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전용 사이트예요. 댓글·로그인·좋아요는 준비 중이에요.
‹인과부채 · 7화목차

7장 흑련회 장터

【 현재 부채 잔액: 28 / 100 】

청운문(靑雲門)의 후미진 뒷마당, 서산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지며 대지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갓 피어난 저녁 안개가 발목을 휘감는 서늘한 기운 속에, 한소운은 낡은 짚신을 질질 끌며 걸음을 옮겼다. 방금 전 진무겸과 백서린에게 가혹한 미래의 파편을 털어놓고 결의를 다진 직후였으나,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깊은 고뇌에 잠겨 있었다.

‘비무대회 참가 선언은 시작일 뿐이다. 판을 뒤집기엔 여전히 패가 부족해.’

천맹 청년 비무대회. 그것은 중원 무림의 정점이라 불리는 천맹(天盟)이 주관하는 거대한 제전이자, 강호의 권력 지형을 재편하는 잔혹한 시험대였다. 오대세가와 칠대문파의 내로라하는 후기지수들이 낙양으로 모여들어 실력을 겨루고, 그 결과에 따라 문파의 명운이 갈린다.

단순히 비무에서 승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남궁가가 수면 아래에서 어떤 자들을 매수하고 있는지, 혈월교와 그림자회의가 정확히 어떤 경로로 접촉하는지, 그리고 5년 전 멸문의 날 청운문을 배신한 천맹 내부의 배신자가 누구인지. 그 실체를 먼저 파악해야만 했다.

‘원래 역사 속의 나는 20년을 밑바닥에서 구르며 그 비밀의 조각들을 겨우 주워 담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시간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인과율을 비틀어서라도 강제로 정보를 끌어내야 해.’

소운의 망막 위로 투명한 장부의 환영이 떠올랐다. 천명장부(天命帳簿). 숫자는 여전히 28에 머물러 있었다. 단순히 마음을 먹거나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는 인과율에 큰 파장이 일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정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직접 운명의 흐름에 개입하는 순간, 장부는 자비 없는 이자를 청구할 터였다.

그때, 등 뒤에서 낙엽 밟는 소리가 들렸다. 기척을 숨기려 했으나 아직은 미숙함이 묻어나는 가벼운 발소리였다.

“소운아.”

돌아보니 백서린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허리에 보검을 찬 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소운을 쫓아와 있었다. 어둠이 짙어가는 달빛 아래, 그녀의 눈동자는 예의 그 날카로운 검기(劍氣)를 품은 채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왜 그러느냐? 수련은 벌써 끝낸 모양이지.”

“대사형은 장문인 어른을 뵙고 오겠다며 나갔어.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시려는 것 같아.……그런데 너는 지금 어디를 가려는 거야? 이 밤중에.”

“잠깐 다녀올 곳이 있다. 청운문의 미래를 위해 꼭 확인해야 할 것이 있어서 말이지.”

“나갈 곳? 산서성 바깥을 말하는 거야? 방금 전 흑련회 척후들을 해치우긴 했지만, 주변이 완전히 안전해진 건 아니잖아. 너 혼자 움직이는 건 위험해.”

서린의 목소리에는 동문수재로서의 걱정과, 최근 몰라보게 변한 소운에 대한 의구심이 묘하게 뒤섞여 있었다. 소운은 쓴웃음을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걱정 마라. 자살하러 가는 길은 아니니까. 그리고…… 네가 같이 가 준다면 훨씬 안전하겠지.”

“……내가?”

“그래. 요즘 네 검술 실력이 제법 늘었더군. 내 뒤를 든든하게 지켜줄 수 있겠어?”

서린은 예상치 못한 제안에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코웃음을 치며 검병을 꽉 쥐었다.

“말은 잘해요. 잡역부 시절부터 묘하게 사람을 부려 먹는 재주가 있단 말이지.……좋아. 대사형이 돌아올 때까지 시간이 좀 남으니까 같이 가 준다. 단, 딴짓하거나 위험한 곳에 발을 들이면 그 즉시 네 목에 칼을 들이밀 줄 알아.”

“으하하, 살벌하네. 역시 우리 문파 최고의 여검객답군. 따라와.”

두 사람은 청운문의 낮은 후문 담벼락을 가볍게 넘었다. 산서 외곽의 밤길은 정적 속에 잠겨 있었다. 예전의 소운이었다면 짐승의 울음소리 하나에도 심장이 내려앉았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역맥 수련으로 단전에 억지로 밀어 넣은 뜨겁고 거친 내력이 경맥을 타고 온몸을 휘돌고 있었다. 비록 사맥체의 완전한 해제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그의 신체 능력과 감각은 이미 평범한 무인의 경지를 아득히 넘어선 상태였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산서성에서 가장 거칠고 음험하기로 소문난 암시장, 일명 ‘흑풍장(黑風場)’의 입구였다.

정도의 비호를 받는 공식 상단들과 달리, 흑풍장은 법도와 규율이 미치지 않는 무법지대였다. 살수, 표국에서 쫓겨난 낙오자, 사파의 하급 정보원들이 모여 피비린내 나는 밀거래를 트는 곳. 원래 역사에서 소운은 이곳에서 쓰레기를 주워 먹으며 연명하다가, 우연히 흑련회와 관련된 하급 밀거래의 정황을 엿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이런 구역질 나는 곳에 왜 온 거야? 여긴…… 정마(正魔)를 막론하고 제정신 박힌 놈들은 발도 안 들이는 곳이잖아.”

흑풍장 초입에 들어서자, 백서린은 주변의 음산한 기운에 몸을 살짝 떨었다. 사방에서 풍겨오는 아편 냄새, 썩은 술 냄새, 그리고 은밀하게 감도는 피비린내가 골목의 공기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정보를 사야 하니까. 정공법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종류의 정보지.”

“정보를? 대체 누구한테?”

“기다려 보면 알 거다. 이곳의 주인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거든.”

소운은 삿갓을 깊게 눌러쓰며 어두운 골목 안으로 거침없이 걸음을 디뎠다. 흑풍장의 중심부로 들어갈수록 사람들의 인상은 험악해졌다. 얼굴에 깊은 흉터가 남은 표사들, 사파 무복을 대충 걸친 채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 낭인들이 번뜩이는 눈으로 이방인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소운은 망설임 없이 낡은 객잔의 뒷문으로 향했다. 먼지 쌓인 간판에는 ‘귀거래(歸去來)’라는 글귀가 비뚤비뚤하게 적혀 있었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자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의미였다.

끼익—

문이 열리자 매캐한 담배 연기와 함께 시끄러운 고함, 술잔 부딪치는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구석진 탁자에 앉아 있던 험상궂은 사내들이 소운과 서린을 힐끗 바라보았으나, 그들의 단정한 행색을 보고는 그저 뜨내기 어린아이들이라 판단했는지 곧 흥미를 거두었다.

소운은 주저하지 않고 탁한 나무 카운터 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졸린 눈으로 해진 장부를 뒤지고 있는 왜소한 체격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어이, 꼬마 손님. 여긴 애들이 술 마시는 데가 아니야. 물건을 팔러 온 거면 저쪽 장터로 꺼지고, 길을 잃은 거면 곱게 나가시지.”

사내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퉁명스럽게 뱉어냈다. 소운은 가볍게 웃으며 품 안에서 작은 은괴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툭 던졌다.

챙그랑-!

은괴가 굴러가는 맑은 소리에 사내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는 재빨리 은괴를 낚아채며 이빨로 깨물어 보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소운을 바라보았다.

“오…… 상권의 생리를 좀 아는 꼬마네? 그래, 뭘 찾으려고 이 비린내 나는 곳까지 오셨나?”

“물건이 아니라 사람을 찾는다. 정확히는…… 흑련회 산서 지부의 움직임에 대해 가장 잘 아는 놈을 만나고 싶군.”

순간, 사내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싹 사라지며 안면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는 손에 쥐었던 은괴를 다시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소운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꼬마야, 농담이 지나치군. 거긴 함부로 입에 올릴 이름이 아니야. 잘못하다간 네 혓바닥뿐만 아니라 목까지 달아난다고.”

“농담 같아 보이나?”

소운은 몸을 살짝 앞으로 숙였다. 그의 깊은 눈동자 속에서 흘러나온 서늘한 살기(殺氣)에 사내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것은 단순히 무공을 익힌 자의 기운이 아니었다. 수만 번의 죽음을 목도하고, 스스로도 그 경계에 서 본 자만이 뿜어낼 수 있는 압도적인 위압감이었다.

“내가 원하는 건 복잡한 게 아니다. 사흘 전 산서 북쪽 밀림에서 사라진 흑련회 척후병들의 행방, 그리고 그들이 낙양의 누구에게 보내려던 서신인지, 그 수신인의 명단만 있으면 돼.”

사내는 경악을 금치 못하며 소운을 바라보았다.

“네…… 네놈, 그걸 어떻게 알아? 그 척후들은 분명 흔적도 없이 증발했……!”

“그 흔적을 지운 게 나니까.”

소운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에 사내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벙긋거렸다.

바로 그때였다.

지하로 내려가는 어두운 계단 쪽에서 가벼운 발소리와 함께 맑으면서도 가시 돋친 소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후훗, 이거 참 재미있는 손님이 들었네. 흑련회의 정예 척후를 단숨에 처리한 실력자가, 이런 삼류 객잔의 하급 정보원에게 고개를 숙이고 물어볼 정도라니.”

어둠 속에서 한 소녀가 유령처럼 걸어 나왔다. 나이는 서린과 비슷한 열여섯이나 열일곱쯤 되어 보였다. 칠흑처럼 검은 비단 장포를 걸치고, 손에는 상아로 만든 작은 주판을 들고 알을 튕기는 모습이 기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녀의 뒤에는 거대한 대검을 등에 멘 호위무사 두 명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있었다.

백서린은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끼고 손을 검병에 올렸다.

“너는 누구냐? 이 불결한 곳의 주인인가?”

소녀는 주판을 딱 멈추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눈매가 가느다란 반달처럼 휘어졌다.

“내 이름은 독고염(獨孤艶). 이 흑풍장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적절한 가격으로 대답을 해주는 상인이지.”

독고염. 소운의 머릿속에서 기억의 파편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독고염……! 맞다, 흑련회 정보 상인 가문의 서출이자, 훗날 장부의 흐름을 두고 나와 수천 번의 거래를 트던 그 독사 같은 년이야!’

원래 역사에서 독고염은 흑련회와 천맹 사이의 은밀한 밀거래를 중개하며 막대한 부를 쌓던 정보계의 거물이었다. 비록 사파의 자락에 발을 담그고 있었으나, 철저한 실리주의자였기에 합당한 대가만 지불한다면 부모의 비밀이라도 팔아넘길 위인이었다.

독고염은 소운을 흥미롭다는 듯이 관찰했다.

“너 말이야, 참으로 기묘한 기운을 풍기고 있네. 내공을 다루는 법이 정통 문파의 그것이 아니야. 아주 거칠고 잔인한 방식을 억지로 짓눌러 담았어. 그런 몸으로 흑련회의 척후를 꺾다니, 보통 배짱이 아니거나 아니면 미친놈이겠지.”

“정보를 사러 왔다, 독고염. 헛소리는 관두지.”

소운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네가 원하는 게 정보라면, 나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해야겠지? 하지만 꼬마야, 네가 가져온 은괴 몇 쪼가리로는 내 정보의 값어치를 매길 수 없어. 이건 흑련회, 그리고 그 위에 군림하는 ‘오대세가’의 그림자에 관한 이야기니까.”

독고염이 손가락으로 주판알을 딱 튕겼다. 그 소리가 마치 사형 집행인의 종소리처럼 객잔 안에 울려 퍼졌다.

【 경고: 중대한 미래의 비밀에 접근하려 합니다. 】

【 독고염과의 거래 성사 시, 인과율의 왜곡으로 인해 막대한 대가(부채)가 청구됩니다. 】

【 현재 부채 잔액: 28 / 100 】

소운의 시야에 붉은색 경고 문구가 점멸했다.

‘알고 있다. 여기서 정보를 얻는 순간, 남궁가와 흑련회의 연결 고리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그로 인해 내가 아는 미래는 또다시 격렬하게 비틀릴 것이다.’

하지만 물러설 곳은 없었다. 모르는 채로 당하느니, 차라리 빚을 지더라도 적의 목줄을 쥘 카드를 확보해야 했다. 소운은 주머니에서 은괴가 가득 찬 주머니를 꺼내 탁자 위에 쾅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았다.

“은으로 부족하다면, 이걸로 거래하지.”

소운이 꺼낸 것은 금빛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작은 철편이었다. 그것은 방금 전 처리한 흑련회 살수들의 품에서 빼낸, 산서성 내부의 은밀한 밀거래 암호와 직인이 새겨진 특수 패(牌)였다.

독고염의 눈이 순간적으로 크게 떠졌다. 그녀의 손에서 주판알 튕기는 소리가 멎었다.

“……이건! 흑련회 산서 지부의 핵심 간부만이 소지할 수 있다는 ‘혈련패(血蓮牌)’잖아? 이걸 네가 어떻게……”

“이게 있으면, 내가 원하는 답을 내놓을 수 있겠나?”

독고염은 장난기를 지우고 철편을 집어 들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이제 상인 특유의 차갑고 계산적인 광채가 서려 있었다.

“……후훗. 과연, 보통내기가 아니군. 좋아. 네가 가져온 이 패 하나면, 내가 아는 모든 금기를 팔아넘기기에 충분하고도 남지.”

독고염은 몸을 앞으로 숙이며 목소리를 한층 낮췄다.

“잘 들어. 흑련회는 단순한 산적 떼가 아니야. 그들은 천맹 내부의 ‘그림자회의’와 손을 잡고, 다가오는 청년 비무대회에서 천맹의 핵심 후기지수들을 몰살할 계획을 세우고 있어. 그리고 그 계획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가문이 어딘지 알아?”

백서린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녀의 손이 검병을 쥔 채 바르르 떨렸다.

“설마…….”

“그래. 오대세가 중 하나인 남궁가(南宮家). 그중에서도 차남인 남궁휘가 직접 혈월교의 밀사와 접촉해 자금과 독약을 대고 있지. 비무대회는 단순한 경합의 장이 아니야. 천맹을 내부에서부터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기 위한 거대한 무덤이지.”

독고염의 말은 20년 전 소운이 온몸으로 겪었던 참혹한 진실과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치했다.

그 순간, 소운의 머릿속에서 천명장부가 핏빛 광채를 내뿜으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 중대한 미래의 진실을 확정했습니다. 】

【 인과율의 궤적이 크게 변동합니다. 】

【 부채 +15 증가. 】

【 현재 부채 잔액: 43 / 100 】

쿠우우—!

뇌장을 울리는 묵직한 진동과 함께, 단전 깊숙한 곳에서부터 얼음처럼 차가운 압박감이 전신을 짓눌렀다. 부채가 28에서 43으로 수직 상승했다. 역맥 수련으로 억지로 넓혀놓았던 경맥이 비명을 지르며 뒤틀렸고, 울컥 솟구친 피 맛이 소운의 입안을 가득 채웠다.

“……크윽.”

소운은 이를 악물고 신음을 삼켰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소운아! 너 왜 그래? 안색이…… 피가 나잖아!”

옆에서 지켜보던 서린이 경악하며 소운의 팔을 붙잡았다.

소운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손을 들어 서린을 제지했다.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이었으나, 그의 입가에는 오히려 승리자의 기괴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괜찮다……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대가야.”

정보를 얻었다. 남궁휘가 흑련회와 결탁하여 비무대회를 피로 물들이려 한다는 결정적인 확증을 손에 넣었다. 이제 비무대회는 단순한 실력 증명의 장이 아니라, 그들의 음모를 정면으로 분쇄해야 할 전쟁터가 되었다.

독고염은 고통 속에서도 눈빛을 잃지 않는 소운을 흥미롭다는 듯이, 혹은 경외스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너, 정말 알 수 없는 녀석이네. 그런 끔찍한 진실을 듣고도 도망치기는커녕 웃음을 지어? 제정신이 아니거나, 아니면…… 정말로 세상을 통째로 바꿀 작정이거나.”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을 거다.”

소운은 탁자 위의 혈련패를 그대로 독고염에게 밀어주며 비틀거리면서도 당당히 일어섰다.

“거래는 끝났다. 이 정보는 내가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사용해주지.”

“잠깐, 소운.”

독고염이 미소를 지으며 소운의 옷자락을 가볍게 붙잡았다.

“너희 청운문은 지금 먼지보다도 힘이 없는 삼류 문파에 불과해. 그런 곳에서 아무리 발버둥 친다고 해도 남궁가와 흑련회가 일으킨 거대한 해일을 막아내지는 못해. 만약…… 네가 정말로 그 판을 뒤엎을 힘이 필요하다면, 나중에 다시 나를 찾아와.”

“네가 내 편이라도 되어주겠다는 건가?”

“후훗, 상인은 오직 이윤이 남는 쪽에 붙을 뿐이야. 하지만 네가 이번 대회에서 살아남는다면, 난 언제든 너와 더 거대한 거래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소운은 그녀의 손을 무심하게 뿌리치며 객잔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반드시 살아남을 거다. 너와 다시 거래를 트기 위해서라도 말이지.”

객잔을 나와 흑풍장의 어두운 골목을 빠져나올 때, 밤공기는 유독 시리고 날카로웠다.

백서린은 소운의 옆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참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소운아…… 아까 그 정보, 정말인 거야? 남궁가가 정말 우리를…… 아니, 천맹을 배신한 거라고?”

“그래.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진실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돼? 비무대회에 나가서 그들의 음모를 폭로한다고 해도, 오대세가의 막강한 권력 앞에서 우리 같은 삼류 문파의 말을 누가 믿어주겠어?”

서린의 목소리에는 깊은 절망과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것은 당연한 공포였다. 강호는 힘의 논리로 돌아가는 곳이며, 힘없는 자의 진실은 거대한 가문의 방패 앞에 허무하게 흩어지는 먼지와 같았으니까.

소운은 밤하늘에 박힌 차가운 별들을 올려다보며 검지에 서린 힘을 더욱 꽉 쥐었다. 단전에서부터 역류하는 내력이 전신의 경맥을 타고 타오르듯 퍼져나갔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면, 믿을 수밖에 없도록 증명하면 된다.”

소운의 시선이 다시 한번 허공에 떠오른 붉은 장부를 향했다.

【 현재 부채 잔액: 43 / 100 】

【 다음 청구까지 남은 시간: 48시간 】

부채는 늘어났지만, 그만큼 판을 뒤흔들 치명적인 패를 손에 쥐었다. 청운문의 멸문을 막고, 남궁가의 오만을 꺾어버릴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낙양을 향한 비무대회의 서막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비로소 오르고 있었다.

다음 화 바로보기 ›
이 작품, 여기까지 어떠셨나요? ★ 별점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