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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달의 검객 · 20화목차

제20화 방화범의 얼굴 — 십 년 전의 불

달빛이 핏빛으로 물드는 흑월문 본단의 첨탑 아래, 공기는 마치 차가운 쇳물을 들이켠 것처럼 무거웠다. 사방을 둘러싼 어둠은 잉크를 풀어놓은 듯 짙었고, 그 속에서 튀어 오른 먹물 같은 기운이 귓가를 스산하게 긁고 지나갔다.

스으으——.

무현의 손끝에서 자라난 명인(名刃)의 금빛 칼날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빛은 단순한 불빛이 아니었다. 타인이 기억하는 존재의 무게, 타인의 기억 속에서 아스라이 피어오른 단단한 이름의 파편이 빚어낸 숭고한 기운이었다. 그 금빛이 흑천월식검이 뿜어내던 집어삼킬 듯한 칠흑의 중력장을 억누르며, 밤의 허공에 가느다란 틈새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틈새 너머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형체가 있었다.

거친 쇳소리가 밤의 정적을 찢었다.

지지직— 덜컥.

칼끝이 가리키는 방향, 흑월문의 가장 깊숙하고 어두운 회랑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걸어 나왔다. 등에 짊어진 것은 평범한 검이 아니었다. 사방으로 날카로운 쇳가루를 흩뿌리는 칠흑 대검. 그 대검을 쥔 자의 얼굴에는 반쯤 깨진 붉은 가면이 걸려 있었고, 가면의 틈새로 새어나오는 시선은 눅눅하고도 슬픈 회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

월소한.

십 년 전, 청월장의 잿더미 속에서 사라졌던 그 소년이, 이제는 거대한 흉터를 품은 짐승 같은 무사로 성장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무현의 눈동자가 가슴께로 가라앉았다. 가슴 깊은 곳, 잊고 싶었으나 단 한 순간도 잊지 못했던 십 년 전의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타오르는 서까래, 비명소리, 그리고 살이 타들어 가던 매캐한 연기의 기억. 그 모든 지옥의 단면이 지금 눈앞에 선명한 형체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너였구나."

무현의 목소리는 낮고 갈라져 있었다. 굳어버린 혀끝에서 겨우 짜내듯 튀어나온 음성은 서늘한 바람 속에서 바스라졌다.

소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쥔 칠흑 대검이 바닥을 스칠 때마다, 붉은 불꽃 대신 차가운 냉기가 바닥을 타고 뱀처럼 기어갔다. 가면의 붉은 눈물 자국이 달빛을 받아 기묘하게 번뜩였다.

그 뒤편, 흑월문의 문주 혁련오가 바닥에 무릎을 짚은 채 피를 토하며 실소를 터뜨렸다. 그의 얼굴은 반쯤 짓무르고 있었고, 흑천월식검의 역류로 인해 내상은 이미 뼈아프게 깊어져 있었다. 혁련오의 입가에서 흘러내린 검붉은 피가 돌바닥을 적셨다.

"크큭…… 크하하하!"

혁련오의 웃음소리는 처절하면서도 지독하게 냉소적이었다. 그는 흐릿해져 가는 눈으로 소한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래. 똑똑히 보아라, 무현아. 네가 그렇게 찾아 헤매던, 십 년 전 장원을 단 한 바닥에 재로 만들어버린 그 방화범의 얼굴을 말이다."

무현의 시선이 다시 소한에게로 향했다. 금빛 이름칼의 빛이 더욱 찬란하게 요동치며 소한의 전신을 비추었다. 타인의 기억이 칼끝에 실려 무현의 머릿속으로 밀려들었다.

'오라버니…….'

등 뒤에서 들려온 소연의 숨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소연은 작은 손으로 자신의 가슴께를 움켜쥔 채, 눈물을 참으려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소연에게도 소한은 친오빠였다. 십 년 전, 그날 밤까지는 따스한 웃음을 지어 보이던 친오빠였다. 하지만 그가 바로 그날 밤, 청월장의 문을 태운 횃불을 쥐고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 그들의 발밑을 허공으로 만들고 있었다.

무현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금빛 칼날이 허공을 가르며 미세한 파문을 일으켰다.

"소한."

무현의 입에서 소한의 이름이 불렸다. 그 이름에는 원망도, 분노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오직 십 년 동안 채워지지 않았던 거대한 공허와,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진실을 기꺼이 감내하려는 검객의 묵직한 수용만이 담겨 있었다.

"사제……." 무현은 문주를 향했던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씹어뱉듯 물었다. "아니, 혁련오. 네가 저지른 짓이 아니었어? 아니면…… 이 아이가, 내 동생이 직접 불을 질렀다는 거냐?"

혁련오가 피를 머금은 채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의 눈동자에 광기가 서렸다.

"내 손으로 직접 불을 놓은 게 아니다. 하지만 내가 시켰지. 이 아이의 손에 횃불을 쥐어준 건 나다."

"……!"

소연의 입에서 참혹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혁련오의 목소리는 밤바람을 타고 차갑게 흩어졌다. 십 년 전의 진실이, 그 더럽고 추악한 계약의 민낯이 비로소 만천하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너희들이 몰랐던 게 있지. 청월장의 장주, 서문 월청 그 늙은이는 거대한 빚을 지고 있었다. 흑월문이 가진 계약의 장부에 목을 잡힌 채, 매일 밤 피를 토하며 버티고 있었지. 하지만 그 늙은이는 끝내 도망치려 했다. 계약을 끊고, 양자인 너와 내 동생들을 데리고 강호의 이면으로 사라지려고 했어."

혁련오가 소한을 향해 턱짓을 했다.

"그래서 내가 이 아이에게 말해준 거다. 네 아버지가, 그리고 그 늙은 장주가 이 가문을 거대한 지옥으로 끌고 가고 있다고. 네 동생 소연이를 살리고 싶다면, 네 아버지가 숨겨둔 장부와 옥패를 태워버려야 한다고 말이지."

"거짓말……."

소한의 입에서 짓눌린 듯한 신음이 새어나왔다.

그동안 가면 뒤에 숨어 스스로를 짐승이라 부르며 살았던 이유. 매일 밤 꿈속에서 불타는 장원의 환영에 시달리며 칼을 휘둘러대던 이유. 그것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동생을 살리라는 사형의 그 거짓된 명령을 충실히 따랐던 어리석은 소년의 속죄였다.

"거짓말이 아니야, 소한아." 혁련오가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너는 네 손으로 가족을 살리기 위해 불을 질렀다 믿었겠지만, 실상은 달랐지. 그 불은 계약을 집행하기 위한 흑월의 제단에 바쳐진 첫 번째 제물이었어. 네가 불을 지르는 순간, 청월장의 모든 기억과 이름은 계약의 장부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그 대가로 너는 '기억을 잃어버린 껍데기'가 될 운명이었지. 다만……."

혁련오의 시선이 무현에게로 꽂혔다.

"이 괴물 같은 녀석이 그 장부를 찢고 튀어나오는 바람에 모든 게 틀어졌지만 말이야!"

지독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첨탑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흑천월식검의 검은 빛과 혁련오의 잔혹한 음성이 만들어낸 거짓의 장막이, 소한의 손에 들린 횃불의 기억과 함께 완전히 바스러져 재로 흩어졌다.

소한의 손에서 칠흑 대검이 툭,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쿵— 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대검이 돌바닥을 찍었다. 소한은 자신의 두 손을 바라보았다. 그 손은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피투성이였다. 지워지지 않는 잿더미의 냄새가 손끝에서 피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내가……."

소한의 목소리가 젖어들었다. 가면이 완전히 반으로 쪼개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드러난 얼굴에는 십 년 전 소년의 잔영과, 강호를 떠돌며 겪은 수많은 상처가 뒤섞여 있었다.

"내가 불을 켠 거라고……? 사형의 그 말 한마디에…… 내 손으로 집을 태웠단 말인가……."

"오빠……!"

소연이 참지 못하고 달려 나갔다. 무현은 그녀를 막지 않았다. 무현의 손에 쥔 명인의 금빛 칼날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지만, 그 칼끝은 이제 혁련오가 아니라 그 비극의 중심에 서 있는 두 남매를 향하고 있었다.

소연은 그대로 무릎을 꿇고 앉아, 거대한 체구로 벌벌 떨고 있는 소한의 품에 안겼다. 소한의 투박하고 거친 어깨가게슴첼하게 흔들렸다. 짐승처럼 칼을 휘두르며 살아가던 붉은 가면의 살수는, 그 순간 다시 열 살 어린아이로 돌아간 것처럼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오빠, 아니야…… 잘못된 거야. 오빠 잘못이 아니야……!"

소연의 눈물이 소한의 찢어진 옷자락을 적셨다. 남매의 온기가 십 년 만에 온전히 얽히며, 그 주변의 차가운 공간을 미세하게 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감동적인 해원의 순간을 허락할 리 없다는 듯, 혁련오가 미친 듯이 웃으며 품속을 파고들었다.

"크하하하! 해원이라도 한 거 같나? 감동적이구나, 참으로 감동적이야! 하지만 잊지 마라. 그 불이 타오른 순간부터, 이 세상에 남은 청월장의 이름은 이미 지워졌어. 너희들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계약의 장부는 이미 완성되어 가고 있다!"

혁련오의 손이 자신의 가슴께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의 몸 안에서 감춰져 있던 흑천월식검의 마지막 진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단순히 무공의 폭주가 아니었다. 십 년 동안 흑월문이 모아온, 강호 수많은 이들의 '이름'이 담긴 거대한 부채의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콰아아아궁——!

첨탑의 바닥이 갈라지며, 그 아래 숨겨져 있던 거대한 암실의 실체가 드러났다.

그곳에는 빛이 닿지 않는 깊은 심연이 있었고, 그 심연 속에서 수천 개의 금빛 글자들이 피 흘리듯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흑월문의 진짜 채권.

모든 계약의 원천이자, 강호 전체를 삼키기 위해 흑월문주가 숨겨두었던 최후의 장부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무현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그는 소연과 소한을 등 뒤로 감싸며, 금빛 이름칼을 단단히 쥐었다.

"끝낼 시간이다."

무현의 낮고 단호한 음성이 첨탑의 밤하늘을 가로질렀다.

검은 달이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 아래, 진정한 빚을 청산하기 위한 마지막 검이 허공을 향해 치켜세워졌다.

"끝낼 시간이다."

무현의 낮고 단호한 음성이 첨탑의 밤하늘을 가로질렀다.

검은 달이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 아래, 진정한 빚을 청산하기 위한 마지막 검이 허공을 향해 치켜세워졌다.

지하 암실의 틈새에서 뿜어져 나오는 금빛 글자들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그것은 타인의 이름이었다. 무림맹의 고수, 강호의 이름난 명사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진 무명의 검객들까지. 흑월문이 십 년 동안 거둬들인 자아의 파편들이 그곳에 가득했다.

혁련오의 입가에서 검붉은 거품이 툭툭 떨어졌다. 그의 몸은 이미 계약의 역류를 버티지 못하고 붕괴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광기 어린 눈동자만은 기괴할 정도로 생생하게 빛났다.

"끝내? 크하하, 무현아…… 네가 뭘 끝낼 수 있다는 거냐! 그 장부는 이미 완성되었다! 네가 아무리 그 칼을 휘둘러도, 내 몸에 새겨진 십 년 전의 빚은 이 순간에도 강호 전체의 목을 조이고 있어!"

혁련오가 팔을 크게 벌렸다.

쿠구구구궁——!

지하의 암실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는 마치 거대한 짐승의 숨소리 같았다. 흑천월식검의 검기가 폭주하며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검은 궤적이 지나간 자리마다 허공이 찢어지고, 칠흑 같은 어둠이 소용돌이치며 무현과 남매를 집어삼킬 듯 덮쳐왔다.

"오빠!"

소연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품에 안겨 있던 소한 역시 멍한 눈으로 쏟아지는 어둠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무현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등 뒤에서, 소연이 쥐고 있던 옥패가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맑고 청아한 파동이 흑천월식검의 중력장을 밀어내며 금빛 파문을 일으켰다. 그것은 단순한 무공의 충돌이 아니었다. 타인이 기억하는 이름, 그리고 잊히지 않으려는 의지가 빚어낸 거대한 방패였다.

무현이 한 발짝 앞으로 내디뎠다.

지지직—!

발밑의 돌바닥이 가루가 되어 날아갔다. 무현의 손에 들린 명인(名刃)의 금빛 칼날이 태양처럼 눈부시게 부풀어 올랐다. 흑천월식검이 삼키려던 어둠을 그 빛이 단숨에 베어 갈랐다.

"내 이름은 버려졌다 했다."

무현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십 년 전, 흑월문의 문턱을 넘을 때도, 내가 누구인지 아는 이는 없었다. 네놈들이 내 자아를 지우고, 기억을 도려내어 껍데기만 남기려 했으니까."

검이 허공을 갈랐다.

촤아아악——!

"하지만." 무현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타인이 기억하는 한, 이름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 스승이 남긴 유서가 그러했고, 내 동생들이 흘린 눈물이 그러했으며, 내가 짊어진 이 빚의 무게가 바로 나 자신이다!"

금빛 참격이 흑천월식검의 중심을 정확히 꿰뚫었다.

콰광——!

거대한 폭음과 함께 첨탑의 상층부가 반으로 쪼개졌다. 칠흑 같은 어둠이 흩어지고, 붉게 물든 달빛이 부서진 조각들 사이로 쏟아져 내렸다. 혁련오의 비명이 찢어지는 바람 소리 속에 묻혔다.

혁련오의 몸이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그의 손에 쥐여 있던 흑천월식검이 산산이 조각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혁련오의 가슴팍에는 거대한 금빛 검흔이 깊게 박혀 있었다. 그는 피를 토하며 첨탑의 난간 아래로 추락했다.

지하 암실에서 뿜어져 나오던 금빛 글자들도 무현의 검압에 밀려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숨이 턱 막히는 정적이 찾아왔다.

무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명인의 빛을 거두었다. 칼날이 사라진 자리엔 서늘한 공기만이 남았다. 그의 어깨와 팔뚝을 타고 붉은 피가 흘러내렸지만, 그의 시선은 흔들림 없이 바닥을 향했다.

그곳에는 여전히 서로를 끌어안은 채 덜덜 떨고 있는 소한과 소연이 있었다.

소한은 부서진 붉은 가면을 완전히 벗어던진 상태였다.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과 핏자국이 엉켜 흉측한 형상을 만들고 있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십 년 만에 처음으로 짓누르던 짐을 내려놓은 자의 허탈함과 안도감으로 젖어 있었다.

소한이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아니, 그것은 굴복이 아니었다. 스스로의 손으로 저지른 죄업의 무게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참회의 무릎 꿇림이었다.

"내가……." 소한의 목소리가 쉰 채로 떨렸다. "내가 그 불을 켰다. 내가 장원을 태웠고, 우리를 이 지옥으로 밀어 넣었다……."

"오빠, 그만해." 소연이 그의 어깨를 잡으며 울먹였다. "사형이 우리를 속인 거야. 오빠 잘못이 아니라고……!"

"아니." 소한은 고개를 저었다. "알고 있었어. 얇게나마 알고 있었다. 사형의 그 눈빛이 거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내 동생을 살리고 싶다는 그 비겁한 마음 하나 때문에 눈을 감았지. 내 손으로 직접 불을 지폈어. 그 대가는…… 내가 치러야 한다."

소한의 시선이 무현을 향했다. 십 년 동안 형제이자 원수였고, 서로를 오해 속에 밀어 넣었던 그 적막한 눈동자가 마침내 온전한 마주침을 이뤘다.

무현은 아무 말 없이 다가갔다. 그의 발소리가 부서진 돌무더기 위에서 바스락거렸다.

무현은 소한의 앞에 멈춰 서서,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소한은 그 손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손과, 굳은살이 박인 무현의 손이 달빛 아래 교차했다.

"일어나라, 소한."

무현의 짧은 음성이 밤바람에 실려 퍼졌다.

"빚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혁련오가 쓰러졌어도, 흑월문의 진짜 채권은 아직 남아 있으니까."

소한은 떨리는 손을 들어 무현의 손을 마주 잡았다. 거칠고 투박한 두 손이 단단히 맞물렸다. 십 년 동안 엇갈렸던 핏줄의 온기가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순간이었다.

그때, 첨탑의 가장 깊은 곳, 혁련오가 추락한 암실의 심연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스으으…… 덜컥.

무현의 눈빛이 다시 매섭게 곤두섰다.

혁련오가 떨어졌던 그곳은 단순한 지하 감옥이 아니었다. 흑월문의 진짜 주인, 계약의 진정한 채권자가 잠들어 있는 '이름 장부'의 본원.

혁련오가 쓰러지며 흘린 피가 장부의 봉인을 완전히 깨워버린 것이다.

첨탑의 바닥이 다시 한번 크게 흔들렸다. 붉은 달빛이 순식간에 칠흑 같은 어둠으로 물들며, 암실의 틈새에서 거대한 금빛 글자들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그 글자들은 단순한 문자가 아니었다. 강호 전체의 목숨을 쥐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잔인한 '이름'들의 기록이었다.

무현은 소한과 소연을 등 뒤로 확고히 감싸며 명인의 칼자루를 다시 쥐었다.

진짜 결전은 이제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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