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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부채 · 5화목차

5장 인과의 무게를 나누는 자들

달빛조차 숨을 죽인 야삼경(夜三更), 청운문의 낡은 앞마당에는 서늘한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깨진 기와 틈새로 스며든 밤바람이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며 문파의 퇴락한 풍경을 훑고 지나갔다. 마당 한편에 아무렇게나 쌓인 장작더미에서 썩은 나무가 삐걱거리며 비명을 질렀고, 그 소리는 마치 몰락해가는 문파의 마지막 신음처럼 들렸다.

과거의 한소운이었다면 이 시간에 홀로 차가운 바닥을 쓸거나, 고단한 몸을 뉘이고 내일의 끼니를 걱정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두 사람의 강렬한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한 채 우뚝 서 있었다. 대사형 진무겸과 장문인의 금지옥엽 백서린. 청운문의 미래를 짊어진 두 천재가, 일개 잡역부에 불과했던 소년의 입술 끝에 매달려 있었다.

진무겸의 굵은 미간이 깊은 골을 만들며 패어 들어갔다. 그는 자신의 손바닥 아래에 놓인 소운의 손등을 뚫어지게 내려다보더니, 이내 거친 콧방귀를 내뿜으며 손을 거두었다.

“흐음. 미쳐도 보통 미친 게 아니군. 잡역부 놈이 장문인의 딸과 대사형을 한자리에 불러다 놓고 기괴한 마술이라도 부리겠다는 거냐?”

그의 어조는 여전히 거칠었으나, 눈빛에는 감출 수 없는 의구심과 기묘한 신뢰가 뒤섞여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철검표국의 사주를 받은 무뢰배들이 문파의 문턱을 넘보며 횡포를 부릴 때, 이 보잘것없던 소년은 귀신같은 계산과 수법으로 그들을 몰아냈다. 게다가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는 진무겸 자신의 몸 상태였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진무겸의 단전은 진흙탕처럼 탁했고, 기혈은 제멋대로 역류하여 밤마다 피를 토하는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소운이 일러준 미세한 호흡법을 따르고, 그가 직접 짚어준 경맥의 혈도를 자극한 뒤로 가슴을 짓누르던 체증이 거짓말처럼 씻겨 내려갔다. 그것은 단순히 무공의 이해도가 높다는 수준을 넘어, 마치 인체의 지도를 머릿속에 통째로 그려 넣은 자만이 부릴 수 있는 신기(神技)였다.

“술수가 아닙니다, 사형.”

소운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마당의 정적을 가를 만큼 단단했다.

“앞으로 닷새 뒤, 철검표국은 오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무리를 이끌고 다시 돌아올 겁니다. 그때는 단순한 빚 독촉으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산서성 전체를 어둠으로 물들이고 있는 흑련회(黑蓮會)의 끄나풀들이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들의 칼날이 청운문을 겨누는 순간, 이곳은 하룻밤 사이에 잿더미가 될 겁니다. 장문인이신 사부님마저 피를 토하며 쓰러지시고, 우리가 지키려 했던 모든 것이 도륙당하겠지요.”

“……소운아.”

백서린이 낮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소운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은 여전히 검자루에 머물러 있었다. 검사로서의 예민한 직관이 소운의 말속에 담긴 지독한 진실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있었다. 소년의 눈에는 거짓을 말하는 자의 흔들림이 없었다. 대신 그곳엔 이미 멸망을 목도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은 허무와 처절한 투지가 서려 있었다.

“네가 말하는 그 미래라는 게…… 만약 정말로 피할 수 없는 정해진 운명이라면, 우리가 여기서 무얼 한들 달라지겠니? 하늘의 뜻이 이미 멸문을 가리키고 있다면, 우리는 기껏해야 발버둥 치다 죽어가는 벌레에 불과할 텐데.”

“하늘의 뜻이라니요.”

소운의 입가에 씁쓸한 냉소가 스쳤다.

“하늘은 인간의 생사 따위에 그런 고결한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저 거대한 장부 하나를 들고 우리를 저울질할 뿐이지요. 미래를 바꾸려 할수록 빚이 쌓이고, 그 부채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지면 우리를 짓밟아버리는 무정한 구조일 뿐입니다. 하지만…….”

소운의 시선이 허공의 어느 한 점을 향했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의 망막에는 선명하게 각인된 핏빛 숫자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 공동 장부가 활성화되었습니다. 】

【 참여자: 한소운, 진무겸, 백서린. 】

【 인과의 동조가 완료되었습니다. 부채가 분산됩니다. 】

【 현재 개인 부채: 35 / 100 】

혼자서 57이라는 거대한 부채를 짊어졌을 때는 폐부가 찢겨 나가는 듯한 압박감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전신의 혈관이 터져 나갈 듯 꿈틀거렸고, 매 순간 영혼이 깎여 나가는 통증이 그를 괴롭혔다. 그러나 진무겸과 백서린이 그 인과의 무게를 나누어 맡기로 한 순간, 거짓말처럼 육신을 누르던 보이지 않는 족쇄가 느슨해졌다.

물론 빚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것은 세 사람의 어깨 위에 공평하게 쪼개어져 얹혔을 뿐이다. 그들이 소운의 말을 믿기로 한 순간, 그들도 소운이 뒤틀어버린 미래의 대가를 함께 감당해야 할 운명공동체가 된 것이다.

‘내가 미래를 팔아 얻은 힘의 대가를, 이제는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

소운은 주먹을 천천히 쥐었다 폈다. 단전 심처에서부터 뜨겁게 치솟는 내력이 예전보다 훨씬 부드럽게 경맥을 타고 흘렀다. 사맥체(死脈體)라는 저주받은 육신이, 곽노에게 전수받은 역맥 수련법과 분산된 인과의 힘 덕분에 조금씩 인간의 형틀을 갖추어가고 있었다.

“대사형, 그리고 사매.”

소운이 두 사람을 진지하게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내일부터 당장 훈련 방식을 바꿉니다. 지금까지 배워온 정석적이고 투박한 초식은 다 집어치우십시오. 우리가 익혀야 할 것은 아름다운 검무가 아니라, 실전에서 단 한 수로 상대의 숨통을 끊어놓는 살법(殺法)입니다. 대사형, 당신이 펼치는 청운검법(靑雲劍法)은 묵직하고 정대하지만 속도가 지나치게 느립니다. 적이 당신의 목을 노리고 들어올 때 정직하게 막으려 들지 마십시오. 대신 한 치의 틈을 파고들어 상대의 손목을 끊어내고 경맥을 박살 내는 법을 몸에 새겨야 합니다.”

진무겸의 얼굴이 일순 붉게 달아오르며 눈을 부라렸다.

“이 고얀 놈! 우리 청운문은 대대로 협(俠)과 도(道)를 숭상하는 정도(正道)의 문파다! 어디 야합하는 사파 놈들이나 쓸 법한 삼류 살법을 우리더러 배우란 말이냐? 이는 조상님들을 모독하는 짓이다!”

“그 잘난 정도가 당신들의 목숨을 지켜줍니까?”

소운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맞받아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20년 동안 강호의 밑바닥에서 비참하게 구걸하다 처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잡역부의 사무친 한이 서려 있었다.

“문파가 화염에 휩싸이고 제자들이 짐승처럼 도륙당할 때, 정도라는 허울 좋은 명분이 날아오는 칼날을 막아줄 것 같습니까? 살아남아야 합니다. 무슨 짓을 해서든, 진흙탕을 개처럼 기어서라도 살아남아야만 그다음이라는 게 있는 겁니다. 죽은 자에게는 정도도, 협도, 문파의 영광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진무겸은 끓어오르던 기세를 멈추고 입을 다물었다. 소운의 눈빛에 담긴 광기와 서늘한 살의는 결코 열다섯 살 소년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천 번의 죽음을 목도하고, 지옥의 가장 깊은 곳을 기어 다녀온 망령만이 가질 수 있는 서슬 퍼런 눈빛이었다.

백서린이 조용히 발을 내디뎠다. 그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서 있는 진무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소운이 말이 맞아요, 사형. 철검표국 놈들이 앞마당까지 들이닥쳤을 때, 우리가 얼마나 무력했는지 그새 잊으신 건 아니겠죠? 아버지의 사색이 된 얼굴을 보셨잖아요. 이대로 청운문의 교조적인 가르침만 고집하다간, 정말 소운이가 말한 그 끔찍한 미래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

“……으윽, 알았다! 알았다고! 젠장, 내가 아주 미쳐 돌아가는구나. 잡역부 놈을 스승 모시듯 해야 하다니!”

진무겸이 머리를 거칠게 헝클어트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대신 내일부터는 내가 너희 둘을 직접 굴려주마. 소운이 네가 말한 그 살법인지 뭔지가 내 검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땐 네 허벅지에 구멍을 내줄 테니 그리 알아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소운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매를 굳혔다.

【 인과의 파동이 미세하게 요동칩니다. 】

【 소소한 미래의 변동: 청운문 제자들의 생존 확률이 12% 상승합니다. 】

【 현재 부채 잔액: 33 / 100 】

머릿속에서 숫자가 미세하게 줄어들었다. 인과의 무게를 나누고, 문파의 운명을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방향으로 틀어놓자 장부 역시 소소한 보상을 내어준 것이다. 묵직했던 가슴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며 소운은 숨을 내뱉었다.

“자, 오늘은 이만 해산합시다. 내일부터는 해가 뜨기 전, 동트기 직전의 어스름에 이곳 마당으로 모여야 할 겁니다.”

소운이 몸을 돌려 자신의 거처로 향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솨아아아——.

갑자기 청운문 뒤편을 감싸고 있는 대나무 숲에서 기이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평범한 밤바람이라기엔 지나치게 날카롭고 서늘했다. 밤공기가 순식간에 동결되는 듯한 기묘한 오한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으며, 등줄기의 솜털이 일제히 곤두섰다.

“……잠깐.”

소운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그의 고개가 본능적으로 대나무 숲의 어둠을 향했다.

진무겸과 백서린 역시 안색이 굳어지며 즉시 검자루로 손을 가져갔다. 그들 또한 무인으로서의 감각으로 무언가 이질적인 기운이 접근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 밤중에 무슨 바람이 이토록 사나운 거지?”

“바람이 아닙니다.”

소운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구름이 달빛을 삼키자 주변은 순식간에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다.

그 적막한 어둠 속에서, 인기척 하나 없을 산등성이를 따라 희미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사각, 사각. 마른 나뭇잎을 짓밟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그리고 아주 신속하게 청운문의 담장 쪽으로 육박하고 있었다.

【 경고: 예상치 못한 인과가 개입합니다. 】

【 주변에 숨겨진 악의(惡意)가 접근 중입니다. 】

【 위험 감지: 흑련회(黑蓮會)의 척후가 청운문의 변화를 포착했습니다. 】

머릿속에서 붉은색 경고문이 비명처럼 번쩍였다.

소운의 눈이 가늘게 찢어졌다.

‘원래 역사대로라면…… 흑련회 놈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건 반년 뒤의 일이다. 내가 미래를 바꾸고 철검표국을 압박한 여파가 나비효과가 되어 이놈들의 정탐 시기까지 앞당겨버린 건가?’

미래를 훔쳐본 대가는 생각보다 가혹하고 빨랐다. 인과의 실타래가 엉키면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튀어나온 것이다.

“사형, 사매. 뒤로 물러서세요. 이건 평범한 자객이 아닙니다.”

소운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낡고 무딘 철검을 뽑아 들었다. 아직 제대로 제련하지 못해 이가 빠지고 둔탁한 검이었지만, 지금 그의 손끝에 맺힌 내력은 이전의 잡역부 시절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누구요! 어둠 속에 숨어 있지 말고 모습을 드러내라!”

진무겸이 천둥 같은 목청을 높이며 앞으로 나섰다. 대사형으로서 쌓아온 수십 년의 공력이 뿜어져 나오며, 그의 검신에는 은은한 청색 검강(劍剛)의 기운이 서리기 시작했다.

담장 너머의 어둠 속에서 낮고 음산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크크크…… 역시 삼류 땡추 문파라 하더라도 명맥은 살아있나 보군. 눈치가 제법이야.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쥐 죽은 듯 고요하던 곳이었는데…… 요즘 이 청운문이 아주 시끄럽다는 소문이 돌더군.”

어둠을 찢고 한 줄기 그림자가 담장을 가볍게 넘어 마당 한가운데로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검은 복면을 눌러쓰고 전신을 어두운 회색 장포로 감싼 사내. 그의 양손에는 핏빛 안개가 서린 듯한 기분 나쁜 빛깔의 단검 두 자루가 번뜩이고 있었다.

사파의 살수(殺手).

그것도 단순히 돈에 팔려 다니는 무뢰배가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기술 하나만을 위해 평생을 바친 전문적인 도륙꾼의 기세였다.

“네놈은 누구냐? 이곳은 산서 청운문의 신성한 문중이다!”

진무겸이 검을 겨누며 포효했다. 살수는 그를 힐끗 바라보더니, 이내 시선을 돌려 가장 뒤에 서 있는 소운에게 고정했다. 그의 눈에 서린 탐욕스러운 살기가 소운의 피부를 따갑게 찔렀다.

“청운문의 장문인도 아니요, 이름난 제자도 아닌…… 그저 마당이나 쓸던 잡역부 놈이 이토록 이목을 끌 줄이야. 흑련회의 귀에까지 네놈의 이름이 들어갔다. 철검표국을 가지고 장난질을 쳤던 게 바로 네놈이라지?”

살수의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걸렸다. 단검의 날이 달빛을 받아 흉측하게 번뜩였다.

“상부의 명이다. 청운문의 씨를 말리기 전에, 재수 없는 짓거리를 일삼는 네놈의 목부터 먼저 베어 오라고 하더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살수의 신형이 유령처럼 허공에서 사라졌다.

솨악!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고막을 때렸다. 핏빛 단검이 소운의 목줄기를 향해 살을 에는 속도로 파고들었다. 인간의 반응 속도를 비웃는 듯한 치명적인 찌르기였다. 비록 화경(化境)의 경지에 이른 절정 고수는 아니었으나, 살생의 기술만큼은 지금의 청운문 제자들이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버거운 수준이었다.

“소운아!”

백서린이 비명을 지르며 검을 뽑아 휘두르려 했지만, 살수의 속도는 이미 그녀의 시력을 앞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소운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살수의 모든 움직임이 느릿하게 흐르는 잔상처럼 명확하게 박혀 있었다. 수없이 죽음을 넘나들었던 전생의 감각이 뇌리를 스쳤다.

‘속도는 빠르지만…… 검의 궤도가 지나치게 넓다. 일격에 끝내려는 오만함이 초식에 묻어있군.’

20년 동안 강호의 밑바닥을 전전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었던 경험이 소운의 본능을 일깨웠다. 살수의 단검이 코앞까지 들이닥친 찰나, 소운은 정면으로 맞서는 대신 상체를 기묘한 각도로 비틀며 바닥으로 낮게 엎드렸다.

스으윽—!

살수의 핏빛 단검이 소운의 머리카락 몇 올을 베어내며 허공을 갈랐다. 소름 끼치는 금속음이 귓가를 스쳤다.

“무엇이?!”

살수의 눈에 경악의 빛이 서렸다. 보잘것없는 잡역부 따위가 자신의 전력 기습을 한 끗 차이로 피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소운의 반격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대사형! 지금입니다! 저놈의 오른쪽 발목, 비스듬히 솟은 혈도를 노리세요! 맥이 끊기는 지점입니다!”

소운의 날카로운 외침과 동시에 진무겸의 몸이 번개처럼 튀어나갔다. 평소라면 결코 쓰지 않았을 비겁하고 낮은 공격이었지만, 소운의 말에는 거역할 수 없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대사형으로서 쌓아온 내공이 청운검법의 정수를 깨뜨리고, 살수의 사각지대를 향해 뱀처럼 파고들었다.

“크윽!”

살수가 급히 몸을 뒤틀어 단검으로 막아냈으나, 연이어 백서린의 검광이 그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소운이 미리 일러준 대로, 그녀는 상대의 가슴이 아닌 눈과 목의 틈새를 집요하게 겨냥했다.

청운문의 두 주역이 펼치는 생소한 합격(合擊).

그것은 혼자서는 불가능한 위력이었으나, 소운의 지시 아래 서로의 사각을 메워주는 완벽한 연계가 되어 살수를 압박했다.

“크아아악!”

살수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그의 어깨와 옆구리에서 붉은 선혈이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살수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세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정보에 따르면 이곳은 무너져가는 껍데기뿐인 문파였다. 그런데 눈앞의 애송이들이 보여주는 호흡은 강호의 이름난 명숙들이 이끄는 정예 제자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살수가 이를 악물며 도망치기 위해 신형을 날렸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음을 깨달은 살수 특유의 빠른 판단이었다.

하지만 소운은 그를 살려 보낼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도망치게 두지 마십시오! 오늘 저놈을 살려 보내면, 내일 당장 흑련회의 본진이 이 산을 피로 물들일 겁니다!”

소운이 땅을 박차고 솟구쳤다.

사맥체의 한계를 억지로 비틀어 열며, 단전에 끌어모은 역맥의 기운을 전신으로 폭발시켰다. 경맥이 타오르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지만, 소운은 어금니가 으스러지도록 이를 악물고 살수의 도주로를 가로막았다.

“인과의 빚은 여기서 청산한다.”

소운의 낡은 철검이 달빛을 머금고 차가운 섬광을 내뿜었다. 화려한 수식도, 문파의 권위도 담기지 않은 검. 오직 상대를 확실히 죽이기 위해 밑바닥에서 익힌 가장 원초적이고 잔인한 살법의 일격이었다.

푸석—!

무딘 철검이 살수의 심장 근처를 관통하며 등을 뚫고 나왔다.

살수가 울컥 핏덩이를 토해내며 마당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는 숨이 끊어지기 직전, 경악과 공포로 점철된 눈으로 소운을 올려다보았다.

“너…… 너는…… 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소운은 발치에 쓰러진 살수를 차갑게 내려다보며, 피가 뚝뚝 흐르는 검을 거두었다.

“나는 그저…… 미래를 미리 산 대가를 치르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

살수의 눈에서 생기의 빛이 가셨다.

청운문의 마당에 다시 한번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진무겸과 백서린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신들의 손과 옷에 묻은 붉은 피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무인으로서 수련해왔지만, 실제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처음이었다. 두 사람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소운은 그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는 마당 위로, 천명장부의 새로운 알림이 차가운 기운과 함께 울려 퍼졌다.

【 흑련회의 척후를 처단했습니다. 】

【 역사의 흐름이 미세하게 고정됩니다. 】

【 현재 부채 잔액: 28 / 100 】

【 보상: 역맥 수련의 심화 단계가 개방됩니다. 육신에 깃든 인과의 독기가 일부 정화됩니다. 】

소운은 피로 더러워진 철검을 바닥에 툭 떨어뜨렸다.

시퍼런 새벽의 여명이 산서성의 험준한 능선을 따라 서서히 번져오고 있었다. 어둠은 가시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닥칠 운명의 파고는 이제 막 시작되었음을 소운은 알고 있었다.

비록 부채는 여전히 남아 있고,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은 첩첩산중이었으나——적어도 오늘 밤, 세 사람은 지옥 같은 운명의 수레바퀴를 자신들의 힘으로 멈춰 세웠다.

“가서 잠시라도 눈을 붙이시지요.”

소운이 피투성이가 된 손을 무심하게 털어내며, 굳어 있는 진무겸과 백서린을 향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내일부터는…… 오늘보다 백 배는 더 고된 하루가 시작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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