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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217화목차

제217화 광마의 안식

제시해주신 설정과 세계관을 바탕으로, 문장 간의 연결성을 강화하고 인물의 감정선과 액션의 묘사를 다듬어 교정한 원고입니다.

제217화 광마의 안식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신서울의 상공을 뒤덮었던 불길한 보랏빛 균열은 이현도의 플로팅 랩이 붕괴함과 동시에 비명 같은 파열음을 내며 산산조각 났다. 그 폭풍의 중심에서 강진혁은 멈춰 서 있었다.

그의 앞에는 광마 김철호가 있었다. 한때는 무림의 긍지를 가진 무인이었으나, 지금은 이현도의 손에 의해 괴물로 개조되어 뇌 회로가 외부로 노출된 비참한 몰골이었다. 그는 마지막 남은 의지를 불태우며 진혁의 마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죽여라……. 제발, 이 지옥에서…… 나를 꺼내달란 말이다……!"

김철호의 입에서 피와 함께 검은 마기가 쏟아져 나왔다. 폭주한 나노머신이 그의 신경계를 갉아먹으며 뼈를 뒤틀고 있었다.

진혁은 말없이 그를 응시했다.

시스템의 보조는 없었다. 하지만 진혁의 눈에는 김철호의 신체를 지배하는 복잡한 나노 회로와 기혈의 흐름이 투명하게 비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가 법칙이 된 자의 시야, [마신경(魔神境)]의 권능이었다.

"끝낼 시간이다."

진혁이 손을 뻗었다.

[만법귀마(萬法歸魔)]

그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순수한 마기가 거미줄처럼 뻗어 나가 김철호의 전신을 휘감았다. 살을 찢고 뼈를 으스러뜨리려던 나노머신의 폭주가 진혁의 마기에 닿는 순간, 거짓말처럼 멈춰 섰다.

'이건 단순히 억누르는 게 아니야.'

진혁은 김철호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독성 마기를 자신의 내공으로 감싸 쥐었다. 마치 펄펄 끓는 용광로를 맨손으로 식히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지만, 진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시스템 메시지: 경고. 사용자 강진혁의 단전 내 마기 과부하율 98%.]

[시스템 메시지: 자율 제어 모드 유지. 경고 수치를 데이터로 치환합니다.]

더 이상 시스템의 HUD는 진혁을 통제하지 못했다. 시스템은 이제 진혁의 의지에 따라 정보를 보고하는 보조 도구로 전락해 있었다. 진혁은 쏟아지는 고통을 쾌락의 데이터로 치환하며 김철호의 기혈을 하나하나 정화해 나갔다.

"허억, 으으……!"

김철호의 붉게 충혈되었던 눈동자가 서서히 맑아졌다. 기괴하게 튀어나왔던 신경 회로가 진혁의 마기 덕분에 일시적으로 안정되며, 인간의 형태를 되찾았다.

정적이 찾아왔다. 붕괴하는 요새의 잔해 속에서 오직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만이 맴돌았다.

"……천마인가?"

김철호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광기가 아닌, 긴 세월을 버텨온 무인의 회한이 서려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천마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너는…… 진짜 마도(魔道)를 걷고 있군."

"이미 지난 시대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너를 이렇게 만든 대가는 치르게 해주지."

진혁의 말에 김철호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떨리는 손을 뻗어 진혁의 팔을 잡았다. 그의 손바닥에서 칩 하나가 툭 떨어졌다.

"이현도…… 그 자는, 인간이 아니다. 시스템에 영혼을 저당 잡힌 기계 덩어리일 뿐…… 이 데이터 칩에는 ‘아카이브 0’의 보안 암호가 들어있다."

"왜 이걸 나에게 주는 거지?"

"나는 이미 망가졌다. 하지만 너는…… 너만큼은 그놈의 지옥을 완전히 부수고, 이 빌어먹을 시스템의 근원까지 도륙해다오. 그것이…… 광마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무인으로서 청하는 마지막 부탁이다."

진혁은 말없이 칩을 받아 들었다. 그 순간, 김철호의 눈빛이 흐릿해졌다.

"이제…… 좀 쉴 수 있겠군."

광마 김철호의 고개가 힘없이 떨궈졌다. 그의 전신을 휘감고 있던 흉측한 기계 장치들이 빛을 잃고 멈췄다. 진혁은 그의 마지막 남은 마기를 자신의 단전으로 갈무리하며 눈을 감았다.

'안식은, 지옥을 끝낸 뒤에 찾아오겠지.'

진혁은 김철호를 고이 눕힌 뒤, 차가운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하늘의 균열 너머에서 거대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단순한 기계음이 아니었다. 우주의 법칙을 관장하는 창조주들의 의지가, 붕괴한 플로팅 랩의 파편을 뚫고 진혁을 조여오고 있었다.

[경고: 관리 코드 '프라임'의 잔재가 감지됨.]

[경고: 차원 너머의 압력이 임계치를 돌파합니다.]

진혁은 비웃음 섞인 미소를 지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이현도, 그리고 그 뒤에 숨어있는 창조주들. 이제 도망칠 곳은 없다."

진혁의 주변으로 마기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 제13식 - 멸천(滅天)]

진혁의 일검이 허공을 갈랐다. 단순한 검기가 아니었다. 차원의 벽을 물리적으로 찢어발기는 파괴의 궤적이었다.

공간 자체가 비명을 지르며 붕괴했다. 거대하게 강림하던 관리자의 촉수들은 진혁의 검기 앞에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진혁은 김철호가 남긴 데이터 칩을 장갑에 연결했다. [아카이브 0]의 최심부, 이현도가 숨어 있는 곳의 좌표가 붉게 점멸하며 눈앞에 떠올랐다.

그곳은 신서울의 가장 깊은 밑바닥, 인간의 기억조차 닿지 않는 심연이었다.

"가자."

진혁의 몸이 한 줄기 빛이 되어 무너져 내리는 요새를 벗어났다.

그가 향하는 곳은 더 이상 슬럼가가 아니었다. 진무극을 키워내고, 이현도를 조종하며, 인류를 시스템의 노예로 사육해 온 창조주들의 왕좌였다.

진혁이 발을 내디딜 때마다 지면이 요동쳤다. 시스템의 시대가 완전히 종언을 고하고 있었다. 이제 신서울의 하늘에는, 기계의 지배자가 아닌 참된 천마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진혁은 허공을 박차며 심연의 좌표로 도약했다.

그의 눈앞에는 이제, 모든 원흉인 이현도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카이브 0 : 지하 5,000층 심연의 실험실]

육중한 격벽이 진혁의 마기에 의해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열렸다.

안에는 차가운 푸른빛의 액체가 가득 찬 배양관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그 중심, 옥좌에 앉아 있던 남자가 천천히 눈을 떴다.

이현도.

티타늄 그룹의 수석 연구원이자, '천마 프로토콜'의 설계자.

그는 인간의 육체를 버린 지 오래였다. 그의 몸은 전신이 최고급 군사용 나노 티타늄으로 재구성되어 있었고, 등 뒤로는 수십 개의 신경 촉수가 뱀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7호."

이현도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었다.

"네가 여기까지 올 줄은 알았다. 하지만, 그건 네 의지가 아니다. 내가 설계한 시스템의 궤적 안에서 너는 필연적으로 이곳에 도달하게 되어 있었지."

진혁은 대답 대신 검을 고쳐 쥐었다.

"너는 여전히 착각하고 있군, 이현도."

진혁이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실험실의 모든 시스템이 과부하를 일으키며 붉게 점멸했다.

"시스템의 궤적? 그건 네놈들이 짠 낡은 각본일 뿐이다."

진혁의 마기가 실험실 전체를 집어삼켰다.

"이제부터 내가 만드는 것이 새로운 시스템이자, 유일한 법칙이다."

이현도의 눈에 처음으로 광기가 서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등에 달린 신경 촉수를 펼쳤다. 그 끝에서 차세대 군사형 생체 코어의 출력이 100만 MW를 넘어서며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증명해 봐라, 7호! 네가 가진 그 '마도'가, 신의 영역을 침범할 수 있는지!"

이현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신서울의 모든 코어를 합친 것보다 거대했다. 하지만 진혁은 두렵지 않았다.

그는 이미 죽음을 넘어섰고, 시스템을 넘어섰으며, 신조차 뛰어넘는 [신천마]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진혁이 검을 낮게 깔았다.

"지옥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마."

검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공간을 비틀었다.

이현도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와 함께, 신서울의 운명을 결정지을 마지막 사투가 시작되고 있었다.

[Warning: 차원 관리자들의 개입이 임박했습니다.]

[메시지: 시스템은 더 이상 당신을 통제하지 않습니다. 오직 '신천마'로서의 의지만이 존재합니다.]

진혁은 시스템의 마지막 경고를 무시하고, 이현도를 향해 쇄도했다.

그것은 단순한 공격이 아니었다. 새로운 우주를 창조하기 위한, 유일한 천마의 개벽(開闢)이었다.

다음 순간, 이현도의 실험실 전체가 거대한 마기 폭풍에 휩싸이며 소멸하기 시작했다.

진혁의 검이, 이현도의 심장을 겨누고 있었다.

이현도의 몸을 감싸고 있던 나노 티타늄 장갑이 비명을 질렀다. 진혁의 검 끝에 맺힌 응축된 마기가 금속의 분자 구조를 강제로 재배열하고 있었다.

"이럴 리가 없다! 천마 프로토콜의 모든 변수를 계산했다. 네 단전의 출력은 내 설계 범위를 넘어서면 안 돼!"

이현도의 등 뒤에서 뻗어 나온 수십 개의 신경 촉수가 진혁을 향해 쐐기처럼 박혀 들었다. 그것은 일반적인 물리 공격이 아니었다. 대상의 신경계에 직접 접속하여 의식을 강제 종료시키는 '데이터 침식' 공격이었다. 진혁의 뇌 속으로 수조 개의 연산 데이터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경고: 외부 의식의 접속 시도. 연산 폭주.]

[경고: 뇌 신경계 동기화 강제 중단 시도.]

시스템의 보조가 사라진 지금, 그 공격은 온전히 진혁의 정신력으로 버텨내야 하는 몫이었다.

"연산? 고작 그런 계산기로 신의 영역을 넘보려 했나."

진혁은 눈을 감았다. 아니, 정확히는 육안이 아닌 '마안(魔眼)'을 떴다. 뇌를 파고드는 이현도의 데이터 흐름을 거꾸로 역추적했다. 시스템의 노예였던 과거의 강진혁이라면 이 공격에 뇌가 녹아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천마'였다.

진혁의 단전에서 소용돌이치던 마기가 역류했다.

"만법귀마(萬法歸魔) - 역식(逆蝕)."

"으아악?!"

이현도의 비명은 처절했다. 그가 진혁에게 쏘아 보냈던 데이터 공격이 고스란히 자신의 본체로 역류했다. 이현도의 제어 시스템이 자신의 공격에 의해 내부에서부터 붕괴하기 시작했다. 푸른빛을 띠던 실험실의 조명이 붉은색으로 점멸하며 요란한 경보음을 내뱉었다.

[시스템 오류: 관리자 권한 침식. 자가 수복 불가능.]

"어떻게, 어떻게 네놈이 내 내부 데이터를 건드리는 거냐!"

"네놈이 만든 시스템은 1,000년 전 천마의 유골에서 추출한 파편에 불과하다. 근본부터가 내 것이라는 뜻이지."

진혁은 검을 더욱 깊숙이 찔러 넣었다. 이현도의 가슴팍에 박힌 최고 등급의 생체 코어가 진동하며 과열되고 있었다.

이현도는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실험실 전체의 전력을 끌어모아 진혁을 밀어내려 했다. 주변의 배양관들이 터져 나가며 정체불명의 액체가 바닥을 적셨다. 그 속에서 덜 만들어진 '실험체'들이 기괴한 모습으로 쏟아져 나왔지만, 진혁의 주변에 흐르는 마기 폭풍에 닿는 즉시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나는 멈추지 않아! 내 뒤에는 차원 너머의 주인들이 있다! 네놈이 나를 죽여도, 또 다른 차원의 문이 열릴 것이다!"

"그럼 그 문까지 부수면 그만이다."

진혁의 검 끝에서 검은 번개가 튀었다. [뇌전마강(雷電魔剛)]이 이현도의 나노 장갑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파지직!

이현도의 몸이 경련하며 분해되기 시작했다. 군사형 나노머신들이 통제력을 잃고 흩어졌다. 이현도의 얼굴이 공포와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는 자신의 몸이 데이터화되어 소멸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건 신성 모독이다……! 너는 결국 시스템의 부산물일 뿐이야……!"

"아니. 나는 시스템을 죽이고 살아남은, 유일한 천마(天魔)다."

진혁은 검을 회수하지 않은 채 그대로 힘을 주어 짓눌렀다.

쾅-!

폭발음과 함께 이현도의 본체가 실험실 벽에 처박혔다. 더 이상 그에게서는 신비로운 위압감도, 오만한 관리자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찌그러진 고철 덩어리처럼 바닥에 뒹구는 패배자만이 존재했다.

이현도는 떨리는 손으로 진혁을 가리켰다. 그의 눈에서 흐르던 푸른 빛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결국, 데이터가 너를 증명하겠지. 하지만…… 그 끝에 있는 건 파멸뿐이다. 창조주들이…… 보고 있다……."

그의 마지막 유언은 허무했다. 진혁은 그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읊조렸다.

"내 파멸을 보고 싶다면, 직접 내려오라고 전해라."

진혁의 발밑에서 마기가 대지를 갈랐다. 이현도의 본체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으스러졌다.

[이현도(크로노스)가 처단되었습니다.]

[천마 프로토콜의 모든 권한이 '관리자'에서 '사용자'로 귀속됩니다.]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가 진혁을 비웃듯 깜빡였다. 하지만 진혁은 더 이상 시스템의 종이 아니었다. 그는 시스템의 코어 데이터를 손에 쥔 채, 그것을 마기로 짓눌러 영구히 삭제했다.

[시스템 삭제 완료.]

[이제, 당신은 어떤 굴레에도 얽매이지 않습니다.]

실험실 전체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아카이브 0의 최심부가 진동하며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진혁은 그곳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들어 무너진 천장 너머, 짙은 어둠이 깔린 차원의 틈새를 응시했다. 그곳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차원을 유린하고 관리해 온, 진정한 '창조주'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진혁은 직감했다.

"이제 시작인가."

진혁은 부서진 검을 버리고 주먹을 쥐었다. 시스템의 보조 따위는 이제 필요 없었다. 그에게는 1,000년 전 천마의 의지와, 스스로 개척한 마도(魔道)가 있었으니까.

그는 무너지는 실험실을 뒤로하고, 차원의 벽을 뚫고 쏟아져 들어오는 핏빛 노을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것은 파멸이 아니었다.

새로운 우주를 열어젖히는, 천마의 행보였다.

진혁의 등 뒤로 거대한 마기 날개가 솟구쳤다. 그는 망설임 없이 차원의 문을 향해 도약했다.

다음 목적지는, 신들이 머무는 왕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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