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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33화목차

제33화 티타늄의 정벌령

신서울, 제3구역 상공.

영원히 꺼지지 않는 네온사인의 홍수 속에서, 하층가로 내려갈수록 그 빛은 잿빛 암흑 속으로 썩어 문드러졌다. 태양빛 한 줄기 닿지 않는 이 버림받은 공간에, 오늘 밤은 평소보다 더욱 무거운 철제 군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치이익—!

고압 플라즈마 냉각수가 기체 배출구에서 뿜어져 나오며 허공에 거대한 백색 증기를 피워 올렸다.

그 중심에, 티타늄 그룹 본사 마천루 최상층에서 내려온 명령을 수행하는 전신 사이보그 사단, '블랙 가드'의 제3 중장갑 기계화 부대가 진형을 구축하고 있었다.

철컥, 끼릭-!

여섯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군용 전투 메카닉 '골리앗'의 중기관총 포신이 사방으로 섬뜩한 회전음을 흘렸다.

그 뒤편으로는 전신을 방탄 세라믹 합금으로 두른 특수 정예병 삼백 명이 일사불란하게 구도심의 골목을 압박해 들어왔다.

"목표 지점 봉쇄 완료. 테러리스트 세력 및 반(反)기업 저항군 '니르바나'의 잔당을 소탕한다. 생포는 없다. 전원 섬멸."

블랙 가드의 지휘관, 4세대 전투 코어를 장착한 사이보그 장교가 차가운 기계 합성음을 내뱉었다.

그의 시야각(HUD) 모니터 상단에는 붉은 경고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WARNING: 구도심 3구역 내부에 비정상적인 고출력 에너지 반응 감지.]

[출력 추정치: 9,000 MW 이상. 해당 수치는 일반적인 생체 코어의 한계를 초과함.]

지휘관의 미간에 가상의 제어선이 찡그려지듯 일그러졌다.

인간의 단전에서 어떻게 저런 출력이 나온단 말인가.

그것은 티타늄 그룹 본사의 중추 서버에서나 뿜어져 나올 법한 수치였다.

"흥, 잡종 실험체 놈이 탈출해 발악하는 것도 오늘 밤이 마지막이다."

지휘관이 차갑게 일갈하며 전진 명령을 내리려는 찰나였다.

슈우우우욱—!

"……?"

공기의 흐름이 순식간에 뒤틀렸다.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속도. 빛의 궤적조차 남기지 않는 기묘한 잔상이 밤하늘의 어둠을 가르고 골목 초입의 시멘트 바닥에 내리꽂혔다.

쾅-!

거대한 충격파가 일어났음에도 먼지 하나 피어나지 않았다.

지면의 충격은 오롯이 바닥의 암반 속으로 파고들었을 뿐, 사방으로 흩어지는 파편조차 없었다.

그 기이한 제어력의 중심에, 칠흑 같은 검은 머리와 차가운 흑안을 가진 남자가 서 있었다.

강진혁.

그의 목과 손목을 따라 흐르던 은빛 회로 선이 은은한 진홍빛 마기로 물들어 있었다.

시스템의 보조 HUD가 차단된 지 오래였지만, 진혁의 감각은 그 어떤 기계 연산보다도 선명하고 완벽하게 주변의 모든 기밀을 포착하고 있었다.

단전에서 요동치는 9,600 MW의 마기 코어가 심장과 혈관을 타고 온몸의 세포를 팽창시켰다.

'귀찮게 군림하려 드는구나.'

진혁이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그의 시선이 사방을 메운 블랙 가드의 중장갑 사단과, 그 뒤편에서 진형을 짜고 있는 천마회의 잔당들을 훑었다.

티타늄 그룹의 수뇌부들이 하층민 320만 명을 대상으로 벌이려 하는 [헤븐리 파운데이션] 프로젝트의 전초전.

그것을 증명하듯, 적들의 손에는 생체 코어 추출용 고주파 진동 리퍼가 들려 있었다.

"저기 있다! 강진혁이다!"

"사살해라! 회장님의 명령이다. 머리통을 날려도 상관없다!"

블랙 가드의 선두에 선 중장갑 돌격병들이 일제히 플라즈마 라이플의 방인을 당겼다.

파지지직— 쾅! 쾅! 쾅!

수십 줄기의 고열 플라즈마 광선이 진혁이 서 있던 자리를 순식간에 벌집으로 만들었다.

건물의 외벽이 녹아내리고, 아스팔트가 증발하며 매캐한 유독가스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 폭격의 한가운데, 진혁의 모습은 이미 남아 있지 않았다.

잔상.

[마광신보(魔光神步)]의 극의.

빛보다 빠르게 공간의 마찰을 지워버린 진혁의 몸체는 이미 블랙 가드의 최선두 정예병 코앞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뭐……?!"

돌격병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확장되었다.

반응 속도가 0.01초도 채 되지 않는 3세대 전투 나노머신이 경고음을 울렸지만, 이미 늦었다.

퍼엉-!

진혁의 오른손이 그 병원의 가슴팍을 그대로 꿰뚫었다.

단순한 물리적 타격이 아니었다. 손끝에 응축된 마기가 적의 생체 코어와 장갑 내부의 나노 회로를 다이렉트로 장악했다.

[흡원천공(吸元天功) - 개시.]

"크아아악……!"

병사의 입에서 푸른 빛의 에너지 입자들이 역류하며 진혁의 손바닥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단숨에 흡수된 에너지가 단전의 9,600 MW 출력에 더해지며 핏줄이 터질 듯한 쾌감이 전신을 타고 흘렀다.

진혁이 손을 빼내자마자, 생체 코어가 바닥난 병사는 건조한 마네킹처럼 쓰러져 바닥에 뒹굴었다.

"이 괴물 녀석이……! 전격포 사격! 전부 갈겨!"

중장갑 기계화 부대의 지휘관이 악을 쓰며 명령했다.

골리앗 메카닉의 거대한 포신들이 일제히 회전하며 진혁을 향해 십자 포화를 쏟아부으려 했다.

치이익- 콰구구구궁!

포격이 도시의 밤을 대낮처럼 밝히며 쏟아졌다.

그러나 진혁은 도망치기는커녕, 오히려 폭격의 불길 속으로 걸어 들어가듯 검을 뽑아 들었다.

손에 쥔 것은 천우진의 정비소에서 제작된 [천마검(프로토 타입)].

고대 마교의 마기 전도율과 현대 다이아몬드 티타늄 합금이 결합된 검신 위로, 시리도록 푸른 고주파 진동 에너지가 휘몰아쳤다.

'시스템의 연산 따윈 필요 없다.'

진혁은 스스로 깨달은 기혈의 흐름과 육체의 직관만으로 검을 휘둘렀다.

챙—! 캉!

골리앗 메카닉이 발사한 고중량 철갑탄이 천마검의 날에 부딪히는 순간, 검신에서 뿜어져 나온 고주파 공진 주파수가 탄환의 분자 결합을 내부에서부터 박살 냈다.

철갑탄은 총알의 형태를 잃고 사방으로 곱게 부서진 고철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불가능하다……! 저 정도 출력을 방어막도 없이 물리적으로 상쇄한다고?!"

지휘관의 얼굴에 공포가 서렸다.

그것은 과학의 영역이 아니었다. 인류가 구축한 그 어떤 현대 군사 기술의 데이터베이스에도 존재하지 않는, 순수한 무위(武爲)의 영역이었다.

진혁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티타늄의 개들이 짖어대는 소리가 시끄럽다."

슈우우웅-!

진혁의 발이 바닥을 박찼다.

그가 지나간 자리마다 허공에 검은 잔상이 찢겨 나갔고, 블랙 가드의 정예병들은 목덜미에 스치는 바람결만으로도 전신경화가 풀리며 쓰러졌다.

마검기·개(開).

천마검이 허공을 가르며 거대한 초승달 모양의 검강을 뿜어냈다.

그 참격은 골리앗 메카닉의 두꺼운 티타늄 장갑판을 두부 썰듯 스르륵 양단해 버렸다.

콰아아앙-!

거대한 메카닉이 반으로 쪼개지며 폭발했다.

사방으로 튀는 화염 속에서 진혁의 은빛 회로가 번뜩였다.

한편, 신서울 최상층.

티타늄 그룹 본사, 100층 회장실.

거대한 곡면 유리창 너머로 하층가 3구역에서 피어오르는 폭발의 섬광이 아득하게 내려다보였다.

은발을 정갈하게 넘긴 중년 신사, 티타늄 그룹 회장 진무극은 고급 리큐르 잔을 손에 쥔 채 그 광경을 무표정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뒤편에는 전신에 특수 군용 생체 수트를 장착한 후계자, 진세린이 묵묵히 서 있었다.

"세린아."

진무극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회장실에 울려 퍼졌다.

"네가 지하 500층에서 놓친 그 실험체가, 생각보다 훨씬 질이 좋은 그릇으로 자라났구나."

진세린의 주먹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는 지하에서 자신이 겪었던 압도적인 패배의 기억을 떠올렸다. 시스템의 보조조차 없이 오직 자신의 의지만으로 모든 것을 부수던 강진혁의 눈동자.

"아버님. 그 자는…… 프로토콜의 통제를 벗어났습니다. 아버님이 의도하신 그릇의 범위를 넘어섰다고요."

"통제를 벗어났다고?"

진무극이 피식,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

"세린아, 기술이란 건 말이다.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을 때보다, 스스로 진화해 한계 끝까지 팽창했을 때 비로소 수확하는 법이다. 저 아이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 육체에 담길 마기의 순도는 완벽해진다."

진무극의 눈빛에 광기 어린 탐욕이 서렸다.

"오늘 밤의 정벌령은 저 아이를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강진혁이라는 완성된 그릇을 내 손으로 온전히 거두기 위한 최종 테스트일 뿐이지."

진무극이 잔을 내려놓으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블랙 가드를 물려라. 이제, [천마회]의 잔당들과 신마교의 진짜 실험체들을 풀어놓아라. 그 자의 껍질이 얼마나 단단한지 끝까지 확인해 봐야겠다."

"……알겠습니다."

진세린이 이를 악물며 고개를 숙였지만, 그녀의 흑안 속에는 아버지의 오만함을 향한 미세한 의구심과 불안감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다시 제3구역 구도심 폐공단.

"크아아악!"

"이게 무슨 괴물이야……!"

블랙 가드의 중장갑 사단이 진혁의 검 끝에 무참히 짓밟히며 순식간에 괴멸 상태에 빠졌다.

남아 있는 잔당들이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치는 그 순간, 사방의 어두운 골목 구석구석에서 기괴한 기계음과 함께 불길한 붉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지이익, 치이익……!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신체의 절반 이상이 불법 개조된 사이보그이자 마교의 실패작들——[천마회]의 광마 무리들이 사방의 건물 벽을 기어오르며 나타났다.

그들의 눈동자는 제어 장치가 완전히 타버린 듯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고, 입가로는 거품 섞인 광기가 흘러넘쳤다.

"크하하하……! 마기다! 저기서 맛있는 마기의 냄새가 난다!"

"죽여라! 찢어발겨라!"

수십 명의 광마들이 일제히 진혁을 향해 투사체처럼 몸을 날렸다.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그 광기 어린 압박감만으로도 정신이 무너질 만한 지옥도였다.

하지만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는 천마검을 가볍게 고쳐 잡으며, 단전에서 끓어오르는 9,600 MW의 마기를 검신 전체로 끌어올렸다.

시스템의 경고음도, 인공지능의 연산 보조도 없었다.

오직 자신의 심장박동과 호흡만이 세계의 유일한 메트로놈이었다.

'오히려 좋다.'

진혁의 입꼬리가 차갑게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달빛조차 차단된 디스토피아의 밤,

진혁은 자신을 포위해 오는 수십 마리의 괴물들을 향해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갔다.

스스로 신의 영역을 찬탈하려는 자들의 군단 속으로, 참된 천마의 검이 포효하기 시작했다.

지이익-!

광마 무리가 토해내는 기괴한 저주와 사이보그 모터의 고주파 소음이 뒤섞여 구도심의 밤공기를 갈아 마셨다.

그 선두에 선 거구의 광마가 두 팔에 이식된 고출력 진동 블레이드를 치켜세우며 진혁의 머리통을 찍어 내렸다.

카아아궁-!

지면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하지만 블레이드가 내리찍힌 자리에는 잔상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어……?"

광마의 붉은 눈동자가 허공을 헤맸다.

이미 진혁의 몸은 물리적 한계를 비웃듯 그의 측면 사각으로 파고든 뒤였다.

솨아아아-!

[마검기·개(開).]

천마검의 검신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고주파 검강이 광마의 허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단단한 세라믹 합금으로 보강된 사이보그 척추가 두부처럼 매끄럽게 양단되었다.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는 순간에도, 광마의 입에서는 피 대신 푸른빛의 불안정한 마기 입자만이 흩어졌다.

[흡원천공 - 가동.]

진혁이 왼손을 가볍게 뻗자, 절단된 부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와 생체 코어의 잔여 에너지가 거대한 소용돌이를 그리며 그의 손바닥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쿠구구구궁-!

단전에서 요동치던 9,600 MW의 출력이 순식간에 한계치를 갱신하며 전신의 핏줄을 부풀렸다.

폭발적인 에너지의 격류 속에서도 진혁의 정신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시스템의 보조 없이 오직 자신의 의지만으로 에너지를 통제하고 압축하는 경지, [초월천마경].

그것은 기계가 계산할 수 없는 영역에서 피어나는 순수한 무력의 극치였다.

"크아아악! 죽여라! 저놈을 찢어 죽여라!"

남겨진 수십 명의 광마들이 이성을 잃고 덤벼들었다.

그들의 몸에 내장된 자폭 회로가 과열되며 붉은 경고등이 사방에서 미친 듯이 깜빡였다.

티타늄 그룹이 이들을 풀려나게 하면서 마지막 순간에 심어둔 안전장치이자, 진혁과 함께 자폭하기 위한 회로였다.

"자폭인가."

진혁은 피식 실소를 흘렸다.

그의 은빛 회로가 빛나며 온몸의 근육과 골밀도를 유기적으로 재구성했다. [천마무상체].

나노머신과 마기가 결합된 육체는 이미 단순한 생명체의 방어력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사방에서 연쇄적인 폭발이 일어났다.

구도심의 낡은 건물들이 무너져 내리고, 엄청난 고열의 화염 폭풍이 진혁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폭발의 여파로 아스팔트가 녹아내리며 거대한 분화구가 형성되었다.

화염이 걷히고, 자욱한 매연 속에서 은빛 회로가 빛나는 실루엣이 걸어 나왔다.

진혁의 옷자락은 조금 그슬렸을지언정, 그의 육체에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폭발의 에너지는 오히려 흡원천공의 통로를 타고 그의 단전을 더욱 단단하게 다지는 자양분이 되었을 뿐이다.

"이…… 이런 미친……."

멀리서 전황을 모니터링하던 블랙 가드의 생존 요원이 경악으로 채워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인간의 육체로 화학 폭발과 고열 플라즈마를 정통으로 버텨내다 못해 흡수해 버리는 괴물.

그것은 병기가 아니라, 재앙 그 자체였다.

진혁은 차가운 눈동자로 무너진 폐공단 입구를 응시했다.

그곳은 티타늄 그룹이 숨겨둔 하층민 감금 시설이자, [헤븐리 파운데이션] 프로젝트의 메인 서버로 이어지는 지하 통로였다.

"끝낼 시간이다."

진혁이 천마검을 가볍게 털어내며 지면을 박차고 날아오랐다.

그의 등 뒤로 밤하늘을 가르는 검은 잔상이 거대한 마기의 궤적을 그리며 뻗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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