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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부채 · 6화목차

6장 백서린의 의심과 깨어나는 검광

새벽의 냉기가 청운문의 낡은 마당을 휩쓸고 지나갔다.

방금 전까지 치열한 생사고가 벌어졌던 마당 한구석에는 검붉은 핏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 위로 차갑게 내려앉은 아침 이슬이 핏방울과 섞여 기괴한 얼룩을 만들어냈다. 흑련회의 척후, 그 살수의 시신은 이미 뒷산의 깊은 골짜기에 은밀하게 암매장된 후였다. 뒷처리를 마친 세 사람이 대청마루에 모여 앉았을 때, 공기는 여전히 무겁고 팽팽한 긴장감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백서린이었다. 그녀는 평소 애지중지하던 청강검의 손잡이를 부서질 듯 꽉 쥐고 있었다. 방금 전의 실전에서 필사적으로 검을 휘두른 탓에 손바닥에는 물집이 잡히고 핏기가 배어 있었으나, 그녀는 통증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오직 날카롭게 벼려진 눈빛만이 한소운의 얼굴을 꿰뚫을 듯 응시하고 있었다.

“대사형도, 나도 속이고 있었던 거네. 그렇지, 소운아?”

한소운은 대답 대신 가늘게 떨리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사맥체(死脈體)를 억지로 뒤틀어 내력을 운용한 대가는 매서웠다. 전신의 경맥이 바늘에 찔리는 듯 화끈거렸지만, 그는 표정을 갈무리하며 침묵을 지켰다. 백서린의 추궁은 멈추지 않았다.

“마당에 숨어들 척후의 정체를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움직였어. 칼을 쥐는 법도, 사람의 치명적인 혈도를 노리는 방법도…… 잡역부로 일하던 네가 평생 배운 적 없는 것들이야. 아니, 우리 문파의 무공조차 아니었지. 게다가……”

백서린은 마른침을 삼키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 목소리에는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과 의구심이 뒤섞여 있었다.

“혈월교가 이 산서 땅까지 진입할 거라는 그 끔찍한 소리. 너는 그걸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 거야? 마치…… 모든 일을 직접 겪어본 사람처럼 말이야.”

옆에 앉아 있던 진무겸 역시 입을 다문 채 소운을 바라보았다. 대사형으로서 문파를 이끌어야 할 그였지만, 지난밤 소운이 보여준 압도적인 상황 판단력과 비인간적일 만큼 침착한 생존 감각은 단순한 ‘눈치 빠른 잡역부’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그것은 수많은 시체 더미와 피비린내 속에서 수십 년을 구른 백전노인의 눈빛이었다. 소년의 껍데기를 쓰고 있을 뿐, 그 안에는 낡고 지친 영혼이 들어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

소운은 차갑게 식어버린 찻사발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숨길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진무겸과 백서린을 인과의 굴레로 끌어들이기로 마음먹은 이상, 이 거대한 천명장부의 무게를 혼자 짊어질 수는 없었다. 그들이 알아야 할 진실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소운이 낮고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갈라진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나는 한 번 죽었다가 살아났다.”

“……뭐?”

백서린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진무겸의 눈썹도 움찔거렸다. 소운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뒤의 미래에서, 나는 이 땅을 다시 밟았다.”

바람이 툇마루를 스치며 스산한 소리를 냈다. 진무겸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소운아, 지금 농담할 상황이 아니라는 건 너도 알 텐데. 회귀라니, 그게 무슨 전설 속의……”

“농담 같나?”

소운이 고개를 들어 진무겸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그 서늘하고도 지독한 허무가 담긴 눈빛에 진무겸의 웃음기가 순식간에 걷혀 나갔다. 사람의 눈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원망하고, 다시 그 세상을 구하려다 실패해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잿빛 눈동자였다.

“5년 뒤, 혈월교의 선봉이 이 산서를 덮칠 거다. 천맹 내부의 배신자가 문파의 결계 정보를 넘겨주겠지. 그날 밤, 청운문은 하룻밤 사이에 완전히 잿더미가 될 거야. 장문인 어른은 마당 한가운데서 목이 잘려 효수되고, 대사형은 문파의 정문을 지키다 수십 자루의 검에 꿰뚫려 쓰러진다. 내가 직접 보았다. 대사형의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

진무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소운의 시선은 이제 백서린에게 향했다. 그녀의 얼굴은 이미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리고 너, 서린아. 너는 그날 밤 혈월교의 고수에게 붙잡혀 서역으로 끌려간다. 그곳에서 인간으로서의 모든 기억을 지운 채, 오직 사람을 베기 위해 태어난 살인병기…… ‘혈월검희(血月劍姬)’로 타락하지. 내가 20년을 그 지옥 속에서 살다 죽을 때까지, 내 마지막 임무는 피투성이가 된 너를 내 손으로 처형하는 것이었다.”

대청마루를 감싼 공기가 짓이겨진 것처럼 무거워졌다. 백서린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듯 가슴을 움켜쥐었다. 소운의 목소리에는 거짓말을 하는 자 특유의 떨림이나 허세가 전혀 없었다. 그것은 너무나 선명하고, 너무나 지독하게 절망적인 진실의 무게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다.

“……증거는?”

백서린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눈물마저 고인 눈으로 그녀가 소운을 노려보았다.

“네가 그런 끔찍한 미래를 겪었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는데? 우리가 왜, 네 그 말도 안 되는 망상을 믿어야 하냐고!”

“증거?”

소운은 피식 웃으며 자신의 왼쪽 가슴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눈에 보이는 증거 따윈 없다. 하지만 내가 아니었다면 오늘 밤 너희 둘은 저 척후의 칼에 무참히 목이 따였겠지. 그것만으로 부족한가? 아니면 내 몸뚱이가 이 모양 이 꼴인 이유를 설명해 보지. 선천적으로 경맥이 막혀 평생 무공을 익힐 수 없다던 사맥체가 어떻게 내력을 다루게 되었는지, 그것도 설명해 봐.”

진무겸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소운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의 거친 손아귀에서 진한 내력이 흘러나와 소운의 경맥 속으로 파고들었다. 진무겸의 얼굴이 순식간에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건…… 말도 안 돼. 내력이 흐르고 있어. 분명 사맥체인데, 맥이 엉망으로 꼬인 채로 억지로 뚫려 있어…… 이건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몸을 망가뜨리는 자해를 넘어서, 영혼을 깎아 먹는 수련법인데…… 소운아, 너 어떻게 살아 있는 거냐?”

“빚을 졌으니까.”

소운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하늘에, 혹은 이 세상의 인과에. 미래를 바꿀 때마다 나는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 그 빚을 갚기 위해 내 육신과 생명을 담보로 살아간다. 너희와 함께 살기 위해서, 그리고 이 문파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 말이지.”

그 순간, 소운의 망막 위로 푸르스름한 글귀가 차갑게 떠올랐다.

【 인과율 개변에 따른 경고. 】

【 핵심 인물들에게 미래의 편린과 진실이 공유되었습니다. 】

【 공동 장부의 결속력이 강화됩니다. 】

【 현재 부채 잔액: 28 / 100 】

소운은 눈을 깜빡이며 시스템의 변화를 주시했다. 미래의 비밀을 털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부채가 급증하지 않은 것은, 이미 진무겸과 백서린이 ‘공동 장부’의 테두리 안에서 소운과 인과를 나누어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비밀의 공유는 오히려 그들의 결속을 단단하게 만들었고, 인과의 파동을 분산시켰다.

진무겸은 한참 동안 소운의 손목을 잡고 있다가 천천히 손을 놓았다. 그의 얼굴에는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이성과, 눈앞의 소년이 보여주는 기괴한 진실 사이의 충돌. 하지만 대사형으로서 청운문을 지켜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이 결국 그의 의심을 눌렀다.

“……믿지 않을 수가 없군.”

진무겸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너처럼 미련하고 독하게 내력을 우겨넣는 놈은 세상에 너 하나뿐일 테니까. 그리고…… 어젯밤 그 살수를 처리할 때, 네가 내 사각을 마치 다 안다는 듯 메워주던 그 움직임은 절대 하루아침에 나올 수 있는 게 아니었어. 수백 번, 수천 번 합을 맞춰본 동료의 움직임이었지.”

진무겸은 고개를 돌려 백서린을 바라보았다. 백서린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하고 아랫입술을 짓씹고 있었다.

“서린아.”

“대사형…… 정말 저 말을 다 믿는 거야? 우리가 다 죽고, 내가 괴물이 된다는 저 끔찍한 소리를?”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어젯밤 우리가 죽을 뻔했다는 것, 그리고 소운이가 우리를 살렸다는 건 진짜다. 만약 소운의 말이 맞다면, 우리가 여기서 가만히 앉아 있는 건 죽음을 기다리는 바보 짓일 뿐이야.”

진무겸은 다시 소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래, 소운아. 네 말대로 우리가 5년 뒤에 멸문당할 운명이라고 치자. 그럼 지금 우리는 무얼 해야 하지? 삼류 문파에 불과한 우리가 당장 그 거대한 혈월교를 막을 힘이라도 생기나?”

“당장 혈월교와 전면전을 벌일 생각은 없다. 그건 자살행위니까.”

소운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의 청운문 마당을 내다보았다. 산서의 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서 문파의 낡고 해진 기와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 가지다. 첫째, 문파의 내실을 다지는 것. 특히 너희 두 사람의 실력을 최소한 화경(化境)의 문턱까지는 끌어올려야 한다. 둘째, 천맹 내부에서 청운문을 향한 멸시 어린 시선을 바꾸고 확실한 우군을 만드는 것. 그리고 셋째……”

소운의 눈빛이 매섭게 가라앉았다.

“흑련회 뒤에서 움직이는 진짜 배신자, ‘그림자회의’의 꼬리를 잡는 거다.”

“그림자회의?”

백서린이 생소한 이름에 의문을 표했다.

“그래. 5년 뒤 우리를 배신하고 혈월교의 길잡이 노릇을 한 천맹 내부의 파벌이지. 그 녀석들이 지금 낙양의 명문가들과 손을 잡고 산서를 노리고 있다.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그놈들보다 한 발 앞서 움직여야 해.”

소운은 머릿속의 천명장부를 열었다. 현재 공덕 5포인트가 남아 있었다. 장부의 정보 열람 기능을 사용한다면, 당장 산서 주변을 노리는 흑련회의 다음 움직임이나 낙양의 동태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얻을 수 있을 터였다.

【 공덕 5를 소모하여 ‘주변 인과의 파동’을 열람하시겠습니까? 】

( 예 / 아니오 )

소운은 망설임 없이 ‘예’를 선택했다.

즈윽—!

시야가 잠깐 흐려지더니, 뇌리에 얼음처럼 차가운 정보가 밀려들어왔다.

【 정보 갱신: 흑련회의 척후 처치로 인해, 산서 지부장 ‘독고룡’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

【 추가 경고: 일주일 뒤, 천맹 청년 비무대회의 참가 통지서가 청운문으로 날아듭니다. 남궁가의 음모가 그곳에서 시작됩니다. 】

‘청년 비무대회……!’

소운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원래 역사에서 청운문 같은 삼류 문파는 초청조차 받지 못했던 대회였다. 그러나 소운이 역사의 흐름을 비틀어버린 여파로, 오히려 더 거대한 위험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남궁가의 차남, 남궁휘. 그림자회의의 충직한 하수인인 그 귀공자가 청운문을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바뀐 미래가 더 빨리 덮쳐온다. 인과의 반동인가.’

소운은 이를 악물었다. 빚을 진 대가로 미래를 바꾸었지만, 그 나비효과는 더 거대한 해일이 되어 그들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소운아?”

진무겸이 불안한 표정으로 소운을 불렀다. 소운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과 파랗게 질린 안색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안색이 왜 그러냐? 또 내상이 도진 거야?”

“아니다.”

소운은 이마의 땀을 털어내며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아프진 않아. 다만……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없다는 걸 깨달았을 뿐이지.”

소운은 마당 한복판에 세워진 낡은 목검을 집어 들었다. 역맥 수련의 여파로 손바닥은 이미 터져 피가 배어 나왔고, 전신의 경맥은 수만 개의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하지만 물러설 곳은 없었다. 여기서 멈추면 5년 뒤의 그 참혹한 처형장이 다시 그들을 기다릴 뿐이다.

“대사형, 서린아.”

소운이 두 사람을 돌아보며 단호하게 선언했다.

“오늘부터 수련 방식을 전면 개편한다. 정석적인 문파의 초식 따위는 집어치워. 그건 평화로운 시대의 유희일 뿐이다. 당장 실전에서 살아남는 살법, 가장 더럽고 가장 빠른 검법을 가르쳐 줄 테니까.”

백서린은 여전히 소운의 태도가 낯설었지만, 더 이상 그를 예전의 어린 잡역부로 보지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서늘한 검광이 그녀의 눈동자에 맺혔다.

“……좋아. 네 말이 전부 사실이든 아니든, 우리를 지키기 위해 네가 미쳐가고 있다는 것쯤은 알겠어. 해보자고, 그 살법이라는 거.”

진무겸 역시 허리에 검을 고쳐 차며 씩 웃었다.

“잡역부 놈한테 검술을 배우게 될 줄이야. 장문인 어른이 아시면 기절초풍하실 노릇이지만…… 뭐, 문파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대사형 체면쯤은 잠시 접어두지.”

세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교차했다.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지려던 회귀자의 고독한 투쟁은 끝났다. 이제 청운문의 세 청년은 가혹한 운명의 바퀴를 함께 밀어 올리기 위해, 피비린내 나는 수련의 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마당 위로 떠오른 아침 햇살이 세 사람의 검끝에 서늘하게 부서지고 있었다.

태양이 중천에 떠오를 무렵, 청운문의 후원은 거친 숨소리와 날카로운 쇳소리로 가득 찼다. 평소라면 마당을 쓸고 장작을 패야 할 시간이었지만, 세 사람은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서로의 검세를 받아내고 있었다. 진무겸의 검법은 정통파답게 묵직하고 견고했으며, 백서린의 검은 타고난 재능을 바탕으로 매끄럽고 날카로웠다. 그리고 그 사이를 파고드는 소운의 검은 잔인하리만치 효율적이었다.

초식의 화려함이나 정합성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오직 상대의 급소를 노리고, 자신의 사각을 동료에게 맡기며, 가장 짧은 궤적으로 적의 숨통을 끊는 실전 위주의 합격(合擊)만이 존재했다.

“거기, 검끝이 너무 높다!”

소운이 목검으로 진무겸의 옆구리를 거칠게 쳐내며 소리쳤다.

“상대가 사파 놈들이라면 그 찰나의 빈틈에 벌써 목이 날아갔어! 단전을 낮추고, 기를 경맥 끝까지 억지로라도 밀어 넣으란 말이다!”

“이 자식, 진짜 잡역부 하던 짬 어디 안 가는군. 지휘하는 꼴이 아주 장군 나셨어!”

진무겸이 헉헉대며 숨을 몰아쉬었지만, 그의 눈에는 묘한 흥분과 생기가 서려 있었다. 과거의 역사에서 그는 무력하게 베여 죽었지만, 지금 그는 스스로 단전을 짜내며 소운의 낯선 지시를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있었다. 사맥체를 억지로 뚫어내며 단련한 소운의 기운이 합격을 통해 진무겸의 경맥에도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었다.

백서린은 땀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검을 거두었다. 손바닥은 이미 터져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지만, 눈빛은 처음 마당에 모였을 때보다 훨씬 단단해져 있었다. 소운이 알려준 ‘살법’은 정파의 눈에는 비정하고 사악해 보일지 몰라도, 그것은 철저하게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한 생존의 기술이었다.

“잠깐 쉬지.”

소운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온몸의 경맥이 뜨겁게 달아올라 마치 불길이 속에서 치솟는 것 같았다. 역맥 수련의 부작용이었다. 억지로 열어젖힌 경맥은 아직 온전하게 자리를 잡지 못해, 조금만 무리해도 전신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진무겸이 물통을 들고 와 소운에게 건넸다.

“몸이 그 지경인데 괜찮냐? 어젯밤부터 계속 무리하고 있잖아.”

“안 괜찮아.”

소운은 물을 벌컥벌컥 마신 뒤,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멈출 시간이 없어. 일주일 뒤면 천맹에서 비무대회 통지서가 올 거다. 그 말은 남궁가의 개들이 우리를 예의 주시하기 시작했다는 뜻이지.”

“남궁가라면…… 오대세가 중 하나인 그 남궁가 말이지?”

백서린이 다가와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삼류 문파인 우리가 오대세가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들이 우리를 주목해? 애초에 잡역부였던 네가 그런 비밀스러운 정보를 어떻게 아는 거야?”

소운은 잠시 말을 고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남궁가의 차남, 남궁휘. 겉으로는 더없이 인자하고 정의로운 귀공자 행세를 하고 있지만, 그 녀석의 실체는 그림자회의의 핵심 하수인이다. 5년 뒤 혈월교가 산서를 휩쓸 때, 내부에서 문을 열어준 게 바로 그놈들이야. 그리고……”

소운의 시선이 백서린의 눈에 고정되었다.

“그놈이 산서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간단해. 청운문에서 가장 뛰어난 검재(劍材)를 지닌 너, 백서린. 그놈은 널 자신의 수족으로 삼아 이용하거나, 혹은 나중에 방해될 싹을 미리 꺾어버릴 생각이다.”

백서린의 얼굴이 파르르 떨렸다. 자신이 훗날 혈월교의 살인병기가 된다는 예언에 이어, 오대세가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은 십대 후반의 소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진실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도망치지 않았다. 백서린은 자신의 검을 꽉 쥐며 이를 악물었다.

“……내가 그 남궁 녀석의 표적이라고? 감히 나를?”

“그래. 그러니까 우리가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는 없어. 비무대회가 열리면, 나도 제자의 자격으로 참가한다.”

“네가?”

진무겸과 백서린이 동시에 소운을 바라보았다.

“사맥체라 내력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이제 겨우 검을 잡기 시작한 네가 대천맹 청년 비무대회에 나간다고? 거기는 중원 각지의 괴물 같은 천재들만 모이는 곳이야!”

“그러니까 나가는 거다.”

소운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숨어 있어 봐야 어차피 5년 뒤에는 다 죽는다. 차라리 판을 일찍 흔들어야지. 천맹의 눈앞에서 남궁가의 뒤통수를 치고, 청운문의 이름을 강호에 각인시킨다. 그래야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명분과 공간이 생겨.”

소운의 머릿속에서 천명장부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 미래의 큰 흐름을 능동적으로 바꾸려 시도합니다. 】

【 ‘천맹 청년 비무대회 참가’ 계획 수립 확인. 】

【 현재 부채 잔액: 28 / 100 】

아직 부채는 늘어나지 않았다. 계획을 세운 것만으로는 인과율에 커다란 균열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대회에 나가서 남궁가의 계획을 어그러뜨리는 순간,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거대한 부채가 쏟아질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상관없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니까.’

소운은 주먹을 꽉 쥐었다. 혼자서 짊어지던 고독한 빚이 이제는 세 사람의 어깨로 나누어져 있었다.

“대사형.”

소운이 진무겸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장문인 어른께는 내가 직접 말씀드릴 테니, 일주일 동안 문파의 방어 태세를 점검해 줘. 그리고 서린아, 너는 나와 함께 기초 살법을 극한까지 끌어올린다. 일주일 안에 남궁가의 검사들과 맞설 수 있게.”

진무겸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소운을 단순한 잡역부로 대하는 이는 청운문에 없었다. 그는 이 낡은 문파를 지켜낼 유일한 지략가이자,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선구자였다.

“좋다. 장문인 어른은 내가 어떻게든 설득해 보마. 네 말대로 가만히 앉아 죽기보다는, 칼을 뽑아 들고 싸우다 죽는 게 우리 청운문의 기개에 맞겠지.”

백서린 역시 일어서며 검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남궁가의 귀공자든 뭐든, 날 건드리려 한다면 그 녀석 목에 내 검을 먼저 박아줄 테니까. 준비해, 소운아.”

세 사람의 결연한 눈빛이 마당 한가운데서 충돌했다. 풍전등화와 같았던 삼류 문파 청운문에서, 비틀린 운명의 바퀴를 되돌리기 위한 반격의 시계추가 마침내 거대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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