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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216화목차

제216화 광마 김철호와의 재회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신서울의 상공을 가로지르던 거대한 플로팅 랩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고철 덩어리가 되어 지상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그 잔해 사이로 쏟아지는 불꽃과 파편들. 그 사이에서 강진혁은 묵묵히 허공을 밟고 있었다.

그의 발밑에서 대기가 요동쳤다. 시스템의 보조 따위는 없었다. 오직 단전에서 끓어오르는 순수한 마기(魔氣)와 스스로 개척한 기혈의 흐름만이 그를 공중에 띄우고 있었다.

“……도망치는 건가, 아니면 여기서 나를 기다린 건가.”

진혁의 흑안이 허공의 한 지점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일그러진 공간의 틈새가 열려 있었다. 그 너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릿한 금속성 악취. 그 냄새는 익숙했다. 티타늄 그룹의 지하 격투장에서 맡았던 죽음의 냄새였다.

지직, 지지직.

공간의 균열 속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기괴하게 비틀린 사지. 전신을 감싼 것은 인간의 피부가 아니라 흉측하게 노출된 구리빛 배선과 티타늄 합금 뼈대였다. 특히 머리 부분은 반쯤 파괴되어 있었는데, 그 사이로 은빛 시두(視頭) 회로가 불규칙하게 점멸하고 있었다.

그것은 김철호였다.

한때 지하 격투장의 챔피언이자, 천마 프로토콜의 실패작으로 버려졌던 남자.

“크아아아…! 으, 으윽…! 진… 혁…?”

광마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은 인간의 언어가 아니었다. 기계적인 소음과 뒤섞인 처절한 비명. 그의 뇌 회로는 이현도에 의해 강제로 개조되어, 죽어서도 쉬지 못하고 병기로 부려지는 저주를 받고 있었다.

진혁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현도가 광마를 어떻게 이용했는지. 그의 고통은 단순히 육체의 파괴가 아니었다. 영혼의 조각까지 짓이겨져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굴욕이었다.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 제어 권한 외부 침입 감지]

[WARNING: 대상 ‘광마(김철호)’의 마기 노출도 98%. 자폭 시퀀스 활성화 임박]

진혁의 망막에 붉은색 경고등이 점멸했다. 시스템이 꺼졌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잔재가 마치 유령처럼 나타나 정보를 띄우고 있었다. 진혁은 눈을 가늘게 뜨며 허공에 띄워진 HUD를 손가락으로 튕겨 없애버렸다.

“시스템은 이제 없다, 철호야.”

진혁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광마의 사이보그 눈이 붉게 점멸했다. 그 안에는 이성이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티타늄 그룹이 주입한 ‘살육’이라는 명령 코드만이 그의 사지를 조종하고 있었다.

쿠웅!

광마가 공중을 박차고 날아들었다. 그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은 단순한 내공이 아니었다. 마기를 강제로 압축해 쏜 붉은 섬광. 그것은 지형지물마저 녹여버리는 고출력 에너지포였다.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그는 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만법귀마(萬法歸魔).”

진혁의 손바닥 주변으로 공간이 일그러졌다. 광마가 쏘아 보낸 붉은 섬광이 진혁의 손앞에서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굴절되었다.

파아앙!

에너지의 파동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신서울의 밤하늘을 갈랐다. 진혁은 광마의 공격을 그대로 흡수하여 자신의 단전으로 흘려보냈다. 차가운 마기가 뜨거운 혈관을 타고 돌았다.

“크아아아!”

광마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팔을 거대한 칼날 형태로 변형시켜 진혁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강철보다 단단한 나노 합금의 절삭력이 대기마저 찢어발겼다.

진혁은 광마의 궤적을 읽었다.

아니, 읽을 필요도 없었다.

그는 광마의 움직임에서 고통을 읽었다.

강제로 비틀린 근육, 억지로 가동되는 코어의 비명, 끊임없이 재부팅되는 뇌 회로의 과부하.

‘이건 무공이 아니야. 이건 고문이지.’

진혁의 발끝에서 검은 오라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광마의 칼날을 정면으로 받아내는 대신, 그 사이를 파고들었다. 마치 춤을 추듯 광마의 품으로 파고든 진혁의 손바닥이 광마의 가슴팍, 생체 코어가 박힌 부위에 정확히 닿았다.

“돌려주지.”

진혁의 단전에서 압축된 마기가 폭발적으로 방출되었다.

그것은 파괴하기 위한 마기가 아니었다.

광마의 몸속에 억지로 박혀 있던 이현도의 제어 코드를 역류시켜 강제로 해킹하고, 그를 옭아매던 구속을 끊어버리는 ‘해방’의 마기였다.

“크윽…!”

광마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가슴팍에서 노란색 경고등이 푸른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SYSTEM: 제어 코드 삭제 중… 10%… 40%… 80%…]

“너는 천마 프로토콜의 부속품이 아니었다, 김철호.”

진혁의 말에 광마의 눈에서 붉은빛이 서서히 사라졌다.

그의 기괴하게 변형된 턱이 덜덜 떨렸다. 인간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돌아오고 있었다.

“진… 혁… 아….”

겨우 내뱉은 그 한마디.

그것은 광마가 아닌 김철호로서 진혁에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였다.

하지만 이현도의 악독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광마의 가슴 안쪽에서 2차 자폭 시퀀스가 활성화되었다.

[치명적 오류 발생. 대상의 생체 코어, 10초 후 폭주.]

진혁의 눈썹이 꿈틀했다.

이현도는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도 광마를 진혁을 죽이기 위한 마지막 자폭 병기로 남겨두었던 것이다.

“이런 개 같은 새끼들….”

진혁의 마기가 더욱 거세게 휘몰아쳤다.

그는 광마를 죽이는 대신, 자신의 마기를 광마의 전신으로 주입했다.

마치 갑옷을 입히듯, 그를 감싸 안았다.

“철호야, 내 마기로 너를 덮는다. 이 폭주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네가 마지막으로 고통받지는 않게 해주마.”

“고… 마… 워….”

광마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스쳤다.

그것은 지옥 같았던 실험실에서의 기억을 모두 잊고, 평온했던 과거의 김철호로 돌아가는 미소였다.

쾅-!

진혁의 마기가 감싸고 있던 광마의 몸이 화염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폭발이 아니었다. 진혁의 마기가 폭발의 에너지를 외부로 퍼지지 않게 안으로 압축하고, 김철호의 영혼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정화의 불꽃이었다.

진혁은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광마의 파편들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의 손끝에서 흩어지는 재가 차가운 밤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그때였다.

폭발의 잔해 속에서 무언가가 툭 하고 떨어졌다.

작은 데이터 칩. 광마가 이현도의 연구실에서 몰래 빼내어 자신의 뇌 회로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던 유일한 증거였다.

진혁은 그것을 낚아채듯 받아들였다.

칩을 손에 쥐자, 진혁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데이터가 쏟아져 들어왔다.

[이현도 연구실 보안 암호: ‘0-0-0-천마’]

[그리고… 그들이 숨기고 있는 ‘심연의 좌표’.]

진혁은 칩을 꽉 쥐었다.

손바닥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하지만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흑안에는 차가운 살의만이 일렁이고 있었다.

“이현도, 그리고 너희들 창조주들.”

진혁은 고개를 들어 저 멀리 보이는 검은 하늘, 차원의 틈새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김철호의 죽음으로 끝날 거라 생각했나?”

그는 허공을 박차고 나갔다.

그의 발걸음 한 번마다 주변의 대기가 비명을 질렀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이 모든 지옥을 설계한 놈들의 왕좌를 박살 내고, 우주의 근간을 새로 쓰는 것뿐이었다.

진혁의 몸이 핏빛 하늘을 가로지르며 하나의 유성처럼 솟구쳤다.

그의 뒤로 남겨진 것은 폐허가 된 신서울의 밤뿐이었다.

진혁의 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차원의 틈새에서 쏟아지는 기괴한 에너지가 그의 피부를 긁어내듯 스쳐 지나갔지만, [신천마신공]으로 재구성된 그의 육체는 이미 고통조차 데이터로 치환해버린 뒤였다.

허공을 달리는 발걸음 아래로, 추락하는 플로팅 랩의 파편들이 불타는 유성우처럼 쏟아졌다. 시스템의 연산 없이 오직 감각만으로 공간의 공진 주파수를 파악하는 경지. 그것은 무도(武道)라기보다 우주를 제어하는 법칙의 행사였다.

‘이현도, 그놈이 숨겨둔 암호의 끝에 뭐가 있는지 확인하면 모든 게 끝난다.’

진혁의 뇌리에는 김철호가 남긴 데이터 칩의 정보가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0-0-0-천마]. 이것은 단순히 연구소의 잠금장치를 해제하는 암호가 아니었다. 1,000년 전, 마교의 유골 데이터가 티타늄 그룹의 손에 넘어가기 전, 그 원천 데이터를 봉인했던 ‘관리자 코드’의 파편이었다.

그때, 진혁의 앞길을 막아서듯 차원의 틈새가 넓게 벌어졌다.

쿠구구궁!

공간이 비틀리며 솟아오른 것은 거대한 기계 괴수들이었다. 차원 너머의 ‘관리자’들이 진혁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보낸 수호병기, ‘에테르 가디언’. 전신이 액체 금속으로 이루어진 그 괴수들은 진혁의 마기 흐름을 감지하고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방해된다.”

진혁의 손이 허공을 갈랐다.

그가 휘두른 것은 손이 아니라 ‘멸천(滅天)’의 궤적이었다.

[신천마신공 제13식, 멸천(滅天).]

검기가 아닌, 존재의 말살.

진혁의 손끝에서 뻗어 나간 검은 마기가 허공을 십자 형태로 갈랐다. 닿는 것마다 공간이 붕괴하고, 액체 금속의 가디언들은 반격조차 하지 못한 채 먼지로 분해되었다.

가디언들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공허뿐이었다. 진혁은 그 공허를 밟고 다시 도약했다. 그의 목적지는 신서울의 지상이 아니었다. 하늘 너머, 이 모든 비극의 근원인 ‘창조주의 좌표’였다.

비행하는 동안 진혁은 김철호의 데이터 칩을 자신의 나노 회로와 동기화했다. 강제로 주입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혁은 자신의 기원이 단순한 ‘실험체’가 아님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나는 천마의 후예가 아니다. 나는… 천마 그 자체를 다시 현현시키기 위해 설계된, 1,000년 전 천마의 의지가 담긴 그릇이었던 건가.’

데이터는 충격적이었다. 진무극은 단순히 마공을 익히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천마라는 존재를 우주적인 병기로 재탄생시켜, 자신을 지배하는 창조주들의 차원을 침공할 힘을 얻으려 했다.

진혁이 마신경에 도달해 시스템을 부순 순간, 진무극이 느꼈을 좌절감이 데이터의 잔재에서 느껴졌다.

“꼴좋군.”

진혁은 비릿하게 웃었다.

이제 그는 누구의 그릇도 아니다. 진무극도, 창조주도, 심지어는 고대 마교의 잔영조차 그를 통제할 수 없다. 그는 스스로의 의지로 완성된 ‘신천마’였다.

좌표가 가까워질수록 대기의 밀도가 변했다. 일반적인 산소와 질소가 아닌, 차원 너머의 고농도 에너지가 진혁의 피부를 압박했다. 하지만 진혁은 그 에너지를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만법귀마의 원리를 이용해 그 고농도의 에너지를 자신의 단전으로 끌어들였다.

단전이 비명을 지르며 팽창했다.

[마신경]의 경지는 이미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 있었다.

어느덧 진혁의 눈앞에 거대한 검은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서울의 상공 한가운데 떠 있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기괴한 차원의 문. 저 문 너머가 바로 창조주들이 머무는 곳이자, 진혁의 최종 목적지였다.

그 문 앞에는 수많은 정찰기들이 진혁을 향해 포화를 퍼붓고 있었다. 하지만 진혁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문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갔다.

“다 끝내주마.”

진혁이 단전의 모든 마기를 폭발시켰다.

그가 문 앞에 도달하는 순간, 문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빛이 진혁의 전신을 감쌌다. 그것은 차원의 경계를 유지하는 ‘관리 코드’의 힘이었다. 시스템이 무너졌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진혁을 ‘실험체 07호’로 인식하고 있었다.

[경고: 관리 코드 침범 불가. 외부 개체는 정화 대상입니다.]

차원의 문에서 흘러나오는 차가운 기계음.

진혁은 그 문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정화라고?”

쿠아아아아!

진혁의 주먹이 닿은 문이 거미줄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단순한 물리적 타격이 아니었다. 마기를 이용해 차원의 공진 주파수를 강제로 어긋나게 만든, ‘만법귀마-역류’의 응용이었다.

관리 코드가 비명을 지르며 붕괴했다.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것은 인간의 것이 아닌, 태고의 신들이 내뱉는 당혹스러운 울부짖음이었다.

진혁은 깨진 문틈 사이로 당당히 발을 내디뎠다.

그곳은 빛도, 어둠도 없는 무(無)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 끝에는, 진혁의 목숨을 앗아가려 했던 창조주들의 왕좌가 놓여 있었다.

왕좌에 앉아 있던 그림자들이 진혁을 응시했다.

진혁은 흩날리는 자신의 흑발을 쓸어 넘기며, 폐허가 된 신서울을 등지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기다려라. 이제부터가 진짜 전쟁이다.”

진혁의 등 뒤에서, 그가 부숴버린 차원의 문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퇴로 따위는 없었다. 그저 앞을 가로막는 모든 신화를 부수고, 스스로가 새로운 신화가 되는 것만이 남았을 뿐.

진혁은 천천히 왕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의 발걸음마다 공간이 울리고, 우주의 법칙이 새롭게 다시 쓰이고 있었다.

이제, 천마(天魔)의 시대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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