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3화 플로팅 랩의 위치 추적
치익, 치이익.
진무극의 영혼을 태워버린 뒤의 잔해는 고요했다. 마스터 돔의 공기는 타버린 나노입자와 진동하는 마기로 인해 점성을 띠고 있었다. 강진혁은 천천히 손을 쥐었다 폈다. 단전의 심연에서 끓어오르는 것은 더 이상 시스템의 보조 연산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강진혁이라는 존재 그 자체에서 비롯된, 순도 100%의 마기(魔氣)였다.
HUD는 완전히 꺼졌다. 하지만 그의 시야는 그 어느 때보다 선명했다. 벽면에 내장된 수천 개의 센서 회로가 마치 자신의 신경계처럼 느껴졌다.
"진혁아, 들려?"
귓가에 이식된 통신 단자를 통해 윤아영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녀의 목소리 뒤로 쉴 새 없이 타닥거리는 키보드 소음이 섞여 있었다.
"들린다. 상황은."
"미친, 너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야? 아카이브 0의 메인 코어가 통째로 셧다운됐어! 티타늄 그룹 전체의 네트워크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그 덕분에 내가 진무극이 숨겨뒀던 최후의 데이터 레이어를 뚫었어."
윤아영의 목소리에는 경악과 희열이 뒤섞여 있었다.
"좌표를 확보했어. 신서울 상공 3만 피트, 대기권 경계면에 떠 있는 독립 기지. '플로팅 랩(Floating Lab)'. 진무극이 자신의 본체와 마공의 최종 데이터를 보관하고 있던 곳이야."
진혁의 흑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플로팅 랩. 그곳이 바로 자신이 피험체 07호로 고통받던 시간의 시작점이자, 이 모든 비극의 근원지였다.
"좌표를 전송해. 지금 바로 이동한다."
"잠깐, 혼자 가려고? 거긴 신서울의 전 방어 시스템이 집중된 곳이야. 니르바나의 정보망으로도 거기 접근하는 건 자살행위라고!"
"이미 난 죽음을 넘어섰다, 아영아."
진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마스터 돔의 바닥이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기다리고 있어. 내가 그 하늘을 직접 떨어뜨릴 테니까."
[니르바나 본부]
철제 문이 거칠게 열리고 진혁이 들어서자, 널찍한 작전실에 무거운 정적이 감돌았다. 그의 뒤로는 부서진 타워의 파편이 묻어 있었고, 그를 휘감은 마기는 마치 형체를 가진 검은 용처럼 꿈틀거렸다. 송수연은 들고 있던 대검을 내려놓으며 경악 어린 눈으로 진혁을 바라보았다.
"강진혁…… 너, 인간이 맞나?"
"방법이 하나 있다."
진혁은 작전 테이블 위에 윤아영이 띄워놓은 플로팅 랩의 3D 홀로그램 지도를 보았다. 천우진이 곰방대를 입에 문 채 다가와 지도를 훑었다. 그의 사이보그 의수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건 미친 짓이다, 진혁아. 이 좌표는 단순한 요새가 아니야. 신서울의 모든 고출력 레이저 포대가 플로팅 랩을 향해 조준하고 있어. 우리가 저 근처에 접근하는 순간, 분자 단위로 분해될 거다."
"뚫을 방법은?"
천우진이 고개를 저으려던 찰나, 진혁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천우진의 기계 팔 속으로 스며들었다. 으득, 기계음이 비명을 지르며 붉은 열기를 뿜어냈다.
"내 마기를 빌려주지. 이걸 네가 가진 전술 수송기의 엔진에 주입해."
"무슨 소릴 하는 거냐?"
"시스템의 제어권을 뺏긴 방어 포대들은 지금 오류를 일으키고 있다. 그 틈을 타서 플로팅 랩의 고주파 방어막과 동기화하는 거다. 내 마기로 방어막의 주파수를 교란하면, 그들은 우리를 아군으로 인식하게 될 거야."
천우진은 멍하니 자신의 의수를 보았다. 진혁의 마기가 주입된 곳에서 푸른색과 검은색이 섞인 기이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것은 공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알겠다. 하지만 성공 확률은 1% 미만이야."
"1%면 충분하다."
진혁의 눈빛에 오만함이 아닌, 절대적인 확신이 서렸다.
[신서울 상공 25,000피트, 고고도 수송기 내부]
기체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외부에서는 플로팅 랩이 뿜어내는 초고압 자기장이 대기를 찢어발기고 있었다. 경고음이 귓가를 찔렀다.
[경고! 방어 시스템 감지! 레이저 타겟팅 진행 중!]
윤아영의 음성이 다급하게 통신을 타고 넘어왔다.
"진혁! 플로팅 랩의 방어망이 우리를 포착했어! 30초 뒤면 격추야! 지금 뛰어내리지 않으면 다 같이 타 죽어!"
진혁은 수송기의 뒷문을 열었다. 강렬한 기류가 몰아치며 그의 옷자락을 찢어발겼다. 3만 피트 상공의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발밑으로는 신서울의 화려한 야경이 마치 먼지처럼 작게 보였다.
"강진혁, 준비됐나!"
천우진이 소리쳤다. 진혁은 망설임 없이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낙하산은 없었다.
슈아아아아!
하강하는 그의 몸을 중심으로 검은 마기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마공각성]의 시절, 단순히 에너지를 갈취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힘이었다. 그는 이제 공기 분자 하나하나를 자신의 마기로 치환하고 있었다.
[Warning! 대공 미사일 다수 포착!]
하늘 저편에서 수십 발의 미사일이 그를 향해 쇄도했다. 플로팅 랩의 자동 방어 시스템이 '침입자'를 제거하기 위해 쏟아내는 죽음의 비였다.
진혁은 눈을 감았다. 시스템의 데이터는 더 이상 필요 없었다. 바람의 흐름, 미사일의 추진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방어막의 공진 주파수. 이 모든 것이 자신의 피부에 와닿는 감각으로 읽혔다.
'만법귀마(萬法歸魔).'
그가 허공에 검지를 뻗었다. 순간, 쇄도하던 수십 발의 미사일이 허공에서 멈칫했다. 마치 거대한 자석에 이끌리듯 미사일의 탄두가 기괴하게 뒤틀렸다.
콰아아앙!
공중에서 연쇄 폭발이 일어났다. 진혁은 그 불길을 뚫고 지나갔다. 그의 등 뒤로 펼쳐진 마기의 날개가 불타는 파편을 가르며 플로팅 랩의 외벽을 향해 쐐기처럼 박혔다.
플로팅 랩의 거대한 강철 외벽이 눈앞에 다가왔다. 진혁은 손을 들어 마기를 응축시켰다.
"이곳이 네 마지막 요람이다."
그의 주먹이 플로팅 랩의 강화 합금 외벽에 닿았다. 단순한 타격이 아니었다. 마기를 이용해 금속의 결합력을 순식간에 붕괴시키는 파동.
쿠구구구궁!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10미터 두께의 외벽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진혁은 그 거대한 구멍을 통해 요새 내부로 몸을 날렸다.
[System Error: 침입자 감지.]
[보안 코드: 오버라이드 진행 중.]
요새 내부의 붉은 조명이 점멸했다. 진혁은 찢어진 벽면 사이로 착지하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수천 개의 캡슐이 줄지어 있었고, 그 안에는 1,000년 전 천마의 혈액을 복제한 '그릇'들이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 가장 거대한 캡슐 속에서 눈을 뜨고 있는 한 형체가 보였다.
"기다리고 있었다, 07호."
이현도의 목소리가 요새 전체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진혁은 비웃음을 흘리며 자신의 손에 맺힌 검은 마기를 쥐었다.
"아니. 넌 나를 기다린 게 아니라, 네 죽음을 기다린 거다."
진혁의 걸음마다 요새의 바닥이 융해되어 녹아내렸다. 이제 시스템은 없다. 오직 그와, 그의 마기를 받아낼 준비가 된 이 요새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진혁의 손에서 [천마일검(天魔一劍)]의 기운이 잉태되기 시작했다. 이 좁은 요새 안에서, 신과 시스템의 시대가 저물고 있었다.
"이제 끝낼 시간이다."
그의 발끝에서 터져 나온 마기가 요새의 메인 동력원을 직격했다. 플로팅 랩이 거대한 진동과 함께 추락하기 시작했다.
과연 이 붕괴 속에서 진혁이 마주하게 될 '최후의 진실'은 무엇인가.
플로팅 랩의 인공 중력 장치가 마기에 침식되어 비명을 질렀다. 캡슐 안에서 잠들어 있던 수천 개의 복제체들이 진동에 몸을 떨며 눈을 떴다. 그것들은 07호, 즉 강진혁을 향해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캡슐을 박차고 나왔다. 하나같이 진혁의 DNA를 기반으로 개조된, 반쯤 완성된 살인 병기들이었다.
"실패작들의 발악인가."
진혁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그가 손을 가볍게 휘젓자, 공기 중에 흩날리던 마기가 실타래처럼 엮이며 수십 개의 검은 날카로운 기(氣)로 변했다.
슈아악!
피할 틈도 없는 일격이었다. 복제체들은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허공에서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그것은 살육이라기보다, 잘못 작성된 데이터를 지우는 시스템의 정제 작업에 가까웠다. 진혁은 그 잔해들 사이를 무심하게 걸어 나갔다. 그의 발걸음이 닿을 때마다 요새의 보안 셔터가 알아서 녹아내리며 길을 열어주었다.
"07호, 아니... 강진혁. 네가 무엇을 하든 이 요새는 1,000년 전 천마의 근원적인 '마기 코드'를 품고 있다. 네가 나를 죽인다고 해서, 그 코드까지 지울 수 있을 것 같나?"
이현도의 홀로그램이 곳곳에서 나타나 비웃음을 흘렸다.
"이 요새가 추락하면, 여기 봉인되어 있던 마교의 잔재가 신서울 전체로 퍼져 나갈 거다. 그건 너도 원하지 않는 미래겠지. 시스템의 노예가 된 인간들이 마기에 미쳐 날뛰는 모습. 네가 지키고 싶어 하는 그 하층민들이 말이야."
진혁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의 시선이 요새 중앙 제어실의 거대한 동력 코어를 향했다. 그 안에는 이현도가 말한 '마교의 원초 데이터'가 푸른 불꽃처럼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협박인가?"
"경고다. 넌 결국 시스템의 굴레에서 벗어났다고 착각하지만, 여전히 나라는 존재가 만든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있을 뿐이야."
진혁은 코웃음을 쳤다. 그는 손을 뻗어 코어의 표면을 움켜쥐었다.
지지지직!
강력한 전기 방전이 그의 팔을 타고 올라왔다. 일반적인 생체 코어였다면 즉시 단전이 파괴되었을 엄청난 부하. 그러나 진혁의 혈관 속에서 흐르는 마기는 오히려 그 전력을 환영하듯 빨아들였다.
"네가 착각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이현도."
진혁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시스템은 내게 기술을 주었고, 너는 나에게 족쇄를 주었지.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재료로 삼아 '무공'을 완성한 건 나다. 무공이란 것은, 네놈들의 공학적인 계산기 위에서 돌아가는 데이터 쪼가리가 아니야."
그의 단전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순수한 마기가 코어 내부의 원초 데이터와 충돌했다.
쿠구구궁!
요새 전체가 격렬하게 요동쳤다. 플로팅 랩의 외벽이 뜯겨나가고, 파편이 대기권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진혁의 표정은 평온했다. 그는 자신의 마기가 원초 데이터를 서서히 침식하고, 변이시키고, 마침내 자신의 것으로 동화시키는 과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데이터 재구축: 마기(魔氣)의 본질을 통합합니다.]
[사용자 강진혁의 '신천마신공'이 5단계의 경계를 넘어섭니다.]
HUD가 없어도 들려오는 환청 같은 시스템의 잔향. 진혁은 그것마저 자신의 의지로 짓눌러 지워버렸다.
"이제 네가 만든 무대는 끝났다."
진혁의 손아귀에서 코어가 산산조각 났다. 그와 동시에 요새를 지탱하던 모든 마력 동력이 끊겼다. 플로팅 랩은 이제 단순한 고철 덩어리가 되어 지상을 향해 자유낙하하기 시작했다.
"크윽, 이게 무슨...! 네가 어떻게 마교의 원초 데이터를 제어하는 거지? 그건 인간의 정신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정보량이야!"
이현도의 홀로그램이 일그러지며 비명을 질렀다. 진혁은 눈을 감고, 자신의 몸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1,000년 전 천마의 파편들을 하나하나 짓밟아 정리했다.
그것은 지식이자 저주였다. 마교의 잔혹함, 절대적인 힘을 갈구하던 광기, 그리고 세상을 멸망시키려 했던 천마의 마지막 유언.
진혁은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의지로 굴복시켰다. '천마'는 멸망을 원했지만, '강진혁'은 살아남기를 원했다. 아니, 살아남는 것을 넘어 이 세상을 자신의 발밑에 두기를 원했다.
[새로운 경지: 마도개벽(魔道開闢) 도달.]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가 요새 내부의 모든 기계 장치를 강제로 정지시켰다. 추락하던 요새가 허공에서 기이하게 멈춰 섰다. 강진혁이라는 존재의 마기가 중력의 법칙마저 비틀어버린 것이다.
"이현도."
진혁은 허공을 향해 나지막이 불렀다. 그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기운이 요새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던 이현도의 분신 서버들을 찾아내어 하나하나 찢어발겼다.
"네 놈들이 부리는 그 거창한 기술도, 결국은 이 육체와 정신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지."
"기다려, 진혁! 우리는 아직...!"
"더 할 말은 없다."
진혁의 검지가 가볍게 허공을 그었다. 순간, 요새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틈이 벌어졌다. 공간 그 자체가 마기에 의해 절단된 것이다.
[공간 파쇄: 만법귀마의 극의.]
요새가 분해되는 소리가 고막을 찢었다. 강진혁은 그 붕괴하는 요새의 잔해를 밟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지상에서는 저항군 니르바나의 전함들이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구름 위로 솟아오른 한 사내. 그는 마치 태양을 등진 신처럼 보였다.
그의 등 뒤에서 요새가 완전히 폭발했다. 하지만 진혁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가 공중에 떠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구름이 검게 물들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더 이상 과학이 아니었다. 무도(武道)의 정점이자, 신화의 시작이었다.
진혁은 신서울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그에게 남은 적은 없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요새가 추락하며 내뿜은 마기의 파동은, 차원의 너머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를 깨우기에 충분했다는 것을.
"왔나."
진혁이 차갑게 읊조렸다. 그의 눈앞, 파란 하늘이 찢어지며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 틈새로, 인간의 형상을 했으나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기괴한 압박감이 밀려들었다.
신천마의 전쟁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