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3화 절대적 출력의 격돌
하늘이 찢겨 나가고 있었다.
신서울 상공을 뒤덮은 잿빛 스모그와 인공 오로라 너머, 결코 열려서는 안 될 허공의 경계면에 거대한 균열이 새겨졌다. 그것은 티타늄 그룹이 수십 년간 극비리에 가동해 온 차원 굴착 프로젝트의 잔재이자, 상위 차원의 암흑물질이 현세로 유출되며 빚어낸 참극이었다. 핏빛으로 물든 시공간의 틈새 너머에서 번뜩이는 수만 개의 기괴한 안구 형상. 인류가 아직 규명하지 못한 심연의 파동이 대기권을 짓누르며 신서울 전역의 전자기기를 광기로 몰아넣고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파멸의 전조는 저 머나먼 창공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강진혁의 흑도(黑刀)에 의해 일도양단되었어야 할 티타늄 타워 120층, 최고 집무실의 박살 난 바닥 한가운데서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기괴한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치지지직—! 콰르르르릉!
두 동강 났던 진무극의 흉부, 그 한가운데에 박혀 있던 제5세대 암흑물질 생체 코어가 소멸하는 대신 섬뜩한 자줏빛 광채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찢어진 차원의 틈새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미지의 암흑 에너지가, 파괴된 코어의 잔해를 도관 삼아 폭포수처럼 역류하고 있었던 것이다.
“크, 크하하……! 보인다. 보여! 이것이 바로…… 절대의 권능, 진정한 마신의 힘이다!”
진무극의 짓이겨진 목구멍에서 금속 마찰음과 살점이 뒤섞인 괴성이 터져 나왔다.
바닥으로 흘러내리던 검붉은 피와 부서진 나노머신 외골격 파편들이 중력을 거스르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고대 마교의 유적에서 발굴했던 천마의 심장 세포, 그 불멸의 활성 유전자가 외계 차원의 암흑물질과 융합하며 절단된 육체의 단면을 억지로 이어 붙이기 시작했다.
신경망이 시뻘건 전선처럼 실타래를 틀며 엉키고, 인공 혈관이 굶주린 뱀처럼 꿈틀거리며 전신 생체 수트 [오리진]을 흉폭한 형상으로 재구축해 나갔다.
위이이잉—!
대기 전체가 진동했다.
타워 120층을 둘러싸고 있던 두께 30센티미터의 방탄 강화유리 파편들이 허공으로 솟구쳤고, 붕괴한 H빔 철골들이 초전도 자성을 띤 것처럼 진무극의 몸 주변을 기괴한 궤적으로 공전하기 시작했다.
강진혁의 흑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그의 망막에는 더 이상 푸른색 HUD나 인공지능 설화의 시스템 상태창이 떠오르지 않았다.
시스템의 수치와 보조선에 기대어 칼을 휘두르던 미숙한 시기는 진작에 끝났다.
천마 프로토콜이라는 인공의 우리를 제 손으로 부수고 도달한 무의 극치, [마신경(魔神境) - 진천(眞天)]의 혜안만이 진무극의 내부에서 광폭하게 요동치는 에너지의 격류를 남김없이 꿰뚫어 보고 있었다.
‘기형적이다.’
그것은 인간의 피와 땀으로 벼려낸 진정한 무도(武道)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현대 기계공학의 엄밀한 제어 체계 안에 수렴하는 규격 내의 기술도 아니었다.
자본의 탐욕과 불멸에 눈이 먼 괴물이 차원의 금기를 깨뜨리고 빨아들인, 맹목적인 파괴의 독선(毒善).
진무극의 심장부에 박힌 암흑물질 코어는 이미 임계점을 아득히 돌파하여 신서울 전체의 전력망을 통째로 집어삼킨 것 이상의 에너지를 압축하고 있었다.
찌지직! 콰직!
[SYSTEM CRITICAL: 측정 불가 고에너지 반응 감지]
[동력원 출력: 15,000…… 22,000…… 28,000 MW 돌파]
[오리진(ORIGIN) 수트 리미터 전면 강제 해제]
타워의 벽면에 박힌 비상 단말기들이 붉은 피를 토하듯 에러 코드를 뿜어내며 연쇄적으로 폭발했다.
30,000 MW(메가와트).
대형 원자력 발전소 수십 기가 일시에 뿜어내는 재앙적인 출력이 오직 한 구의 육체에 집중되고 있었다.
“강진혁! 네놈이 도달했다는 그 허울 좋은 무도 따위가…… 자본과 기술, 그리고 우주의 섭리가 빚어낸 이 절대적인 무력 앞에 무엇을 증명할 수 있단 말이냐!”
진무극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척력(斥力)에 바닥의 티타늄 합금 상판이 종잇장처럼 구겨져 나갔다.
그의 등 뒤에서 암흑물질로 직조된 여섯 갈래의 외골격 날개가 펼쳐지며 공간의 종횡을 무자비하게 왜곡시켰다. 빛조차 굴절되어 빨려 들어가는 칠흑의 사건 지평선. 그 파멸의 중심에서 진무극이 거대한 살의를 담아 팔을 뒤로 젖혔다.
쩌저적!
단순히 주먹을 쥐었을 뿐인데, 주먹 주변의 공간에 거미줄 같은 공간 파열이 일어났다.
압축된 공기가 초고열의 플라즈마로 화하여 새하얗게 타올랐고, 중력장이 붕괴하며 발생하는 초저주파 진동이 타워 전체의 골조를 뒤흔들었다.
저 멀리, 진혁이 펼쳐둔 마기(魔氣)의 장막 속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던 진세린이 파얗게 질린 얼굴로 절규했다.
“피…… 피해요! 진혁 씨! 저건 인간이 버텨낼 수 있는 질량이 아니에요! 타워 전체가 증발해요!”
코어가 적출된 가슴을 쥐어짜며 그녀가 필사적으로 경고했지만, 진혁은 단 한 치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물러설 공간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이 이 공격을 피하는 순간, 등 뒤에 있는 진세린은 물론이고 타워 하층부에서 기업의 독재에 맞서 목숨을 걸고 항쟁 중인 저항군 니르바나의 대원들, 그리고 신서울 슬럼가의 수백만 민초들이 저 괴멸적인 폭압에 흔적도 없이 증발할 터였다.
스으으읍.
진혁은 가슴 깊숙이 숨을 들이켰다.
호흡을 따라 차가운 밤공기와 타워 상공을 부유하는 미세 나노입자, 그리고 차원의 틈새에서 흘러나오는 광포한 에너지가 폐포 깊숙이 가라앉았다.
‘상대가 기술과 자본의 오만으로 쌓아 올린 가짜 신이라면.’
진혁의 하단전에서 검붉은 진기(眞氣)가 소용돌이쳤다.
인공지능 설화의 보조 연산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피와 살, 뼈와 신경, 그리고 수천 번의 사선을 넘나들며 자신의 영혼에 직접 각인시킨 무도의 궤적.
진혁의 전신에 흐르는 수십억 개의 나노머신들이 고대 천마의 기혈 운행 법칙과 공명하며, 차가운 기계 부품이 아닌 순수한 내력의 영맥(靈脈)으로 탈바꿈했다.
우우우웅—!
진혁의 오른손에 깃든 흑색 마강(魔剛)이 극한의 밀도로 수축했다.
대기 중의 분자를 마기로 짓눌러 고주파로 진동시키고, 거기에 만물을 무릎 꿇리는 천마의 패도를 덧씌운 일격.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의 진의가 그의 손끝에 응축되었다.
“증명해 주지. 무(武)는 결코 너 따위의 천박한 장난질에 짓밟히지 않는다.”
말이 끝나는 찰나였다.
쿠구구구궁—!
진무극의 신형이 허공에서 지워졌다.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초광속에 육박하는 비상식적인 가속도로 인해, 그가 본래 서 있던 공간의 빛이 미처 뇌리에 닿지 못해 남겨진 잔상에 불과했다.
30,000 MW의 출력이 폭발적으로 토해낸 물리적 가속도.
진무극의 암흑 주먹이 허공을 찌르는 순간,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수십 미터의 공간 자체가 안쪽으로 함몰되었다.
초진공의 폭풍이 휘몰아치고, 사방의 대기가 짓눌리며 고막을 파열시키는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진혁의 흑안 속에 비친 세계가 억겁의 시간으로 늘어졌다.
[마광신보(魔光神步)]의 신법이 발동하며 지면을 박찼다.
동시에 진혁은 양손을 교차하여 체내의 모든 진기를 흉복부로 끌어올렸다.
상대의 궤적은 읽었다. 마신경의 감각은 진무극의 주먹이 도달할 파멸의 좌표를 정확히 포착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겁다!’
궤적을 읽고 회피의 경로를 포착했음에도 육체가 비명을 질렀다.
진무극이 내지른 일격은 단순한 물리 타격이 아니었다.
주먹의 첨단에 형성된 암흑물질의 왜곡장이 주변의 중력과 관성을 모조리 뒤틀어, 진혁의 회피 기동을 거대한 블랙홀처럼 강제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피할 수 없다면 부딪쳐 깨부수는 수밖에 없다.
“흡원천공(吸元天功)!”
진혁의 손바닥에서 칠흑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적의 공격 에너지를 나노 단위로 분해하여 자신의 경락으로 강제 순환시키는 절대의 마공.
동시에 그는 [만법귀마(萬法歸魔)]의 이치를 격발하여, 짓쳐드는 암흑물질의 고유 진동수를 마기로 교란해 와해시키려 했다.
콰아아아앙—!
최초의 격돌.
그것은 가청 영역을 아득히 넘어선 파괴의 파열음이었다.
진혁의 손끝에 진무극의 암흑 주먹이 닿는 순간, 상상을 초월하는 질량의 에너지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흡원천공의 나선이 미처 첫 번째 회전을 마치기도 전에, 30,000 MW를 상회하는 무식한 질량과 에너지가 마기의 흡수 한계치를 단 0.001초 만에 짓밟아 뭉개버렸다.
파지지직! 콰아앙!
진혁의 양손을 단단히 감싸고 있던 흑색 마강에 균열이 번지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크하하하! 삼켜 보아라, 강진혁! 한낱 인간의 단전으로 우주의 심연을 받아낼 수 있을 것 같으냐!”
진무극의 광기 어린 포효와 함께 주먹의 첨단에서 2차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공간 왜곡이 진혁의 마기 방어벽을 기어이 찢어발겼다.
초고밀도로 압축되었던 암흑 플라즈마가 폭발하며 진혁의 교차된 팔을 양옆으로 튕겨냈고, 무방비해진 그의 흉복부를 정면으로 관통하듯 때려 박혔다.
콰아아앙—!!
세상이 새하얗게 탈색되었다.
직격(直擊).
완벽한 질량과 규격 외의 출력이 진혁의 복부에 작렬하는 찰나, 파괴의 충격파는 체내의 가장 깊은 곳까지 무자비하게 파고들었다.
우두둑, 우드득—!
가장 먼저 파멸을 맞이한 것은 진혁의 육체를 지탱하던 현대 기계공학의 정수였다.
군용 특수 티타늄 합금보다 질기고 단단하게 직조되었던 탄소 나노튜브 인공근육 섬유.
마기와 결합하여 강철보다 단단했던 수만 가닥의 인공근육 다발이, 30,000 MW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한순간에 끊어지며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츠츠츠츳!
피부가 찢겨 나가며 검붉은 피와 함께 단선된 은빛 나노 와이어들이 허공으로 비산했다.
근육만이 아니었다.
복부를 감싸며 내장을 보호하던 늑골 여덟 개가 역방향으로 꺾이며 산산조각 났고, 날카로운 골편들이 폐포와 장기를 난도질했다.
충격파는 척추를 타고 곧장 뇌간까지 치밀어 올랐다.
“커헉……!”
진혁의 입에서 검붉은 핏덩이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장기가 짓이겨지고 단전의 영맥이 뒤틀리는 극심한 고통.
보통의 생명체라면 뇌가 통증을 인지하기도 전에 쇼크사했을 치명상 속에서도, 진혁의 차가운 흑안은 빛을 잃지 않은 채 자신을 내리꽂는 진무극의 일그러진 얼굴을 똑똑히 응시하고 있었다.
쿠구구구궁—!
타격의 끔찍한 여파는 진혁의 육체를 뚫고 등 뒤로 방출되었다.
진혁의 등 뒤에 서려 있던 대기가 원뿔 형태로 찢겨 나가며 거대한 진공 터널을 형성했다.
그리고 그 무시무시한 반동에 의해, 진혁의 신체는 음속의 수십 배에 달하는 속도로 뒤로 튕겨 나갔다.
콰콰콰콰쾅!
티타늄 타워 120층을 지탱하던 내부 격벽이 첫 번째로 폭쇄되었다.
진혁의 몸은 그 자체로 파괴적인 포탄이 되어 날아갔다.
티타늄 그룹이 자랑하던 최첨단 복합 장갑벽, 아다만티움이 함유된 두께 3미터의 특수 방벽 두 개가 연이어 두부처럼 뚫렸다.
쾅! 콰직! 콰아앙!
연쇄적인 굉음이 타워 내부를 거칠게 뒤흔들었다.
진혁의 육체는 타워 중심부를 수직으로 관통하는 거대한 메인 중역 지탱 기둥에 처박히고 나서야 간신히 멈추어 섰다.
쿠르르릉……!
두께 10미터에 달하는 특수 초합금 코어 기둥 전체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흉포하게 뻗어 나갔다.
벽면 깊숙이, 수 미터나 파고들어 처박힌 진혁의 몸 위로 시뻘겋게 달아오른 금속 파편과 콘크리트 잔해가 무자비하게 쏟아져 내렸다.
침묵.
치명적이고 무거운 침묵이 타워 120층을 지배했다.
휘이이잉—
처참하게 뚫려버린 외벽 사이로 차가운 밤바람과 함께 핏빛 차원의 비가 들이쳤다.
진무극은 허공에 부유한 채, 새하얀 플라즈마 연기를 뿜어내는 자신의 주먹을 내려다보며 희열에 찬 웃음을 터뜨렸다.
주먹의 표면을 감싸고 있던 [오리진] 수트의 외피가 초고열로 인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하하…… 보았느냐? 이것이 바로 격(格)의 차이다.”
진무극이 천천히 허공을 디디며 진혁이 처박힌 잔해를 향해 걸어갔다.
그가 내딛는 허공의 발자국마다 왜곡된 중력장이 바닥의 티타늄을 녹여내며 검은 연기를 피워 올렸다.
“네놈이 아무리 고대 마공의 본질을 깨닫고, 잃어버린 무도를 재현했다 한들…… 결국 인간의 살점과 조잡한 기계라는 물리적 한계에 갇혀 있을 뿐이다. 30,000 MW다. 소형 전술핵이 영거리에서 폭발한 위력이지. 네놈의 내장도, 뼈도, 그 조잡하게 얽어맨 인공근육도 모조리 곤죽이 되었을 터.”
진무극의 시선이 초합금 잔해 속을 오만하게 응시했다.
그의 붉게 물든 바이저 너머로 탐욕스러운 살기가 번들거렸다.
“하지만 안심해라. 단숨에 숨을 끊지는 않을 테니. 네놈의 뇌와 단전만은 온전히 회수해야 하니까 말이다. 내 완벽한 영생을 위한 그릇으로 쓰이기엔 조금 흠집이 났다만…… 고대 천마의 세포를 배양해 수복하면 그만이다.”
“진혁 씨……!”
저 멀리서, 마기의 장막 속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던 진세린의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벽을 짚고 일어서려 했으나, 진무극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잔류 척력장 때문에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피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저 끔찍한 충격을 맨몸으로 받아내고 살아남을 수 있는 유기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현대 의학으로도, 티타늄 그룹이 보유한 그 어떤 최첨단 사이보그 재생 기술로도 저 수준의 괴멸적인 파괴를 복구할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츠르르…… 츠르륵.
무너져 내린 초합금과 콘크리트 잔해 더미 속에서 기괴한 마찰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금속이 긁히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지하 깊은 곳에서 들끓는 용암이 암석을 녹이며 흐르는 소리 같았고, 수억 마리의 미세 기계 장치가 일제히 심장을 뛰기 시작하는 태동음 같기도 했다.
“……음?”
진무극의 눈썹이 불쾌하게 꿈틀거렸다.
그의 망막 디스플레이에 알 수 없는 생체 데이터가 스쳤다.
아니다. 감지되던 모든 신호가 일순간 허공으로 지워져 버렸다.
생체 코어의 출력 반응도, 인공 심장의 전기 신호도, 혈류의 흐름조차 완전히 소멸해 버린 절대의 공무(空無).
죽은 것인가?
아니다. 죽은 자의 잔해 속에서 이런 기운이 피어오를 수는 없다.
스르르르.
무너져 있던 초합금 잔해 더미가 검붉게 달아오르더니, 이내 한 줌의 미세한 잿더미로 변해 허공으로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 자욱한 흑색 분진 너머로, 부서진 중심 기둥에 등을 기댄 채 서서히 상체를 일으키는 한 남자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강진혁이었다.
그의 외형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복부는 끔찍할 정도로 함몰되어 있었고, 갈기갈기 찢겨 나간 가죽 사이로 수천 가닥의 인공근육 섬유가 검게 타들어 간 채 너덜거리고 있었다. 부러진 갈비뼈의 파편들이 살갗을 뚫고 흉하게 튀어나와 있었으며, 전신에서 흘러내린 피가 바닥에 거대한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상식과 의학의 범주 안에서는 이미 수십 번도 더 절명했어야 할 육체.
하지만 진혁의 흑안은 흐려지기는커녕,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의 어둠을 머금은 채 오싹할 정도로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쿨럭.
진혁이 검게 굳은 핏덩이를 무심하게 토해냈다.
그리고는 천천히, 부서진 뼈마디를 손수 맞추듯 허리를 곧게 폈다.
‘고통스럽군.’
그것이 그가 느낀 감상의 전부였다.
망막을 어지럽히던 붉은 경고창도, ‘신체 파손율 89%’를 기계적으로 읊어대던 시스템의 목소리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 모든 인공의 소음이 사라진 고요한 내면의 바다 속에서, 진혁은 오로지 자신의 육체가 전해오는 감각의 결을 하나하나 직시하고 있었다.
찢겨 나간 인공근육의 파편들.
산산조각 난 골격.
파열되어 기능을 멈춘 내장 기관들.
보통의 무인이라면 주화입마로 혈도가 터져 절명했을 순간이었고, 보통의 사이보그라면 메인보드 쇼트로 영구 기능 정지에 들어갔을 한계 상황.
하지만 진혁의 창백한 입가에 기괴할 정도로 서늘한 호선이 그려졌다.
“……자본과 기술이 빚어낸 한계라.”
진혁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폐허의 정적을 갈랐다.
그 목소리에는 빈사 상태에 빠진 자의 떨림이나 나약함 따위는 티끌만큼도 섞여 있지 않았다.
“틀렸다, 진무극.”
진혁이 자신의 처참하게 함몰된 복부를 왼손으로 조용히 짚었다.
그의 손끝에서 칠흑 같은 마기가 실타래처럼 뿜어져 나오더니, 찢겨진 살갗과 부러진 뼈마디 속으로 가차 없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기계는 부서지면 그 자리에서 멈추지만.”
진혁의 체내 깊은 곳.
파괴되어 나뒹굴던 수십억 개의 나노머신 입자들과, 고통 속에서 더욱 거칠게 끓어오르는 천마의 피가 하나의 맥동으로 묶이기 시작했다.
단전의 심연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신천마신공의 정수가, 죽음의 문턱에서 비로소 껍질을 깨고 진정한 탈각(脫殼)을 시작하고 있었다.
파지직! 콰르르르!
찢겨 나갔던 인공근육 섬유들이 검은 마기를 머금고 액체 금속처럼 유기적으로 녹아내렸다.
골절되었던 늑골이 마기의 압력에 의해 제자리를 찾아 맞물렸고, 파열되었던 장기들이 나노머신의 재배열과 천마의 생명력에 의해 초단위로 봉합되어 갔다.
그것은 단순한 신체 수복이 아니었다.
육체의 물질적 한계를 마기와 의지로 재구성하는 궁극의 신체 변혁.
[신천마신공 제2능: 천마무상체(天魔無相體)].
형태에 얽매이지 않는 육체.
기계의 정밀함과 마공의 유연함이 완벽히 하나로 녹아든 절대의 신체가 진혁의 살갗 아래에서 맥동동치고 있었다.
“무(武)는 파멸 속에서 비로소 허상을 벗어던지고, 완전해지는 법이다.”
진혁의 전신을 감싸는 흑색 마강이 폭발적인 기세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형태를 잃어버렸던 육체의 폐허 위에서, 시스템 따위는 감히 연산조차 할 수 없는 미지의 초월경이 신서울의 하늘을 향해 포효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