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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236화목차

제236화 상층부 격전

치이익―!

비릿한 혈향(血香)과 함께 과열된 합성 유압액의 역한 냄새가 타워 80층의 광활한 중앙 홀을 가득 메웠다.

벽면을 따라 설치된 비상경보등이 불길한 진홍빛을 토해내며 점멸할 때마다, 한때 신서울의 하늘을 내려다보며 위세를 떨치던 티타늄 그룹 최정예 '특수전 후사대'의 잔존 병력들이 바닥을 뒹구는 모습이 처참하게 드러났다.

찢겨 나간 인공 피혁 외피, 끊어진 광섬유 신경 다발에서 튀는 푸른 불꽃, 그리고 바닥에 고인 끈적한 암적색 생체 냉각유가 뒤엉켜 흡사 기계와 살점이 짓이겨진 도살장을 방불케 했다.

“버텨라! 밀리면 여기서 전부 끝장이다!”

“크아악! C조 방어선 완전 붕괴! 나노 실드가 관통당했다!”

“탄약 고갈! 철갑 탄두도 안 먹힌다! 젠장, 저 망할 깡통 놈들……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질 않아!”

후사대 2소대장 한석민이 부러진 고주파 진동검의 손잡이를 악착같이 쥐어틀며 핏물 섞인 비명을 토해냈다.

그의 떨리는 시야 너머를 빽빽하게 메운 것은 인간의 형태를 모방한 거대한 기계 괴물들이었다.

티타늄 그룹 총수 진무극 회장이 직속으로 거느리는 배신자 근위대, '철혈 근위대(鐵血近衛隊)'.

위이이잉―!

서늘한 무기질의 백색 안광을 번뜩이는 사이보그 근위병들은 감정조차 완벽히 거세된 살육 병기들이었다.

그들의 전신을 감싼 것은 포격조차 튕겨내는 5세대 고밀도 카본-티타늄 복합 장갑이었다. 심장부에는 일반 초인의 수십 배에 달하는 에너지를 끊임없이 뿜어내는 군용 중형 생체 코어가 탑재되어 묵직한 구동음을 울렸다.

그들이 쥔 3미터 길이의 초진동 대검(大劍)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대기 중의 입자가 찢겨 나가며 고주파 마찰음이 고막을 사정없이 찔러댔다.

채애애앵―!

“큭……!”

후사대 대원 하나의 가슴팍이 전자기 방어막째 양단되며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인간의 신경계로는 도저히 반응할 수 없는 0.001초 단위의 전술 연산 속도.

감정도, 고통도, 공포도 없는 기계 근위대는 파괴된 아군의 잔해조차 거침없이 짓밟으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계적인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진세린 대장님은 어디 계시냐! 대체 왜 본부와의 모든 통신망이 두절된 거야!”

“젠장, 회장이라는 자가 제 친딸과 직속 부대마저 사냥개처럼 내버렸단 말인가……!”

배신당했다는 지독한 절망감과 사방을 에워싼 죽음의 냉기가 후사대원들의 턱밑까지 차올랐다.

한때 그들은 기업의 지배자이자 살아 있는 신(神)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진무극의 충실한 수족이었다. 그러나 특수전 후사대가 기업의 비밀 연구 시설 내막을 목격한 순간,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정당한 보상이 아닌 비정하기 짝이 없는 '폐기 처분' 명령뿐이었다.

쿵. 쿵. 쿵.

철혈 근위대의 선두에 선 중장갑 개조체 세 기가 묵직한 발걸음을 옮겼다.

육중한 무게로 인해 강화 콘크리트 바닥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번져 나갔다.

어깨에 장착된 4연장 마이크로 미사일 포드가 찰칵거리는 기계음과 함께 일제히 전개되었다.

[타깃 록온: 후사대 잔존 개체 18명.]

[프로토콜 오메가: 비인가 생체 조직 전원 영구 말살.]

무미건조한 합성 기계음이 중앙 홀 전체에 섬뜩하게 울려 퍼지는 순간, 극한의 공포에 질린 대원들이 눈을 질끈 감았다.

죽음이 코앞에 닥친 절체절명의 찰나였다.

콰아아아앙―!

천장을 지탱하던 3중 복합 합금 격벽이 마치 썩은 나무판자처럼 산산조각 나며 터져 나갔다.

엄청난 양의 파편과 분진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

철혈 근위대의 백색 광학 센서가 일제히 반응하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자욱한 먼지와 초고열 플라즈마 연기를 찢어발기며, 묵직하고 검붉은 기류가 폭포수처럼 수직으로 쏟아져 내렸다.

그것은 단순한 물리적 충격파 따위가 아니었다.

타워 내부의 대기압을 통째로 뒤틀어버리고, 대기 중의 산소마저 얼어붙게 만드는 무자비한 패도(覇道)의 마기(魔氣).

쿠구구구궁!

홀 바닥에 무겁게 내려앉은 것은 칠흑 같은 흑발을 흩날리는 한 명의 사내였다.

강진혁.

그의 차가운 흑안(黑眼)이 안광을 번뜩이자, 홀 전체를 지배하던 살인병기들의 메인 연산 프로세서가 일제히 과부하를 일으키며 적색 스파크를 튀겼다.

진혁의 뒤편으로, 만신창이가 된 채 전투 슈트의 회로를 억지로 가동하고 있던 진세린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착지했다.

그녀의 입술에는 피가 맺혀 있었고, 장갑판 곳곳이 파여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서슬 퍼렇게 살아 있었다.

“대, 대장님……?!”

“살아 계셨습니까?! 그런데 옆에 있는 저 남자는…… 설마 슬럼가의 그 천마(天魔)?!”

후사대원들의 입에서 경악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티타늄 그룹의 공적이자 자신들이 제거해야 할 최악의 적으로 규정되었던 괴물 강진혁이, 배신당해 죽어가던 자신들의 총지휘관과 함께 천장을 뚫고 강림한 것이다.

진혁은 피를 흘리며 쓰러진 인간들의 형상과, 그들을 에워싼 강철의 군대를 무감각하게 훑었다.

그의 시야에는 과거 연산 보조를 담당하던 푸른색 HUD 시스템 창 따위는 떠오르지 않았다.

인공지능의 계산이나 데이터 스트림에 의존할 필요조차 없었다.

‘마신경(魔神境) - 진천(眞天).’

이미 진혁의 감각은 기계와 생체를 불문하고 세상 만물의 '맥(脈)'을 오롯이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근위병들의 흉부 깊은 곳에서 박동하는 생체 코어의 미세한 출력 변화, 전신 골격으로 뻗어 나가는 초전도 나노 회로의 진동 주기, 그리고 그들이 취하려는 기계적인 살육 궤적까지.

모든 것이 진혁의 의념(意念) 안에서 손바닥 들여다보듯 선명하게 그려졌다.

외부 시스템의 보조 따위는 털끝만큼도 필요 없는, 온전한 초인의 직관이었다.

위이이잉―!

[경고! 정체불명의 초고위험 생체 개체 감지.]

[생체 코어 출력: 측정 불가 (ERROR CODE: 0xFF).]

[내부 프로토콜 갱신: 침입자 즉시 섬멸 우선 순위 발동.]

근위대 50여 기의 렌즈가 일제히 붉은빛으로 전환되며 진혁에게 고정되었다.

교섭이나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치솟는 추진 제트음과 함께 가장 전면에 서 있던 10여 기의 사이보그가 바닥을 박차고 쏘아져 들어왔다.

관절부에 탑재된 부스터가 푸른 불꽃을 토해내며 순간적으로 음속의 장벽을 분쇄했다.

열 기의 초진동 대검이 사각(死角)을 빈틈없이 지워버리는 완벽한 입체 살진(殺陣)을 형성한 채 진혁의 사지와 숨통을 노리고 쇄도했다.

“위험해요…… 피해야 해요!”

진세린이 다급하게 손을 뻗으며 비명을 지르려던 찰나였다.

진혁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비틀렸다.

“고작 기계 부스러기들 주제에.”

진혁이 오른손을 가볍게 허공으로 뻗어 쥐었다.

스르릉―!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올려진 순수한 암흑의 마기가 그의 손바닥에서 응축되더니, 이내 한 자루의 칠흑빛 대검 형상을 이루어냈다.

[신천마검(新天魔劍)].

현대 공학의 나노 기술 따위가 흉내 낼 수 없는, 오직 진혁의 불굴의 의지와 생체 코어의 원초적 힘이 빚어낸 무위(無爲)의 극치였다.

검날을 따라 검붉은 마강(魔罡)이 소름 끼치는 파동을 일으키며 대기를 찢어발겼다.

그리고 그 순간, 진혁의 신형이 제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지워졌다.

파아아앗―!

바람소리조차 일지 않았다.

적들의 메인 프레임이 회피 기동을 연산할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 초월적인 보법.

‘신천마신공 제17식.’

허공을 가른 것은 허공을 가로지르는 단 한 줄기 가느다란 묵빛 궤적뿐이었다.

‘참단(斬斷).’

콰아아앙―!

마치 시간의 흐름이 멎어버린 듯한 기괴한 정적이 홀을 지배했다.

돌진하던 열 기의 근위병들이 허공에서 그대로 박제된 듯 굳어버렸다.

그들의 눈동자에 박혀 있던 광학 렌즈가 지직거리며 파르르 떨렸다.

스그적.

소름 끼치는 파열음과 함께, 최첨단 카본-티타늄 복합 장갑으로 무장했던 열 기의 사이보그들의 상체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베인 것도 아니었다.

단단한 흉부 장갑판, 내부에 이식된 군용 생체 코어, 티타늄 인공 척추와 초전도 신경 회로망까지, 단 하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일직선으로 두 동강 나 있었다.

치지지직―! 콰과과광!

잘려 나간 단면에서 검붉은 마기가 거세게 역류하더니, 내부의 전력망을 통째로 집어삼키며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단 일 초.

단 한 번의 검격에 티타늄 그룹이 자랑하던 살인병기 열 기가 불타는 고철 덩어리로 화해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쿵! 쿠구궁!

“……!”

후사대 대원들의 턱이 빠질 듯 벌어졌다.

자신들이 수십 분 동안 목숨을 갈아 넣으며 사투를 벌여도 흠집 하나 내지 못했던 철혈 근위대였다.

그런 괴물들이, 마치 썩은 짚단을 베어내듯 가볍게 지워져 버린 것이다.

“저, 저게 대체 무슨…….”

“인간의 속도가 아니야…… 시스템 지원이나 추진 부스터도 없이 저런 궤적을 그린다고?!”

그러나 경악에 잠겨 있을 틈조차 없었다.

동료들의 처참한 파괴를 목도한 나머지 40여 기의 기계 근위대에게 공포라는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내장된 마더 프로토콜의 명령에 따라 더욱 흉포한 살기를 뿜어낼 뿐이었다.

철컥! 치이이익!

후방에 도열해 있던 중장갑 근위병들의 양어깨와 흉부 장갑이 일제히 양옆으로 슬라이드되며 개방되었다.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백색으로 과열된 고출력 하이퍼 플라즈마 캐넌.

타워의 강화 외벽마저 단숨에 기화시킬 수 있는 결전용 화기였다.

[출력 리미터 전면 해제: 300%.]

[전방 구역 완전 소각 모드 기동.]

“모두 엎드려! 피해야 해!”

진세린이 사색이 되어 절규했다.

저만한 플라즈마 일제 사격이라면 80층 전체의 바닥 슬래브가 녹아내려 하층부로 붕괴할 터였다.

그녀의 부하들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하고 잿더미로 변할 것이 자명했다.

하지만 진혁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신천마검을 비스듬히 내리깔며 성큼 한 걸음을 내딛을 뿐이었다.

“어설픈 불장난이군.”

파아아앙―!

수십 줄기의 백색 플라즈마 광선이 일제히 격발되었다.

시야를 완전히 하얗게 태워버릴 정도의 맹렬한 섬광.

온도를 수만 도로 끌어올리는 살인적인 열파가 진혁을 통째로 집어삼키기 위해 덮쳐들었다.

바로 그 찰나, 진혁의 왼손이 허공을 향해 장(掌)을 뻗었다.

그의 단전 안쪽, 심연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순수한 마기의 소용돌이가 거대한 역회전을 시작했다.

‘만법귀마(萬法歸魔).’

모든 이치를 부수고, 만물의 에너지를 마도로 귀속시킨다.

현대의 물리학이 규정한 에너지 보존의 법칙 따위는, 진혁의 의념과 마도의 섭리 앞에서는 한낱 조잡한 규칙에 불과했다.

슈우우우욱―!

중앙 홀의 허공에서 물리적 상식을 깨부수는 기적이 펼쳐졌다.

진혁을 향해 쏟아지던 수십 줄기의 거대한 플라즈마 광선들이, 그의 손바닥 앞에 형성된 손톱만 한 암흑의 특이점(Singularity)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공간이 비틀리며 빛의 굴절마저 꺾였다.

폭발해야 마땅할 수만 도의 플라즈마 복사열이, 맹수의 아가리로 들어가는 사냥감처럼 순식간에 진혁의 손바닥 안으로 압축되고 정제되어 사라져 갔다.

“……말도 안 돼. 흡수했다고? 저 순수한 붕괴 에너지를 맨몸으로?!”

후사대의 기술 장교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경악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어떤 전자기 차폐 장치도, 분산 역장도 없이 맨손으로 군용 플라즈마의 일제 사격을 흡수해버린 것이다.

진혁의 피부 표면에 옅은 검붉은 마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흡수한 플라즈마 에너지는 체내의 기혈망을 한 바퀴 휘돌며 순식간에 진혁의 내력으로 동화되었고, 그의 마기를 더욱 흉포하게 벼려내는 강력한 불쏘시개가 되었다.

진혁이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아연실색한 기계 인형들을 내려다보았다.

“네놈들의 주인이 가르쳐주지 않더냐.”

진혁의 목소리가 뇌명처럼 귓전을 뒤흔들었다.

“힘이란 한낱 기계 찌꺼기를 살점에 처박는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콰아아앙!

진혁이 바닥을 박찼다.

단 한 걸음.

그러나 그 순간 타워 80층 전체의 합금 바닥이 거미줄처럼 박살 나며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파지지직!

남은 근위병들이 다급히 초진동 대검을 치켜들며 연계 방어 태세를 취했다.

하지만 진혁의 검로는 이미 그들의 연산 장치가 예측할 수 있는 차원을 아득히 넘어서 있었다.

‘신천마신공 제18식.’

검끝에서 뿜어져 나온 것은 한 가닥의 실처럼 가느다란 마강이었다.

그러나 그 실은 허공을 가르는 순간 수백, 수천 개의 핏빛 번개로 분기(分岐)하며 전 방위로 뻗어 나갔다.

‘개천(開天).’

하늘을 연다.

하늘을 지배하던 티타늄의 철옹성을, 이 땅의 진정한 천마가 갈라버린다!

콰르릉―! 콰바바바방!

중앙 홀 전체가 핏빛 번개의 폭풍에 집어삼켜졌다.

그것은 단순한 물리적 타격이 아니었다.

물질의 분자 결합을 강제로 해체하고, 전자기 회로의 맥을 끊어버리는 절대적인 붕괴의 파도였다.

“치지직…… 치직……!”

[내부 장갑 손상률: 100%.]

[생체 코어 제어 불능…… 비상 정지 불가……!]

철혈 근위대의 광학 센서들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

그들이 쥐고 있던 3미터짜리 초진동 대검이 두부처럼 썰려 나갔다.

단단한 5세대 카본 장갑이 종이쪽처럼 찢겨 나갔고, 가슴팍의 고출력 코어들이 내력을 견디지 못하고 연쇄적으로 파열되었다.

서걱! 서거걱!

허공을 가르는 검날의 궤적은 우아할 정도로 유려했으나, 그 결과는 참혹한 도살이었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대여섯 기의 근위병이 허리통째로 잘려 나가 바닥을 굴렀다.

두 번 휘두를 때마다 장갑차만 한 거구의 사이보그들이 사지가 분해되어 파란 불꽃을 뿜어냈다.

단 십 초.

백 명에 달하던 최정예 사이보그 부대가, 단 한 사람의 검 아래 완전히 도륙당했다.

화르륵―!

바닥에 고인 냉각유와 합성 혈액 위로 불길이 치솟았다.

산산조각 난 기계 파편들과 절단된 의수, 의족들이 홀 전체에 쓰레기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살아남아 가동하는 기계는 단 한 기도 없었다.

완벽한 괴멸이었다.

치이익…… 치익…….

검붉은 마강을 거두어들이며 진혁이 천천히 신천마검을 내렸다.

그의 옷자락에는 단 한 방울의 기름도, 피도 튀어 있지 않았다.

괴물들을 모조리 찢어발겼음에도, 그의 호흡은 막 명상에서 깨어난 것처럼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하…… 아…….”

진세린의 입에서 넋이 나간 듯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녀 역시 티타늄 그룹의 정통 후계자로서 수많은 초인과 사이보그 병기들을 보아왔다.

자신 또한 최고급 군용 생체 코어를 이식받고 특수 슈트를 완벽히 다루는 일류의 무인이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서 있는 남자는 차원이 달랐다.

그는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그렇다고 기계의 굴레에 얽매인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의지만으로 물리 법칙을 비틀고, 시스템의 통제를 비웃으며 홀로 우뚝 선 존재.

‘이것이…… 저 남자가 도달한 무(武)의 극의…….’

진세린의 단전 부근이 형용할 수 없는 뜨거운 열기에 휩싸였다.

진혁이 뿜어냈던 마기의 잔향에 공명하듯, 그녀의 몸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생체 코어와 잠재력이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대, 대장님…… 살아 계셨군요……!”

살아남은 후사대원 몇 명이 비틀거리며 진세린을 향해 다가왔다.

그들의 눈에는 배신당한 자의 슬픔과, 기적처럼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은 곧 진세린의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강진혁에게로 향했다.

공포.

그리고 본능적인 경외.

국가급 무력을 지녔다던 철혈 근위대를 한 줌의 고철로 만들어버린 사내.

저 사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들 따위는 숨 쉬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터였다.

한석민 소대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대장님…… 저자는…… 대체…….”

진세린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진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냉혹하게 뻗은 어깨, 온몸을 감싼 짙은 어둠.

그러나 그 어둠은 아버지가 보여주던 추악한 탐욕의 어둠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시스템의 족쇄를 스스로 끊어버린 자만이 뿜어낼 수 있는, 절대적인 자유와 진정한 초월의 기운이었다.

진혁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진세린을 응시했다.

그의 흑안에는 일말의 감정 동요도 없었다.

“잡음은 치웠다.”

진혁의 무감각한 목소리가 적막을 깼다.

“약속대로 길을 열어라, 진세린.”

진혁의 시선이 홀 중앙 너머, 90층과 최상층 100층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티타늄 격벽을 향했다.

그곳이야말로 진무극이 도사리고 있는 심장부이자, 신서울 전체를 제물로 바치려는 지옥의 입구였다.

진세린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찢어진 슈트 틈새로 피가 배어 나왔지만,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이전에 없던 서늘한 결의가 타오르고 있었다.

아버지를 향한 맹목적인 복종은 끝났다.

티타늄 그룹이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품으로 살아왔던 과거도, 저 사이보그들의 잔해와 함께 불타 사라졌다.

진세린이 피투성이가 된 발걸음으로 진혁을 향해 걸어 나왔다.

그녀의 손에는 붉은빛으로 암호화된 특수 데이터 칩이 들려 있었다.

“……회장실로 통하는 비인가 다이렉트 리프트의 마스터 키예요.”

진세린의 목소리가 떨림을 멈추고 똑바로 꽂혔다.

“그리고…… 저 격벽 너머에는 당신이 모르는 아버지의 '진짜 괴물'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격벽 저편에서, 타워 전체를 진동시키는 기괴한 금속성의 박동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쿵. 쿵. 쿵.

마치 거대한 심장이 뛰는 듯한 그 소리에,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마침내, 신서울의 꼭대기에서 마주할 진정한 심연의 문이 열리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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