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화 마기 40년과 나노 장갑 경화
지하 500층의 차가운 철제 해치가 뜯겨 나간 자취 위로, 기계 유전자의 부패한 냄새와 섞인 고대 마기의 훈풍이 훅 끼쳐 들었다.
슈우욱—!
가쁜 호흡을 내뱉을 때마다 입김처럼 피어오르는 흑색의 증기. 그것은 단순한 냉기가 아니었다. 수천 년 동안 봉인되어 있던 고대의 사념과 티타늄 그룹이 인위적으로 주입한 나노머신 찌꺼기가 뒤엉켜 만들어낸, 일그러진 마기(魔氣)의 형상이었다.
"크윽……."
강진혁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체내를 순환하는 코어의 출력이 9,300 MW를 넘어선 지금도, 뼛속까지 파고드는 중압감은 가시지 않았다.
축적하기 시작한 마력의 양이 어느덧 40년을 구가하고 있었다.
보통의 무인들이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내공의 몇 배에 달하는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 하지만 진혁에게 그것은 완벽한 축복이 아니었다. 현대의 군사 기술로 개조된 인공 혈관과 3세대 생체 코어가 그 폭발적인 마기를 가까스로 억눌러 형체를 유지하고 있을 뿐, 자칫 방심하면 언제든 혈관이 터져 나가고 육체가 붕괴할 수 있는 시한폭탄과도 같았다.
[SYSTEM WARNING: 단전 구역 마기 농도가 임계치에 도달했습니다.]
[현재 내공 축적량: 40년 3개월분]
[나노머신 동기화율: 89.4% — 초과 부하 징후 감지.]
머릿속을 스치듯 지나가는 HUD의 경고음.
진혁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시야 구석에 깜빡이는 붉은 자국을 무시했다.
시스템은 이제 그에게 절대적인 신탁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자신의 육체가 지닌 상태를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거울이자, 때로는 버려야 할 낡은 내비게이션에 불과했다.
"필요 없다."
진혁의 낮고 묵직한 혼잣말과 함께, 눈앞에 떠 있던 푸른빛의 시스템 UI 일부가 강제로 꺼졌다.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내력을 통제한다.
심장의 박동을 마기의 흐름과 일치시키고, 혈관 속을 질주하는 나노머신을 의지의 힘으로 짓눌러 고정한다. 그것이 바로 3단계 '천마현신'을 거쳐 5단계 '초월천마경'의 문턱을 밟은 진혁만이 할 수 있는 경지였다.
쾅-!
진혁은 망설임 없이 해치 아래의 심연으로 몸을 던졌다.
발끝이 어두운 바닥에 닿는 순간, 주변의 공기가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었다.
여기는 크로노스 바이오의 극비 연구 시설, 그중에서도 가장 은밀한 코어 보존실이었다.
사방을 둘러싼 거대한 수조들 안에는 푸른색의 배양액이 가득 차 있었고, 그 속에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기괴한 생체 병기들과…… 1,000년 전 마교의 유골에서 추출된 뼛조각들이 정밀한 레이저 그리드에 감싸인 채 공중에 떠 있었다.
지이잉— 팟, 파팟!
천장에 설치된 비상 방어 프로토콜이 침입자를 인식한 듯 일제히 붉은 포탑을 겨누었다.
"침입자 감지. 보안 등급 0. 프로토콜 회수 절차 개시."
기계음과 함께 사방에서 수십 정의 플라즈마 개틀링 건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초고온의 입자빔이 공간을 찢어발기며 진혁을 향해 쇄도했다. 공기가 타오르며 매캐한 오존 냄새가 진동했다.
피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슈우우우-!
진혁의 전신에서 칠흑 같은 검강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단순히 날카로운 기운이 아니었다. 앞서 열차 위에서 제압한 수송대장 바이칸과 특수부대원들의 생체 코어, 그리고 플라즈마 에너지를 '흡원천공'으로 강제로 역류시켜 흡수한 뒤 정제해 낸, 순수한 파괴의 마강(魔綱)이었다.
"만법귀마(萬法歸魔)."
진혁의 눈동자가 암흑처럼 짙어졌다.
적의 공격 궤적, 플라즈마 입자의 회전 속도, 그리고 주변 전자기장의 주파수가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해체되었다.
쿠구구구구궁-!
날아오는 플라즈마 탄막 속으로 진혁이 걸어 들어갔다.
폭음과 함께 거대한 충격파가 보존실의 강화 유리 수조들을 쩌렁쩌렁 울렸다. 하지만 진혁의 몸에 닿은 플라즈마 에너지는 채 파열되기도 전에 그의 피부 위를 감싼 검은 마기에 의해 왜곡되고 흡수되었다.
[흡수율 94%. 전자기 전도 데이터 분석 완료.]
[나노머신 네트워크와의 실시간 동기화 진행 중……]
피부 표면을 흐르는 은빛 회로 선이 핏빛에 가까운 짙은 흑금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흡수한 전자기 전도 데이터가 나노머신과 융합하는 순간, 진혁의 육체는 한 층 더 단단한 갑옷을 입은 것처럼 변모했다.
찰나의 순간, 진혁의 오른손에 들린 [천마검]이 푸른색의 고주파 진동을 발산하며 허공을 가로질렀다.
챙강-! 콰아아앙!
정면에서 진혁을 저지하려던 중형 방어 로봇의 티타늄 합금 장갑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단 한 번의 검세. 그 여파만으로도 보존실 전체의 메인 서버 랙들이 폭발하며 불꽃을 튀겼다.
"크윽……!"
진혁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치밀어 오르는 열기를 눌러 담았다.
마기 40년의 내공이 폭발적으로 회전하면서 단전 부근에 엄청난 압력이 가해졌다. 하지만 그 고통마저도 지금의 진혁에게는 도약을 위한 자극에 불과했다.
챙-! 퉁!
진혁은 부서진 방어 로봇의 잔해 사이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목표는 로봇도, 흩날리는 파편도 아니었다. 보존실 중앙,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메인 콘솔 터미널.
거기에는 티타늄 그룹 회장 진무극의 모든 비밀과, 크로노스 바이오가 지난 수년간 은밀히 진행해 온 '천마 프로토콜'의 원본 데이터 드라이브가 박혀 있었다.
"찾았군."
진혁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손을 뻗어 콘솔 하단의 보안 포트에 [천마검]의 검신을 갖다 대었다. 검에 감돌던 마기가 케이블을 타고 흘러 들어가며 터미널의 방화벽을 강제로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치이익— 끼익, 쾅!
물리적인 해킹이나 암호 해독 따위는 필요 없었다. 압도적인 마기의 출력이 시스템의 메인 회로를 직접 태우며 데이터를 강제로 추출해 내는 무식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
디스플레이 화면 위로 수많은 텍스트와 홀로그램 파일들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데이터 다운로드 시작: 10%…… 40%…… 80%…… 100% 완료.]
[기밀 파일 명칭: <천마 프로토콜 최종 완성 계획 : 신서울 리셋>]
[소유주: 티타늄 그룹 회장 진무극]
화면의 최상단에 떠오른 문구를 확인한 진혁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거기에 적힌 내용은 충격적인 과거의 진실을 넘어, 지금 진무극이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에 대한 뼈아픈 실체였다.
‘천마의 육체는 단지 시발점에 불과하다. 40년의 마기를 품은 그릇이 완성되는 순간, 메인 시스템은 모든 데이터를 통합하여 신서울 전체의 생체 코어 네트워크와 동기화된다. 그리고 그 제어권은 오직…….’
문장이 끊어짐과 동시에, 화면 전체가 붉은색 경고등으로 물들었다.
띠- 띠- 띠- 삐익-
"설마……."
진혁이 낮게 뇌까렸다.
진무극은 단순히 진혁의 육체를 빼앗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가 완성한 '40년의 마기'와 융합된 육체를 매개로 삼아, 신서울 전역에 퍼져 있는 수백만 개의 생체 코어 출력을 한 번에 흡수하려는 거대한 음모.
신서울 전체를 자신의 거대한 영생의 제물로 바치겠다는 미친 계획이었다.
콰아아앙-!
그 순간, 보존실 전체가 견딜 수 없는 진동과 함께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하 500층의 상단 천장이 갈라지며 거대한 콘크리트 잔해들이 무너져 내렸다. 위쪽에서부터 압도적인 중압감이 밀려들었다.
"진혁 님! 외부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귀에 착용된 통신 유닛을 통해 윤아영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층 슬럼가 외곽으로 연결되는 모든 철도망과 터널에 티타늄 그룹의 정예 부대가 깔렸어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지금 상층부에서부터 내려오는 거대한 에너지 반응이 포착됐습니다. 이건…… 일반적인 특수부대가 아니에요!"
"알고 있다."
진혁은 콘솔에서 데이터 드라이브를 뽑아 품에 갈무리하며 차갑게 말했다.
그의 시선은 무너져 내리는 천장의 어둠 속을 향했다.
정면에서 느껴지는 서늘하고도 오만한 기운.
그것은 티타늄 타워 100층에서 마주했던 진무극의 잔영과는 또 다른, 날카롭고도 빈틈없는 검의 기운이었다.
"이미 판을 깔아두었군요, 아버님."
진혁의 입꼬리가 비틀리며 서늘한 미소가 걸렸다.
그는 손에 쥔 [천마검]을 가볍게 휘둘러 주변의 먼지를 털어냈다. 검신을 따라 흐르는 흑금색의 마강은 방금 전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조밀해져 있었다.
[나노마갑]의 경화율이 극한으로 끌어올려지며, 그의 피부는 이제 어지간한 폭발에도 흠집 하나 나지 않는 완벽한 방어막을 형성하고 있었다.
쿠구구궁-!
무너진 천장의 잔해 위로, 차가운 은빛의 전술 수트를 차려입은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선두에 선 자는 가벼운 도약만으로 수십 미터 아래의 바닥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은발을 정갈하게 넘긴 서늘한 이목구비, 그리고 손에 쥐인 채로 푸른 빛을 발하는 고주파 진동 검.
진무극의 혈육이자, 티타늄 그룹의 특수전 후사대를 이끄는 냉혈한 후계자.
진세린이었다.
"강진혁."
진세린의 차가운 목소리가 보존실의 잔해 속에 울려 퍼졌다.
그녀의 뒤로 수십 명의 정예 대원들이 일제히 무기를 겨누며 진혁을 포위했다.
"거기까지다. 네가 발버둥 쳐봐야, 아버님의 계획 안에서 노는 쥐새끼에 불과하다는 걸 그 몸으로 깨닫게 해주마."
진세린의 검 끝이 진혁을 향해 곧게 겨누어졌다.
공기가 얼어붙듯 싸늘해지는 그 순간, 진혁은 천천히 고개를 들며 그녀를 응시했다.
입가에 옅은 조소가 떠올랐다.
"쥐새끼가 누구인지는, 직접 부딪쳐 보면 알겠지."
마기 40년의 거대한 기운이 진혁의 전신을 휘감으며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지하 500층의 심연 속에서, 두 사람의 격돌을 알리는 최후의 전운이 무섭게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진세린의 발밑에서 폭발적인 에너지가 터져 나왔다. 3.5세대 생체 코어가 뿜어내는 출력이 주변의 대기를 순식간에 진동시키며 사방으로 충격파를 퍼뜨렸다.
슁-!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속의 잔상. 진세린의 몸이 공간을 가르며 진혁의 정면으로 파고들었다. 손에 쥔 고주파 진동 검이 허공에 시퍼런 궤적을 그리며 쇄도했다.
챙강-!
두 자루의 검이 부딪치는 순간,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질 정도의 파공음이 터져 나왔다.
진혁의 팔뚝에 얽혀 있던 나노마갑의 은빛 회로가 붉은빛을 발하며 충격을 분산시켰다.
"생각보다 가볍군, 진세린."
진혁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걸렸다.
40년 치의 마기를 압축해 단전 코어에 실은 진혁의 완력은 이미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어 있었다. 밀려드는 진세린의 공세를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받아내며, 오히려 그녀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이 미친 출력이……!"
진세린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자신이 탑재한 3.5세대 코어와 전술 연산 체계가 진혁의 검 끝에서 흘러들어 오는 기이한 마기를 감지하고 끊임없이 경고음을 울리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물리적 무력이 아니었다. 인간의 육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거대한 중압감이 그녀의 전신을 짓누르고 있었다.
콰구구궁!
진세린이 급하게 검을 회수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녀가 착용한 은빛 전술 수트의 표면에 미세한 스파크가 튀었다.
"후사대, 전원 사격 개시!"
진세린의 칼날 같은 명령과 함께, 포위망을 좁혀오던 특수전 후사대 대원들이 일제히 플라즈마 라이플의 방아쇠를 당겼다.
수십 줄기의 치명적인 에너지 탄막이 진혁을 사방에서 덮쳤다.
하지만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만법귀마."
눈앞에 날아오는 탄막의 궤적이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분해되었다.
진혁의 몸이 유령처럼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마광신보]의 2단계 궤적이 빛의 잔상조차 남기지 않고 탄막의 사각지대를 파고들었다.
슈우우욱!
"어, 어디로……?!"
대원들이 당황하며 총구를 돌리기도 전에, 진혁의 형체가 그들의 대형 한가운데로 파고들었다.
진혁의 손바닥이 최선두에 있던 대원의 가슴팍에 가볍게 내리꽂혔다.
흡원천공(吸元天功).
"크아아악—!"
대원의 3세대 생체 코어에서 뿜어져 나오던 에너지가 역류하며 그의 눈과 입으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단 1초 만에 코어의 출력이 바닥을 치며 대원이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진혁의 단전 속으로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추가로 흡수되었다.
[단전 코어 출력 상승: 9,500 MW 돌파!]
[내공 축적량: 42년분으로 갱신.]
"멈춰라!"
부하들이 순식간에 쓰러지는 것을 본 진세린의 얼굴에 분노와 당혹감이 스쳤다.
그녀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듯, 자신의 코어 출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수트 전신에서 눈이 멀 정도로 강렬한 은빛 플라즈마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진세린, 네 아버지가 꾸미는 음모가 뭔지 알고도 그 밑에서 검을 휘두르는 거냐?"
진혁이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손에 든 [천마검]에서 칠흑 같은 마기가 검강의 형태로 뻗어나가며 주변의 공기를 태웠다.
진세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버지 진무극이 자신에게 숨겨온 진실. '완벽한 그릇'을 만들기 위한 잔혹한 실험의 전말. 그녀 역시 어렴풋이 의심하고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진혁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녀의 신념을 뿌리째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시끄러워! 네가 뭘 아는 거지!"
진세린이 분기탱천하여 다시 한번 검을 치켜들었다.
그녀의 검에 실린 에너지는 이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후계자로서 부여받은 최고 등급의 전술 연산 체계가 그녀의 신체 반응 속도를 극대화했다.
하지만 진혁은 그 모든 움직임을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알 필요는 없다. 부수면 그만이니까."
쾅-!
진혁의 발밑의 콘크리트 바닥이 완전히 박살 나며 거대한 균열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마기 42년의 내공과 9,500 MW의 출력이 하나로 응축된 진혁의 검이 진세린을 향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천마일검(天魔一劍).
공간을 반으로 쪼개듯 낙하하는 절검의 궤적 앞에 진세린이 전개한 은빛 방어막이 유난히 가녀리게 떨리기 시작했다.
과연 이 일격 속에서 진세린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진혁은 티타늄 그룹의 본사를 완전히 붕괴시키고 진무극을 향한 마지막 심판을 완수할 수 있을 것인가. 지하 500층의 심연 속에서 두 사람의 운명을 가를 결정적인 충돌이 터져 나오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