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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223화목차

제223화 잔류 프로토콜의 파기

진무극의 숨통을 끊어놓은 직후였다.

천마의 고지라 불리는 티타늄 타워의 옥상은 피와 기름, 그리고 고압 전류가 뒤섞인 지옥도였다. 진혁은 옥상 난간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전신의 근육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한때 자신의 뇌를 지배했던 시스템의 HUD는 완전히 꺼진 상태였다.

하지만 평온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지워지지 않는가.’

진혁은 눈을 감고 자신의 단전을 응시했다. 겉으로는 시스템이 오프라인 상태라고 표시되었지만, 뇌의 신경 회로 깊숙한 곳, 척수와 뇌간이 연결되는 지점에는 여전히 미세한 데이터의 잔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천마 프로토콜의 설계자인 이현도가 심어놓은 마지막 백도어이자, 강진혁이라는 그릇을 언제든 원격으로 제어하기 위한 ‘최종 명령 코드’였다.

찌릿.

척수를 타고 오르는 날카로운 통증. 그것은 생체적인 고통이 아니라 데이터가 신경세포를 침식하며 발생하는 강제 명령의 파동이었다. 진혁은 입가에 흐르는 검은 피를 닦아내며 낮게 읊조렸다.

“죽은 자의 유산까지 나를 놓아주지 않는군.”

이미 진무극은 죽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시스템의 망령은 강진혁의 육체를 자신의 소유물로 착각하고 있었다. 신경 회로를 타고 흐르는 나노머신들이 제멋대로 진동하며 진혁의 내공 순환을 간섭하려 들었다.

[Warning: 신경 회로 내 비인가 연산 감지. 시스템 리부트 시도 중…….]

[Warning: 사용자 강진혁의 의지, 마스터 코드와 불일치. 강제 동기화 진행.]

허공에 출력되지 않는 시스템의 메시지가 뇌리에서 직접 울렸다. 진혁은 이빨을 악물었다. 놈들은 죽어서도 자신을 ‘피험체 07호’로 부르고 있었다.

“웃기지 마라.”

진혁의 눈에 서늘한 흑색 마기(魔氣)가 일렁였다. 그는 도망치는 대신, 오히려 자신의 내공을 뇌신경으로 역류시켰다. 독고운에게서 배웠던 ‘심법(心法)의 본질’이 떠올랐다. 기계는 계산하지만, 무인은 통찰한다. 계산할 수 없는 영역까지 내공을 밀어 넣어, 그 데이터의 찌꺼기를 태워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콰아아아-!

진혁의 몸에서 폭발적인 마기가 솟구쳤다. 옥상의 강화 콘크리트 바닥이 진혁의 발밑을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나노머신들이 열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태워라. 모조리 다.’

진혁은 자신의 신경계 전체를 용광로로 만들었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가 끓어올랐다. 나노머신이 뇌간에 박아넣은 ‘추적 칩’이 고열을 견디지 못하고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이 진혁을 덮쳤다. 눈앞이 하얗게 점멸했다. 척수 마디마디가 불타는 듯한 감각. 하지만 진혁은 그 고통을 즐기듯 눈을 가늘게 떴다. 이것은 복수였다. 나를 도구로 여기던 자들에 대한 마지막 응징이자, 내 육체의 주권을 되찾는 성전(聖戰)이었다.

“끄으윽……!”

진혁의 손등 위로 은빛 회로가 기이하게 꿈틀거렸다. 체내에 잠복해 있던 감시 프로토콜 코드가 마지막 발악을 하며 진혁의 심장 박동을 멈추려 들었다. [심장 정지 명령]이 뇌로 전달되는 찰나, 진혁은 단전의 마기를 단 한 점으로 응축했다.

[만법귀마(萬法歸魔)]

적의 기술을 흡수하는 권능을, 이제는 내 몸의 이물질을 삭제하는 데 사용했다. 진혁의 신경 세포 하나하나가 마기의 파동과 공명했다.

치이익-!

뇌 속에서 무언가가 타버리는 소리가 들렸다. 추적 칩이 녹아내리며 신경 회로에서 분리되는 감각. 진혁은 그 즉시 끓어오르는 내공을 뇌간으로 밀어 넣었다.

“삭제한다.”

쾅!

진혁의 머리 뒤로 거대한 검은 구체가 폭발하듯 흩어졌다. 뇌를 압박하던 차가운 금속성의 감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신,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해방감이 진혁의 전신을 감쌌다.

[시스템 메시지: 프로토콜 잔재 코드 소각 완료.]

[시스템 메시지: 제어권 독립. 관리자 권한 삭제.]

[시스템 메시지: ………….]

마지막 메시지는 끝을 맺지 못하고 흩어졌다. 그것은 더 이상 시스템의 경고가 아니었다. 이제 강진혁의 몸 안에는, 강진혁의 의지 이외에 그 어떤 코드도 존재하지 않았다.

후우-

진혁이 거친 숨을 내뱉었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전에 증발했다. 전신의 나노머신들은 이제 외부의 명령을 기다리는 기계 부속품이 아니었다. 진혁의 마기에 동화되어, 그의 근육 하나하나를 유기적으로 보조하는 ‘신체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완벽한 자유.

진혁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은빛 회로의 흔적은 남아있었지만, 그것은 이제 족쇄가 아닌 문신처럼 느껴졌다.

“드디어…….”

진혁은 옥상 난간에서 몸을 날렸다. 추락하는 것이 아니었다. 허공을 밟고 선 진혁의 발밑에 검은 마기가 꽃처럼 피어났다.

그때였다. 귓가에 차갑고도 기계적인 무전음이 들려왔다. 윤아영의 목소리였다.

- 진혁아! 들려? 타워 지하에서 이상한 신호가 잡혀. 아니, 이건 신호가 아니라…… 차원 진동이야!

진혁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무슨 소리지?”

- 티타늄 그룹이 숨겨왔던 ‘아카이브 0’의 마지막 봉인이 풀렸어.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신서울의 물리 법칙을 뒤틀고 있어. 지금 당장 그쪽으로 가야 해!

진혁은 고개를 들어 신서울의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짙은 먹구름 사이로 푸른빛의 균열이 가고 있었다. 단순히 기업의 음모가 아니었다. 진무극이 죽기 직전 경고했던 ‘더 거대한 파국’이 시작되고 있었다.

“가겠다.”

진혁은 지체 없이 몸을 돌렸다. 구름을 뚫고 솟구치는 마기의 기둥이 밤하늘을 가로질렀다.

시스템의 구속이 사라진 강진혁. 이제 그는 더 이상 프로그램된 천마가 아니었다. 스스로가 법칙이 되어, 다가오는 재앙을 직접 심판할 시간이었다.

진혁의 등 뒤로 거대한 마신의 형상이 실체화되기 시작했다.

신서울의 운명을 결정지을 마지막 전쟁의 서막이었다.

진혁의 몸이 마기(魔氣)의 궤적을 그리며 타워의 잔해를 벗어났다. 그의 움직임은 더 이상 시스템의 연산 보조에 의존하지 않았다. 근육의 수축과 이완, 공기 저항의 계산, 그리고 지면과의 반동력까지. 모든 것이 오롯이 진혁의 직관과 경험, 그리고 스스로 개척한 기혈의 흐름으로 이루어졌다.

‘이질감이 없다.’

과거, 프로토콜이 작동할 때는 언제나 미세한 시간차(Lag)가 존재했다. 시스템이 상황을 분석하고, 나노머신을 재배치하며, 최적의 경로를 제안하는 그 찰나의 간극. 진혁은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뼈를 깎는 수련을 거듭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생각하는 즉시 몸이 반응했다. 아니,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그는 신서울의 상층부를 가로지르며 수천 미터를 단숨에 도약했다.

- 진혁아, 좌표 수신해! 아카이브 0는 티타늄 타워의 지하 5,000층, 그러니까 도시의 기반 지반 아래에 있어.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 파동이 벌써 슬럼가 3구역 전체를 마비시켰어!

윤아영의 다급한 목소리가 헬멧 내부의 통신기를 통해 울렸다. 진혁은 지면을 박차며 속도를 높였다. 신서울의 밤은 붉은 경보등으로 가득 찼다. 티타늄 그룹의 몰락과 함께 통제력을 잃은 드론들이 서로 충돌하며 불꽃놀이처럼 터져 나갔다.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고, 그 사이를 진혁은 검은 유성처럼 파고들었다.

‘기반 지반 아래라고?’

진혁은 티타늄 타워의 지하 중심부로 내리꽂히듯 낙하했다. 그가 닿는 곳마다 마기가 폭발하며 콘크리트 벽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겼다.

쾅! 콰앙!

지하 4,000층. 진혁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내공을 검기(劍氣)가 아닌, 진동의 형태로 방출했다. 현대의 고주파 파쇄 기술과 고대 마공의 파괴력을 결합한 독자적인 운기법이었다.

[뇌전마강(雷電魔剛) - 붕괴(崩壞)]

진혁의 주먹이 지반에 닿는 순간, 거대한 충격파가 지하 수백 미터의 지층을 뒤흔들었다. 철근과 콘크리트가 엿가락처럼 휘어지며 무너져 내렸다. 그 안에는 티타늄 그룹이 수십 년간 은폐해 왔던 거대한 데이터 센터, ‘아카이브 0’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었다.

“……이건가.”

눈앞에 펼쳐진 것은 광학 병기나 로봇 군단이 아니었다. 거대한 구체 형태의 코어였다. 그것은 은하계의 성운을 압축해 놓은 듯한 푸른 빛을 내뿜고 있었다. 하지만 그 빛은 평온하지 않았다. 중심부에서는 쉴 새 없이 검은 균열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차원의 틈.

진무극이 꿈꿨던 ‘천마’의 육체란, 결국 이 차원의 틈을 열어 외부의 존재를 강림시키기 위한 ‘안테나’에 불과했던 것이다.

- 진혁아! 위험해! 데이터 분석 결과, 그건 단순한 기계가 아니야. 무언가…… 살아있는 생명체의 에너지 반응이 잡혀! 그게 차원 너머에서 이쪽으로 좌표를 고정하고 있어!

아영의 경고가 끝나기도 전에, 구체에서 뻗어 나온 그림자가 진혁의 앞을 가로막았다.

기괴했다. 형체는 인간의 모습이었으나, 사지가 기하학적으로 뒤틀려 있었고 피부 대신 붉은 전선이 신경계처럼 노출되어 있었다. 그놈들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레이저가 진혁의 미간을 향해 쏟아졌다.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그는 가볍게 검을 뽑아 들었다. 낡은 고철 덩어리처럼 보였던 그의 검은, 진혁의 마기가 주입되자 순식간에 푸른 화염을 머금은 검강(劍剛)으로 변했다.

“시스템의 도움 따위, 이제 필요 없다.”

진혁의 발이 허공을 딛고 한 번 더 도약했다. 순식간에 그림자들의 한복판으로 파고든 그는, 흐르듯 검을 휘둘렀다.

화아악!

검이 지나간 궤적마다 그림자들의 사지가 분리되었다. 현대의 군사학이 계산해 낼 수 없는, 오직 무인의 감각만으로 완성한 ‘천마검법(天魔劍法)’. 적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공중에서 분해되어 바닥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구체에서 더 많은, 훨씬 더 강력한 개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댐이 무너지듯 밀려드는 적들.

- 진혁아, 적들의 에너지가 계속 변하고 있어! 데이터가 무의미해! 이건 계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냐!

“알고 있다.”

진혁은 검을 거꾸로 쥐고 바닥을 짓밟았다. 그의 등 뒤로 아까보다 훨씬 더 거대한, 차가운 푸른빛의 마신 형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진혁의 의지가 투영된 실체였다.

“계산하지 마라. 그저 베어 넘길 뿐이다.”

진혁의 몸이 사라졌다.

아니, 너무나 빠른 속도에 잔상조차 남지 않았다. 지하 5,000층 전체가 진혁의 검기 아래 놓였다.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기계들의 폭발음과 진혁의 마기가 부딪히는 굉음이 신서울의 지반을 울렸다.

그는 더 이상 시스템의 데이터가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이 시대의 유일한 전설이었다.

“더 많이 덤벼라.”

진혁의 검 끝이 구체의 중심을 향했다.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원의 균열이 더욱 커지고 있었다. 그 너머에서, 무언가 거대하고 끔찍한 것이 진혁의 이름을 부르는 듯한 환청이 들려왔다.

진혁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네놈들이 나를 만들었나? 그렇다면 내가 네놈들의 우주를 닫아주마.”

진혁이 검을 일직선으로 내리그었다.

공간이 찢어지고, 그 틈으로 들어온 마기가 아카이브 0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신서울의 지하, 문명과 마공이 충돌하는 그 심연에서, 새로운 우주적 전쟁의 서막이 진혁의 검 끝에 매달려 있었다.

[Warning: 차원 붕괴 임박. 안전거리 확보 요망.]

시스템의 경고음이 들렸지만, 진혁은 듣지 않았다. 아니, 들을 필요가 없었다.

그는 이제 시스템의 위에 서 있었으니까.

진혁은 검에 모든 내공을 쏟아부었다.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 - 멸천(滅天)]

검기가 지반을 뚫고 지상으로 치솟았다. 신서울의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검흔.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실험체 07호의 처절한 몸부림이 아니었다.

세계를 뒤흔들, 진정한 천마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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