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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234화목차

제234화 진세린의 구원 요청

치지지직―!

신서울 제4구역, 끝이 보이지 않는 슬럼가의 허공을 무겁게 짓누르던 잿빛 스모그와 기름 섞인 산성비가 공중에서 하얗게 증발하고 있었다.

축축하게 젖은 아스팔트 바닥에는 한때 대륙 최강의 용병 기업 ‘아이언 윌’의 에이스라 불렸던 제프로스의 거대한 육체가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4세대 군용 생체 코어가 포효하듯 토해내던 흉포한 메가와트급 출력은 온데간데없었다. 외형을 감싼 티타늄 합금 장갑은 찌그러진 곳 없이 멀쩡했으나, 내부의 인공 신경망과 유기 세포, 나노 액추에이터는 모조리 강진혁의 마기(魔氣)에 의해 분자 단위로 재구성되며 파괴된 상태였다.

기괴할 정도의 침묵이 골목을 집어삼켰다.

깨진 콘크리트 엄폐물 뒤에 숨죽이고 있던 아이언 윌의 잔존 용병들은 방아쇠에 건 손가락조차 움직이지 못했다. 그들의 망막 디스플레이(HUD)에는 붉은색 오류 경고창만이 시야를 가릴 정도로 미친 듯이 점멸하고 있었다.

[WARNING: 미확인 생체 에너지 주파수 계측 불가]

[TARGET ERROR: 대상의 물리적 기동 궤적 연산 실패]

[전술 컴퓨터 과부하: 즉각적인 전투 이탈 및 퇴각을 권장합……]

그러나 누구도 감히 도망치지 못했다.

허공을 딛고 선 사내의 서늘한 시선이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목덜미를 보이지 않는 오랏줄처럼 틀어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칠흑 같은 흑발 아래로 번뜩이는 형형한 안광.

강진혁.

그의 목덜미와 손목을 따라 흐르던 은빛 개조 회로선은 이제 푸른빛이나 붉은빛 같은 기계적 신호로 점멸하지 않았다. 인공적인 광채를 집어삼킨 자리는 오직 무저갱의 심연을 닮은 순수한 흑색 마기로 가득 차 있었다.

‘마신경(魔神境) - 진천(眞天).’

과거 그를 옥죄고 보조하던 시스템 인공지능 ‘설화’의 무기질적인 목소리도, 눈앞을 어지럽히던 반투명 상태창도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지 오래였다.

시스템의 도움 따위는 더 이상 필요치 않았다.

인공지능의 연산보다 빠르게 흐르는 영각(靈覺), 기계의 알고리즘 따위가 흉내 낼 수 없는 극의의 의념(意念)이 그의 단전과 혈관 속 수억 개의 나노머신을 한 몸처럼 지배하고 있었다.

“……괴물.”

살아남은 중장갑 용병 중 하나가 손에서 대구경 돌격소총을 떨어뜨리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패배와 공포가 신경계를 마비시킨 탓이었다.

강진혁은 그들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이미 투기를 잃고 꺾여버린 패자들에게 낭비할 공력은 단 한 줌도 남아 있지 않았다.

스슥.

그때, 폐허가 된 골목 어귀의 매캐한 연기를 뚫고 거친 군화 소리와 함께 붉은 가죽 재킷을 걸친 여전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반(反)기업 저항군 ‘니르바나’의 총수, 송수연이었다.

그녀의 등 뒤로는 육중한 중화기로 무장한 저항군 전사들과, 낡은 사이보그 의수를 삐걱거리며 탄창을 점검하는 천우진이 뒤따르고 있었다.

“진혁 씨!”

송수연이 부서진 방벽 더미를 가볍게 도약해 넘으며 진혁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시선이 바닥에 널브러진 제프로스의 거구를 스치자, 붉은 눈동자에 짙은 경악과 전율이 번져 나갔다.

아이언 윌의 최고 전력 제프로스. 군용 4세대 코어를 탑재하여 단신으로 하층 슬럼가 세 개 구역을 지도에서 지워버릴 수 있는 살인귀가, 외상 하나 없이 내부만 완벽하게 괴멸된 채 죽어 있었다.

“정말로…… 제프로스를 혼자서 끝장낸 건가?”

“숨통을 끊어 불필요한 번거로움을 없앴을 뿐입니다.”

진혁의 건조한 대답에 천우진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의수의 결착부를 거칠게 내리쳤다.

“여전하군 그래. 4세대 코어를 장착한 최고 등급 개조 초인을 순식간에 고철 덩어리로 만들어버리다니. 자네 몸속을 도는 건 이제 기계유가 아니라 진짜 고대 전설 속 마신의 피인 모양이야.”

“피가 기계유든 마신의 혈맥이든 상관없습니다. 도구에 불과하니까요.”

진혁이 단전에 맺힌 흑색 마기를 차분히 갈무리하며 호흡을 골랐다.

제프로스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격돌했던 에너지를 만법귀마(萬法歸魔)의 이치로 분해해 자신의 기혈로 온전히 환원한 덕에, 단전의 과열이나 기력의 소모는 거의 없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삐이이이익―!

고막을 찢을 듯한 초고주파 전자 노이즈가 대기를 가르며 진동했다.

저항군 진영의 통신 단말기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듯 붉은 스파크를 뿜어냈고, 뒤편에서 홀로그램 패널을 두드리고 있던 윤아영이 경악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잠깐! 주파수 간섭이 너무 심해! 이건…… 일반적인 해킹이나 전파 방해가 아니야! 티타늄 본사 최상위 메인프레임에서 방화벽을 강제로 부수고 들어오는 군용 양자 암호 신호인데?!”

“티타늄?”

송수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게 굳어졌다.

진혁의 가늘어진 눈매 사이로 서늘한 안광이 스쳤다.

치익, 치지직……!

윤아영의 단말기 상공으로 뿜어져 나온 푸른색 광선이 공중에서 일그러진 3차원 홀로그램을 투사했다.

노이즈가 자글거리는 통신 화면 너머로 나타난 인물은 피와 화약 연기로 엉망이 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갈하게 넘겼던 흑발은 산발이 된 채 흩어져 있었고, 몸에 두른 티타늄 그룹 1계급 전신 군용 슈트는 곳곳이 찢겨 나가 내부의 인공근육 섬유가 푸른 불꽃을 튀기고 있었다.

티타늄 그룹 특수전 후사대 대장.

진무극 회장의 친딸이자 후계자 중 한 명인 진세린이었다.

[……강진혁! 들려? 내 목소리가 들리냐고!]

진세린의 목소리는 쇳가루를 삼킨 것처럼 거칠게 긁히고 있었다.

그녀의 배경 너머로 처절한 금속 마찰음과 중화기 폭음, 그리고 인간의 성대가 아닌 기계음이 뒤섞인 비명이 끊임없이 메아리쳤다.

콰아아앙―!

통신 영상이 거세게 흔들리며 화면 가득 붉은 비상 경보등이 점멸했다.

“진세린.”

진혁이 한 걸음 다가서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티타늄 타워 내부인가.”

[하아, 하아…… 그래. 60층 중앙 보안 통제실이야. 시간이 없어. 길게 설명할 여유 따윈 없다고!]

진세린이 뒤를 향해 플라즈마 피스톨을 난사했다.

푸른 플라즈마 탄환이 허공을 가르고, 이내 무언가 거대한 강철 복합체가 부서지는 파열음이 스피커를 찢을 듯 울렸다.

[아버지가…… 아니, 진무극 그 미친 늙은이가 마침내 최후의 잠금을 해제했어. ‘무인 살인병기 프로토콜’이 가동됐다고!]

“무인 살인병기 프로토콜?”

천우진의 안색이 잿빛으로 변했다. 과거 티타늄 그룹 특수공작대 팀장이었던 그였기에, 그 단어가 뜻하는 바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설마…… ‘키메라 아수라’ 프로젝트를 말하는 건가?! 폐기 처분된 실험체들의 뇌수와 생체 코어를 기계 몸체에 강제로 직결해 만든 그 저주받은 자폭 병기 부대를?!”

[그것보다 훨씬 끔찍해!]

진세린이 피를 토하듯 악을 썼다.

[단순한 사이보그 병기가 아니야. 그 노인은 고대 마교 유적에서 발굴했던 ‘천마 프로토콜 원형 데이터’의 오염된 잔재를 기계 인형들의 인공 신경망에 쏟아부었어! 놈들은 고통도, 공포도 느끼지 않아. 마기와 나노머신이 뒤틀린 채 융합되어 오직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를 도륙하도록 강제되어 있다고!]

쾅! 쾅! 쾅!

진세린의 등 뒤에서 통제실의 거대한 티타늄 합금 방폭벽이 안쪽으로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두께 50센티미터에 달하는 특수 장갑판이 마치 얇은 알루미늄 포일처럼 불룩하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 장갑벽 너머에서 새어 나오는 것은 소름 끼칠 정도로 정제된, 기계 회로와 뒤섞인 불길한 마공의 진동이었다.

[내 후사대 대원들의 80%가 이미 몰살당했어……! 살아남은 아이들도 5분을 버티지 못해. 진무극은 처음부터 나조차 후계자로 생각하지 않았던 거야. 이 빌어먹을 타워 전체를 거대한 제물로 바쳐서, 네가 올 때까지 시간을 벌고…… 완벽한 ‘그릇’을 완성하기 위한 연성진을 작동시키려는 속셈이라고!]

“……진무극답군.”

진혁의 음성은 파문 없는 깊은 호수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당황도, 격한 분노도 표정에 드러나지 않았다.

오직 살을 에는 듯한 지독한 살의만이 그의 전신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되어 피어올랐다.

진무극.

자신을 실험체 07호로 전락시키고, 수많은 목숨을 제물로 바쳐 천마 프로토콜을 탄생시킨 만악의 근원.

그는 여전히 자신의 핏줄마저 체스판의 소모품으로 내던지며 추악한 불멸을 갈망하고 있었다.

“내가 도달할 때까지 버틸 수 있겠나.”

진혁의 짤막한 물음에 진세린이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자조 섞인 조소를 흘렸다.

[버티지 못하면 개죽음이지. 하지만 그 괴물 같은 늙은이가 제 뜻대로 웃게 내버려둘 생각은 추호도 없어.]

치익!

진세린의 떨리는 손가락이 피로 얼룩진 제어 콘솔을 맹렬히 두드렸다.

[지금 네 단말로 본사 최고 등급 기밀 데이터를 강제 전송한다. 신서울 중앙 대공 방어망과 티타늄 타워의 지상 요격 시스템을 우회할 수 있는 유일한 보안 경로…… ‘루트-오메가(Route-Omega)’야!]

띠링―!

윤아영의 홀로그램 단말기에 방대한 용량의 암호화 데이터 팩이 실시간으로 쏟아져 내렸다.

[수신 완료: 보안 프로토콜 '루트-오메가' 해독 개시]

[경로: 제4구역 심층 폐수 배관 ─> 신서울 지하 지열 발전소 ─> 티타늄 타워 60층 직통 환기 샤프트]

“이건……!”

데이터의 구조를 확인한 윤아영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타워 건설 당시에 설계 결함으로 은폐되었던 초고압 지열 배기 통로예요! 지상에 배치된 요격 레이저 포탑과 센티넬 드론 부대의 감시망이 물리적으로 닿지 않는 완벽한 사각지대……!”

[타워 하층부는 이미 지옥이야. 정문으로 진입하면 수천 기의 무인 병기들과 진무극이 설치한 마도 결계에 가로막혀 반나절은 족히 걸릴 거야. 하지만 그 루트를 타면…… 곧바로 내가 있는 60층으로 난입할 수 있어.]

쿠구구궁―!

마침내 방폭문의 두꺼운 경첩이 뜯겨 나가며 시커먼 열기와 유독 가스가 쏟아져 들어왔다.

연무 속에서 붉게 점멸하는 안광들이 무수히 번뜩였다.

기괴하게 비틀린 강철 팔다리에, 흉측한 살인 무기를 장착한 사이보그 병기들이 피비린내를 풍기며 틈새를 억지로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다.

진세린이 마지막으로 이를 악물며 처절하게 외쳤다.

[강진혁! 고대 마교의 원형 데이터가 완전히 폭주해 타워 중추 신경망과 융합되면…… 신서울 전체가 그 노인의 거대한 단전으로 변해! 네가 진짜 ‘천마’라면…… 와서 증명해 봐! 그 노인의 목을 꺾고, 이 지옥을 끝내란 말이야!]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통신이 완전히 두절되었다.

지지직거리는 정적만이 허공을 맴돌았다.

슬럼가의 무거운 적막 속에 오직 차가운 빗소리만이 잿빛 대지를 두드렸다.

“빌어먹을 노망난 늙은이.”

송수연이 대검의 손잡이를 손가락마디가 하얗게 질리도록 움켜쥐었다.

“후사대 대장이라는 계집애의 말이 사실이라면 상황이 최악이군. 저 붉은 눈의 기계 인형들…… 화면 너머로도 끔찍한 살의가 느껴졌어. 저런 살인병기들이 수천 기나 배치되어 있다면 지상 정면 돌파는 막대한 희생을 피할 수 없어.”

“루트-오메가를 쓸 수밖에 없겠군.”

천우진이 지도 데이터를 들여다보며 무거운 목소리로 경고했다.

“하지만 저 환기 샤프트는 지하 지열 발전소의 미여과 폐열이 여과 없이 치솟는 통로야. 내부 온도가 섭씨 800도를 가볍게 웃돌고, 치명적인 농도의 불소 유독 가스가 가득 차 있지. 특수 방호복과 중장갑 셔틀이 없다면 인간은 진입하자마자 1분도 버티지 못하고 폐와 살점이 녹아내릴 거다.”

“장비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진혁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내딛는 걸음마다 바닥에 고인 진흙과 핏물이 검은 마기에 닿아 소리 없이 바스러지며 증발했다.

“아영아.”

“응, 진혁 오빠!”

“루트-오메가의 진입 좌표와 배관 내부의 압력 데이터를 내 뇌 신경망으로 직접 링크해라.”

“이, 이미 전송 준비는 끝났어! 하지만 오빠…… 정말로 괜찮겠어? 시스템 보조 HUD도 없이 그 방대한 지형 데이터를 맨몸의 뇌로 연산하면서, 800도가 넘는 열지옥을 맨몸으로 뚫고 올라가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내 신체와 뇌는 이미 기계의 계산 한계를 벗어났다.”

진혁의 음성에는 털끝만 한 주저함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그는 손을 뻗어 자신의 가슴팍, 심장 부근을 묵직하게 짚었다.

쿵. 쿵. 쿵.

생체 코어와 기혈의 단전이 완벽하게 융합된 자리.

그곳에서 용솟음치는 마기는 더 이상 티타늄 그룹이 강제로 주입했던 인공적인 에너지가 아니었다.

구무림의 마지막 전승자 독고운과의 문답을 통해 깨달았던 ‘무도(武道)의 마음’, 그리고 수많은 사선을 넘나들며 자신의 피와 살로 정립한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의 진정한 정수였다.

800도의 화염이든, 유독 가스든, 오염된 기계 마기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삼라만상의 모든 에너지는 만법귀마의 거름으로 치환될 뿐이었다.

“송수연.”

진혁이 저항군의 수장을 직시했다.

“니르바나의 전 병력과 슬럼가에 숨은 무인들을 총동원해라.”

“……뭐라고?”

송수연이 눈을 크게 뜨며 반문했다.

“진세린이 길을 열어주었다 해도, 티타늄 타워 전체를 무너뜨리려면 하층부의 시선을 완벽히 분산시켜야 한다. 내가 루트-오메가를 통해 60층으로 침투하여 살인병기들의 통제망을 부수고 진무극의 수족을 끊어내는 동안…… 너희는 지상에서 정문을 강타해라.”

“제정신이야? 그건 타워의 방어 화력을 정면에서 고스란히 받아내라는 소리잖아!”

“받아내는 것이 아니다. 짓밟아 부수는 것이다.”

진혁의 흑안 속에서 칠흑의 마화(魔火)가 일렁였다.

“티타늄의 방어선은 겉보기에 견고해 보일 뿐, 지휘 체계와 에너지 공급로가 마비되는 순간 껍데기에 불과해진다. 내가 위에서부터 놈들의 목을 꺾을 테니, 너희는 아래에서부터 놈들의 발목을 부러뜨려라.”

진혁이 천우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천 팀장님.”

“말해보게.”

“저항군 전원에게 지급된 무기에 제 마기를 주입하겠습니다. 고주파 진동검이든, 레일건의 탄환이든, 놈들의 에너지 방어막 주파수를 무시하고 장갑을 꿰뚫을 수 있도록.”

천우진의 외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기운을…… 타인의 무기에 깃들이겠다고? 그것도 한두 자루가 아니라 이 수백 명의 화기 전부에? 그건 전설 속 화경(化境)의 고수라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영역일 텐데……!”

진혁은 말없이 오른손을 허공을 향해 뻗었다.

파아아아앗―!

그의 손끝에서 칠흑 같은 암흑의 기류가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단순한 기운의 방출이 아니었다.

진혁의 의념에 반응한 수억 개의 나노머신이 마기와 결합하여 대기 중의 전자기 입자를 매개체 삼아 거미줄처럼 갈라져 나갔다.

치지지직! 콰르릉!

“크윽?!”

“이, 이게 대체 뭐야?!”

니르바나 전사들이 쥐고 있던 돌격소총과 중기관총, 진동검의 표면에 검붉은 번갯불이 휘감겼다.

총기 내부의 코어가 비명을 지르듯 출력을 끌어올렸으나, 과부하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무기마다 뿜어내는 에너지 파동이 서너 배 이상 치솟으며, 총구 끝과 검날에 서늘한 마검기(魔劍氣)의 살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SYSTEM OVERRIDE: 미확인 고에너지 동기화 완료]

[무기 관통력 및 출력: 340% 증폭]

[특수 속성 부여: ‘파갑(破甲)’ 및 ‘위상 붕괴’ 활성화]

전사들의 단말기에 상식을 벗어난 수치들이 떠올랐다.

“이…… 이게 대체 말이 되는 조화인가? 마법이라도 부린 건가?”

송수연이 자신의 대검을 내려다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강철 대검의 날을 따라 흐르는 검은 기류는, 스치는 것만으로도 공간을 일그러뜨릴 듯한 살벌한 위압감을 풍기고 있었다.

“1시간이다.”

진혁이 손을 거두며 냉정하게 선언했다.

“1시간 동안 무기의 위력이 유지될 것이다. 놈들의 키메라 부대든, 중장갑 차량이든 종잇장처럼 찢어발길 수 있을 거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진격해라.”

“……좋아.”

송수연의 입꼬리가 맹렬한 호선을 그렸다.

그녀의 눈에 서려 있던 불안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오랜 세월 억눌려 왔던 복수심과 투기가 불타올랐다.

“신서울의 하층민들이 100년 동안 흘린 피를, 오늘 밤 저 오만한 마천루에 고스란히 되갚아주지. 우릴 믿고 위로 올라가라, 강진혁.”

“오빠, 좌표 동기화 완전히 끝났어!”

윤아영이 단말기를 두드리며 외쳤다.

진혁의 망막 뒤편, 뇌 신경망에 직접적으로 푸른빛의 3차원 입체 지도가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제4구역 심층 폐수 배관.

그 어두운 미궁의 끝에서 신서울의 심장부로 이어지는 수직 통로가 붉은 선으로 이어져 있었다.

진혁이 고개를 들어 저 멀리, 검은 비구름을 뚫고 하늘 높이 솟아 있는 거대한 첨탑을 올려다보았다.

티타늄 타워.

불야성을 이루는 상층부의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로, 핏빛의 불길이 번져 나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진무극.

그리고 오염된 고대 마교의 데이터.

‘천마의 이름을 참칭하는 쓰레기들.’

1,000년 전 천하를 호령했던 마교의 수장이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것은 무공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한계를 모르는 인간의 탐욕과, 제어되지 않는 마공의 폭주가 육신을 갉아먹었기 때문이었다.

진무극은 그 실패한 과거의 유골을 주워 섬기며, 스스로를 신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혁은 달랐다.

그는 시스템의 꼭두각시 실험체로 시작했으나, 시스템의 틀을 부수고 나왔다.

기계의 차가운 공학과 무공의 뜨거운 의념을 자신의 의지로 굴복시켜 완벽한 하나로 빚어냈다.

“진세린.”

진혁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죽지 마라. 네 목숨의 가치는 네 아비의 죄악을 증언하는 데 써야 하니까.”

스아아아―!

진혁의 신형이 흐려졌다.

마광신보(魔光神步)의 극의.

바람을 가르는 마찰음조차 남기지 않은 채, 그의 몸은 한 줄기 검은 벼락이 되어 지면을 박찼다.

퍼엉―!

그가 서 있던 콘크리트 바닥이 거미줄처럼 박살 나며 폭압이 뒤늦게 터져 나왔다.

빗줄기를 가르며 수십 개의 잔상을 허공에 흩뿌리는 진혁의 속도는 이미 음속의 벽을 아득히 돌파하고 있었다.

“출진이다!”

등 뒤에서 송수연의 우렁찬 함성이 폐허를 뒤흔들었다.

“모든 부대, 티타늄 타워 정문을 향해 진격하라! 오늘 밤, 신서울의 하늘을 뒤집는다!”

와아아아아―!

수백 명의 저항군 전사들과 슬럼가의 무인들이 검은 마기가 깃든 총기를 치켜들며 진혁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수십 년간 침묵하던 신서울의 가장 밑바닥이 거대한 해일이 되어 요동치고 있었다.

콰아아앙!

티타늄 타워 60층, 중앙 보안 통제실.

두께 50센티미터의 티타늄 합금 방폭문이 마침내 처참하게 뜯겨 나가며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자욱한 먼지와 스파크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그림자들은, 인간의 형상을 흉내 내고 있었으나 결코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괴물들이었다.

팔다리는 초고주파 진동도로 개조되어 있었고, 가슴팍에는 적출된 심장 대신 검붉게 박동하는 생체 코어가 박혀 있었다.

그들의 텅 빈 인공 안구에서는 오염된 흑자색 마기가 독무처럼 뿜어져 나왔다.

[타깃 확인: 진세린 소령.]

[배신자 처단 프로토콜 실행.]

[회장님의 명령: 생포 불필요. 뇌수만 온전히 회수할 것.]

수십 기의 키메라 아수라들이 기계적인 음성을 합성해 내며 진세린을 향해 쇄도했다.

“빌어먹을 깡통 괴물들이……!”

진세린은 부서진 콘크리트 기둥에 등을 기댄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의 오른팔은 이미 감각을 잃은 지 오래였다. 어깨의 신경 접속 단자가 타버려 군용 슈트의 보조 동력도 끊긴 상태였다.

그녀의 발치에는 마지막까지 그녀를 지키려다 목이 꺾이고 사지가 찢긴 후사대 대원들의 시신이 즐비했다.

철컥.

그녀는 떨리는 왼손으로 플라즈마 피스톨을 들어 올렸다.

남은 잔탄은 단 두 발.

눈앞에 닥쳐오는 살인병기는 서른 기가 넘었다.

‘여기까지인가.’

입술을 깨물자 비릿한 피 맛이 혀끝을 찔렀다.

원망스러웠다.

자신을 오직 실험의 도구이자 대체 가능한 부품으로만 여겼던 아버지 진무극이.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희망을 품게 만들었던 그 차가운 사내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강진혁…… 결국 오지 못한 건가.’

최선두에 선 키메라가 초진동 블레이드를 치켜들었다.

공기를 찢는 고주파음이 고막을 마비시킬 듯 울려 퍼졌다.

블레이드가 진세린의 목을 향해 사선으로 낙하한 바로 그 찰나.

쿵―!

통제실의 천장이 통째로 내려앉았다.

단순한 구조적 붕괴가 아니었다.

두께 1미터가 넘는 초고장력 티타늄 천판이, 마치 거대한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붉게 달아오르며 산산이 부서져 나간 것이다.

“……?!”

키메라들의 붉은 안광이 일제히 천장을 향했다.

그들의 전술 컴퓨터가 미처 상황을 분석하기도 전에.

파바바바박―!

천장을 뚫고 쏟아져 내린 것은 파편이 아니었다.

빛조차 삼켜버릴 듯한 순도 100%의 칠흑(漆黑).

그것은 마치 하늘에서 쏟아지는 검은 폭포수와도 같았다.

콰아아아앙!

진세린의 눈앞을 가로막고 있던 최선두의 키메라 다섯 기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처박혔다.

그들의 단단한 장갑판은 흔적도 없이 으스러졌고, 내부에 탑재된 생체 코어가 마기에 짓눌려 새까만 재가 되어 흩날렸다.

쿠구구구궁……!

통제실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격렬하게 요동쳤다.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 속에서, 800도의 지열 배기구를 맨몸으로 뚫고 올라왔음에도 옷자락 하나 타지 않은 사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진세린의 호흡이 완전히 멎었다.

칠흑의 마기를 온몸에 두른 채, 무저갱의 심연 같은 눈빛으로 서 있는 사내.

강진혁.

그의 차가운 눈동자가 바닥에 쓰러진 진세린을 스쳤다.

“5분은 넘기지 않았군.”

진혁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방안을 가득 메운 수십 기의 살인병기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끝에서 형체 없는 검은 마검기(魔劍氣)가 살아 숨 쉬는 뱀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길을 비켜라. 잡동사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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