를 거대하게 펼친 채, 진무극이 오만한 자태로 천천히 하강했다.

고대 천마의 심장 세포와 오 세대 암흑물질 코어를 결합한 그의 전신 생체 수트 '오리진'에서는 삼만 메가와트에 달하는 압도적인 마도(魔道) 에너지가 불길하게 맥동하고 있었다. 주변의 빛과 열을 모조리 집어삼키는 그 흉포한 위압감은 하층 슬럼가 전체를 일격에 지워버리기에 족했다.

진무극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비틀려 올라갔다.

"가소롭구나, 칠 호."

그의 오만한 목소리가 찢겨 나간 대기의 음파를 타고 사방으로 진동했다.

"벌레만도 못한 계집 하나를 살리겠다고 그 일격을 몸으로 받아내다니. 본좌가 너를 지나치게 고평가했던 모양이다. 감정에 휘둘려 목숨을 내던지는 짐승 따위는 결코 천마가 될 수 없는 법이거늘."

저 멀리, 진혁이 미리 쳐둔 흑색 마기 장막 속에서 창백한 안색으로 헐떡이던 진세린이 파들거리는 눈으로 진혁을 응시했다.

자신의 심장 생체 코어를 스스로 적출하고 오직 진혁이 남겨준 잔류 마기에 의지해 연명하던 그녀는, 진혁이 자신을 지키려다 온몸이 망가진 것을 목도하자 피눈물을 흘리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진…… 진혁 씨…… 도망쳐요……! 제발 날 두고……!"

진세린의 찢어지는 절규는 진무극의 거만한 비웃음에 맥없이 묻혀버렸다.

"도망? 어디로 도망친단 말이냐. 이 신서울의 하늘도, 땅도 이미 나의 손아귀에 있거늘. 칠 호, 네놈의 뇌와 단전은 여전히 가치 있는 실험체다. 내 오리진 수트의 코어 유기체로 흡수하여 영원토록 나의 양분으로 삼아주마."

진무극의 손끝에서 칠흑 같은 암흑 플라즈마 구체가 웅웅거리며 무서운 속도로 압축되기 시작했다.

단번에 진혁의 숨통을 끊고 뇌수를 온전히 적출해 내겠다는 노골적인 살의였다.

하지만 무너진 잿더미 속에 파묻힌 진혁의 눈빛에는 그 어떤 공포도, 일말의 절망도 서려 있지 않았다.

오히려 깊이를 알 수 없는 칠흑의 눈동자 속에서 기이할 정도로 서늘하고 투명한 안광이 피어올랐다.

'기계는 부서지면 고철이 되지만.'

진혁은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피를 삼키며 단전의 중심을 관조했다.

'무(武)는 한계에 부딪혔을 때 비로소 벽을 깨부수는 법이다.'

티타늄 그룹이 설계했던 '천마 프로토콜'은 본질적으로 기계 공학적 최적화에 지나지 않았다.

인공지능이 계산한 경로를 맹목적으로 따르고, 정해진 수치와 알고리즘대로 나노머신을 배열하는 것. 그것은 진정한 천마의 길이 아니었다.

거대 자본과 기술이 빚어낸 정밀한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진혁은 그 거짓된 껍데기를 이미 시스템을 찢어 발기며 넘어섰다.

그리고 지금, 죽음의 문턱에 내몰린 극한의 순간에서 그는 한 단계 더 나아간 무도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다.

나노머신은 육체를 갉아먹는 이물질이 아니다.

티타늄 합금으로 주조해 낸 미세 기계 장치 역시, 결국 인간의 의지가 불어넣어지고 기(氣)가 깃들 수 있는 삼라만상 속 물질의 한 형태일 뿐이다.

'분석(Analysis)은 끝났다.'

진무극의 파괴적인 암흑 플라즈마가 제 육신을 짓이기고 지나간 흔적.

그 파괴적인 에너지의 맥동과 왜곡된 시공간의 굴절률을, 진혁의 뇌는 이미 찰나의 순간에 모조리 해체하여 받아들였다.

'이해(Understanding)했다.'

단순히 단단하게 굳힌 기계적 결합만으로는 저 왜곡된 외력(外力)을 결코 완벽히 상쇄할 수 없다.

금속이 단단해질수록, 그 한계를 넘어서는 거대한 충격 앞에서는 더 처참하게 부러지는 법이다.

그렇다면 단단함을 버려야 한다. 고정된 형태라는 굴레 자체를 부숴버려야 한다.

'수련(Training)과 융합(Fusion).'

단전 깊은 곳에서 침묵하던 본원의 마기가 마침내 거대한 용틀임을 시작했다.

진혁은 파열된 혈관 속에 잔류하던 수조 개의 군용 나노머신들을 자신의 기혈 운행로 속에 남김없이 내던졌다. 나노머신에 끌려다니는 것도, 기계적 명령으로 그것을 조종하는 것도 아니었다.

마기와 피, 그리고 초미세 합금 입자들이 온전히 녹아들어 하나의 거대한 생명수가 되도록 거침없이 강제 운기했다.

'그리고 창조(Creation).'

우지직! 콰드득!

진혁의 흉부 중심에서 둔탁하고도 거대한 고동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단순한 심장의 박동이 아니었다.

부러진 늑골과 파열된 내장 기관의 틈바구니 사이로 칠흑빛 마기와 은백색의 나노 분진이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뿜어져 나왔다.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 제이능]

[천마무상체(天魔無相體) - 전면 재편(全面再編)]

콰아아아아앙―!

진혁의 신형을 짓누르고 있던 수백 톤의 콘크리트 잔해와 엿가락처럼 휜 철골 더미가 일제히 허공으로 치솟았다.

중력의 법칙을 비웃듯 거대한 암석들이 허공에서 고운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폭심지의 중심에서, 진혁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무엇이냐?"

진무극의 가늘어진 눈매 사이로 당혹감이 스쳤다.

오리진 수트의 바이저 너머로 통제 불능의 데이터 스트리밍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TARGET: 강진혁 (실험체 칠 호)]

[생체 신호 측정 불가…… 연산 모듈 치명적 오류 발생!]

[세포 단위 나노-마기 동기화율: 100% 도달]

[육체 구성 원소: 탄소 및 티타늄 나노 입자의 초유체화 현상 감지]

[경고: 물리적 타격 지점 상실. 골격 및 장기 구조가 비가역적 초월 형태로 재구축 중!]

"오류라고? 백 퍼센트 동기화라니, 그딴 수치는 이론상으로도 존재할 수 없다!"

진무극이 경악을 금치 못하는 사이, 진혁의 육체 내부에서는 신화와도 같은 격변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두둑, 콰득!

폐를 찌르고 있던 부러진 늑골들이 마기의 강력한 인력에 이끌려 제자리로 맞물렸다.

그러나 그것은 부러진 뼈가 단순히 붙는 수준의 생물학적 재생이 아니었다.

피와 완전히 일체화된 나노머신들이 부서진 뼛조각 사이사이를 초고밀도 티타늄 탄소 결합체로 메워나갔다.

고대 마공의 금강불괴(金剛不壞) 심법이 현대 나노 공학의 분자 재배열과 완전히 융합된 순간이었다.

재구축된 골격은 통상적인 인간의 뼈보다 수십 배 이상 단단하면서도, 충격을 받는 순간 유기적으로 휘어지며 외력을 사방으로 분산시키는 완벽한 형상기억합금의 특성을 획득했다.

치이익―!

파열되었던 내장 기관들은 흑색 마기의 가압을 받아 즉각적으로 지혈되었다.

찢겨진 미세혈관들은 은빛 나노 입자들이 그물망처럼 얽히며 흔적도 없이 봉합되었고, 끊어졌던 인공근육 섬유들은 마기를 머금은 고분자 생체 섬유로 한 올 한 올 새롭게 엮였다.

그것은 단순한 치유(Healing)가 아니었다.

'재편(Restructuring).'

형태가 고정되어 있기에 부서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공격을 자연스럽게 흘려내고, 모든 물리적 타격을 집어삼켜 버리는 무상(無相)의 육체로 거듭나면 그만이다.

진혁의 피부 표면을 흉측하게 뒤덮고 있던 화상과 자상이 거짓말처럼 매끄럽게 아물어 들었다.

피하 조직 전체가 마치 살아 숨 쉬는 액체 금속처럼 미세하게 파동을 치고 있었다.

어떤 둔탁한 타격이나 날카로운 참격이 들이닥쳐도, 그 충격을 전신의 파동으로 분산시켜 단전의 마기로 환원하는 절대의 완충 구조가 마침내 완성된 것이다.

후우우우―

진혁이 천천히 길고 서늘한 숨을 토해냈다.

입술을 타고 흐르던 피는 이미 흔적조차 없이 말라붙어 있었고, 그가 내쉰 호흡은 대기 중의 잔류 전파와 플라즈마 파편들을 하얗게 얼려버릴 듯 시퍼런 마기를 머금고 있었다.

"고작…… 그 정도냐, 진무극."

진혁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칠흑 같은 흑안 속에서 은은하게 타오르는 푸른 귀화(鬼火).

그 눈빛을 똑바로 마주한 순간, 진무극은 등골을 타고 척수까지 뻗치는 기괴한 한기를 느꼈다.

자신은 삼만 메가와트의 출력과 천마의 유골 세포를 이식한 궁극의 생명체이거늘, 어째서 저 만신창이가 되었던 폐기물에게서 이런 압도적인 공포를 느끼는가.

"네놈…… 내 플라즈마 직격을 온몸으로 맞고도 어떻게 그 자리에서 멀쩡히 일어설 수 있단 말이냐!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비정상적인 세포 분열은 필연적으로 뇌사나 신체 붕괴를 유발할 터인데!"

진무극의 표독스러운 고함에 진혁은 낮게 코웃음을 쳤다.

"육체의 한계? 그것은 네놈이 만든 옹졸한 기계 시스템 안에서의 한계일 뿐이다."

진혁이 허공을 밟듯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쿠웅―!

그가 발을 디딘 백이십 층 바닥 전체가 비명을 질렀다.

티타늄 합금 바닥재가 진혁의 발밑에서부터 거미줄처럼 쩍쩍 갈라지며, 억겁의 세월 동안 지하 깊은 곳에 봉인되었던 마기가 분출하듯 검은 안개가 사방으로 피어올랐다.

"너는 기술을 신(神)이라 믿고, 그 기술로 고대의 힘을 흉내 내어 거짓된 그릇을 채우려 했다. 하지만 진짜 무(武)는…… 그릇의 형태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다."

진혁의 양손이 가볍게 쥐어졌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맞물리며 울리는 파열음은 기계의 소음이 아니었다.

골격과 근육, 그리고 마기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뿜어내는 생체적 파동이었다.

천마무상체의 완성을 통해, 진혁은 육체의 물리적 한계를 완전히 초월했다.

과도한 재생으로 인한 혈관 파괴의 위험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기혈의 흐름을 인공 나노 섬유가 강제로 지탱하고, 마기가 그 섬유에 무한한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상극이라 여겨졌던 차가운 기계와 뜨거운 마공이, 진혁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용광로 안에서 완벽한 상생(相生)의 고리를 완성한 것이다.

"건방진 실패작 놈이……!"

진무극의 얼굴이 극도의 분노로 일그러졌다.

쉬이이익!

진무극의 등 뒤에 돋아난 여섯 개의 암흑물질 날개가 일제히 살인적인 진동을 일으켰다.

날개 깃털 하나하나가 고출력 집속 레이저 발진기로 변모하며, 타워 상공의 대기 전체를 핏빛으로 물들였다.

[오리진 프라임 전술 인공지능: 공격 모드 기동]

[출력: 32,000 MW 한계 돌파]

[목표의 변칙적 방어 기제 분석 실패. 전방위 분자 분해 포격 개시]

"네놈이 몸을 어떻게 뜯어고쳤든 상관없다! 분자 단위로 지워버리면 재생할 세포조차 남지 않을 테니까!"

콰아아아앙―!

진무극의 날개에서 수백 가닥의 암흑 레이저와 중력 붕괴 탄환이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백이십 층 공간 전체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지워버리는 궤멸적인 탄막.

그 어떤 최첨단 장갑차도, 거대한 군사 요새도 찰나의 순간에 증발해 버릴 절대적인 파괴력이었다.

그러나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진혁은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검집도 없이 허공에 흑색 마기로 맺혀 있던 도검을 오른손으로 가볍게 쥐었다.

팟―!

그의 신형이 흐릿하게 흔들렸다.

아니, 완벽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무엇?!"

진무극의 전술 인공지능이 순간적으로 목표의 궤적을 완전히 놓쳐버렸다.

빛의 속도를 자랑하는 최첨단 양자 센서가 반응하기도 전에, 진혁은 쏟아지는 수백 개의 광선 줄기 사이, 오직 에너지의 '결'이 존재하는 단 하나의 미세한 틈새로 파고들고 있었다.

스스각―!

미처 다 피하지 못한 몇 가닥의 초고열 빔이 진혁의 어깨와 옆구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살점이 타들어가며 뼈가 드러나야 할 자리에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치이익―!

빔이 진혁의 피부에 닿는 순간, 천마무상체의 나노-마기 피부가 액체처럼 출렁이며 레이저의 파장을 굴절시켰다.

파고든 충격파는 근육 섬유의 초고속 미세 진동을 통해 체내로 고스란히 흡수되었고, 그 막대한 에너지는 흡원천공(吸元天功)의 운기 경로를 타고 단전으로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갔다.

'적의 힘을 받아내어 나의 내력으로 치환한다.'

진혁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통증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살을 에는 열기는 오히려 단전의 불꽃을 더욱 거세게 지피는 최상의 장작이 될 뿐이었다.

"크윽, 근접전을 노리는 거냐?!"

진무극이 반사적으로 양팔을 교차했다.

그의 오리진 수트 전완부에서 초진동 고주파 블레이드가 튀어나오며 진혁의 목덜미를 향해 교차 참격을 내리꽂았다.

공기를 찢어발기는 불쾌한 굉음과 함께 닥쳐온 필살의 일격.

하지만 진혁의 보법은 진무극의 전술 인공지능이 수억 번의 시뮬레이션으로 축적해 둔 그 어떤 데이터베이스에도 존재하지 않는 궤적을 그렸다.

스윽.

직선도 아니었고, 유려한 곡선도 아니었다.

바람이 불면 그저 몸을 맡겨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공간에 흐르는 중력의 흐름에 전신을 맡긴 채 진혁의 상체가 기괴한 각도로 꺾이며 블레이드의 날을 백지 한 장 차이로 흘려냈다.

구무림의 은거 고수 독고운에게서 전수받았던, 시스템의 연산 따위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무도의 마음.

자연(自然)의 결을 타는 탈속의 신법(身法).

"이게…… 도대체 무슨 보법이냐?!"

진무극이 경악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바이저 안쪽의 전술 인공지능 예측 궤적이 모조리 붉은색 오류 경고를 띄우며 깜빡거리고 있었다.

분명 코앞에 실재하는데 타격할 수가 없었다.

기계적 알고리즘으로 도출해 낸 최적의 살상 경로가, 진혁의 변칙적인 몸놀림 앞에서 철저하게 농락당하고 있었다.

"너는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느새 진무극의 턱밑, 절대적인 사각지대로 파고든 진혁의 싸늘한 음성이 귓전을 사정없이 때렸다.

"기계는 답을 계산할 뿐이지만, 무(武)는 나아갈 길을 스스로 창조한다는 것을."

진혁의 오른손에 쥐어진 검신으로, 타워 상공을 뒤덮고 있던 암흑물질의 잔여 입자들과 단전에서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온 순수한 마기가 단 하나의 점으로 응축되기 시작했다.

파지지직―!

흑색의 뇌전(雷電)과도 같은 섬광이 칼날을 집어삼키며 사납게 휘몰아쳤다.

그것은 초고압 플라즈마의 파괴력과 초절정 마강(魔剛)의 예리함이 결합된, 오직 강진혁이라는 존재만이 구현해 낼 수 있는 융합의 궁극이었다.

[신천마신공]

[만법귀마(萬法歸魔) - 공진 파쇄(共振破碎)]

"진무극."

진혁의 검끝이 진무극의 흉부 정중앙, 오 세대 암흑물질 프라임 코어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겨누었다.

"이제 그 가짜 심장을 뱉어낼 시간이다."

콰아아앙―!

검끝에서 터져 나온 칠흑의 파동이 티타늄 타워 백이십 층의 잔해를 넘어, 저 갈라진 하늘의 붉은 눈동자들마저 산산이 부숴버릴 기세로 폭발했다.

빛과 어둠, 기계와 마공이 뒤섞인 절대적인 파멸의 폭풍 속에서, 마침내 새로운 시대의 진정한 천마가 그 위용을 온 세상에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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