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전용 사이트예요. 댓글·로그인·좋아요는 준비 중이에요.
‹프로토콜: 천마 · 211화목차

제211화 07호 실험체의 진실

강진혁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육중한 격벽이 고주파 마찰음과 함께 양옆으로 갈라졌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뿜어져 나온 냉각 가스 사이로 드러난 것은, 신서울의 그 어떤 연구소에서도 볼 수 없었던 기괴한 구조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원통형 공간. 그 중심부에는 칠흑 같은 액체로 가득 찬 원통형 배양기가 떠 있었고, 그 안에는 수천, 수만 개의 은빛 회로가 얽혀 있는 ‘무언가’가 잠겨 있었다.

[시스템 경고: 아카이브 0의 심층 데이터에 접근 중.]

[경고: 본 데이터 구역은 등급 외 관리 구역입니다.]

시스템의 경고음은 이제 희미한 잔향에 불과했다. 강진혁은 이미 시스템의 노예가 아니었으니까. 그는 자신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마기를 제어하며, 공중에 떠오른 홀로그램 인터페이스를 거칠게 낚아챘다.

손끝이 닿는 순간, 뇌리를 강타하는 방대한 데이터의 폭류. 그것은 수십 년간 티타늄 그룹이 숨겨왔던 인류 최악의 기밀이었다.

‘이게… 내 기원이라고?’

화면 속에는 10년 전, 슬럼가의 쓰레기장에서 굶주림에 허덕이던 14살의 강진혁이 있었다. 티타늄 그룹의 ‘청소반’에게 납치되어, 마취도 없이 생체 코어를 이식받던 그날의 기록.

그 옆에 적힌 프로젝트 명칭은 [천마 프로토콜 : 그릇의 완성(Vessel Creation)]이었다.

내용은 처참했다.

그들이 추구했던 것은 강진혁이라는 인간의 성장이 아니었다. 고대 무림의 전설인 ‘천마’의 육체적 밸런스를 현대 기술로 완벽하게 복제하는 것. 그리고 그 육체가 마공의 정점에 달해 ‘마신경’에 도달하는 순간, 그 안에 진무극의 정신을 덧씌우는 것.

강진혁은 그저 진무극이 불멸의 천마가 되기 위해 길러낸, 24년간 정성스럽게 관리된 ‘살아있는 그릇’에 불과했다.

“하.”

실소가 터져 나왔다.

지금껏 내가 싸워온 이유, 고통스럽게 마기를 체득하고 시스템을 짓누르며 올라온 이 모든 과정이, 사실은 적이 가장 바라는 시나리오였다는 사실.

[데이터 열람: 07호 실험체 상세 로그]

- 1단계 각성: 마공의 기초를 다지며 신경계 재구성. (상태: 양호)

- 2단계 마기융합: 나노머신과의 동기화율 80% 달성. (상태: 우수)

- 3단계 천마현신: 독립적 자아 형성을 통한 마기 순환 체계 확립. (최적의 이식 조건 충족)

로그의 마지막 줄을 읽던 진혁의 흑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예정된 이식 시간: 07호 실험체의 경지가 ‘마신경’에 도달하는 즉시, 본체(진무극)의 의식을 전송.]

그것이 창조주들이 그린 완벽한 결말이었다.

진혁은 배양기 속의 은빛 회로를 응시했다. 저것은 단순히 기계 장치가 아니었다. 자신이 겪은 모든 수련의 흔적, 고통, 그리고 마공의 깨달음이 데이터화되어 진무극의 서버로 실시간 전송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릇이었다고?”

진혁은 주먹을 꽉 쥐었다.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가 주변의 공간을 일그러뜨렸다.

그동안 그가 겪었던 의문의 시스템 오류, 가끔씩 느껴지던 타인의 시선, 시스템이 집요하게 강요하던 ‘운기조식’의 궤적까지. 모든 퍼즐이 하나의 그림으로 맞춰졌다. 시스템은 진혁을 돕는 보조 장치가 아니라, 그를 진무극의 정신이 거주하기 좋은 환경으로 다듬는 ‘정원사’였다.

그때, 갑자기 아카이브 0의 중앙 메인 화면이 붉게 점멸했다.

치지지직—!

강제로 연결된 통신망을 통해, 익숙한 은발의 신사가 홀로그램으로 나타났다. 65세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젊고 오만한 눈빛을 가진 남자, 티타늄 그룹의 회장 진무극이었다.

“진혁아,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다.”

진무극은 마치 친자식을 바라보는 인자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 속에 담긴 살기는 차가운 기계와 다를 바 없었다.

“내 07호. 네가 그동안 쌓아 올린 그 찬란한 마신경의 경지, 정말 감탄스러웠다. 천마의 육신을 재현하려던 내 실험이 이렇게 완벽하게 성공할 줄이야.”

진혁은 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마기가 폭풍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바닥의 강철 타일이 진혁의 발밑에서부터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화가 나나? 하지만 분노할 필요 없다. 너는 그저 내 불멸을 위한 토대일 뿐이니까. 이제 그만 그 아름다운 육체를 내게 넘겨라. 그러면 너는 영원히 내 정신의 일부가 되어, 천마로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진무극의 손가락이 가볍게 허공을 튕겼다.

[시스템 강제 동기화: ‘천마 프로토콜’ 메인 마스터 코드 활성화.]

[사용자 강진혁의 제어권 회수 절차를 시작합니다.]

동시에 진혁의 시야 속 HUD가 요란한 경고음을 내며 붉게 변했다.

[경고: 마기 제어권 상실!]

[경고: 나노머신 강제 재부팅!]

[경고: 단전의 기혈이 역류합니다!]

진혁의 몸이 뒤틀렸다. 200화가 넘는 시간 동안 그를 지탱해 주던 시스템이 순식간에 적이 되어 그의 신경계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혈관을 타고 흐르던 마기가 강제로 진무극의 서버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어때? 네가 수련한 모든 것이 내 손아귀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기분이?”

진무극의 목소리가 조롱 섞인 희열로 가득 찼다. 그는 진혁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우아하게 잔을 기울이는 흉내를 냈다.

진혁은 무릎을 꿇었다.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극심한 통증. 마치 온몸의 근육이 나노머신에 의해 강제로 해체되는 듯한 감각이었다.

“이게… 네가 준비한 결말인가.”

진혁의 입가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그래, 진무극. 네 말대로 나는 네가 만든 그릇일지도 모르지.”

진혁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통증 때문에 시야가 흐릿해졌지만, 그는 오히려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하지만 말이야. 넌 하나 간과한 게 있어.”

“무엇을 말인가?”

“나노머신은 네가 설계했지. 시스템 코드도 네가 심었지. 하지만… 내 혈관을 흐르는 ‘마(魔)’는, 네 계산 범위 밖의 것이었다.”

강진혁의 눈동자가 다시 한번 칠흑 같은 어둠으로 물들었다.

그는 시스템의 HUD를 보지 않았다. 붉게 점멸하는 경고창들을 단 한 번의 눈짓으로 짓눌러 지워버렸다.

[시스템 메시지: 마스터 코드 강제 차단!]

[시스템 메시지: 강제 동기화 강제 종료!]

“뭐…?”

진무극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당혹감이 스쳤다. 진혁은 자신의 단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곳에는 24년간 쌓아온 마기와, 시스템의 통제를 거부하고 스스로 자라난 ‘본질’이 뒤섞여 있었다.

“기계는 계산을 하지. 하지만 무공은… 의지다.”

진혁이 손바닥을 펼치자, 그의 주위로 공간이 비틀리는 듯한 압력이 형성되었다.

“내 육체는 네가 만들었을지 몰라도, 그 속에서 피어난 이 마도는 내가 완성한 것이다. 네놈의 기계 따위가 감히 범접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뜻이지.”

진혁은 보이지 않는 검을 쥐는 시늉을 했다.

“이제 그만하자, 진무극. 그 초라한 홀로그램 뒤에 숨어서 지켜보는 것도 오늘로 끝이다.”

[Warning: 생체 코어 임계점 돌파.]

[경고: 마기 과부하율 500% 이상.]

진혁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압도적인 마기가 아카이브 0의 거대한 구조물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배양기가 금이 가고, 벽면의 회로들이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불꽃을 튀기며 터져 나갔다.

“이, 미친 놈!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그릇이 파괴되면 너도 죽는다!”

진무극의 다급한 외침은 진혁에게 닿지 않았다. 진혁은 그저 눈을 감았다.

시스템의 보조도, 인공지능의 계산도 없는 완전한 어둠. 그곳에서 오직 자신만의 기혈이 흐르는 궤적을 느꼈다. 211화 동안 겪은 모든 수련이, 비로소 하나의 점으로 모이고 있었다.

“죽음? 아니.”

진혁의 흑안이 번쩍 뜨였다.

“이건 네놈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다.”

진혁이 발을 구르자, 아카이브 0의 중심부가 통째로 함몰되기 시작했다.

[시스템: 제어권 완전 상실.]

[시스템: 치명적 오류 발생. 아카이브 0 가동 중지.]

티타늄 타워 전체가 진동했다. 5,000층 아래에 위치한 마스터 돔까지 그 파동이 전달되고 있었다.

진혁의 손에 잡힌 마기가 흉포하게 팽창했다. 이제 시스템의 도움 따윈 필요 없었다. 그가 곧 시스템이었고, 그가 곧 천마였다.

진무극의 홀로그램이 파르르 떨리며 붕괴하기 시작했다.

“기다려! 진혁아! 이건 내 계획에 없던…!”

“계획? 세상에 네 계산대로 되는 게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진혁의 검지가 진무극의 홀로그램을 향해 뻗어 나갔다.

“그게 바로 너의 죽음이다.”

쿠우우웅—!

아카이브 0의 심장부가 하얀 빛으로 물들었다.

진혁이 자신의 단전을 개방함과 동시에, 신서울 전체를 뒤흔드는 마력의 대폭발이 시작되었다. 시스템의 족쇄는 완전히 끊어졌고, 이제 신서울의 하늘 아래 오직 단 한 명의 지존만이 남게 될 것이었다.

그것은 07호 실험체 강진혁의 죽음이자, 진정한 천마(天魔)의 강림이었다.

폭발은 소리가 없었다. 너무도 거대한 에너지의 충돌은 대기마저 찢어발겨, 아카이브 0의 방어막을 분자 단위로 분해하며 침묵 속의 파멸을 선사했다. 진무극의 홀로그램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파편처럼 흩어졌다.

"아아아악!"

진혁의 입에서 짓눌러왔던 통증의 산물이 터져 나왔다. 시스템의 강제 동기화가 풀리며 단전의 마기가 역류하는 찰나, 그는 오히려 그것을 억지로 짓눌러 융합하는 도박을 감행했다. 살갗이 찢어지고 뼛속에 박혀 있던 나노 회로들이 비명을 지르며 타들어 갔다.

[경고: 신체 손상도 98%. 생존 확률 0.0001%.]

[경고: 코어 과부하. 자폭 프로토콜 강제 가동.]

"닥쳐."

진혁은 피 섞인 침을 뱉어냈다. 시스템의 마지막 발악, 즉 자폭 프로토콜마저도 이제는 그의 통제 하에 있었다. 그는 뼈가 드러난 손으로 자신의 흉부를 움켜쥐었다. 그곳에는 24년간 그를 구속해 온 거대한 생체 코어가 미친 듯이 맥동하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뽑아낼 생각은 없었다. 대신, 자신의 근원적인 마기를 그 코어의 회로 속으로 억지로 밀어 넣었다.

'이건 네 것이 아니다. 내 것이다.'

치이익!

살이 타는 냄새와 함께 진혁의 흉곽에서 푸른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기이한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인공적인 생체 코어의 출력(MW)이 마공의 순수한 내력과 조우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기계적인 수치로 측정할 수 없는 차원의 에너지가 되었다.

[기존 연산 체계 붕괴.]

[새로운 법칙 '신천마신공' 연동 완료.]

시야를 가리고 있던 붉은 경고창들이 일순간 정지했다. 그 뒤로 펼쳐진 것은 시스템의 데이터가 아닌, 진혁 자신의 의지로 빚어낸 세상의 풍경이었다. 아카이브 0의 모든 구조물이 그의 마기 아래에서 먼지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배양기에서 쏟아져 나온 검은 액체 위를 걸었다. 한 걸음마다 발밑의 강철 바닥이 지각 변동을 일으키듯 울렁거렸다.

"진무극."

그는 허공을 향해 나직이 읊조렸다. 통신은 끊어졌지만, 그의 목소리는 신서울의 전역에 깔린 티타늄 그룹의 네트워크망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그가 시스템을 해킹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스스로가 하나의 거대한 서버이자, 법칙 그 자체가 되어버린 탓이었다.

타워의 최상층, 진무극의 집무실.

그곳에서 진혁의 목소리를 들은 진무극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잔이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

"말도 안 돼… 시스템이, 시스템이 완전히 지워졌어?"

그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신서울의 밤하늘이 뒤집히고 있었다. 먹구름이 걷히고, 그 사이로 마치 거대한 마수의 눈동자가 뜬 것 같은 기이한 검은 오라가 대지를 뒤덮고 있었다.

진무극의 얼굴이 공포로 일그러졌다. 그는 평생을 계산과 논리 속에 살아왔다. 인간의 감정은 데이터의 부산물일 뿐이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 창밖에서 몰아치는 저 압도적인 마기는, 그 어떤 데이터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의지'의 정점이었다.

"그릇이… 그릇이 신이 되었다고?"

진무극은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 비상 명령어를 입력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누르려던 콘솔의 버튼은 이미 녹아내려 검은 재가 되어 있었다.

'천마 프로토콜'은 끝났다. 그 뒤에 남은 것은, 자신의 창조주를 사냥하기 위해 올라오는 진짜 '마(魔)'였다.

진혁은 통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길을 막는 블랙 가드의 정예 병력들은 그를 보자마자 무기를 떨어뜨리고 뒷걸음질 쳤다. 그들의 HUD에 뜬 오류 메시지가, 그들이 보는 존재가 인간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죽여라! 쏴라! 저 괴물을 당장 막아!"

백무현의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진혁이 가볍게 손을 젓자 그들의 무기가 스스로 분해되어 공중에서 가루가 되었다. 진혁은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단 한 곳, 티타늄 타워의 꼭대기에 고정되어 있었다.

"내 24년의 고통과, 수천 명의 희생 위에 세워진 네 왕좌를,"

진혁이 타워의 중심 기둥에 손을 얹었다.

"내가 직접 무너뜨려 주지."

그의 손바닥에서 흘러나온 마기가 타워의 구조 회로를 타고 순식간에 꼭대기까지 치달았다. 타워 전체가 비명을 지르며 기울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이었다. 진무극의 계산이 틀렸음을, 그리고 자신이 단순한 실험체가 아니라 이 세계를 재편할 유일한 지존임을 증명할 시간이.

강진혁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그를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System Notice: 시스템의 시대가 종료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오직 당신의 의지만이 법칙입니다.]

마지막 로그를 끝으로 시스템의 잔재마저 소멸했다. 진혁은 입가에 짙은 미소를 띠며, 무너져 내리는 타워의 잔해를 밟고 위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참된 천마의 강림이었다.

다음 화 바로보기 ›
이 작품, 여기까지 어떠셨나요? ★ 별점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