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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235화목차

제235화 결사의 진격로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타워 60층 통제실의 천장을 박살 내며 강림한 강진혁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검붉은 마기는 순식간에 통제실 전체를 뒤덮었다.

치이익—!

키메라 아수라 부대의 고출력 플라즈마포가 일제히 화염을 내뿜었으나, 진혁의 주변 1미터 반경에 도달하기도 전에 허공에서 바스라져 흩어졌다. 만법귀마(萬法歸魔)의 권능이었다. 적의 공격 에너지를 그대로 흡수해 자신의 단전을 채우는 괴물 같은 순환.

"후처리가 조금 늦었다."

진혁이 고개를 돌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진세린을 바라보았다. 티타늄 그룹의 후계자로서 오만한 빛을 띠던 그녀의 전신 수트는 처참하게 찢어져 있었고, 입가에는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강진혁."

진세린의 눈동자에 안도와 경외가 뒤섞였다. 그녀는 자신이 믿었던 아버지 진무극에게 버림받았고, 이 거대한 철의 요새에서 개처럼 죽을 뻔했다. 그런 그녀를 구원한 것은 티타늄 그룹이 가장 철저하게 짓밟으려 했던 실험체 07호였다.

"일어나라. 구경거리는 끝났다."

진혁이 가볍게 손을 뻗자, 마기가 진세린의 부서진 수트 내부의 나노 회로를 강제로 재구동시켰다.

파지직-!

전류가 흐르며 진세린의 신체가 강제로 일으켜 세워졌다.

"크윽……! 내 수트의 시스템이…… 네 의지대로 움직인다고?"

"시스템 따위에 의존하니까 그런 꼴을 당하는 거다. 내 단전의 맥을 빌려주마. 버텨라."

진혁은 진세린을 돌아보지 않은 채 통제실의 중앙 콘솔을 바라보았다. 화면 위로는 티타늄 타워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연성진의 도안이 붉은 경고등과 함께 점멸하고 있었다.

[WARNING: 마스터 돔 코어 동기화율 92% 돌파.]

[경고: 하층부 생체 코어 흡수 공정이 가속화됩니다.]

진무극이 신서울 전체를 거대한 제물로 삼아 '천마 프로토콜'의 원형을 강제 가동하려는 의도가 더욱 명확해지고 있었다.

콰아아아궁—!

그때, 통제실 외곽의 거대한 강화 유리창 너머로 거대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신서울 제4구역의 폐허 슬럼가에서부터 지평선을 뒤흔들며 밀려오던 저항군 ‘니르바나’의 장갑차 대열과 해방된 무인들의 군세가 티타늄 타워의 외곽 방어선을 향해 돌격하고 있었다.

"진혁 대장! 안쪽에 있나!"

통신기를 타고 송수연의 거칠면서도 호기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외곽 방어벽은 우리 니르바나와 의협의 무인들이 완전히 박살 냈다! 티타늄 타워의 아랫길은 우리가 확실하게 고정해 둘 테니, 위쪽은 네가 알아서 쓸어버려라!"

이어 천우진의 굵직한 저음이 겹쳐 들려왔다.

"형님, 중장갑 벙커 버스터 탄환들을 아낌없이 쑤셔 박아 줬습니다. 타워 하부 환기 통로로 통하는 루트-오메가는 완전히 열렸습니다. 거기로 진입하십시오!"

지상에서는 저항군이, 타워 내부에서는 진혁이 동시에 티타늄 그룹의 심장을 조여 들어가는 형국이었다.

"좋다."

진혁이 낮게 읊조리며 검붉은 마기를 온몸으로 끌어올렸다. 그의 등 뒤로 가시처럼 돋아난 마기 실루엣은 이미 인간의 형상을 아득히 넘어선 상태였다.

콰쾅!

통제실의 잔해를 짓밟고 일어선 진혁이 진세린을 한 손으로 가볍게 잡아 채며 입을 열었다.

"올라간다. 눈 똑바로 뜨고 봐라. 네가 믿었던 아버지가 만든 제국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티타늄 타워 하부, 루트-오메가 환기 통로.

800도가 넘는 고열과 가압 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이 지옥 같은 배기구는 일반적인 인간은 물론이고 3세대 생체 코어를 이식한 정예 용병조차 몇 초 만에 재로 만들어버리는 사지였다.

하지만 지금 그 불길의 한가운데를 걷는 이가 있었다.

스으으…….

강진혁의 걸음걸이는 너무나 평온했다. 그의 주변을 감싼 마기는 단순한 방어막이 아니었다. 주위의 고열과 고압 플라즈마 에너지를 모조리 역류시켜 자신의 단전을 회전시키는 연료로 전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가…… 루트-오메가라고?"

진세린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이곳은 티타늄 그룹의 최고 기밀 구역이자, 보안 등급 SSS에 해당하는 자율 살인 로봇들이 상시 대기하는 죽음의 터널이었다. 그러나 진혁이 걸어가는 길목마다, 수십 톤에 달하는 전투용 사이보그들과 자율 방어 포탑들은 단 하나의 마기 파동에 부딪혀 고철 덩어리로 전락하고 있었다.

"쇳덩어리들이 시끄럽군."

진혁의 눈동자가 암흑 속에서 은빛으로 번뜩였다. 그의 손에 쥐인 검은 기류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통로 벽면에 숨어 있던 방어 시스템의 메인 프레임이 통째로 뜯겨 나갔다.

[SYSTEM NOTIFICATION]

[사용자 강진혁의 마기 밀도가 임계점을 초과했습니다.]

[마신경(魔神境) - 진천(眞天)의 영역이 물리적 공간을 침식합니다.]

시스템 HUD는 이미 꺼진 지 오래였지만, 진혁의 뇌 속에는 그 어떤 슈퍼컴퓨터보다 완벽하고 정밀한 '맥(脈)'의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타워 전체를 지탱하는 메인 전력선, 마스터 코어의 맥동, 그리고 진무극이 숨어 있는 최상층 100층을 향하는 가장 짧고 잔인한 혈로(血路).

"도착했다."

발걸음이 멈춘 곳은 티타늄 타워의 중간 관문인 75층 '중앙 리프트 허브'였다. 거대한 철문 너머에서는 이미 진무극의 친위대인 '블랙 가드'의 잔당들과 개조된 키메라 부대가 진혁 일행을 맞이하기 위해 진을 치고 있었다.

스으으윽—.

철문이 서서히 개방되며, 그 너머로 수백 개의 붉은 광학 센서가 진혁을 향해 일제히 빛을 발했다.

"피험체 07호의 진입을 확인. 사살 개시."

기계음과 함께 거대한 중장갑을 걸친 사이보그 살인병기들이 일제히 플라즈마 개틀링건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초당 수천 발의 탄환이 뿜어내는 화망은 공간 자체를 갈아버릴 듯 흉포했다.

하지만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시끄러운 소리."

그가 오른손을 가볍게 치켜들었다.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 제12식 - 만상귀일(萬象歸一)].

콰아아아아아앙——!

진혁의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온 검붉은 마기가 거대한 소용돌이를 그리며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탄환은 가속도를 잃은 채 허공에서 멈춰 섰고, 그 궤적이 역으로 꺾이며 적들의 몸뚱이를 관통했다.

파지지직! 쿠궁!

단 한 번의 손짓이었다. 블랙 가드의 정예 사이보그 수십 기가 일시에 내부 회로가 역류하며 폭발을 일으켰다. 철판이 종잇장처럼 구겨지고, 타워의 바닥이 거대한 충격에 갈라졌다.

"이게…… 인간이 낼 수 있는 무력이라고?"

진세린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가 보아온 티타늄 그룹의 회장 진무극은 세계를 손아귀에 쥔 절대자였다. 하지만 지금 강진혁이 보여주는 무력은 단순한 '강함'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선 상태였다. 그것은 자연재해이자, 이 세계의 법칙을 새로 쓰는 신의 권능 그 자체였다.

진혁은 폭발하는 잔해 속을 유유히 걸어나오며 시선을 타워의 더 높은 곳, 하늘과 맞닿은 최상층을 향해 던졌다.

"진무극."

차가운 읊조림이 전장을 가득 채웠다.

"네가 만든 그릇이 어디까지 부서질 수 있는지, 직접 확인해 주마."

진혁의 발밑에서 다시 한번 대지가 울부짖었다. 신서울의 밤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티타늄 타워의 꼭대기를 향해, 마신(魔神)의 진격이 다시 한번 가속화되었다.

쿠구구궁—!

75층 중앙 리프트 허브가 완전히 박살 나며 거대한 철제 바닥이 아래로 꺼져 내렸다. 진혁의 발길질 한 번에 수백 톤짜리 방어벽이 두부처럼 으깨졌고, 그 잔해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고열의 스팀이 전장을 하얗게 물들였다.

"가자."

진혁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성큼성큼 걸었다. 그의 뒤를 따르는 진세린은 찢어진 전신 수트의 통증을 악물며 참아내고 있었다. 강진혁이라는 거대한 존재가 뿜어내는 마기의 여파만으로도 그녀의 단전은 쉴 새 없이 진동하며 각성하고 있었다.

[WARNING: 상층부 80층 구역, 방어 프로토콜 비상 가동.]

[경고: 무인 살인병기 '블랙 가드' 잔존 세력이 집결 중입니다.]

귀를 찢는 듯한 경보음이 타워 전체를 울렸지만, 진혁에게 그것은 단순한 소음 쪼가리에 불과했다. 그의 뇌 속에는 이미 티타늄 타워의 모든 전력망과 배관, 그리고 적들의 심장박동이 '맥(脈)'의 형태로 투명하게 비치고 있었다.

슈우욱— 툭!

"끄아아악!"

진혁이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80층 통로의 천장에 매복해 있던 스텔스형 암살 로봇들이 일제히 지면으로 추락했다. 그들의 기계 코어는 외부 장갑에 단 하나의 흠집도 난 적이 없었다. 다만 진혁이 뿜어낸 미세한 마기가 장갑의 틈새를 타고 흘러 들어가 내부의 연산 회로와 생체 신경망을 철저하게 역류시켰을 뿐이다.

죽음의 기예(技藝). 그것이 바로 현대 군사과학의 총화인 티타늄 그룹의 병기들을 무력화하는 강진혁만의 방식이었다.

"괴물……."

진세린은 입술을 잘게 깨물었다. 아버지가 만든 최정예 살인병기들이 진혁의 손길 몇 번에 고철더미로 변해 굴러다니는 광경은 경외감을 넘어선 공포를 안겨주었다.

바로 그때였다.

콰르릉-!

80층과 81층을 잇는 거대한 강화 유리 복도의 상단이 통째로 폭발하며, 수십 개의 섬광이 쏟아져 내렸다.

"방해꾼들이 또 기어 나오는군."

진혁의 흑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연기가 걷히고 드러난 공간에는 티타늄 그룹의 친위대 중에서도 가장 잔혹하고 악명 높은 정예 부대, '철혈 근위대(Iron Guard)'가 버티고 서 있었다.

전신을 초고강도 바이브라늄 합금과 5세대 생체 코어로 개조한 그들은, 일반적인 초인 수십 명을 상대로도 압도적인 학살을 벌일 수 있는 살인마들이었다. 그들의 선두에 선 지휘관이 붉은 광학 눈을 번뜩이며 거대한 고주파 진동검을 겨누었다.

"피험체 07호의 생포 및 사살 코드가 갱신되었다. 전원, 분쇄하라!"

찌릿-! 찌지직-!

근위대 전원의 검과 수트에서 파란색 고주파 전류가 뿜어져 나오며 공간을 찢을 듯한 소음을 발생시켰다. 그들이 발을 구르는 순간, 타워 전체가 진동하며 공간의 압력이 급격히 높아졌다.

하지만 진혁은 그 압박감 속에서도 여유롭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시끄럽다."

콰아앙—!

진혁이 발을 구르는 것과 동시에,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검붉은 마기가 거대한 파도처럼 전방으로 쇄도했다.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 제13식 - 파천검강(破天劍罡)].

단 한 번의 휘두름이었다. 공간을 가르는 검기가 철혈 근위대의 고주파 진동검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파지직- 쾅!

고주파 진동으로 모든 것을 분쇄하려던 근위대의 무기는 진혁의 마기 앞에서 단 한 순간도 버티지 못하고 유리 조각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크윽……?! 이 출력은 대체……!"

지휘관의 경악 어린 단말마를 끝으로, 검붉은 마기는 그들의 전신을 관통했다. 나노 장갑이 박살 나고, 5세대 생체 코어가 과부하로 인해 새빨갛게 달아오르며 내부에서부터 폭발을 일으켰다.

쿠구구구궁—!

순식간이었다. 티타늄 그룹이 자랑하는 최정예 철혈 근위대 수십 기가 단 한 번의 검광에 흔적도 없이 증발했다. 복도의 바닥에는 깊고 거대한 참호가 파였고, 사방으로 튀긴 불꽃이 타오르며 매연이 짙게 깔렸다.

진혁은 그 불길 속을 헤치며 멈추지 않고 걸었다. 그의 등 뒤에서 진세린이 넋을 잃은 표정으로 그를 뒤따랐다.

"이제…… 90층이다."

진혁의 낮은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티타늄 타워의 최상층, 모든 음모의 원흉이자 자신의 창조주였던 진무극이 기다리는 그곳을 향해, 마신의 진격은 단 한 순간도 멈출 줄 몰랐다.

그리고 마침내 도달한 90층의 거대한 철문 너머에서, 세상의 모든 빛을 집어삼킬 듯한 압도적인 암흑의 에너지가 진혁을 향해 포효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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