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7화 의지의 일격
콰아아아아앙―!
신서울 지하 20층, 티타늄 그룹 극비 생체병기 연구소의 암반 전체가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영거리에서 격발된 75밀리미터 레일건의 초음속 철갑탄환이 대기를 찢어발기며 천장을 관통했다. 수천 도로 순식간에 끓어오른 액체 합금과 화강암 파편이 시뻘건 불비가 되어 사방으로 쏟아져 내렸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오존과 타버린 전선 냄새가 폐부를 찔렀다.
그 압도적인 폭압의 정중앙.
강진혁의 주먹이 허공에 우뚝 멎어 있었다.
우우우웅―!
진혁의 주먹을 빈틈없이 감싸 쥔 칠흑의 마기(魔氣)가 소용돌이치며 주변의 산소와 열기를 진공 상태로 빨아들이고 있었다. 단 한 치. 불과 손가락 한 마디만 더 앞으로 뻗었더라면, 중장갑 결전 병기 카이저(Kaiser)의 흉부 중앙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강화 투명 캐니스터는 분자 단위로 분쇄되었을 터였다.
그 원통형 캐니스터 안에는 기계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의 가장 내밀한 본질이 담겨 있었다.
각종 바이오 신경 접속 케이블과 형광 녹색의 생체 유지액 속에서 기괴할 정도로 규칙적인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백무현의 생체 뇌.
‘……도망쳐라.’
기계 합성 스피커를 통하지 않고, 신경 펄스의 미약한 진동을 타고 공기 중으로 흩어졌던 백무현의 마지막 사념.
그것을 포착한 진혁의 흑안(黑眼)이 한없이 깊게 가라앉았다.
진혁은 보고 있었다.
초창기 그를 지배하던 인공지능 ‘설화’의 연산 보조창도, 망막을 어지럽히던 붉은색 전술 경고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
오직 기혈의 흐름과 생체 코어의 박동, 세상 만물의 결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보는 마신경(魔神境)의 절대적 직관 속에서 카이저의 내부 구동 메커니즘이 신경망 단위까지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었다.
진무극이 백무현의 뇌수에 강제로 심어둔 사격 프로토콜은 완벽했다.
오차율 0.0001% 이하의 살육 알고리즘이 진혁의 심장 복판을 정확히 조준하고 있었다. 방아쇠를 당기는 유압 실린더와 티타늄 서보 모터의 반응 속도는 전류의 흐름만큼이나 신속했다.
하지만 탄환은 빗나갔다.
빗나간 이유는 기계적 결함이나 하드웨어의 노후화 따위가 아니었다.
지직, 치지지직!
백무현의 뇌간 깊숙한 곳에 쐐기처럼 박힌 진홍빛 마이크로칩.
티타늄 그룹의 극비 통제 장치인 ‘마스터 슬레이브 칩’이 수만 볼트의 고압 전류를 방출하며 사격 궤도를 유지하려 발악하고 있었으나, 백무현의 잔존 신경망이 온 힘을 다해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생체 세포 하나하나가 하얗게 불타오르는 끔찍한 신경 고문 속에서도, 백무현의 뇌수는 기계의 강제 관성을 기어코 비틀어냈다.
유압 실린더를 17도 비틀어 총구를 허공으로 꺾어버린 것은 시스템의 단순 오류가 아니었다.
거대 자본의 통제에 종속된 살인 인형으로 전락하기를 거부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무인(武人)의 처절한 자의식이었다.
“……스스로 궤도를 틀었군.”
진혁의 메마른 입술 사이로 나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강해지기 위해, 혹은 파괴하기 위해 스스로 육신을 버리고 기계가 되었던 사내.
온몸의 살과 뼈를 깎아내고 끝내 뇌수 한 조각만 남아 티타늄 그룹의 철창 속에 갇혔던 블랙 가드의 총사령관.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거대 기업의 꼭두각시로 죽기를 거부했다.
스스로의 손으로 진혁을 쏘아 죽이지 않기 위해, 뇌세포가 영구적으로 파괴되는 파멸적인 과부하를 감수하면서까지 기계의 지배를 꺾어버린 것이다.
우웅, 치이이익―
캐니스터 내부의 형광 유지액이 거품을 물며 끓어올랐다.
백무현의 뇌 표면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던 은빛 인공 신경망들이 진홍빛 스파크를 격렬하게 튀기며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스터 슬레이브 칩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 생체 뇌를 반역 개체로 판정하고 내장된 ‘소각 자폭 시퀀스’를 발동한 탓이었다.
[경고: 지휘관 신경 동기화 이탈 감지.]
[지휘관 개체 '백무현'의 반역 프로토콜 식별.]
[지적 자산 보호 규정에 의거, 뇌 조직 긴급 소각 절차를 개시합니다. 잔여 시간 4초…… 3초…….]
서늘한 합성 기계음이 카이저의 외부 스피커를 통해 지하 공간에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백무현의 의지가 꺼져가고 있었다.
그의 뇌파가 급격하게 평탄해지며, 마지막으로 불태웠던 영혼의 잔열마저 잿더미 속에 파묻히기 직전이었다.
진혁의 두 눈에 차가운 마광(魔光)이 서렸다.
“진무극의 꼭두각시로 비참하게 타 죽기엔, 네놈이 품었던 무도가 아깝다.”
진혁은 주먹을 쥐었던 오른손을 완만하게 폈다.
파괴와 살육을 위해 극한까지 응축되었던 마기가 찰나의 순간 전혀 다른 결로 형태를 바꾸었다.
만법귀마(萬法歸魔).
기계공학과 현대 물리학, 그리고 고대 마공의 상극 원리를 통찰하여 세상의 모든 에너지를 자신의 의지대로 굴복시키는 신천마신공의 정수.
화르륵!
진혁의 다섯 손가락 끝에서 칠흑의 마기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한 실타래가 되어 허공으로 풀려나갔다.
그것은 단순한 내력의 외포가 아니었다. 최첨단 군용 나노머신의 연산 주파수보다 수천 배는 정밀하고, 전자기 펄스보다 예리하게 조율된 마신의 맥동이었다.
슈우우우욱―!
진혁의 손바닥이 카이저의 강화 투명 캐니스터 표면에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충격은 없었다. 흉포한 파괴력을 철저히 거둔 채, 진혁의 마기는 두터운 티타늄 장갑과 방탄 복합 유리의 분자 격자 틈새를 마치 물처럼 매끄럽게 통과했다.
치익, 치지직!
스며든 마기가 녹색 유지액 속으로 번개처럼 침투했다.
진혁의 초감각은 백무현의 뇌간 중심부, 연수와 척수가 만나는 급소에 기생충처럼 들러붙어 있는 마스터 슬레이브 칩을 오차 없이 포착했다.
진무극이 심어둔 억압의 족쇄.
인간의 자유의지를 거세하고 오직 냉혹한 살육의 계산만을 강제하던 손톱만 한 크기의 검붉은 반도체 소자.
‘부숴라.’
진혁이 단전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생체 코어의 회전을 역전시켰다.
초고주파로 진동하는 미세한 마기의 파동이 칩의 내부 초전도 회로망에 직접 공진(Resonance)을 일으켰다.
파지지직―!
“크아아아악―!”
기계 스피커의 필터를 거치지 않고, 연구실 전체의 공간을 뒤흔드는 처절한 뇌파의 비명이 진혁의 정신을 직접 때렸다.
슬레이브 칩 내부의 집적 회로가 새하얗게 과열되더니, 주변의 뇌세포에는 단 1마이크로초의 열 손상도 남기지 않은 채 내부에서부터 완벽하게 붕괴했다.
파창!
전자 소자가 먼지가 되어 바스러지는 미세한 파열음.
백무현의 뇌수를 거칠게 옥죄고 있던 수만 개의 전극 핀들이 마기의 파동에 쓸려나가며 형광 유지액 속에서 흔적도 없이 녹아내렸다.
동시에, 카이저의 거대한 장갑판 구석구석을 붉게 물들이고 있던 경고등이 전원 스위치를 내린 듯 일제히 꺼져버렸다.
스으으으……
거짓말 같은 적막이 내려앉았다.
소각 자폭 시퀀스가 강제로 정지되고, 거품을 물며 들끓던 생체 유지액이 차분하게 수평을 되찾았다.
기괴하게 뒤틀리던 백무현의 뇌 표면이 이내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박동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진혁이 슬레이브 칩을 파괴하며 밀어 넣은 순수한 마기가 신경 세포를 온화하게 감싸 안으며, 손상되었던 신경 시냅스를 급속도로 치유하고 재생시켰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배가 아닌 완전한 해방이었다.
진무극의 통제 코드가 박살 난 자리, 백무현이라는 한 무인의 고결하고 순수한 자의식만이 오롯이 그곳에 남았다.
그러나 그 평온은 눈을 깜빡일 시간만큼이나 짧았다.
쿠구구구구궁―!
지하 20층의 천장, 레일건 탄환이 뚫고 지나간 거대한 균열 너머에서 소름 끼치는 금속 마찰음이 우레처럼 울려 퍼졌다.
하나, 둘이 아니었다. 수백, 수천 개의 초소형 이온 제트 엔진이 뿜어내는 날카롭고 섬뜩한 고주파 파열음이 폐허로 변한 연구소 전체를 진동시켰다.
[타깃 격리 구역 침투 확인.]
[티타늄 그룹 최고 이사회 직속 전략 자산, '센티넬 하이브(Sentinel Hive)' 전원 강하.]
[명령 하달: 반역 실험체 07호 및 기능 정지 기체 '카이저'의 흔적을 영구 소거하라.]
슈와아아아악―!
천장의 균열을 뚫고 쏟아져 들어온 것은 은빛의 유선형 동체를 가진 수백 대의 자율 전투 드론 군집이었다.
도시 순찰용의 하급 기체가 아니었다.
대인용 고출력 펄스 플라즈마 터렛과 신소재 감손우라늄 관통탄을 가득 적재한, 티타늄 그룹 최정예 무인 편대였다.
푸른빛의 정밀 레이저 스캐너 수백 개가 일제히 진혁의 전신과 침묵하고 있던 카이저의 거구를 촘촘하게 옭아맸다.
시야의 사방팔방이 붉고 푸른 조준선으로 뒤덮여 단 한 치의 사각지대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티타늄의 사냥개들인가.”
진혁이 낮게 읊조리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진무극 회장이 상층부의 성역에서 무엇을 꾸미고 있든, 그를 보좌하는 티타늄 그룹의 이사진은 지하 20층의 통제 상실을 결코 용납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안중에 카이저와 백무현은 이미 소모된 고철이자, 외부에 결코 누출되어서는 안 될 오염 물질에 불과했다.
삐비비비빅!
수백 대의 센티넬 드론이 일제히 총구를 회전시키며 충전을 시작했다.
공기 중의 대전 입자들이 응축되며 눈이 시릴 정도의 푸르스름한 플라즈마 이온화 현상이 지하 연구실의 잔해를 삼킬 듯이 팽창했다. 저 일제 사격이 지상으로 쏟아진다면, 지하 20층이라는 공간 자체가 통째로 기화하여 지도에서 지워질 정도의 막강한 화력이었다.
하지만 진혁은 물러설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피할 공간도 마땅치 않았거니와, 애당초 물러설 이유 자체가 없었다.
진혁의 오른발이 산산조각 난 바닥을 지그시 딛는 순간, 그의 전신을 타고 순환하던 생체 코어의 출력과 심저의 마기가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쿵!
지하 20층의 단단한 강화 바닥재가 거대한 동심원을 그리며 함몰되었다.
어떠한 전조도, 기계적 반동도 존재하지 않는 순수한 경지의 도약.
마광신보(魔光神步).
슈아아악!
진혁의 신형이 그 자리에 잔상만을 남겨둔 채 허공에서 완벽히 지워졌다.
수백 개의 레이저 조준선이 목표를 잃고 허공을 어지럽게 방황했다. 초당 수천 번의 연산을 수행하는 전투 인공지능의 광학 센서조차 진혁의 이동 궤적을 쫓지 못했다. 이미 기계가 상정할 수 있는 물리적 기동 한계를 아득히 초월한 초상의 영역이었다.
“일제 사격을 허용할 것 같으냐.”
얼음장처럼 서늘한 진혁의 음성이 허공 전체를 메웠다.
그는 어느새 천장 부근, 드론 군집의 심장부에 홀연히 강림해 있었다.
진혁의 양손에 맺힌 흑색의 마강(魔罡).
그는 허공에서 검을 뽑아 휘두르지 않았다. 대신 두 팔을 좌우로 넓게 펼치며, 전신의 혈도와 단전에서 끌어올린 압도적인 마기를 구체 형태로 단숨에 방출했다.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 제10식.
압도(壓倒).
쿠우우우우웅―!
보이지 않는 거대한 천공의 맷돌이 허공을 짓누르는 듯한 묵직한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진혁을 중심으로 반경 50미터 내의 공간 중력이 수십 배로 왜곡되었다. 칠흑의 마기가 빚어낸 무형의 척력 장벽이 상공을 가득 메우고 있던 수십 대의 중장갑 드론들을 인정사정없이 짓눌렀다.
콰직! 콰지지직!
초고강도 티타늄과 탄소 나노튜브로 직조된 합금 장갑판이 종이 인형처럼 우그러졌다.
내부에 내장된 정밀 센서와 추진 제트 엔진이 거대한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 나가며 검붉은 불꽃과 파편을 토해냈다. 허공에 군림하던 기계의 군단이 단 한 번의 기합에 짓눌려 수직으로 곤두박질쳤다.
콰앙! 쾅! 쾅! 콰아앙!
바닥에 처박힌 드론들이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시뻘건 화염과 날카로운 파편 폭풍이 지하 공간을 사납게 휩쓸었으나, 공중에 떠 있는 진혁의 옷자락 끝조차 건드리지 못했다.
진혁의 전신을 감싸고 있는 나노마갑(Nano-Armor)과 천마무상체(天魔無相體)의 기운이 쇄도하는 열기와 충격파를 물처럼 흡수하여 단전의 내력으로 부드럽게 정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끝이 아니다.’
진혁의 냉철한 시선이 천장의 균열부 깊은 곳을 향했다.
바닥에 추락해 터진 것은 선발 타격대에 불과했다.
지상 1층에서부터 지하 20층으로 수직 관통된 비상 엘리베이터 통로 너머에는 여전히 셀 수 없이 많은 붉은 경고등이 가득 차 있었다. 티타늄 그룹이 신서울 전역의 경비 구역에서 끌어모은 예비 무인 병력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치지직…… 치직.
그때였다.
자욱한 연기와 유독가스로 가득 찬 바닥 한구석에서 묵직한 중금속 마찰음이 다시금 울렸다.
위이이잉―!
바닥에 주저앉아 침묵을 지키고 있던 카이저의 거대한 동체.
그 8미터에 달하는 강철의 거구 등 뒤에 장착된 4연장 메인 부스터가 푸른빛의 플라즈마 화염을 맹렬히 뿜어내며 재가동하기 시작했다.
쿵……!
산산조각 난 연구실 잔해와 철골을 털어내며, 거대한 칠흑의 강철 마신이 천천히 두 발로 대지를 딛고 일어섰다.
가슴 장갑은 찢겨 나가 백무현의 뇌가 든 원통형 캐니스터가 훤히 드러나 있었으나, 그 캐니스터를 수호하듯 둘러싸고 있는 기운의 질감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것은 진무극이 강제했던 붉은색의 살인 광폭화 코드가 아니었다.
진혁이 마스터 칩을 파괴하며 선물처럼 남겨준 순수한 흑색의 마기.
그리고 그 마기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공명하며 푸르게 타오르는, 무인 백무현 본연의 강철 같은 투지였다.
지이잉!
카이저의 안면부 바이저 센서가 차가운 백청색(白靑色)으로 점등했다.
마침내 이성을 되찾은 진정한 무인의 안광이었다.
치이익― 철컥!
카이저의 오른쪽 어깨에 결착되어 있던 60밀리미터 구경의 파쇄형 헤비 개틀링건이 거친 쇳소리를 내며 천장의 균열을 겨누었다.
왼팔에 내장된 초고주파 바이브로 블레이드가 파괴적인 진동음을 토해내며 푸른 궤적을 허공에 그렸다.
외부 확성 스피커에서 터져 나온 목소리는 더 이상 기계의 건조한 변조음이 아니었다.
탁하고 거칠었으나, 뼈에 사무치는 원한과 무인의 무게를 담은 한 남자의 진정한 육성이었다.
“……강진혁.”
카이저의 거대한 강철 머리가 허공에 떠 있는 진혁을 천천히 올려다보았다.
“네놈의 손에 비참하게 으깨져 죽을 줄 알았더니…… 되레 목숨의 빚을 지게 만들었군.”
진혁이 허공을 가볍게 딛고 낙하하여 백무현의 거대한 기체 곁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흩날리는 불티 속에서 펄럭이는 진혁의 옷자락 사이로, 옅은 은빛 회로 선이 맥동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묵직하게 얽혔다.
“빚을 갚고 싶다면 끝까지 살아서 증명해라, 백무현.”
진혁의 어조는 호수처럼 고요했다.
“네놈을 개처럼 부리며 버린 진무극이 지금 어디에 숨어 있는지, 그리고 티타늄 그룹이 이 신서울 전체를 제물로 바쳐 무슨 짓을 벌이려 하는지…… 네놈의 입으로 직접 들어야겠으니.”
카이저의 거대한 프레임 내부에서 백무현의 뇌파가 화산처럼 거세게 들끓었다.
진무극을 향한 살인적인 적의.
자신을 장기말로 쓰고 버린 오만한 자본가를 향한 분노, 그리고 무인으로서의 존엄과 긍지를 처절하게 유린당한 자의 깊은 원한이 기계의 모든 동력선으로 흘러넘쳤다.
“크큭…… 진무극 그 개자식은, 이미 오래전에 인간의 가죽을 벗어던졌다.”
백무현의 갈라진 목소리에 서늘한 살기가 뚝뚝 묻어났다.
“놈은 120층 펜트하우스의 마스터 돔 따위에 있지 않다. 놈이 틀어박혀 있는 곳은…… 티타늄 타워의 가장 밑바닥, 지상 그 누구의 접근도 허락되지 않는 성역. '프로토콜 제로'의 코어 챔버다.”
쿠구구구궁!
두 사람의 대화를 가로막듯, 천장의 균열부에서 수백 발의 대전차 마이크로 미사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티타늄 그룹의 센티넬 부대가 전면적인 섬멸 공격을 개시한 것이었다. 시야를 하얗게 메우는 백린 연막과 함께 정밀 유도 센서를 번뜩이는 미사일 군집이 지하 20층의 잔해를 남김없이 뒤덮었다.
진혁의 입꼬리가 완만하게 호선을 그렸다.
그의 손가락 마디마디에서 검붉은 번개, 뇌전마강(雷電魔剛)이 날카로운 파열음을 내며 꿈틀거렸다.
“자세한 이야기는 위로 올라가면서 듣지. 우선 눈앞을 가로막는 파리 떼부터 모조리 쓸어버린다.”
“……흥, 바라던 바다.”
카이저의 거대한 프레임이 대지를 박차며 맹렬하게 쇄도했다.
진무극의 코드가 아닌, 백무현 자신의 불굴의 의지로 움직이는 강철의 마신이 진혁의 등 뒤를 든든하게 받치며 천장을 향해 뛰어올랐다.
개틀링건의 포효와 초고주파 검의 굉음이 지하 공간을 뒤흔들었다.
신천마신공의 칠흑 같은 마기가 백무현의 화력을 등에 업고 거대한 용의 형상을 그리며 솟구쳐 올랐다.
콰아아아앙―!
신서울 지하 20층, 무너져 내리는 디스토피아의 심연 속에서.
시스템의 족쇄를 완전히 부숴버린 두 절대자의 무위(武威)가, 쏟아져 내리는 거대 자본의 포화를 향해 거침없이 작렬했다.
휘몰아치는 화염의 폭풍 너머로, 진무극이 도사리고 있는 최후의 심연을 향한 피의 진격로가 활짝 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