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전용 사이트예요. 댓글·로그인·좋아요는 준비 중이에요.
‹프로토콜: 천마 · 31화목차

제31화 저항군 '니르바나'

신서울의 하층.

영원히 해가 들지 않는, 칠흑 같은 매연과 녹슨 파이프의 미로 속.

그곳은 지상과는 완전히 다른 물리법칙이 지배하는 구역이었다.

구(舊)도심 폐공장 지대.

티타늄 그룹의 공장들이 환경 규제를 피해 밀어내고 버려둔 거대한 시멘트 유령 도시. 그늘진 사각지대마다 3계급 하층민들과 불법 개조로 인해 신체 일부가 기계로 변해버린 반란군들이 숨어 살고 있었다.

그 중심부에 위치한 니르바나의 본부.

과거 거대 제철소였던 폐건물의 철골 구조물 위로는 은밀하게 끌어다 쓴 고압 전선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파르스름한 스파크를 튕겨내고 있었다.

"이동 경로 확인했어? 오늘 밤 티타늄 그룹의 물류 트럭이 세 번째 블록을 지나갈 거야. 그 화물차에 실린 플라즈마 실린더를 털어야 해. 그래야 우리 구역의 자가 발전기를 이틀이라도 더 돌릴 수 있어."

붉은 머리를 거칠게 질끈 묶은 여전사, 송수연이 대형 도검을 바닥에 툭 내려놓으며 부대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지치지 않는 투지가 실려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짙은 피로가 묻어났다.

그녀가 이끄는 반(反)기업 저항군 '니르바나'.

티타늄 그룹의 독재에 맞서 슬럼가를 지켜온 유일무이한 무장 세력이었으나, 최근 회장 진무극이 추진하는 [헤븐리 파운데이션] 프로젝트의 여파로 그들의 세력권은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하층민 320만 명의 생체 코어를 한 번에 공진시켜 신서울 전체를 영구적인 감옥으로 만들겠다는 미치광이 계획.

그 D-7 시한이 다가올수록 티타늄 그룹의 블랙 가드들과 특수공작대들은 슬럼가를 향해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총수님! 바깥 감시망에 이상 포착입니다!"

철제 가설물 위에서 망원경을 들고 있던 정찰병이 다급하게 외쳤다.

송수연의 붉은 눈썹이 찌푸려졌다.

"블랙 가드인가? 이 시간대에 움직일 리가 없는데……."

"아닙니다. 차가 아닙니다. 한 명입니다. 걸어오고 있습니다."

"한 명이라고? 미쳤어? 이 구역에 혼자 걸어오는 새끼가 어디 있어?"

송수연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도검을 집어 들었다.

폐공장 정문, 녹슨 철제 셔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쾅-!

묵직한 충격음과 함께 셔터가 중앙부터 움푹 파였다.

일반적인 인간의 완력이 아니었다. 최소 4,000 MW 이상의 고출력 생체 코어나 나노머신을 극한까지 압축한 자만이 낼 수 있는 물리력.

'설마…….'

송수연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티타늄 그룹의 살인병기들이 본격적으로 소탕을 시작한 것인가?

콰아앙-!

두 번째 타격에 셔터가 완전히 종이장처럼 찢겨 나가며 안쪽으로 고꾸라졌다.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회색 매연과 쇳가루 사이로, 칠흑 같은 검은 머리와 차가운 흑안을 가진 사내가 걸어 들어왔다.

목과 손목을 따라 옅게 흐르는 은빛 회로 선.

그리고 손에 들린, 기묘하게 일그러진 청백색 빛을 발하는 검.

강진혁이었다.

"……뭐야, 넌?"

송수연이 대형 도검을 앞으로 겨누며 살기를 뿜어냈다.

그녀의 주변에 있던 니르바나의 정예 대원들 수십 명이 일제히 총구를 겨누며 진혁의 퇴로를 에워쌌다.

하지만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공장 내부를 가득 채운 허름한 장비들과, 부상당한 채 신음하는 하층민들의 기계 의수 위를 무심하게 스쳐 지나갔을 뿐이었다.

"강진혁이다."

나지막한 목소리.

그 세 글자에는 가벼운 농담조차 깃들지 않은, 뼛속까지 시린 냉기가 서려 있었다.

송수연의 눈이 가로로 찢어졌다.

신서울의 음지, 특히 티타늄 그룹과 천마회의 수뇌부 사이에서 최근 며칠간 회자된 이름.

지하 500층의 메인 서버실을 초토화하고 회장 진무극의 허를 찌른 뒤 홀연히 사라졌다는 그 괴물 같은 탈출자.

"네가…… 그 강진혁이라고? 티타늄 그룹이 쥐 잡듯 찾고 있다는 그 실험체 말이야."

"맞다면?"

"간이 부었구나.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와? 우리 니르바나는 네놈 같은 미치광이 복수귀가 숨어들 아가리가 아니야. 당장 꺼져라. 아니면 그 다리를 잘라주지."

송수연이 경고하듯 도검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지직-!

그녀의 무기에 내장된 화염 코어 에너지가 폭발하며 주변의 공기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고열의 플라즈마가 도검의 날을 따라 소용돌이치며 붉은 화염강(火焰剛)을 형성했다.

니르바나의 총수다운 실력.

단순한 하층민 저항군의 리더가 아니라, 스스로 3세대 나노머신과 화염계 생체 코어를 이식해 절정(絶頂)의 경지에 가까워진 무인임을 증명하는 일격이었다.

하지만 진혁의 얼굴에는 미동조차 없었다.

그의 단전 부근에서 조용히 소용돌이치는 9,600 MW의 마기 코어가 미세하게 맥동했다.

시스템의 HUD와 보조 연산 AI의 지원은 이미 영구적으로 차단한 지 오래였다.

오직 스스로의 직관과 기혈, 그리고 300화에 걸쳐 수련해 온 육체의 기억만이 그의 모든 감각을 통제하고 있었다.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 (HEAVENLY DEMON PROTOCOL) - User Override Mode]

------------------------------------------------------------------

■ 사용자: 강진혁 (실험체 07호)

■ 경지: 신천마신공 제5단계 [초월천마경 (超越天魔境)] (초입)

■ 생체 코어 출력: 9,600 MW (기기 제어 차단 / 순수 자가 운기)

■ 나노머신 동기화율: 98.9%

------------------------------------------------------------------

[Warning] 시스템 연산 보조 기능 꺼짐. 모든 판단은 사용자의 자아에 의존합니다.

------------------------------------------------------------------

'시스템이 없어도 상관없다.'

진혁은 눈을 가늘게 뜨며 속으로 되뇌었다.

그것은 가짜 힘에 의존하던 과거의 자신과의 결별이자, 진정한 의미의 '천마'로 거듭나는 과정이었다.

"말이 많더군."

진혁이 입을 열었다.

그의 흑안이 깊어지며 검은 마기가 주변의 공기를 순식간에 압축시켰다.

"내게 필요한 건 네놈들의 환대가 아니다. 니르바나의 정보력, 그리고 티타늄 그룹의 남은 기지 좌표다."

"건방진 새끼……! 네가 얼마나 대단한 실력자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니르바나의 구역에서 눈을 치켜뜨는 건 허락하지 않아!"

송수연의 얼굴에 분노가 어린 채, 그녀가 그대로 바닥을 박차고 날아오랐다.

콰아아앙-!

화염강을 두른 대형 도검이 진혁의 머리통을 향해 거칠게 내리꽂혔다.

공간이 갈라지는 듯한 고열의 폭풍이 폐공장의 먼지를 사방으로 날려버렸다. 주변의 대원들이 뜨거운 열기에 눈을 질끈 감을 정도로 압도적인 참격이었다.

하지만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참격을 향해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갔다.

슈우우웅-

진혁의 오른손에 감싸인 나노마갑이 금속성의 기계음을 내며 완벽한 밀도의 검은 암흑으로 물들었다.

그것은 단순히 기술을 흡수해 흉내 낸 것이 아니었다.

진혁 자신이 직접 빚어낸 순수한 기혈의 압축, [만법귀마]의 원리를 직관으로 재현한 일격이었다.

"보여주지. 네가 휘두르는 그 불길이 얼마나 가소로운지."

진혁의 입꼬리가 차갑게 호선을 그리며 말아 올라갔다.

폐공장의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의 충돌을 알리는 거대한 파공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화염강을 두른 대형 도검과 진혁의 맨손이 부딪친 지점은 순식간에 눈이 멀 정도로 찬란한 섬광과 함께 굉음을 토해냈다.

공기가 비명을 질렀다.

도검에서 뿜어져 나온 고열의 플라즈마 폭풍이 사방으로 튀며 폐공장의 녹슨 철골 구조물들을 붉게 달궜다. 주변에 서 있던 니르바나의 정예 대원들은 그 엄청난 충격파를 견디지 못하고 뒤로 십수 미터씩 밀려나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크윽……?!"

송수연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자신의 전신 코어 출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쏟아부은 일격이었다. 하층 구도심에서 그 어떤 블랙 가드의 간부라 할지라도 이 화염강에 직격당하면 그 자리에서 숯덩이가 되거나 방어막이 통째로 증발했을 터였다.

하지만 진혁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오른손 바닥은 펄펄 끓는 플라즈마의 중심부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음에도, 나노머신과 결합된 마기가 완벽한 장벽을 형성하여 화염을 한 치도 안으로 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도검의 날이 진혁의 손바닥에 가로막혀 더 이상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산을 정면으로 떠받친 듯한 압도적인 반발력.

"이럴 리가……! 내 화염강을…… 맨손으로 잡았다고?!"

송수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단순히 물리적 방어력을 높인 수준이 아니었다. 진혁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는 그녀의 도검에 담긴 플라즈마의 공진 주파수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그 에너지를 상쇄시키는 궤적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스으응-.

진혁의 입가에 옅은 조소가 맴돌았다.

그는 시스템의 HUD가 꺼진 상태였음에도, 적의 무공과 현대 기술이 충돌하는 순간의 파동을 오직 자신의 시각과 피부의 감각만으로 완벽하게 읽어내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시스템의 노예가 아니라, 기술을 지배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초월의 영역.

"끝이다."

진혁의 낮고 서늘한 음성이 송수연의 귓바퀴를 때렸다.

동시에, 진혁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9,600 MW의 마기가 폭발적으로 역류했다.

콰지지직-!

송수연의 도검을 타고 거꾸로 치솟은 검은 마기가 화염의 궤적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도검의 합금이 감당할 수 없는 고주파 진동과 마기의 압력이 결합하자, 무기 중앙부터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파지지직, 쾅-!

"크아아악!"

반작용으로 터져 나온 충격파에 송수연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뒤로 튕겨 나갔다. 그녀의 몸이 공장을 가로지르는 철제 기둥에 강하게 부딪친 뒤에야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털썩.

"총수님!"

니르바나의 대원들이 경악하며 송수연을 향해 달려갔다.

송수연은 입가에 피를 흘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가 부들거리는 손으로 다시 대형 도검을 집어 들려 했지만, 이미 도검의 날은 반쪽이 난 채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압도적인 무력의 차이.

저항군의 수장으로서 슬럼가를 지켜왔던 그녀의 자존심이 완전히 박살 나는 순간이었다.

진혁은 천천히 걸어가 송수연의 코앞에 멈춰 섰다.

그의 칠흑 같은 흑안에는 일점의 자비도 담겨 있지 않았다. 살기를 품은 눈빛이라기보다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냉정한 포식자의 시선에 가까웠다.

"살려달라고 빌 시간은 주지. 선택해라."

진혁의 목소리가 공장 내부를 무겁게 짓눌렀다.

"니르바나가 가진 티타늄 그룹의 기지 좌표와 보안 네트워크의 우회로를 넘겨라. 거절한다면, 이 구역에서 너희를 지탱하는 모든 인프라를 내 손으로 끝장내주마."

송수연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를 악물었다.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했지만, 그녀는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멍청이가 아니었다. 방금 전의 공방으로 자신과 이 사내의 격차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티타늄 그룹이라는 거대한 악에 맞서기 위해 그녀가 평생을 바쳐 찾아 헤매던 진짜 '괴물'이 바로 이 자였다.

"……하."

송수연이 피투성이가 된 입술을 비틀며 실소를 터뜨렸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부러진 검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들어 진혁의 차가운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미친 괴물 새끼…… 네가 왜 티타늄 그룹의 그 지독한 추적을 피해 살아남았는지 알겠군."

송수연이 바닥을 짚으며 힘겹게 상체를 일으켰다.

그녀의 눈빛에 서려 있던 경계와 적의는 어느새 묘한 빛을 띤 복종과 기대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정보는 네가 원하는 만큼 주지. 티타늄 그룹이 숨겨둔 하층민 감금 시설부터, [헤븐리 파운데이션]의 메인 서버 위치까지 전부 다."

송수연이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거칠게 웃었다.

"대신 조건이 있어. 니르바나의 전력을 네 작전에 전부 편입시켜라. 그리고 그 티타늄 회장 늙은이의 목을 벨 때, 우리 대원들의 손으로 직접 복수할 기회를 줘."

진혁은 말없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잠시 동안의 무거운 침묵이 흐른 뒤, 진혁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 한마디와 함께, 티타늄 그룹을 무너뜨리기 위한 하층 도시의 판도가 완전히 뒤틀리기 시작했다.

[SYSTEM INFO: 세력 동맹 성립 - 반(反)기업 저항군 '니르바나']

------------------------------------------------------------------

■ 현재 아지트: 신서울 구도심 3구역 폐공장

■ 확보된 정보: 티타늄 그룹 하층 감금 시설 및 보안 우회로

■ 남은 D-7 시한까지의 카운트다운 시작.

------------------------------------------------------------------

진혁은 뒤를 돌며 차갑게 읊조렸다.

"움직일 시간이다. 오늘 밤, 첫 번째 사냥을 시작한다."

다음 화 바로보기 ›
이 작품, 여기까지 어떠셨나요? ★ 별점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