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화 지하 철도 강탈전
시속 300킬로미터.
대기와의 마찰로 발생하는 고열과 폭풍이 철도 위를 덮쳤다.
쿠구구구구——!
신서울의 대심도 지하를 관통하는 자기부상 수송 열차. 티타늄 그룹의 자회사인 ‘크로노스 바이오’의 기밀 물자를 실은 그 거대한 철의 뱀은 어둠을 찢으며 광기 어린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그 열차의 지붕.
살을 깎아내는 듯한 풍압 속에서 강진혁의 칠흑 같은 머리카락이 거칠게 휘날렸다.
키이익-!
강철 표면을 짓밟으며 멈춰 선 진혁의 두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HUD의 푸른빛은 이미 스스로 꺼버린 지 오래였다. 인공지능의 차가운 보조 연산도, 시스템이 띄우던 기계적인 경고창도 그의 시야에는 없다.
오직 육신의 감각과, 뼛속 깊이 각인된 마공의 궤적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슈우우웅!
"타깃 발견! 사살하라!"
열차의 연결 통로와 상부 해치가 열리며 일제히 경보음이 울렸다.
티타늄 그룹의 정예 경비 병력, C급 중장갑 경비 사이보그 대대였다.
그들의 몸을 두른 강화 외골격은 군용 티타늄 합금으로 제작되어 일반적인 화기나 도검으로는 생채기조차 내기 힘들었다. 양팔에 장착된 플라즈마 블레이드가 어둠 속에서 푸른 예기를 뿜어내며 진혁을 향해 포위망을 좁혀왔다.
총 십여 명.
전원 4,000 MW 이상의 출력을 내는 전투형 코어를 탑재한 살인병기들이었다.
"하."
진혁의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시스템의 그늘을 벗어난 이후로, 세상은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적들의 심장 부근에서 고동치는 코어의 진동수, 근육 대신 장착된 인공 섬유의 수축 속도, 그리고 허공을 가르는 플라즈마 블레이드의 미세한 주파수까지.
모든 것이 손에 잡힐 듯이 명확했다.
콰아아앙!
가장 먼저 치고 나온 사이보그 하나가 음속에 가까운 기동력으로 진혁의 정면을 때려 부수듯 도약했다. 거대한 주먹이 풍압을 짓누르며 골수를 뒤흔드는 폭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진혁의 몸은 그보다 한 박자 빨랐다.
-사락.
[마광신보(魔光身影步)].
빛의 잔상조차 남지 않았다.
지하 철도의 고속 주행으로 생겨난 거대한 맞바람마저 진혁의 궤적을 붙잡지 못했다. 적의 거대한 주먹이 허공을 갈라치며 강철 지붕을 종잇장처럼 구겨버렸을 때, 이미 진혁의 형체는 그 잔해 속을 스쳐 지나간 뒤였다.
"어……?"
사이보그의 음성 변환 장치에서 당황스러운 노이즈가 흘러나왔다.
이미 늦었다.
슈익-!
진혁의 손에 들린 [천마검]이 허공에 칠흑 같은 궤적을 그리며 횡으로 휘둘러졌다.
고주파 공진형 다이아몬드 티타늄 합금과 압축된 마기가 결합된 검강(劍剛)은, C급 사이보그의 두꺼운 장갑판을 두부 썰듯 부드럽게 양단해 버렸다.
파지지직-!
"크윽……!"
스스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상체가 고속의 풍압 속에서 사방으로 흩날렸다.
단 한 번의 검소(劍掃).
철도 위를 지배하던 살인병기의 파편이 낙풍엽처럼 떨어져 내렸다.
"적의 기동력이 예상치를 초과한다! 화력을 집중해라! 포격 준비!"
나머지 사이보그들이 당황한 기색도 없이 일제히 양어깨에 장착된 소형 미니 런처를 전개했다.
타타타타탕!
폭우처럼 쏟아지는 철갑탄과 고폭탄이 진혁이 서 있는 지붕을 순식간에 불바다로 만들었다. 엄청난 화염과 파편이 시야를 가리며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시속 300킬로미터로 달리는 열차 위에서의 난전.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그대로 철도 아래로 떨어져 분쇄될 수 있는 절체절명의 환경이었다.
그러나 진혁의 표정은 흔들림 하나 없었다.
"시끄럽군."
진혁이 검을 거꾸로 잡으며 단전을 깊숙이 가라앉혔다.
쿵, 쿵, 쿵.
심장박동과 함께 8,950 MW에 달하는 단전의 출력이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뻗어 나갔다.
시스템이 없어도 상관없었다. 내공의 운기 조식은 이제 그의 본능이자 육체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바아아아압-!
진혁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칠흑 같은 마기가 거대한 폭풍처럼 피어올랐다. 그것은 총탄이 다가오는 순간, 공간의 기압을 일순간에 뒤틀어 탄환들의 궤적을 강제로 꺾어버렸다.
팅- 팅- 팅-!
쏟아지던 탄환들이 진혁의 몸에 닿기도 전에 사방으로 튕겨 나가며 철도 레일을 때렸다.
"방어막 출력이…… 무력화된다?"
"에너지 간섭 주파수가 일치하지 않아! 저 남자의 기운은 뭐지?!"
사이보그들의 안면 센서가 붉은 경고등을 깜빡이며 패닉에 빠졌다.
그들의 고성능 컴퓨터는 진혁의 행동을 연산하려 했지만, 시스템의 통제를 거부하고 오직 무인의 의지만으로 극대화된 [초월천마경]의 영역은 기계의 논리로 이해할 수 있는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진혁이 지면을 강하게 박찼다.
쿠웅!
고속으로 달리던 수송 열차의 철판이 움푹 파이면서, 진혁의 몸이 포탄처럼 공중으로 솟구쳤다.
마치 하늘을 유영하듯 허공에 떠오른 진혁의 검 끝에서 어두운 빛이 응축되었다.
주변의 공기가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으며 엄청난 중압감이 열차 상부를 내리눌렀다.
[천마일검(天魔一劍)].
비록 완전한 완성형은 아니었으나, 현재의 진혁이 뿜어내는 마기의 진수를 집약한 단 하나의 참격이었다.
취이익-!
공기가 비명을 지르며 찢어졌다.
검강이 낙하하는 순간, 열차 지붕을 경호하던 사이보그 대대의 전면 방어막이 유리조각처럼 산산이 부서졌다.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열차의 상부 장갑이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안쪽으로 함몰되었다.
중장갑을 두른 다섯 대의 사이보그가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철도 아래로 튕겨 나갔고, 남은 이들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고철 무더기로 주저앉았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학살이었다.
휘익-.
진혁이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구겨진 열차 지붕 위에 가볍게 착지했다.
검끝에서 흐르는 칠흑 같은 마기가 스르륵 흩어지며 잔광을 감췄다.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완벽한 호흡.
그의 눈앞에는 이제 수송 열차의 최상층 진입로이자, 보안실로 통하는 두꺼운 티타늄 합금 해치만이 남아 있었다.
-끼익, 쿠구궁.
내부에서 무언가를 잠그는 기계음과 함께, 해치 주변의 붉은색 경고등이 요란하게 깜빡였다.
[보안 레벨 1 통과. 수송대장 바이칸의 구역 진입 감지.]
[내부 방어 프로토콜 가동. 외부 침입자를 격리합니다.]
내부 스피커를 통해 기계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진혁은 묵묵히 그 해치를 응시하며 천마검의 손잡이를 더욱 단단히 고쳐 잡았다.
비명과 폭음이 난무하는 지하 철도의 바깥세상과는 달리, 수송 열차 내부의 공기는 얼어붙은 듯 무거웠다.
"나왔나."
진혁이 낮게 중얼거리며 해치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시속 300킬로미터로 달리는 철도 위에서, 이제 진짜 목적지인 3세대 군용 생체 코어와 크로노스 바이오의 핵심 데이터로 향하는 문이 열릴 차례였다.
쿠우우웅!
진혁의 부츠가 티타늄 합금 해치를 강하게 내리찍었다.
순간, 겹겹이 잠겨 있던 잠금장치들이 요란한 비명을 지르며 안쪽에서부터 박살 나기 시작했다. 기계적인 맞물림 따위는 진혁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8,950 MW의 무식한 마기 앞에서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했다.
-찌지직, 쿠구궁!
"이, 미친……! 문을 강제로 뚫고 들어온다고?!"
해치 너머, 수송실 내부에서 경악에 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보안실의 통제권을 쥐고 있던 수송대장 바이칸의 목소리였다. 그는 이미 일반적인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선, 3세대 군용 개조 시술을 받은 베테랑 전사였다.
쾅-!
해치가 완전히 안쪽으로 꺾이며 나뒹굴었다.
연기와 함께 뿜어져 나오는 매케한 오일 냄새를 뚫고, 진혁이 단숨에 수송실 내부로 발을 디뎠다.
사방이 모니터와 서버 랙으로 둘러싸인 통제실의 중앙.
거대한 체구의 바이칸이 양팔에 톱니바퀴 모양의 고주파 진동 블레이드를 전개한 채 진혁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가슴팍에 박힌 3세대 생체 코어가 눈먼 짐승의 심장처럼 미친 듯이 요동치며 푸른빛의 고압 전류를 사방으로 흩뿌리고 있었다.
"네놈이 바로 그…… 티타늄 타워를 뒤집어 놓았다는 실험체 07호인가!"
바이칸의 입가에 광기 어린 미소가 걸렸다.
그의 온몸을 두른 나노 장갑이 전자기 장막을 전개하며 주변의 공기를 바르르 떨게 만들었다.
"하부 조직의 쓰레기들과는 급이 다를 거다. 내 코어는 6,500 MW의 출력을 상시 유지한다! 네놈의 마기 따위가 내 전자기 장막을 뚫을 수 있을 것 같나!"
콰아아앙!
바이칸이 바닥을 박차며 돌진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수송실의 강철 바닥이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양팔에 장착된 고주파 진동 블레이드가 허공을 가르며 음속의 폭음을 터트렸다. 전자기 장막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압 플라즈마가 진혁의 피부를 태울 듯이 달구었다.
하지만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시끄럽다."
탁.
진혁의 발이 가볍게 밀려났다.
바이칸의 거친 돌진 궤적, 코어의 출력이 요동치는 주파수, 그리고 나노 장막의 공진점까지. 시스템의 보조 HUD가 없어도, 진혁의 뇌는 이미 모든 물리적 움직임을 완벽하게 연산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만법귀마(萬法歸魔)]의 경지.
기계의 공학적 원리와 마공의 기혈 흐름이 하나로 융합되어 도달한 초월적 통찰이었다.
파지지직!
바이칸의 블레이드가 진혁의 목을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진혁의 몸이 유령처럼 미끄러졌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바이칸의 공격은 허공을 갈랐다.
"뭐……?! 어디로 사라진 거야!"
당황한 바이칸이 급하게 몸을 회전시키며 반격을 시도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툭.
진혁의 손이 바이칸의 거대한 가슴팍, 정확히 3세대 생체 코어가 박혀 있는 단전 부위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크윽……? 이 자식이 어딜 만져!"
바이칸이 발악하듯 전자기 장막의 출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살을 태우는 듯한 고압 전류와 플라즈마 충격파가 진혁의 손바닥을 태우려 했다.
하지만 진혁의 입가에 옅은 조소가 스쳐 지나갔다.
-흡(吸).
쿠구구구궁——!
진혁의 손바닥에서 믿을 수 없는 흡입력이 폭발했다.
[흡원천공(吸元天功)].
단순히 적의 내력을 빼앗던 구시대의 마공이 아니었다. 나노머신 회로와 현대 군사 기술의 전자기 에너지, 그리고 3세대 생체 코어의 고출력 플라즈마 동력원 자체를 강제로 역류시켜 흡수하는 진화된 형태의 포식이었다.
"아…… 아아아아악!"
바이칸의 비명은 채 1초도 지나지 않아 짐승의 컥컥거리는 신음으로 바뀌었다.
그의 가슴팍에 박힌 3세대 코어의 푸른빛이 급격하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코어 내부에서 회전하던 에너지 밀도가 순식간에 떨어지며, 바이칸의 온몸을 두르던 나노 장갑이 파스스 부서져 내렸다.
"내, 내 코어가……! 동력이 빠져나간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네가 가진 그 기술의 원리를 조금 빌릴 뿐이다."
진혁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즈으으읏-!
바이칸의 코어에서 마지막 남은 고압 전력까지 완전히 뽑혀 나가는 순간, 그의 거대한 육체는 에너지를 잃은 인형처럼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눈동자의 초점을 잃은 바이칸이 통제실 바닥에 고꾸라졌다.
쿠당탕!
수송실 내부에 요란한 경보음이 멈추고, 오직 모니터들의 깜빡이는 불빛만이 어둠 속에서 진혁의 얼굴을 비추었다.
[SYSTEM MESSAGE (Offline)]
[경고: 강제 흡수된 3세대 생체 코어 에너지의 정제 및 동기화 진행 중.]
[단전 코어 출력: 8,950 MW → 9,200 MW로 상승.]
[나노머신 동기화율 갱신 완료.]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것은 시스템의 기계적인 음성이 아니었다.
오직 자신의 심장박동과 함께 온몸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더욱 강력하고 순수한 마기의 고동뿐이었다.
진혁은 천천히 손을 거두고, 바닥에 쓰러진 바이칸을 지나쳐 통제실 안쪽의 메인 콘솔 앞으로 걸어갔다.
휘릭.
진혁이 천마검의 검신으로 콘솔의 메인 프레임을 가볍게 내리쳤다.
지직-!
화면의 스파크가 튀며, 크로노스 바이오가 숨기고 있던 기밀 데이터베이스가 거대한 홀로그램 창으로 펼쳐졌다.
[크로노스 바이오 기밀 파일: '천마 프로토콜' 연계 실험체 배치도]
[최종 목적지: 제3구역 지하 500층, 마교 유골 보존실 및 진무극 회장의 메인 서버.]
홀로그램 화면에 떠오른 좌표를 확인한 진혁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신서울의 하층부를 넘어, 티타늄 그룹의 심장부가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진무극."
진혁이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검을 거두었다.
시속 300킬로미터로 달리는 수송 열차는 이미 목적지를 향해 어둠을 찢으며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