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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30화목차

제30화 데이터 해독과 세력의 태동

지하 은닉 아지트의 붉은 비상등이 깜빡거렸다.

공기 정화 장치가 쉴 새 없이 돌아가며 매캐한 화약 냄새를 걸러냈지만, 그 속에서도 가라앉지 않는 무거운 침묵이 방 안을 짓눌렀다.

탁자 위에는 크로노스 바이오의 기밀 서버에서 추출한 블랙박스 데이터가 푸른색 홀로그램 형태로 투영되어 있었다.

"……이 미친 새끼들."

윤아영의 숏컷 분홍 머리가 거칠게 흔들렸다.

열 개의 손가락이 가상 키보드 위를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두드려질 때마다, 화면 위에는 끔찍한 데이터가 연쇄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화면을 응시하는 강진혁의 흑안은 밤바다보다 깊고 차가웠다.

목과 손목을 따라 흐르는 은빛 회로 선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시스템의 보조 HUD가 강제 파기된 이후, 그의 시야는 완전히 날것의 감각과 순수한 의지만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세상의 본질이 더욱 선명하게 뇌리에 박혔다.

[SYSTEM INFO: 수동 연산 모드 유지 중]

[생체 코어 출력: 9,600 MW]

[내부 마기 안정화: 98.2%]

인공지능의 차가운 목소리는 사라졌지만, 단전 속에서 묵직하게 회전하는 마기는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단단하고 거칠 것 없는 위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강진혁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지."

"……신서울 하층 구도심 전체예요. 정확히는 세운 하수구 망과 지하철 구형 터널망을 따라 거대한 마기 공진 회로가 깔려 있어요."

윤아영이 이를 악물며 홀로그램의 지도를 확대했다.

붉은색으로 점멸하는 구역은 신서울 하층민 수백만 명이 밀집해 사는 슬럼가의 정확한 밑바닥이었다.

"티타늄 그룹이 단순히 우리 같은 실험체를 찍어내던 게 아니에요. 이 데이터에 따르면…… 회장 진무극은 신서울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생체 코어'로 만들려고 하고 있어요."

"공진 실험장."

"맞아요. 하층민 320만 명의 단전과 생체 코어, 그리고 그들이 평생 흡입해 온 나노머신 잔여물을 도체 삼아 한 번에 마기를 역류시키는 거죠. 그 에너지를 티타늄 타워 최상층으로 끌어올리면……."

"천마 프로토콜의 최종 단계가 완성된다."

강진혁의 입가에 옅고 서늘한 조소가 걸렸다.

모든 조각이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진무극이 왜 그토록 오랫동안 하층민들의 생체 코어 등급을 통제하고, 미세한 나노머신을 대기 중에 살포해 왔는지.

그것은 자선 사업도, 도시 관리도 아니었다.

자신을 포함한 실험체들은 진무극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불멸의 신이 되기 위해 거쳐 가는 '시제품'에 불과했고, 신서울 하층민 전체는 그 완성을 위해 준비된 '연료'였다.

"미쳤어…… 정말 미쳤다고요. 이 계획의 코드네임이 뭔 줄 아세요? [헤븐리 파운데이션(Heavenly Foundation)]. D-7…… 딱 일주일 뒤에 가동 예정이에요. 그때가 되면 하층민들은 전부 단전이 폭발해서 피를 뿜고 죽거나, 그 에너지가 고스란히 타워로 흡수될 거예요."

윤아영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정보를 다루는 해커로서 수많은 기업의 비리를 보아왔지만, 도시 하나를 통째로 희생양 삼아 신이 되려는 음모는 차원이 달랐다. 그것은 지옥의 현현, 그 자체였다.

방구석 어두운 곳에 기대어 의수를 점검하던 천우진이 묵직하게 입을 열었다.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순 없지. 진혁이 네가 타워 100층을 한 번 뒤집어엎었다고 해도, 그 거대한 인프라 자체가 가동되면 도시 전체가 일종의 거대 마공진이 되는 셈이다. 그 안에서는 진무극 그 영감이 반쯤 신이나 다름없는 출력을 내뿜을 거야."

"그래서 움직여야 한다."

강진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키가 훌쩍 큰 그의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중압감에 방 안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혼자서는 안 됩니다."

윤아영이 급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물론 진혁 씨가 강하다는 건 알아요. 9,600 MW의 출력을 순수 육체로 다루는 괴물은 세상에 당신밖에 없겠죠. 하지만 티타늄 그룹의 정규 보안군, 블랙 가드의 잔당, 그리고 전면전에서 가동될 궤도 폭격 포탑까지 상대하려면…… 우리 힘만으로는 부족해요. 물리적인 병력이 필요하다고요."

"병력?"

"네. 티타늄의 독재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유일한 세력. 반(反)기업 저항군 '니르바나'."

강진혁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신서울의 음지에서 기업의 수송 열차를 털고, 치안대를 습격하며 명성을 떨치던 저항 조직. 그들의 총수이자 대형 도검을 휘두르는 붉은 머리의 여전사, 송수연의 이름이 머릿속을 스쳤다.

천우진이 픽 웃으며 의수를 탁자에 툭 부딪쳤다.

"니르바나 말이지. 그 녀석들도 정보는 빠를 테니까, 우리가 가져온 이 기밀 데이터를 보여주면 눈이 뒤집힐 걸. 진무극이 하층민 전체를 폭파하려 한다는 걸 알면 가만히 앉아 있진 않겠지."

"접선한다."

강진혁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시간은 진무극의 편이 아니었다. D-7.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티타늄 그룹은 마기 공진 회로의 최종 튜닝을 끝낼 것이다. 그 전에 저항군의 세력과 결합해 신서울의 하부 구조를 박살 내야 했다.

"아영. 니르바나의 통신 주파수, 아직 살아있나?"

"물론이죠! 화이트 섀도의 기술력이 얼만데요. 지금 바로 구(舊) 지하철 환승역 3구역 채널로 연결할게요. 그쪽 총수, 송수연도 우리 쪽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을 거예요."

윤아영이 키보드를 두드리자, 모니터 화면에 암호화된 통신창이 번쩍였다.

잠시 후, 지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거친 호흡 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여기는 니르바나 본부. 통신 보안을 유지해라. 너희는 누구지?]

단단하고 당찬 여인의 목소리. 송수연이었다.

강진혁은 통신구에 직접 입을 갖다 대고 차갑고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진혁이다."

-[……?]

상대방의 숨소리가 뚝 멎는 것이 느껴졌다.

신서울 하층 슬럼가에서 '천마'라는 이명으로 티타늄 그룹의 영지를 뒤흔들고 있는 미지의 무인. 그 이름을 모르는 저항군은 없었다.

-[네가…… 그 강진혁이라고? 하층가를 발칵 뒤집어 놓은.]

"네가 가진 병력과, 내가 가진 정보가 필요할 것이다."

-[정보?]

"티타늄 그룹이 일주일 뒤에 하층민 320만 명을 대상으로 뭘 하려는지 알고 있나?"

통신 너머로 서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송수연의 목소리에는 경계심과 함께 지우지 못한 호기심이 묻어났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직접 만나서 얘기하지. 장소를 대라."

-[후. 배짱 하나는 마음에 드는군요. 구도심 폐공장 지대, 니르바나의 제2거점으로 와라. 단, 네가 정말 소문대로의 물건인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어.]

통신이 툭 끊어졌다.

윤아영이 화면에 찍힌 좌표를 빠르게 분석하며 외쳤다.

"좌표 떴어요! 구도심 폐공장 지대…… 티타늄 그룹의 순찰 로봇들이 우글거리는 최전선이에요. 주의해야 해요!"

강진혁은 허리께에 찬 [천마검]의 손잡이를 가볍게 쓸어내렸다.

검신을 타고 흐르는 칠흑 같은 마기가 미세한 진동을 일으켰다.

"출발한다."

단 두 마디를 남긴 채, 강진혁의 형체가 아지트 안에서 사라졌다.

[마광신보].

빛의 궤적조차 남기지 않는 극초음속의 잔상이 방 안을 휩쓸고 지나갔고, 문이 열리기도 전에 그는 이미 어두운 밤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도약하고 있었다.

신서울의 네온사인이 차가운 철제 마천루 위로 붉고 푸른 눈물을 흘리듯 빛나고 있었다.

그 디스토피아의 밤 속에서, 마기를 두른 한 마리의 천마가 다시 한번 거대한 판을 뒤엎기 위해 날아오르고 있었다.

시속 수백 킬로미터의 속도로 허공을 가르는 강진혁의 시야 아래로, 신서울의 구도심 폐공장 지대가 기괴한 철골 구조물들을 드러내며 다가왔다.

화려한 상층 마천루의 불빛이 닿지 않는 이 유령 같은 구역은 티타늄 그룹이 버린 산업 폐기물과 녹슨 기계들이 뒤엉킨 무법지대였다. 그곳은 동시에 기업의 감시망을 피해 은거하는 반(反)기업 저항군 '니르바나'의 본거지가 숨겨진 곳이기도 했다.

[SYSTEM INFO: 수동 연산 모드 유지 중]

[주변 대기 오염도: 78.4%]

[적대적 스캐너 신호 감지: 전방 1.2km 지점, 티타늄 자동 순찰 드론 3기]

시스템의 보조 HUD는 사라졌지만, 오랜 수련으로 단련된 오감과 피부를 스치는 기류의 변화만으로도 주변의 위협은 완벽하게 포착되었다.

슈우우웅—!

폐공장 상공을 선회하던 정찰 드론의 적외선 탐지 센서가 번뜩였다. 그러나 강진혁은 속도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마기를 더욱 강하게 응축했다.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9,600 MW의 출력이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시끄럽군."

나지막한 혼잣말과 함께 강진혁의 몸이 허공에서 급격히 꺾였다.

[마광신보(魔光神步)].

빛의 잔상조차 남지 않는 극초음속의 궤적이 밤하늘을 갈랐다.

파지지직-!

소리보다 빠르게 쏘아진 칠흑의 검강이 스쳐 지나간 순간, 정찰 드론 3기는 공중에서 고주파 진동과 함께 흔적도 없이 두동강이 나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폭발음이 울리기 전에 이미 강진혁의 발은 폐공장 지대의 거대한 녹슨 철판 위에 가볍게 내려앉고 있었다.

착지 소리조차 나지 않는 완벽한 무음(無音).

"거기까지다, 외지인."

서걱—!

공기의 흐름이 찢어지는 예리한 파열음과 함께, 강진혁의 목덜미를 향해 뜨거운 열풍이 훅 끼쳐 들었다.

찰나의 순간, 강진혁은 고개를 돌릴 필요도 없다는 듯 상체를 미세하게 비틀었다.

쾅-!

불꽃이 튀었다.

강진혁의 어깨를 스쳐 지나간 거대한 대형 도검이 철제 바닥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기며 깊숙이 박혔다. 도검의 날을 따라 이글거리던 화염 코어 에너지가 사방으로 튀며 주위의 어둠을 붉게 물들였다.

"반응이 빠르네."

나지막하고 당찬 목소리.

붉은 머리칼을 질끈 묶은 채, 마모된 전투용 가죽 재킷을 걸친 여전사가 대형 도검의 자루를 움켜쥔 채 서 있었다. 반기업 저항군 '니르바나'의 총수, 송수연이었다.

그녀의 한쪽 눈 위에는 과거 기업과의 교전에서 입은 듯한 옅은 흉터가 남아 있었고,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웬만한 티타늄 그룹의 정예 특수부대장 못지않았다.

강진혁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응시했다.

흑안 속에는 일말의 동요조차 없었다.

"이게 니르바나 총수의 환영 인사인가."

"환영인 줄 알아라. 통신으로만 듣던 괴물이 진짜로 우리 구역 한복판에 나타났으니 말이다."

송수연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도검을 뽑아 올렸다. 도검에 감긴 화염 코어 에너지가 타오르며 주변의 온도를 급격히 끌어올렸다.

"네가 그 '천마'라는 놈이지? 하층가를 발칵 뒤집어 놓고, 티타늄 타워 100층까지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미친 실험체."

"말이 많더군."

"건방지기는."

송수연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그녀는 강진혁에게서 흘러나오는 서늘하고 묵직한 마기를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정보로만 들었을 때는 반신반의했지만, 직접 마주한 그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기계 장치 하나 없이, 오직 육체와 기운만으로 사람을 압살하는 경지.

하지만 니르바나를 이끄는 총수로서, 그녀는 외부에서 불쑥 찾아온 이 괴물이 아군이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재앙이 될지 직접 확인해야만 했다.

"네가 가져왔다는 그 정보, 하층민 전체가 희생된다는 그 미친 소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증명해 봐라. 그 정도 실력도 안 된다면, 우리와 손잡을 자격 따윈 없어."

쾅-!

송수연이 바닥을 박차며 급습했다.

화염 코어 에너지를 최대로 끌어올린 대형 도검이 거대한 호를 그리며 강진혁의 머리통을 향해 내리꽂혔다. 공기가 고열로 인해 일그러지며 찌그러진 소리를 냈다.

진혁은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단전의 9,600 MW 출력을 끌어올리며 오른손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두 손목을 따라 흐르는 은빛 회로 선이 붉은 마기와 공명하며 번쩍였다.

[천마무상체]와 경화된 나노마갑이 피부 표면을 단단한 티타늄 합금보다 더 단단한 방어벽으로 감쌌다.

챙——-!

대형 도검과 맨손이 부딪치는 순간, 금속성 파열음이 폐공장의 지붕을 날려버릴 기세로 울려 퍼졌다.

화염 코어의 폭발적인 열기가 강진혁의 전신을 감쌌지만, 그의 옷자락조차 태우지 못한 채 사방으로 흩어졌다.

"뭐……?!"

송수연의 눈이 경악으로 크게 벌어졌다.

자신의 전신 출력과 화염 에너지를 온전히 실은 참격이었다. 웬만한 전신 사이보그나 3세대 생체 코어 탑재자라 할지라도 이 일격을 맞으면 팔이 통째로 바스러질 터였다. 그런데 맨손으로, 그것도 단 한 치의 밀림도 없이 그 참격을 받아내다니.

"끝인가."

강진혁의 차가운 목소리가 송수연의 귓바퀴를 때렸다.

압도적인 힘의 격차.

송수연이 황급히 도검을 빼내며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강진혁의 손아귀가 벼락처럼 뻗어나와 송수연의 도검 날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파지직-!

마기가 역류하며 도검에 깃들어 있던 화염 코어의 에너지를 순식간에 강제 소모시켰다. [흡원천공]의 원리가 응용된 기류가 송수연의 무기 속 에너지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크윽……!"

송수연은 눈앞의 인간이 괴물이나 다름없음을 깨달았다.

그녀가 입술을 깨물며 도검을 버리고 물러서려던 찰나, 강진혁은 손을 거두며 낮게 말했다.

"내 실력 증명은 이 정도면 됐나."

송수연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물러섰다. 그녀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방금 전의 공방은 단순한 무력의 차이가 아니라, 격의 차이가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다.

"……괴물 같은 놈."

송수연이 입술을 훔치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 속에는 경계심 대신 묘한 기대감과 확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정도의 무력이라면, 정말로 티타늄 그룹의 그 거대한 음모를 부수고도 남을지 몰랐다.

"인정하지. 네가 가져온 데이터, 그리고 네 실력 모두."

송수연이 뒤를 돌아보며 폐공장의 어두운 지하로 이어지는 철제 계단을 가리켰다.

"들어가자. 니르바나의 간부들이 기다리고 있어. 진무극 그 영감이 우리 도시를 어떻게 갈아 마시려는지, 네 그 콧대 높은 눈으로 직접 설명해 봐라."

강진혁은 말없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차가운 철제 계단을 내려가는 그의 걸음 속에는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지하 본부의 거대한 철문이 열리며, 반(反)기업 저항군의 핵심 인물들이 모여 있는 회의실의 불빛이 새어 나왔다. 신서울의 운명을 바꿀 진짜 전쟁이, 이제 막 막을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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