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6화 나노마갑의 한계 돌파
치이이익―!
공기가 타들어 가는 소리가 아니었다. 대기를 구성하는 산소 분자 자체가 초고열의 에너지에 강제로 분해되며 내지르는 기괴하고도 날카로운 파열음이었다.
신서울 지하 20층, 티타늄 그룹 최심부 극비 연구 구역의 천장이 시뻘건 용암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두께 3미터에 달하는 특수 티타늄 초합금 격벽과 다이아몬드 분자 코팅 방벽조차 ‘카이저(Kaiser)’의 주포에서 뿜어져 나오는 플라즈마 폭풍 앞에서는 한낱 불길에 녹아내리는 밀랍 인형에 불과했다.
콰아아앙―! 콰쾅!
전신을 결전 요새급 기계 장갑으로 뒤덮은 거대 살인병기, 카이저.
그 육중한 흉갑 중심부에서 번뜩이는 세 개의 핏빛 광학 렌즈가 강진혁의 동선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집요하게 조준하고 있었다.
티타늄 그룹 블랙 가드(Black Guard) 총사령관 백무현.
한때 무인(武人)으로서 당당한 풍채를 지녔던 그의 인간적 형체는 이제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진무극 회장을 향한 맹목적인 복종과 적을 섬멸하라는 살인 프로그래밍에 종속된 채, 수십 톤에 달하는 거대한 강철 괴수만이 지하 격리 구역의 붕괴된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경고: 주변 대기 온도 섭씨 6,800도 돌파.]
[구조물 융해율 87.4%. 전방위 퇴로 완전 소실.]
예전 같았으면 망막 안쪽에 차갑게 점멸했을 붉은색 시스템 경고창은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진혁은 이미 시스템 인공지능 ‘설화’의 연산 보조와 시각 인터페이스(HUD)를 자신의 손으로 완전히 뜯어내 버린 상태였다.
기계가 띄우는 나약한 수치와 인공적인 경보음에 의존하지 않아도, 피부 표면을 수천 개의 바늘로 찌르는 듯한 살기와 허파꽈리를 태울 듯 밀려드는 플라즈마의 맹독이 온몸의 신경망을 극도로 날카롭게 벼려내고 있었다.
“퇴로를 지워버리면, 스스로도 이 무덤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정녕 모르는가.”
진혁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귀를 찢는 폭음 속에서도 선명한 파동을 그리며 대기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카이저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성을 상실한 기계 병기에게 대화는 무의미한 에너지 낭비에 불과했다.
거대한 흉부 복합 장갑판이 육중한 유압 구동음을 토해내며 좌우로 갈라지더니, 내부에서 회전 냉각을 마친 트윈 하이퍼 플라즈마 캐넌이 눈이 멀어버릴 정도의 순백색 광휘를 폭발적으로 토해냈다.
쿠구구구구―!
소형 전투함의 선체조차 단숨에 증발시킬 수 있는 고출력 하전입자포가 십자(十字)의 궤적으로 교차하며 쏟아져 내렸다.
지하 연구실 바닥의 내화 마감재가 흔적도 없이 기화해 버렸고, 진혁이 딛고 서 있던 대지 자체가 시뻘겋게 녹아내린 금속 용융액이 되어 거칠게 출렁거렸다.
사방은 끝이 보이지 않는 불지옥이었다.
벽체도, 기둥도, 환기 설비마저 모조리 무너져 내려 그야말로 완전하게 고립된 사지(死地).
피할 수 있는 공간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 불길의 한가운데를 뚫고 들어가는 정면 돌파뿐이었다.
‘나노마갑(Nano-Armor).’
진혁이 마음속으로 낮게 읊조렸다.
혈관 속을 맹렬하게 순환하던 군용 나노머신 군집이 그의 의지에 즉각 반응하며 피부 표면으로 일제히 솟구쳐 올랐다.
단전에서 끌어올린 검붉은 마기와 결합한 미세 기계 입자들이 칠흑의 비늘처럼 돋아나며 진혁의 전신을 빈틈없이 감싸 안았다.
천 년 전 고대 마공의 호신강기와 현대 나노 공학의 정수가 융합된 절대의 방패.
치지지직―!
그러나 카이저의 흉폭한 화력은 진혁의 계산을 상회하고 있었다.
연속으로 쏟아지는 초고열 플라즈마의 세례 속에서, 피부 표면을 덮고 있던 칠흑의 나노마갑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단순히 가공할 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카이저의 포격에는 물질의 결합 구조를 분자 단위로 강제 해체하는 초진동 파쇄 주파수가 실려 있었다.
외피에 얇게 두른 나노머신들이 미처 자가 수복 과정을 거치기도 전에 하얗게 타버리며 재가 되어 바스러져 내렸다.
‘외부에 두른 껍데기만으로는 버텨낼 수 없다.’
진혁의 차가운 흑안이 번뜩였다.
천마 프로토콜의 연산 보조에 기대어 수치를 조율하던 시절의 나노마갑은 그저 ‘피부 위에 덧입는 견고한 방탄복’에 불과했다.
인공지능이 지정해 주는 최적의 표면 두께, 시스템이 통제하는 규격화된 에너지 배분.
하지만 시스템의 틀을 스스로 깨부수고 무(武)의 본질을 깨달아 [마신경(魔神境)]의 초입에 도달한 지금, 그런 정형화된 공학적 방식은 영혼을 옭아매는 족쇄나 다름없었다.
자본과 기술이 한계를 그어놓은 인공적인 벽을 깨부수지 못한다면, 결국 이 쇳물 구덩이 속에서 흔적도 없이 타 죽을 뿐이다.
‘껍질을 벗겨내라. 밖으로 두르지 말고, 안으로 새겨 넣어라.’
진혁은 단전의 마기를 몸 밖으로 방출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혈의 흐름을 뼈와 내장, 골수의 가장 깊은 곳으로 거칠게 밀어 넣었다.
동시에 전신의 혈관망을 타고 떠돌던 수천억 마리의 군용 나노머신을 향해 절대적인 의념(意念)의 쐐기를 박아 넣었다.
[흡원천공(吸元天功) — 만맥귀화(萬脈歸化).]
주변 대기에서 소용돌이치는 초고열 에너지를 마기로 강제 치환해 들이마시며, 몸 안의 나노머신들을 살갗 너머의 심연으로 몰아넣었다.
표피에 머물며 타들어가던 나노머신들이 진혁의 모공을 뚫고 몸 안으로 역류하기 시작했다.
골막(骨膜)으로.
골수 깊은 곳의 조혈모세포 속으로.
오장육부를 감싸는 질긴 장막과, 심장을 박동시키는 미세한 근섬유의 가닥가닥 속으로.
“크으윽……!”
진혁의 굳게 다문 입술 사이로 낮고 거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생살을 산 채로 찢어발기고 뼛속을 무수한 쇠바늘로 갉아먹는 듯한 끔찍한 고통.
단단한 나노 합금 입자들이 진혁의 뼈세포와 유기적으로 얽혀 들어가며, 칼슘 매트릭스를 강제로 치환하고 재구성해 나갔다.
인간의 육체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를 아득히 넘어선 격통 속에서도, 진혁의 차가운 눈빛은 북극의 빙하처럼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고통 따위에 정신이 흔들릴 무인이었다면, 애초에 폐기장의 썩어가는 시체 더미 속에서 기어 나오지도 못했다.
기술을 맹신하는 자들은 고통을 마취제로 지우려 하지만, 진정한 무도는 고통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고 그것을 부수며 나아가는 법이었다.
우두둑, 우드득―!
진혁의 체내에서 뼈마디가 뒤틀리고 재배열되는 파열음이 연쇄적으로 터져 나왔다.
그의 골격은 군용 특수 장갑판보다 수십 배는 견고한 초고밀도 유기 복합 구조체로 재편되었고, 내벽을 감싼 장기들은 어떠한 충격파와 열기에도 파열되지 않는 불괴(不壞)의 생체 장갑으로 다시 태어났다.
안과 밖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피부 겉면에 두르는 갑옷 따위가 아니었다.
육신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하고 정밀하며 살아 숨 쉬는 기병(奇兵)으로 승화한 것이다.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 — 천마무상체(天魔無相體).]
[나노마갑(Nano-Armor) — 골육융합(骨肉融合).]
마침내 진정한 도달이었다.
진혁의 매끄러운 피부 위로 핏빛과 흑빛이 기묘하게 뒤섞인 은은한 금속성 광택이 피어올랐다.
겉보기에는 그저 얇은 흑포를 걸친 평범한 인간의 육신처럼 보였으나, 그 내부의 밀도는 소형 운석의 낙하 충돌조차 튕겨낼 수 있을 만큼 빽빽하고 완전하게 압축되어 있었다.
푸슈우우욱―!
진혁의 발아래에서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던 쇳물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묵직한 마기의 기압에 눌려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며 양옆으로 갈라졌다.
카이저의 메인 프로세서가 진혁의 비정상적인 생체 에너지 급증을 감지했는지, 붉은 광학 렌즈를 불길하게 점멸하며 흉부의 입자포를 한계 출력인 120%까지 끌어올렸다.
쿠콰콰콰콰―!
직경 2미터를 훌쩍 넘는 순수한 백색 파멸의 광선이 격리 구역 전체를 흔들며 진혁을 정면으로 집어삼켰다.
빛이 시야의 모든 것을 하얗게 지워버렸고, 섭씨 8,000도를 넘어선 플라즈마의 바다가 좁은 연구실을 집채만 한 화염으로 가득 채웠다.
그 어떤 현대의 최첨단 기갑 병기도, 그 어떤 생체 코어 이식자도 분자 단위로 분해되어 연기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야 마땅한 화력.
그러나.
스스스스―.
타오르는 백색의 업화를 찢어발기며, 칠흑의 인영이 유유히 화염을 밟고 걸어 나왔다.
플라즈마의 맹렬한 열풍이 진혁의 피부에 닿는 순간, 골격과 장기 전체로 분산 배치된 나노 회로망이 체내의 마기와 완벽하게 공명하며 가해지는 충격을 모조리 상쇄해 버렸다.
피부는 단 한 군데도 그을리지 않았다.
오히려 뼛속 깊이 안착한 나노머신들이 외부에서 쏟아지는 초고열 에너지를 유기적으로 흡수하여 순수한 마기로 변환시켰고, 그것은 진혁의 단전을 더욱 뜨겁고 웅장하게 달구는 연료가 되어줄 뿐이었다.
“……출력 자체는 인정해주지.”
진혁이 불길 속에서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가락 마디마디를 타고 검붉은 기류가 뱀처럼 똬리를 틀었다.
“하지만 기계가 그리는 궤적은 너무나도 정직해서 눈이 하품을 할 지경이군.”
파아앗!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진혁의 신형이 허공에서 완벽하게 지워졌다.
마광신보(魔光神步).
기계의 연산 장치 따위로는 결코 예측할 수 없는, 공간의 미세한 결을 접어 달리는 초월의 보법이었다.
위이이잉―! 삐비빅!
카이저의 광학 센서가 미친 듯이 회전하며 연구 구역 전방위를 360도로 스캔했다.
그러나 진혁이 남긴 잔상은 이미 허공의 불길 곳곳에 수십 개로 흩뿌려져 있었다.
어느 것이 실체이고 어느 것이 잔상인지 기계의 광학 렌즈로는 판별조차 불가능한 신역(神域)의 움직임.
위기 신호를 감지한 카이저의 전투 인공지능이 즉각 전신 무장 관제 시스템을 가동했다.
어깨와 허벅지 장갑이 일제히 개방되며 장착되어 있던 40문의 마이크로 미사일 포드와 4연장 30밀리미터 중기관포가 전 방위를 향해 불을 뿜었다.
타타타타타탕! 콰콰콰콰쾅!
수천 발의 열화우라늄 탄환과 적외선 추적 미사일이 지하 공간 전체를 강철과 화약의 폭풍으로 뒤덮었다.
도망칠 틈 따위는 한 치도 주지 않겠다는 냉혹하고 기계적인 면적 제압 사격.
하지만 진혁은 애초에 도망칠 생각 따위는 품지도 않았다.
채앵! 채채채쟁―!
진혁은 빗발치는 탄환의 장막을 향해 일직선으로 몸을 던졌다.
골육에 완벽히 융합된 나노마갑의 절대적인 경도(硬度)가 진가를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음속을 넘나들며 쇄도하던 수백 발의 대구경 철갑탄이 진혁의 어깨와 가슴팍에 부딪히는 족족, 마치 거대한 모루에 부딪힌 납덩이처럼 납작하게 찌그러지며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근접 신관이 작동한 미사일들이 지근거리에서 연쇄 폭발을 일으키며 거대한 화염구를 만들어냈지만, 짓쳐드는 진혁의 보폭은 단 1밀리미터조차 흔들리지 않았다.
자욱한 탄연을 뚫고 솟구쳐 오른 진혁의 서늘한 시선이, 마침내 카이저의 거대한 흉곽 바로 앞에 도달했다.
“잡았다.”
카이저의 방어 시스템이 경보를 울리며, 두께 500밀리미터에 달하는 전면부 특수 나노 복합 장갑판을 닫아걸었다.
초중전차의 철갑탄조차 가소롭게 튕겨내는 티타늄 그룹 최신예 기갑 기술의 결정체.
물리적 타격으로는 결코 관통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그러나 진혁의 시야에는 그 장갑의 ‘물리적인 두께’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마신경의 경지에 도달한 감각은 장갑판을 구성하는 금속 분자들의 결합 배열, 장갑재 내부를 흐르는 고전압 전류의 미세한 맥동, 그리고 서로 다른 장갑판들이 맞물리는 0.01밀리미터의 미세한 유격(隙)을 적나라하게 해체하여 들여다보고 있었다.
[만법귀마(萬法歸魔) — 파극진(破隙振).]
진혁의 다섯 손가락 끝으로 칠흑 같은 마기가 초고주파의 진동을 일으키며 응축되었다.
그의 손가락은 나노머신이 뼈와 결합하여 그 어떤 전설의 신병이기보다 예리하고 단단한 마창(魔槍)의 형상을 띠고 있었다.
푸화아아악!
진혁의 손가락이 단단한 카이저의 복합 장갑 틈새로 막힘없이 파고들었다.
거대한 쇳덩이를 가르는 소리가 아니었다.
잘 익은 과일의 껍질을 부드럽게 벗겨내듯, 진혁의 손끝이 복합 장갑의 결합 주파수를 진동으로 무너뜨리며 장갑판 내부 깊숙한 곳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크아아아악―!”
기계의 외부 확성기를 통해, 고통에 찢어지는 듯한 백무현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장갑 내부로 밀고 들어간 진혁의 마기가 카이저의 메인 동력선과 액체 헬륨 냉각 파이프를 무자비하게 쥐어뜯고 있었다.
푸른빛의 냉각수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고, 수만 볼트의 고전압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며 기계 괴수의 거구가 통제 불능의 경련을 일으켰다.
진혁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양손을 틀어쥐며 흉부 장갑판을 바깥쪽으로 우악스럽게 뜯어냈다.
뿌드득! 콰아앙!
수 톤에 달하는 초합금 외피가 마치 젖은 마른풀처럼 찢겨 나가며 바닥의 용암 속으로 요란하게 처박혔다.
그리고 마침내 드러난 두터운 장갑의 가장 깊숙한 안쪽.
복잡하게 엉켜 있는 신경 접속 케이블과 기계식 인공 장기들, 그 한가운데에 초록빛 완충 용액이 가득 찬 원통형 투명 캐니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안에서 부유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수십 개의 전극과 바이오 제어 칩이 빽빽하게 꽂힌 채 희미하게 박동하고 있는 인간의 뇌(腦)였다.
백무현의 본체.
인간으로서의 육신을 모두 빼앗기고, 오직 살육을 위한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로 전락해 버린 무인의 비참한 잔재였다.
“……백무현.”
진혁의 차가운 눈동자가 부유하는 뇌수를 묵묵히 응시했다.
오른손에 집속된 검붉은 마기가 날카로운 검강(劍剛)의 형상을 이루며 불길하게 떨렸다.
저 유리관을 부수고 전극을 끊어내 뇌수를 짓이기면, 슬럼가 시절부터 자신을 집요하게 추적해 오던 이 악몽 같은 사냥개와의 질긴 인연도 마침내 마침표를 찍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온 길 위에서 적을 향한 자비 따위는 사치에 불과했다.
진혁은 거침없이 마기를 실은 주먹을 캐니스터를 향해 내리꽂으려 했다.
바로 그 찰나였다.
위이잉― 철컥.
카이저의 오른쪽 어깨에 온전하게 남아 있던 마지막 대구경 레일건 터렛이 둔중한 기계음을 내며 진혁의 미간을 겨누었다.
거리 0미터.
피할 수 없는 완벽한 영거리 사격의 각도.
방아쇠가 당겨져 초음속의 탄환이 뿜어져 나오는 순간, 아무리 진혁이라 하더라도 두개골이 산산조각 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사격 통제 센서의 붉은 레이저가 진혁의 이마 정중앙에 정확하게 맺혔다.
망설임 없이 발사음이 터져 나와야 할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터렛의 총구가 이상하리만치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덜덜덜덜―.
기계의 유압 실린더가 내부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파열될 정도로 끔찍한 물리적 저항이 시스템 내부에서 격돌하고 있었다.
진무극이 심어놓은 인공지능의 강제 살인 집행 명령과, 그 지배를 거부하며 포신의 제어권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려는 무언가의 처절한 발악.
치지직! 삐빅!
[시스템 치명적 오류: 메인 신경망 동기화 충돌.]
[최상위 사격 명령 거부 감지. 원인 불명의 자의식 간섭 발생…….]
부유하는 뇌수 주변의 전극들이 미친 듯이 스파크를 튀기며 푸른 불꽃을 일으켰다.
초록빛 용액 속에서 격렬한 기포가 치솟았고, 캐니스터 외벽에 장착된 초소형 통신 스피커를 통해 쇳가루가 긁히는 듯한 거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도, 망…… 쳐라……”
기계 합성음이 아니었다.
영혼 깊은 곳에서 피를 토하듯 쥐어짜 내는, 희미하지만 분명한 인간 백무현 자신의 목소리였다.
덜컥!
마침내 한계에 도달한 터렛의 총구가 진혁의 미간을 벗어나, 허공의 무너진 천장 격벽을 향해 거칠게 꺾여 올라갔다.
티타늄 그룹의 절대적인 통제 프로토콜을 온몸으로 거부하며, 마지막 남은 자신의 영혼으로 사격의 궤적을 강제로 비틀어버린 것이다.
살인병기의 심장부에 갇혀 있던 백무현의 마지막 무도(武道)의 긍지가, 차가운 기계의 명령을 짓이기며 절규하고 있었다.
진혁의 내리꽂히던 주먹이 허공에서 우뚝 멈추어 섰다.
단 1센티미터.
캐니스터의 특수 강화유리를 산산조각 내기 직전의 거리에서 멈춰 선 진혁의 주먹 끝에서, 검붉은 마기가 거친 파도를 일으키며 사그라들었다.
“……네놈의 무혼(武魂)이, 아직 그 껍데기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었던 건가.”
진혁의 깊은 흑안에 서늘하고도 묵직한 파문이 일렁였다.
허공을 향해 빗나간 포구에서는 헛된 열기만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유리관 속의 뇌는 끔찍한 신경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잘게 경련하고 있었다.
그것은 적의 잔꾀나 함정이 아니었다.
자본의 탐욕에 의해 영혼마저 개조당한 한 무인이, 죽음의 문턱에서 인간으로서 남기고자 했던 가장 비장하고 숭고한 마지막 의지였다.
진혁의 입술이 무겁게 다물렸다.
주먹을 감싸고 있던 파괴적인 살기가 스르륵 흩어지며, 부드럽고 섬세한 만법귀마의 심법이 그의 손끝을 은은하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이 괴물을 죽여 고통을 끝내는 것은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전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무인을 이토록 추악한 기계 노예로 옭아맨 진무극의 저주를 자신의 손으로 끊어내야만 했다.
치이이익―.
무너져 내린 연구 구역 천장의 거대한 균열 너머, 신서울의 갈라진 잿빛 하늘에서 수백 대의 고위 관제 드론들이 번뜩이는 붉은 감시 렌즈를 일제히 빛내며 지상으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상층부 이사회가 이변을 눈치채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진혁의 손끝이 백무현의 뇌를 억압하고 있는 중추 신경 제어 칩을 향해 조심스럽게, 그러나 거침없이 뻗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