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0화 <무간(無間)을 베는 자>
신서울의 밤은 길었다. 그러나 그 밤을 지배하던 불야성의 네온사인들은 이미 강진혁의 검 끝에 난도질당해 산산조각이 난 뒤였다.
하늘을 뒤덮었던 차원 함대의 잔해들이 불타는 유성처럼 쏟아져 내렸다. 신서울의 상공을 가로지르는 것은 더 이상 거대 기업의 지배력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오직 강진혁이라는 한 명의 인간, 아니 신(神)에 가까워진 무인의 압도적인 기파만이 팽배해 있었다.
강진혁은 천천히 검을 거두었다.
대기를 진동시키던 살기는 순식간에 잦아들었으나, 그가 서 있는 자리를 중심으로 반경 수 킬로미터 내의 공간은 여전히 뒤틀려 있었다.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 (HEAVENLY DEMON PROTOCOL) v3.04]
[Warning: 시스템 안정성 42% - 외부 차원 침식으로 인한 가상 인터페이스 오류 발생]
[Warning: 운기 경로 재구성 요청... 강제 동기화 실행...]
시야 한구석에 떠오른 푸른색 HUD가 지지직거렸다. 설화의 보이스는 평소보다 기계적인 차가움이 섞여 있었다. 진혁은 옅게 혀를 찼다.
"아직도 끈질기게 굴어대는군."
그는 눈을 감았다.
시스템의 보조 없이도 이제 그의 혈관을 흐르는 것은 나노머신이라는 기계적 신호가 아니었다. 그것은 천 년 전 마교의 지존이 남긴 ‘마기(魔氣)’와, 현대 군사 기술의 극치가 융합된 ‘신천마신공’의 정수였다.
그는 단전을 두드렸다.
심장 박동과 일치하는 박자로 내공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시스템이 강제하려던 운기 경로를 역으로 짓밟으며, 그는 자신의 의지대로 마기를 운용했다.
콰아아아!
진혁의 몸 주위로 흑색의 회오리가 일어났다. 그것은 물리적인 바람이 아니었다. 공간의 밀도를 강제로 압축하는, 차원이 다른 권능이었다.
"진혁아!"
저 멀리서 윤아영과 진세린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경외와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진세린은 아버지 진무극을 잃은 슬픔과, 눈앞에서 신화적인 무력을 선보이는 남자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채 멈춰 섰다.
"끝난 건가요? 정말로, 저 거대한 함대가……."
진세린의 시선이 타워 잔해와 불타는 하늘을 향했다. 진혁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은빛 회로가 흐르던 목덜미가 서늘한 빛을 뿜어냈다.
"끝이 아니야. 이제 겨우 시작이지."
진혁의 시선은 하늘 너머, 차원 포털이 닫히기 직전의 틈새를 꿰뚫고 있었다. 그곳에는 이 모든 전쟁의 설계를 관장하는 진짜 창조주들의 시선이 머물고 있었다.
[실험체 07호, 2단계 성장을 완료함.]
[데이터 수집 성공. 3단계 '천마현신'의 효율성 검증 완료.]
시스템의 로그가 허공에 붉은색으로 점멸했다. 진혁은 피식 웃었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자신이 이식받은 이 프로토콜이 단순한 보조 장치가 아니라는 것을. 이것은 자신을 키우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육체를 통해 무언가를 데이터화하고, 최종적으로는 그릇을 완성하려는 거대한 음모의 산물이었다.
"너희들의 계산기 안에서 놀아주는 것도 여기까지다."
진혁이 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만법귀마(萬法歸魔)]
그의 손끝에서 공간이 일그러졌다. 단순히 적의 에너지를 뺏는 것이 아니었다. 시스템이라는 인공적인 질서가 부여한 '연산값' 자체를 파괴하는 권능이었다.
지이이잉!
시야 속에 떠 있던 HUD가 비명을 지르며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오류! 시스템 권한 박탈 시도 감지!]
[마스터 코드: 진무극 권한 소멸. 대체 관리자 프로토콜 가동...]
"관리자? 그딴 건 필요 없다."
진혁은 내면의 마기를 폭발시켰다. [신천마신공 제10식 - 만상멸세(萬象滅世)].
그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온 파동이 신서울의 대지를 휩쓸었다. 인위적인 고층 빌딩들의 나노 구조가 진혁의 의지에 따라 재편되었다.
윤아영이 경악하며 외쳤다.
"진혁 오빠, 잠깐! 시스템을 완전히 셧다운 시키면 오빠 몸속의 나노머신도…! 그러면 심장이 멈출 수도 있어!"
"멈추면 멈추는 대로지."
진혁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내 목숨이 시스템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 아영아, 뒤로 물러나."
그는 더 이상 시스템의 통계를 믿지 않았다. 자신의 근육이 찢어지고,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었다. 그 감각만이 진짜였다.
쿠구구궁!
진혁이 검을 땅에 내리꽂자, 신서울 지하 깊숙한 곳에서부터 거대한 마방진이 떠올랐다. 그것은 단순히 무공의 진형이 아니었다. 이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단전으로 바꾸는, 전무후무한 대진(大陣)이었다.
"지금부터 이 신서울의 법칙은 내가 정한다."
하늘이 갈라졌다. 차원 너머에서 들려오는 기계적인 신들의 노랫소리 같은 잡음들이 진혁의 의지에 짓눌려 침묵했다. 그들은 보았다. 자신들이 설계한 피험체가, 사육장이라는 울타리를 걷어차고 신의 영역을 침범하려 한다는 것을.
[경고: 실험체 07호의 자아 비대화. 격리 조치 필요.]
"격리? 아니, 이제 너희들이 올 차례다."
진혁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그의 등 뒤로 천 마리의 마신이 울부짖는 듯한 환영이 떠올랐다. 이것은 2부의 종말이자, 시스템의 족쇄를 완전히 끊어내고 '참된 천마'로 거듭나는 위대한 서막이었다.
그는 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의 검 끝에 맺힌 것은 더 이상 데이터 코드가 아니었다.
순수한 파괴와 창조가 공존하는, 생명 그 자체의 의지였다.
"2부의 막은 내가 내린다. 그리고 3부의 전쟁은, 너희들의 시체 위에서 시작될 것이다."
퍼억!
신서울 상공의 모든 HUD가 동시에 꺼졌다.
칠흑 같은 어둠이 도시를 덮었다. 그러나 진혁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나고 있었다.
시스템은 이제 없다.
그의 앞에는 오직, 뚫고 지나가야 할 운명과 죽여야 할 신들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강진혁은 신서울의 어둠 속으로, 다시금 검을 휘두르며 걸어 들어갔다.
그의 발걸음마다 새로운 법칙이 세워지고 있었다.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 - 완성(完成)]
[2부 완결]
어둠은 진혁의 발끝에서부터 파도처럼 번져 나갔다. 시스템의 셧다운은 신서울의 모든 전자 장비를 마비시켰으나, 역설적이게도 그로 인해 세상은 비로소 인간의 숨결로 가득 찼다. 네온사인의 기계적인 깜박임이 사라진 자리를, 슬럼가 사람들의 거친 숨소리와 희망 섞인 탄식이 채우기 시작했다.
진혁은 그 침묵 속에서 자신의 맥박을 느꼈다. 쿵, 쿵. 평소라면 나노머신이 보조하던 심박수였지만, 이제는 순수하게 제 근육과 혈관이 뿜어내는 생명력이었다. 200화에 걸친 사투가 단순히 기계적 진화를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그는 지금 온몸으로 실감하고 있었다.
“오빠……?”
윤아영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녀의 단말기 역시 먹통이 된 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공포가 아닌, 진혁이 이룩한 초월적 경지에 대한 경외로 가득 차 있었다. 진세린 역시 검을 쥔 채 묵묵히 진혁의 등 뒤를 지켰다. 그녀들에게는 이제 시스템의 지시가 아닌, 강진혁이라는 하나의 지향점만이 유일한 나침반이었다.
진혁은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낮게 읊조렸다.
“아영아, 시스템은 죽었다.”
“……알아. 하지만 창조주들이 이걸 가만히 둘까? 그들은 단순히 코드를 지우려 하는 게 아니야. 신서울 전체를 삭제할지도 몰라.”
그녀의 말이 맞았다. 저 하늘 너머, 차원의 틈새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압박감은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관리자’들의 분노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육하던 피험체가 울타리를 부수고 밖으로 나오려 하자, 이제는 아예 사육장 자체를 불태워버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진혁은 신서울의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저 아래, 폐허가 된 기업의 잔해 속에서 사람들은 비로소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들에게 이 해방은 기적이었으나, 동시에 절멸의 서막이기도 했다.
‘천마(天魔).’
그 이름의 무게를 다시 한번 새겼다. 천 년 전의 천마는 무엇을 보았기에 그토록 혈마병과 내력의 폭주 속에서도 신에 도전하려 했던가. 이제 진혁은 그 비극적인 전설의 답안을 스스로 작성해야 했다.
“세린아.”
“네, 말하세요.”
“티타늄 그룹의 잔당을 소탕하는 건 이제 의미가 없다. 남은 무인들을 규합해라.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은 이제 땅 위에 없다.”
진혁의 검 끝이 하늘의 균열을 가리켰다.
“우주다.”
그 순간, 신서울의 밤하늘이 뒤집혔다. 차원 포털이 다시 한번 비틀리며, 기괴한 기하학적 형상을 한 함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티타늄 그룹의 군사 병기와는 격이 달랐다. 행성 하나를 순식간에 재구축하고, 별의 수명을 갉아먹는 차원 함대.
[Warning: 차원 침식 계수 99%. 행성 정화 프로토콜 가동.]
귀를 찢는 듯한 소음이 신서울 전역에 울려 퍼졌다. 기계음은 아니었다. 그것은 차원 그 자체가 내지르는 비명이었다. 진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시스템은 죽었지만, 창조주들이 심어놓은 ‘물리적 압제’는 여전히 현실의 법칙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혁은 두렵지 않았다. 그는 이미 시스템을 자신의 내면으로 ‘흡수’했다. 지금 저 함대가 내뿜는 에너지 파동은, 과거 그가 1단계 마공을 익힐 때 흡원천공으로 빨아들였던 적들의 코어 출력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었다.
“흡수(吸收)는 이제 내 일상이다.”
진혁은 발을 굴렀다. 타워의 잔해가 그의 발밑에서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그의 몸이 쏘아 올린 화살처럼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마신경(魔神境) - 진천(眞天)]
그가 허공을 딛을 때마다 대기가 파동치며 검은 마기가 폭발했다. 차원 함대의 주포들이 일제히 진혁을 향해 정렬했다. 붉은 빛의 레이저가 신서울의 밤을 낮처럼 밝혔다. 하지만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그 빛을 향해 정면으로 돌진했다.
“와라. 너희들이 만든 이 육체가, 너희들을 어떻게 도륙하는지 똑똑히 봐라.”
그는 검을 가로로 휘둘렀다. [신천마신공 제12식 - 멸천(滅天)].
그것은 검술이 아니었다. 공간 그 자체를 찢어 발기는 절대적인 파괴의 의지였다. 검에서 뻗어 나간 흑색의 참격이 궤도를 그리며 함대의 선두를 강타했다.
콰아아아앙!
행성을 멸망시킬 위력이었던 함대의 장갑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함대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푸른색의 차원 에너지가 진혁의 몸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는 그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온몸의 혈관을 열어 그 거대한 에너지를 집어삼켰다.
마기가 증폭되었다. 혈관 속의 나노머신이 이제는 진혁의 마기를 따라 스스로 변형을 거듭하며 최강의 갑주로 재구축되었다. 창조주들이 설계한 도구가, 오히려 그들을 파괴하는 무기가 된 순간이었다.
진혁은 함대 한가운데서 우뚝 섰다.
수천의 함선이 그를 에워싸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감히 그에게 다가오지 못했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물리 법칙을 압도하는 마신(魔神).
그는 깨달았다.
천마란, 하늘을 지배하는 자가 아니라 하늘을 찢고 그 너머의 진리를 쟁취하는 자라는 것을.
진혁의 시선이 차원 너머, 함대를 조종하는 진짜 창조주들의 본거지 ‘에덴’을 향했다. 그곳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티타늄 그룹의 회장 진무극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고하고 오만한 신의 기운이었다.
“기다려라.”
진혁이 낮게 뇌까렸다.
“너희가 짠 프로토콜의 마지막 장은, 내가 직접 새로 써 줄 테니까.”
그는 다시 검을 고쳐 잡았다. 에덴을 향한 항로가, 그의 검 끝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이제 신서울의 하늘은 그가 지키는 마계(魔界)의 영토가 되었다.
그의 뒤로, 수만 명의 신마교 무인들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환호했다. 그들은 보았다. 시스템이라는 족쇄를 부수고, 스스로의 의지로 신의 영역을 짓밟는 한 남자의 뒷모습을. 그것은 인간이 신을 향해 던지는 가장 거대한 도전장이었다.
진혁은 차원 포털의 틈새를 뚫고, 에덴의 심장부를 향해 돌진했다. 그의 등 뒤로 휘날리는 검은 망토가 우주의 별빛을 가렸다.
이제, 진짜 전쟁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마신경-진천의 정점에 서다.]
[진정한 신천마의 강림.]
차원 저편에서 관리자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그들은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들이 만든 그릇이, 자신들을 파멸시킬 가장 완벽한 흉기가 되어 돌아왔음을.
강진혁은 웃었다.
비릿하고도 잔혹한, 천마의 미소였다.
“자, 다음은 누구지?”
그의 검이 차원을 베어 가르며, 영원히 닫히지 않을 새로운 길을 열어젖혔다. 2부의 끝은, 진정한 전설의 시작일 뿐이었다.
에덴의 문이 열리고, 그 너머의 신들이 진혁의 앞을 가로막기 위해 강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혁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의 검을 믿고 나아갈 뿐이었다.
이것은 시스템에 대한 복수가 아니다.
이것은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우주를 무대로 한 단 한 명의 무인에 대한 기록이다.
신천마(新天魔)의 검은, 멈추지 않는다.
다음 차원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혁의 여정은 3부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