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전용 사이트예요. 댓글·로그인·좋아요는 준비 중이에요.
‹프로토콜: 천마 · 32화목차

제32화 힘의 증명

쿠우우우웅-!

지하 3구역의 메마른 대지가 진동했다.

송수연이 휘두른 도검에서 뿜어져 나온 화염강(火焰罡)이 공간을 찢어발기며 강진혁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고열로 인해 주변의 산소마저 타들어가며 지독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저항군 '니르바나'의 총수로서 그녀가 쌓아 올린 무력은 결코 가짜가 아니었다. 3세대 생체 코어와 고출력 플라즈마 에너지 출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일격. 일반적인 초인이라면 스치는 것만으로도 전신이 재가 되어 사라질 화력이다.

하지만 강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

송수연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진혁의 손등을 감싸고 있던 은빛 회로선이 순식간에 칠흑 같은 마기(魔氣)와 결합하며 형상을 바꾸었다.

치익-

[시스템 경고: 사용자 수동 제어 모드. 인공지능 보조 연산 없음.]

HUD의 푸른 불빛은 이미 꺼진 지 오래다. 하지만 그 대신 진혁의 뇌리에 박힌 것은 1,000년 전 천마의 직관과 스스로 개척해 낸 기혈의 흐름이었다.

파지지직!

진혁의 손바닥이 화염강을 그대로 움켜쥐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불꽃을 손으로 잡다니. 물리적 법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마기의 압축력이 화염의 팽창을 강제로 억눌렀다.

"어……떻게……?"

"불완전하군."

강진혁의 입술이 낮게 울렸다.

차가운 흑안이 송수연의 심장을 꿰뚫듯 박혀 들었다.

"코어의 출력을 무식하게 끌어올리기만 했을 뿐, 회전 궤적이 완전히 엉켰어. 그러니 에너지가 밖으로 새 나가지."

"크윽……!"

송수연이 도검을 빼내려 안간힘을 썼지만, 진혁의 손에 맞물린 화염강은 마치 거대한 철근에 박힌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혁의 손아귀에서 뿜어져 나온 칠흑 같은 마기가 송수연의 검신을 타고 역류하기 시작했다.

지-익, 지지지직-

"이게…… 뭐야……! 내 코어가……!"

"흡원천공(吸元天功)."

나지막하게 읊조린 단어와 함께, 송수연의 단전에 내장된 3세대 생체 코어가 비명을 질렀다.

폭발적으로 치솟던 화염의 온도가 거짓말처럼 급속도로 식어내렸다. 송수연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온몸의 내력이 강제로 빨려 나가는 듯한 끔찍한 허탈감이 그녀의 전신을 지배했다.

주저앉을 뻔한 송수연의 허리를 진혁의 다른 한 손이 번개처럼 낚아채 고정했다.

"커헉……!"

"살려두는 건, 네가 가진 정보와 니르바나의 병력이 아직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진혁이 손을 탁 털어내자, 잔여 열기가 흩어지며 바닥에 검은 그을음만 남았다.

송수연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무릎을 짚었다. 식은땀이 온몸을 적시고 있었다. 패배. 그것도 단 한 합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완벽한 격차로 당한 패배였다.

그녀는 티타늄 그룹의 정예 간부들과도 싸워본 적이 있었다. 블랙 가드의 살인병기들과도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다. 하지만 강진혁이 보여준 이 압도적인 '힘'은 그들과 차원이 달랐다.

그것은 단순히 출력이 높고 나노머신이 우수해서 나오는 무력이 아니었다. 인간의 육체와 기운을 완벽한 병기로 연성해 낸, 경지(境地)의 차원이었다.

송수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괴물 같은 자식. 네가 진짜…… 천마라도 된다는 거야?"

"천마(天魔)."

진혁은 피식 실소를 흘리며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은빛 회로선 사이로 꿈틀거리는 9,600 MW의 마기 코어가 폭발적인 에너지를 내뿜고 있었다.

"이름 따위는 상관없다. 중요한 건, 티타늄 그룹을 부수기에 이 손이 충분히 강하다는 거지."

송수연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내 고개를 숙였다. 자존심 따위는 이미 오래전에 내다 버린 지 오래였다. 하층민 320만 명의 목숨이 걸린 '헤븐리 파운데이션' 프로젝트를 저지하기 위해서라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수 있는 그녀였다.

"항복한다. 아니, 동맹이야."

송수연이 고개를 들며 똑바로 진혁을 응시했다.

"니르바나의 모든 정보, 그리고 지하 3구역에 숨겨둔 무기와 인력까지 전부 네 지휘 아래 두겠어. 대신 조건이 있다."

"말해라."

"티타늄 그룹의 회장, 진무극 그 영생에 미친 늙은이의 목을 칠 때…… 반드시 나를 그 자리에 데려가 줘. 내 부모와 동료들의 복수를 내 손으로 끝내고 싶어."

진혁은 말없이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한다. 대신 내 명령에 토를 달지 마라."

니르바나의 본거지인 구(舊) 지하철 환승역 3구역.

어둡고 축축한 터널 내부에는 수십 명의 저항군 전사들이 긴장한 얼굴로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개조된 플라즈마 라이플과 고주파 검들이 들려 있었지만, 티타늄 그룹의 정예 블랙 가드와 비교하면 장비의 질이나 출력 면에서 한참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철컥- 슥.

진혁이 정비 구역의 철제 테이블 위에 섰다.

그의 뒤로는 윤아영이 노트북을 두드리며 복잡한 데이터 스트림을 공중에 띄웠다.

"진혁 오빠, 니르바나 대원들이 가진 2세대 나노 회로는 출력이 너무 불안정해요. 이걸 그대로 쓰면 티타늄의 방어막 뚫기도 전에 코어가 과부하로 터질걸요?"

"알고 있다."

진혁은 냉정하게 대답하며 자신의 손목에 내장된 나노머신을 일부 개방했다.

슈우우우-!

진혁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미세한 나노 입자들이 공중에서 은빛 안개처럼 퍼져 나갔다. 그것은 단순한 기계 장치가 아니었다. 흡원천공으로 흡수했던 수많은 적들의 코어 데이터와 고대 마공의 기혈 운행법이 융합되어 최적화된, 일종의 '기운을 품은 나노 회로'였다.

"이리 와라."

진혁이 첫 번째 저항군 대원을 향해 손짓했다.

덩치가 큰 저항군 청년이 쭈뼛거리며 다가오자, 진혁은 망설임 없이 그의 가슴 부근 단전 자리에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크윽……!"

"움직이지 마라. 기도가 뒤틀리면 네 심장이 먼저 터질 테니까."

진혁의 손가락 끝에서 흘러 들어간 나노 입자가 청년의 혈관과 기존의 조잡한 생체 코어 사이로 파고들었다.

마기의 운기조법에 맞춰 나노 회로가 순식간에 재배치되었다.

이른바 [군사 나노 회로 개법(改法)].

현대의 공학적 데이터와 고대 마공의 기혈 순환을 결합하여, 하급 코어의 출력을 200% 이상 끌어올리면서도 오버히트를 원천 차단하는 진혁만의 독자적인 기술이었다.

파앗-

청년의 눈동자에 푸른빛과 붉은빛이 교차했다.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나노 장갑의 출력이 순식간에 급등하며 주변의 공기가 웅장하게 울렸다.

"이…… 이게 뭐야?! 몸이 엄청 가벼워졌어! 에너지가 비어 있는 곳 없이 꽉 차는 느낌이야!"

청년이 주먹을 쥐었다 펴자, 허공에서 미세한 플라즈마 스파크가 튀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송수연과 니르바나의 간부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단 몇 초 만에 평범한 하층민 전사의 출력이 C급에서 일류 초인 수준으로 도약한 것이다.

"대단해…… 저건 기술 수준이 아니야. 마법이지."

윤아영마저 입을 다물지 못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진혁은 쉼 없이 손을 움직였다. 하나, 둘, 셋. 터널 안에서 대기하던 저항군 전사들의 몸에 차례대로 새로운 나노 회로가 이식되었다.

단 한 시간 만에, 오합지졸에 가깝던 니르바나의 저항군 300명이 모두 정예화되었다.

그들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와 에너지 파동이 터널 전체를 무겁게 짓누를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송수연이 진혁의 곁으로 다가와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이 정도 전력이면…… 구도심 전체를 장악할 수 있어. 하지만 티타늄 그룹의 본사는 상층 마천루에 있잖아? 거기는 방어 시스템이 상상을 초월해."

"상층으로 갈 필요 없다."

진혁이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칠흑 같은 어둠이 드리워진 터널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먼저 내려올 테니까."

"……뭐?"

그 순간.

삐이익-! 삐이익-!

윤아영이 휴대하고 있던 메인 터미널에서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홀로그램 스크린 위에 신서울 전체의 지도가 붉은색으로 물들며 수많은 섬광들이 하층가를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경고! 티타늄 그룹 본사 메인 서버에서 비상 정벌령 발령.]

[대상: 3계급 구도심 전역.]

[블랙 가드 중장갑 사단 및 신마교 잔당 연합 부대, 지하 1구역 진입 확인.]

[무인 폭격 드론 편대 및 대형 공성 메카닉 출동 중.]

윤아영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오빠……! 티타늄에서 전면전을 선언했어! 회장 진무극의 직접 명령이야! 하층가를 통째로 쓸어버릴 작정인가 봐!"

터널 바닥이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위잉- 쾅! 멀리서 들려오는 거대한 장갑차의 엔진 소리와 함께, 신서울의 밤하늘을 가르는 수십 발의 플라즈마 미사일 궤적이 지평선을 붉게 물들였다.

티타늄 그룹의 광견들이 마침내 사냥개들을 풀었다.

하층민 320만 명의 생체 코어를 수확하기 위한 피의 숙청이 시작된 것이다.

니르바나의 전사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군사력의 차이에 공포가 터널 내부를 채우려던 그때,

"동요하지 마라."

진혁의 목소리가 터널 안의 모든 소음을 단숨에 잠재웠다.

그는 천천히 허리춤에 차고 있던 [천마검(프로토 타입)]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스으으응-

검신을 따라 끓어오르는 9,600 MW의 칠흑빛 마기가 어둠 속에서 거대한 용의 형상처럼 뻗어나갔다.

진혁의 흑안이 서늘한 살기로 번뜩였다.

"기다리고 있었다. 스스로 무덤으로 걸어오겠다면, 전부 흡수해 주지."

진혁이 발을 구르는 순간, 지반이 통째로 무너져 내리며 구도심의 밤을 향해 거침없는 진격이 시작되었다.

쿠우우우웅-!

지하 3구역의 메마른 대지가 진동을 넘어 사정없이 뒤틀렸다.

머리 위를 덮고 있던 콘크리트 천장에서 자잘한 돌무더기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신서울의 상층 마천루에서부터 하층 구도심을 향해 뻗어 내린 거대한 강철 가도(街道) 위로, 티타늄 그룹의 정예 블랙 가드 중장갑 사단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우선 선두를 치고 나간 것은 4족 보행형 전술 섬멸 메카닉 '골리앗' 십여 대였다.

바닥을 짓이기며 진격하는 녀석들의 장갑 표면에서는 시퍼런 고주파 플라즈마 에너지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뒤를 이어, 전신을 전투용 카본 아머로 무장한 블랙 가드 특수공작대원 수백 명이 군용 제트팩의 화염을 뿜으며 허공을 가로질렀다.

"목표 지점 확인! 하층가 저항군 및 반역자 무리 세력권 진입!"

"메인 서버의 칙령에 따라, 예외 없이 전원 사살 및 코어 회수 진행한다!"

차가운 기계음이 인공위성 통신망을 타고 구도심 전역에 울려 퍼졌다.

티타늄 그룹의 블랙 가드 총사령관 백무현이 부재한 지금, 현장을 지휘하는 대대장은 차가운 눈빛으로 터널 입구를 내려다보았다. 그들의 시선에 포착된 것은 공포에 질린 하층민들이 아니라, 오히려 은빛 마기를 두른 채 당당하게 걸어 나오는 강진혁과 니르바나의 전사들이었다.

"저기다! 저놈이 바로 사령부가 지목한 특수 실험체, 강진혁이다!"

"포격 준비! 모든 화력을 집중해라! 형체도 남기지 말고 갈아버려!"

휘익- 쾅! 쾅! 쾅!

골리앗 메카닉들의 어깨에 장착된 120미리 다연장 플라즈마 유탄 발사기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은 수십 발의 폭격 유탄이 진혁과 니르바나의 전사들이 서 있는 구역을 향해 빗발치듯 떨어졌다. 대기가 고열로 끓어오르며 사방이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해버렸다.

"큭……!"

송수연이 얼굴을 찡그리며 도검을 치켜들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움직이기도 전에, 진혁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검을 뽑아 들었다.

슈우우우-!

진혁의 단전에서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온 9,600 MW의 마기가 거대한 원형 방어막을 형성했다.

폭격 유탄이 진혁의 마기 방어막과 부딪치는 순간, 굉음과 함께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충격파가 터널의 암반을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진혁의 발끝은 단 1인치도 밀려나지 않았다.

"방심하지 마라."

진혁의 낮고 묵직한 음성이 니르바나 대원들의 고막을 때렸다.

그는 시스템의 HUD가 꺼진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적들의 미세한 탄도 궤적과 기계 장치의 공진 주파수를 오직 자신의 오감과 직관만으로 완벽하게 읽어내고 있었다.

"너희에게 심어준 나노 회로의 출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려라. 적들의 탄도가 흩어지는 그 틈새가 유일한 급소다."

"오오라아아아!"

진혁의 가르침을 받은 니르바나의 전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진혁이 직접 개법(改法)해 준 2세대 나노 회로 덕분에, 그들의 신체 능력은 방금 전까지의 오합지졸과는 완전히 달랐다. 손에 쥔 플라즈마 라이플에서 발사된 탄환들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뱀처럼 블랙 가드 특수부대원들의 방어막 공진 주파수를 정확히 파괴했다.

파직- 지지직!

"크아악!"

공중에서 날아오르던 블랙 가드 대원들이 기체 제어권을 잃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진혁이 마광신보(魔光信步)를 전개했다.

파지지직-!

빛의 잔상조차 남지 않는 극한의 고속 이동. 진혁의 형체가 선두에 있던 골리앗 메카닉의 정중앙에 나타났다.

진혁이 오른손에 쥔 [천마검(프로토 타입)]을 가볍게 휘둘렀다.

스으으으윽-

소리조차 나지 않는 참격이었다.

하지만 그 일격에 담긴 마검기(魔劍氣)는 골리앗 메카닉의 두꺼운 티타늄 장갑과 내부의 고출력 생체 코어를 두부 썰듯 단번에 양단해 버렸다.

쿠구구궁-!

순식간에 반으로 갈라진 골리앗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무너져 내렸다.

그 파편 사이로 쏟아져 나오는 플라즈마 에너지를, 진혁은 놓치지 않고 흡원천공으로 빨아들였다.

슈우우우욱-

단전 속에서 요동치던 9,600 MW의 마기 코어가 한계치를 돌파하며 더욱 거대하게 팽창했다.

진혁의 목과 손목을 따라 흐르던 은빛 회로선이 마치 살아 숨 쉬는 듯 붉고 검은 광채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가 아니다.'

진혁은 눈을 가늘게 뜨며 상층 마천루의 꼭대기를 올려다보았다.

그곳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을 진무극의 오만한 시선이 느껴지는 듯했다.

시스템의 보조 없이, 오직 자신의 육체와 무공만으로 세상을 짓밟는 자본의 본거지를 부수어 버린다. 그것이 지금 강진혁이 걷고 있는 길이었다.

"전군 진격한다."

진혁의 입술 사이로 서늘한 살기가 새어 나왔다.

"오늘 밤, 티타늄의 사냥개들을 완전히 씨를 말려버린다."

다음 화 바로보기 ›
이 작품, 여기까지 어떠셨나요? ★ 별점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