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2화 최종 수트 '오리진'의 실체
티타늄 타워 옥상. 폭풍우가 치는 하늘 아래, 진혁의 시야에는 오직 진무극만이 존재했다. 그가 입은 검은 장갑, ‘오리진(Origin)’. 그것은 단순히 금속과 나노머신으로 빚어진 기계가 아니었다. 1,000년 전, 마교의 정점에서 산화했던 천마의 유골 데이터가 그 수트의 뼈대를 이루고 있었다.
“네가 도달한 마신경(魔神境)의 경지는 경이롭구나, 강진혁.”
진무극의 목소리가 공간의 떨림과 함께 고막을 울렸다. 그는 이미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기계 신(神)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은발이 흩날리는 사이로 푸른색 광학 장갑이 흉측할 정도로 정교하게 맞물려 있었다.
“하지만 잊지 마라. 그 몸, 그 마기, 그 의지조차 내 설계도 안에서 발현된 변수에 불과하다.”
진무극의 손등에서 플라즈마 블레이드가 솟아올랐다. 그것은 일반적인 고주파 검이 아니었다. 마기의 파동을 물리적으로 증폭시켜 공간을 찢어버리는, 천마의 본질을 복제한 흉기였다.
[SYSTEM: 경고. 적대 개체의 에너지 파동이 비정상적으로 급상승합니다.]
[SYSTEM: '오리진' 수트의 출력, 50,000 MW 돌파.]
[SYSTEM: 공간 제어권이 적에게 점유되고 있습니다.]
진혁은 피식 웃으며 눈을 감았다. 시스템은 이제 그에게 경고 따위를 보내는 도구가 아니었다. 그저 눈앞의 상황을 수치화하는 낡은 기록기에 불과했다.
“시스템, off.”
[SYSTEM: 관리 모드 비활성화. 모든 데이터 연산 지원 종료.]
정적.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디지털 노이즈가 단번에 사라졌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진혁의 의지와 피를 타고 흐르는 마기뿐이었다.
“설계도? 변수?”
진혁이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검신을 따라 흐르는 마기가 검붉은 뇌전이 되어 휘몰아쳤다.
“그딴 건, 내가 찢어버리면 그만이다.”
콰아앙!
진혁의 발밑이 폭발했다. 옥상의 강화 콘크리트가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진혁의 몸이 공간을 도약해 진무극의 앞을 덮쳤다. 찰나의 거리, 진무극은 여유롭게 플라즈마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챙-!
두 기운이 충돌하자 타워 전체가 비명을 질렀다. 건물 외벽에 설치된 홀로그램 광고판들이 파열음을 내며 꺼져갔다. 신서울의 밤하늘이 두 사람의 마기가 빚어낸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역시, 데이터와 실전은 다르군.”
진무극이 입꼬리를 올리며 진혁의 검을 밀어냈다. 진무극의 수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는 진혁의 그것보다 훨씬 날카롭고 차가웠다. 그것은 인간의 수련으로 얻은 것이 아닌, 1,000년 전 천마의 혈액 데이터를 강제로 주입한 ‘가짜 마기’였다.
“가짜가 아무리 날뛰어 봐라. 원본을 넘어설 순 없다.”
진혁의 검이 궤도를 틀었다. 정석적인 마공의 궤적이 아니었다. 윤아영이 전달해 준 아카이브 0의 데이터, 그리고 구무림 독고운에게 배운 검의 의지가 합쳐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신(新) 검로’였다.
[만법귀마(萬法歸魔)]
진혁의 검 끝에서 블랙홀 같은 인력이 뿜어져 나왔다. 진무극이 수트의 출력을 100% 개방하며 쏟아낸 에너지가 허공에서 뒤틀리기 시작했다.
“무엇을 하려는 거냐?”
진무극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그는 진혁이 단순히 기운을 맞받아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진혁은 그 에너지를 ‘흡수’하고 있었다. 아니, 흡수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적의 기술 자체를 자신의 마기로 교란해 강제로 해체하고 있었다.
“네놈이 만든 그 ‘오리진’ 수트.”
진혁의 검이 진무극의 어깨를 스쳤다. 수트의 나노 장갑이 불꽃을 튀기며 뜯겨 나갔다. 그 속에서 기계 장치와 얽힌 인간의 살점이 핏물을 쏟아냈다.
“천마의 뼈로 만든 장난감치고는 꽤 정교하더군. 그런데 말이야, 데이터라는 건 결국 ‘과거’일 뿐이지.”
진혁이 다시 한번 도약했다. 이번에는 정면이 아닌 진무극의 사각지대였다. 진무극이 반사적으로 수트의 방어막을 전개했지만, 진혁의 검은 방어막의 공진 주파수를 정확히 타격했다.
파지직!
방어막이 유리처럼 깨졌다.
“크윽!”
진무극이 뒤로 물러나며 등 뒤의 에너지 캐논을 전개했다. 타워 전체의 전력이 그곳으로 집중되었다. 푸른 섬광이 밤을 가르며 진혁을 향해 쏟아졌다.
“이게 내 힘이다! 내가 천마를 넘어서기 위해 완성한 최종 병기다!”
진무극의 광기 어린 외침과 함께 쏟아지는 파괴 광선.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생각조차 없었다. 그는 천천히 검을 가슴 높이로 올렸다. 그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가 응축되어 거대한 검강의 형상을 빚어냈다.
“천마일검(天魔一劍).”
단 하나의 점. 모든 힘을 한 곳으로 집중시킨 멸살의 일격.
쾅-!
세상이 하얗게 점멸했다. 옥상의 강철 기둥들이 엿가락처럼 휘어지고, 타워의 상층부가 진동을 견디지 못하고 붕괴하기 시작했다. 비명이 섞인 굉음이 신서울 전역에 울려 퍼졌다.
먼지구름이 가라앉은 자리, 진무극의 오리진 수트는 반파되어 있었다. 가슴팍의 코어는 찌그러져 푸른 빛을 간신히 뿜어내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내 연산에 없던 움직임이 가능한 거지?”
진무극이 무릎을 꿇으며 헐떡였다. 그가 입은 수트의 회로가 쉴 새 없이 타들어 가며 검은 연기를 내뿜었다.
“네 연산에는 ‘인간’이 빠져 있었으니까.”
진혁이 진무극의 앞에 섰다. 차가운 눈동자에 일말의 자비도 없었다.
“넌 너 자신조차 데이터로 치부했지. 하지만 나는… 내 검에 내 영혼을 담았다. 그 차이가 너와 나를 갈라놓은 거다.”
진혁이 손을 뻗어 진무극의 가슴에 박힌 코어를 움켜쥐었다. 찌릿한 고압 전류가 진혁의 팔을 타고 흘렀지만,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걸 부수면, 너도 끝이다.”
“기다려라… 강진혁. 네가 나를 죽여도, 시스템은… 멈추지 않아. 나는 이미… 나를 복제해 뒀다….”
진무극이 피 섞인 웃음을 흘렸다.
“차원 너머에서, 더 거대한 파국이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다. 너는 결국… 내가 걷던 길을 걷게 될 거야.”
진혁은 대답 대신 코어를 쥐어짰다.
우득, 콰직!
[SYSTEM: 오리진 수트의 코어 파괴됨.]
[SYSTEM: 진무극의 생체 신호 정지.]
수트의 푸른 빛이 순식간에 꺼졌다. 진무극의 육체는 껍데기만 남은 채 고꾸라졌다. 그러나 진혁은 승리의 희열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등 뒤로 서늘한 감각이 느껴졌다.
그것은 시스템이 사라진 자리를 메우고 있는, 차원 너머의 거대한 시선이었다.
“복제라….”
진혁은 진무극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신서울의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사이로 정체 모를 거대한 구조물들이 일렁이고 있었다. 시스템이 꺼졌음에도, 세상은 여전히 기계의 사슬에 묶여 있었다.
그때, 진혁의 뇌리 속에서 희미한 잔향이 울렸다.
[Warning: 잔류 프로토콜 코드 'ZERO' 감지.]
[Warning: 뇌 신경 회로 깊숙한 곳에서 백도어 활성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진혁의 눈동자가 다시 한번 흑빛으로 진하게 물들었다. 이제부터는 데이터와의 싸움이 아니었다. 자신의 뇌를 갉아먹고 있는, 1,000년 전 천마의 유골에 깃든 ‘저주’와 싸워야 할 시간이었다.
“오느냐.”
진혁은 검을 고쳐 잡았다. 타워 아래, 신서울의 밤이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
진혁의 뇌리에서 들려온 경고음은 기계적인 합성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천 년의 시간을 건너온, 썩지 않는 원념(怨念)의 포효였다. 뇌 신경 회로의 구석구석을 갉아먹으며 비집고 들어오는 이물감. 단순한 데이터 오류가 아니었다. 1,000년 전, 마교의 정점에서 혈마병으로 인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천마가 남긴 ‘잔류 사념’이었다.
[경고. 사용자의 뇌 신경 회로와 고대 마공 코어의 동기화가 강제로 시작됩니다.]
진혁의 시야가 다시 일그러졌다. 시스템의 HUD가 꺼졌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붉은색 글귀들이 환영처럼 떠올랐다. 진무극은 단지 껍데기였을 뿐이다. 그가 만든 ‘오리진’ 수트의 진짜 목적은 진무극이 입는 것이 아니라, 진혁의 신체를 그릇 삼아 1,000년 전의 천마를 부활시키는 것에 있었다.
“크윽…!”
진혁이 고통에 신음하며 무릎을 꿇었다. 머릿속에서 수만 명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마교의 몰락, 혈마병에 걸려 광증에 빠진 수많은 무인의 울부짖음. 그것이 마치 파도처럼 진혁의 의식을 잠식해 들어왔다.
[프로토콜의 잔재, 제거가 불가합니다. 숙주와의 완전 동화(同化)까지 98%...]
“웃기지 마라.”
진혁은 피가 섞인 침을 뱉어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손등의 핏줄이 터져 나갔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지금껏 시스템의 보조를 받아 강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시스템은 그저 진혁이라는 그릇에 담긴 마기를 정제하는 필터였을 뿐, 그 안을 채우고 있던 ‘본질’은 진혁 스스로가 쌓아 올린 것이었다.
그는 검을 지팡이 삼아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타워 옥상은 이미 붕괴의 여파로 엉망이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와 기업 경비대들의 헬기 소음이 귓가를 때렸지만, 진혁에게는 그 모든 것이 멀게만 느껴졌다.
그의 눈앞에 환영처럼 한 노인의 뒷모습이 나타났다. 구무림의 마지막 전승자, 독고운.
“기계가 가르쳐주는 것은 궤적일 뿐이지. 하지만 네가 찾는 것은 궤적이 아니라 의지(意志)다.”
독고운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뇌리에 박혔다. 진혁은 눈을 감았다. 아니, 마음의 눈을 떴다. 뇌를 파고드는 잔류 프로토콜의 코드는 기계적인 규칙으로 얽혀 있었다. 그것은 정해진 알고리즘에 따라 진혁의 의식을 포맷하려 하고 있었다.
‘규칙이라면, 부수면 그만이다.’
진혁은 자신의 단전을 향해 마기를 역류시켰다. 정석적인 운기조식과는 정반대의 길. 혈관이 터지고 근육이 찢어지는 극도의 고통이 수반되는 자해(自害) 행위였다.
[Warning! 마기 폭주 가능성 80%!]
[Warning! 나노머신 제어권 상실!]
“더 높여라.”
진혁이 으르렁거렸다. 그는 자신의 몸을 스스로 해체하고 있었다. 뇌의 신경 회로에 들러붙은 천마의 사념을 몰아내기 위해, 그 사념이 머물고 있는 ‘통로’ 자체를 불태워 버리기로 작정한 것이다.
콰아앙!
진혁의 몸 주위로 붉은 화염이 치솟았다. 그것은 물리적인 불이 아니었다. 그의 기혈을 타고 흐르는 마기가 임계점을 돌파하며 내뿜는 ‘마화(魔火)’였다. 타워의 옥상 바닥이 녹아내리고, 주변의 공기가 뒤틀렸다.
천마의 사념이 발악하듯 진혁의 의식을 짓눌렀다.
‘나의 그릇이여… 순종하라. 너는 내가 다시 강림하기 위해 마련된 제물일 뿐이다!’
“제물은 무슨.”
진혁은 검을 허공에 찔러 넣었다. 허공이 마치 거울처럼 갈라지며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천마의 흔적’들이 드러났다. 진혁은 그 흔적을 맨손으로 움켜쥐었다.
“네놈의 시대는 1,000년 전에 끝났다. 지금은 나의 시대다.”
진혁의 손아귀 안에서 붉은빛의 사념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뇌를 파고들던 고통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시스템이 아닌 순수한 ‘진혁 자신’의 의지였다.
[잔류 프로토콜 코드 'ZERO'가 소멸되었습니다.]
[뇌 신경 회로와의 동기화 강제 종료.]
[Warning. 강제 회로 소각으로 인한 근육 미세 파열 발생.]
진혁은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았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고, 뼈마디마다 통증이 스며들었다. 하지만 정신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명료했다. 족쇄가 사라진 뇌는 비로소 온전한 자유를 찾았다.
그는 천천히 타워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수만 개의 불빛이 반짝이는 신서울. 기업의 지배 아래 죽어가는 슬럼가의 사람들과, 그 위에서 호의호식하는 특권층들. 이제 그 모든 질서가 진혁의 눈앞에서 무력하게 보였다.
진무극이 죽기 직전 남긴 말, ‘더 거대한 파국’이라는 말이 진혁의 뇌리를 스쳤다. 진무극은 단순히 광기에 사로잡힌 독재자가 아니었다. 그는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었고,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시선은 온전히 진혁을 향하고 있었다.
“윤아영.”
진혁이 귓가의 통신기를 건드렸다.
[진혁 씨! 괜찮아요? 방금 타워에서 엄청난 에너지 파동이 감지됐는데…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윤아영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혁은 옥상 끝에 걸터앉아 희미하게 웃었다.
“정리했다. 모든 게.”
[정리라니요? 당신 몸 상태는 또 어떻고요! 당장 거기로….]
“아니, 오지 마라. 지금부터는 내 싸움이 아니다.”
진혁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짙은 먹구름 사이로, 은은한 보랏빛을 띠는 차원의 균열이 보였다. 그것은 신서울의 어떤 기술로도, 어떤 무력으로도 닫을 수 없는 거대한 입구였다.
“진무극이 열어놓은 문이 열리고 있어. 이제 진짜 사냥을 시작해야겠군.”
진혁은 검을 칼집에 넣었다. 그 순간,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마기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이제 그는 시스템의 도움도, 마공의 궤적도 필요 없었다. 그저 자신의 의지 자체가 곧 무공이요, 법도였다.
[진혁 씨, 대체 무슨….]
“도망칠 곳은 없다, 아영아. 이 세상은 이제부터 내 마당이 될 테니까.”
진혁이 타워 끝에서 뛰어내렸다. 수천 미터 아래로 추락하는 그 순간에도 그의 표정은 담담했다. 공기를 가르는 바람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그는 공중에서 몸을 돌려 착지하는 대신, 허공을 밟고 멈춰 섰다.
기(氣)가 아닌, 공간을 지배하는 권능이었다.
신서울의 심장부에서 벌어진 사건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제 강진혁은 자신을 옥죄던 모든 과거를 불태웠다. 남은 것은 차원 너머에서 다가오는 절대적인 절망과의 사투, 그리고 스스로 신(神)이 되어야만 하는 운명뿐이었다.
진혁은 허공을 한 걸음씩 내디뎠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신서울의 밤하늘이 뒤틀리고, 거대한 마기(魔氣)의 폭풍이 도시를 덮쳤다. 그것은 지배자의 등장이 아니었다. 세상을 파괴하고 다시 세우기 위해 돌아온, 전설 속의 천마가 재림하는 현상이었다.
“기다려라.”
진혁의 눈동자가 차가운 살의로 빛났다.
“네놈들이 누구든, 이 우주를 짓밟고 서 있는 대가는 뼈저리게 치르게 해줄 테니까.”
그의 등 뒤로, 1,000년 전 천마의 환영이 거대한 마신(魔神)의 모습으로 겹쳐 보였다. 아니, 그것은 환영이 아니었다. 진혁이 스스로 완성한 [신천마신공]의 실체였다.
신서울의 밤이, 그 어느 때보다 길고 어둡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