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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194화목차

제194화 화이트 섀도와 니르바나의 동맹

신서울의 밤은 더 이상 티타늄 그룹의 차가운 네온사인이 지배하지 않았다.

고층 마천루를 화려하게 수놓던 홀로그램 광고판들은 강진혁이 중앙 타워 상층부를 파괴하고 지하 기지를 붕괴시킨 이후, 마치 죽어가는 거대한 짐승의 경련처럼 지직거리며 꺼져 내렸다. 기업의 철권통치를 상징하던 마천루의 불빛이 하나둘 사라진 자리에는, 슬럼가 곳곳에서 붉게 피어오르는 저항의 불꽃이 대신 들어서고 있었다.

강진혁이 지하 5,000층으로 강하하여 티타늄 그룹이 숨겨둔 고대 제국 '프로메테우스'의 병기 군단을 일격에 소멸시켰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신서울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하층 슬럼가의 주민들과 저항군에게 이제 강진혁은 단순한 복수자가 아니었다. 거대한 디스토피아의 사슬을 끊어낸 구원자이자, 자본과 기술로 구축된 모순된 질서를 부수고 들어선 새로운 시대의 정점 그 자체였다.

"정보 분석 및 메인 프레임 우회 완료. 티타늄 그룹의 중앙 보안 서버가 완전히 마비되었습니다. 지금부터는 우리 ‘화이트 섀도’가 신서울 전체의 도시 네트워크 통제권을 장악합니다."

윤아영의 목소리에는 평소 느껴지던 가벼운 장난기가 완전히 걷혀 있었다. 숏컷의 분홍빛 머리카락 사이로 비치는 그녀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반짝였고, 시야 가득 떠오른 수천 개의 홀로그램 모니터 창이 그녀의 손가락 움직임에 맞춰 오케스트라처럼 교차했다. 신서울의 모든 배전망, 자율 방위 시스템, 물류 서버의 데이터 흐름이 완벽하게 그녀의 통제하에 들어왔다.

"송수연 대장, 니르바나의 진격로는 확보했습니다. 상층부 길목을 막고 있던 자동 보안 드론들과 중장갑 게이트의 회로를 중화시켰으니, 지금 즉시 지상 주요 거점들을 점령하세요."

"고마워, 화이트 섀도. 평생을 갈망해 온 이 순간을 결코 허투루 보내지 않겠어."

통신용 지능형 단말기 너머로 들려오는 송수연의 목소리에는 묵직한 비장함이 서려 있었다. 붉은 머리를 휘날리며 대형 군용 도검을 쥐고 선 그녀와, 그녀가 이끄는 '니르바나'의 저항군 전사들은 이제 더 이상 구도심의 그늘에 숨어 도망치던 신세가 아니었다. 티타늄 그룹이 버린 고철과 불법 개조 나노 장비로 무장한 그들은, 강진혁이 압도적인 무력으로 뚫어놓은 길을 따라 당당히 상층부 특권층 거주구로 진격하고 있었다.

그 진격의 최전선에는 진세린이 서 있었다. 티타늄 그룹의 정통 후계자이자 특수전 후사대 대장이었던 그녀는, 아버지 진무극 회장의 잔혹한 실체와 인체 실험의 진실을 목도한 뒤 자신의 검을 완전히 강진혁에게 맡긴 상태였다. 그녀의 직속 특수전 후사대원들은 장갑 수트의 코어 출력을 올린 채, 티타늄 그룹 내 핵심 시설의 출입문을 거침없이 열어젖히고 있었다.

"기업의 개들로 살아온 세월은 이것으로 끝입니다. 진혁 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명분은 명확합니다. 자본에 귀속되었던 생체 코어와 나노기술의 독점을 부수고, 모든 이에게 평등한 생존의 자유를 되찾는 것입니다!"

진세린의 차갑고 명확한 선언에 슬럼가 출신의 무인들과 저항군 대원들이 일제히 거친 함성을 질렀다. 억눌려 있던 수십 년간의 분노가 뜨거운 투지로, 다시 차가운 이성적 규율로 변하여 상층부를 향해 폭포수처럼 밀려들었다.

같은 시각, 지하 5,000층. 고대 도시 프로메테우스의 참혹한 잔해 한가운데에서 강진혁은 천천히 눈을 떴다.

칠흑 같은 흑안에는 깊은 정적만이 담겨 있었다. 그의 시야(HUD)를 가리던 시스템의 보조 창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초반부터 무공 분석과 운기 경로를 보조해 주던 인공지능 '설화'의 무기질적인 목소리도, 실시간으로 수치를 계산하던 데이터 파동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오직 자신의 의지, 그리고 뼈를 깎는 수련과 깨달음으로 완성한 마기(魔氣)의 흐름만이 전신의 혈관과 인공근육 회로를 타고 거침없이 돌고 있었다.

[경지: 마신경(魔神境) - 진천(眞天)]

[상태: 자율 제어 및 마기 동기화 100%]

그는 가만히 자신의 단전 구역을 내려다보았다. 3세대, 4세대 군용 생체 코어를 뛰어넘는 800,000 MW 이상의 폭발적인 에너지가 단전의 깊은 심연 속에서 고요하게 응축되어 있었다. 이것은 티타늄 그룹의 연구진이나 크로노스(이현도) 수석 연구원이 설계한 인공 동력원의 한계를 완벽히 초과한 힘이었다. 1,000년 전 마교의 지존이었던 천마의 마공 운기 법칙을 현대 기계공학의 본질과 결합하여, 강진혁 스스로의 의지로 개척해 낸 독자적인 초월의 경지였다.

'외부 차원, 제네시스(Genesis).'

강진혁은 허공을 차갑게 응축된 눈빛으로 응시했다. 시야의 끝, 물리적 공간의 막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너머에서 끊임없이 신서울을 향해 강제 접속을 시도하는 관리 코드들이 무겁게 짓눌러왔다. 진무극과 제네시스의 시스템은 여전히 진혁을 '실험체 07호'라는 한정된 규격으로 정의하려 들었지만, 그들의 오만한 실험은 이미 완벽하게 실패했다.

피험체가 통제관의 실험실을 부수고 탈출한 수준이 아니었다. 실험실 그 자체의 모든 연산 체계와 법칙을 자신의 발아래 굴복시킨 것이었으니까.

"진혁 님!"

그때, 귀에 이식된 전술 통신 회로를 통해 윤아영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혁 님, 큰일이에요! 방금 제네시스 메인 프레임 쪽에서 차원 포털의 출력이 비정상적인 수치로 급증하기 시작했어요! 티타늄 그룹의 잔당들과 회장 진무극이 숨겨두었던 최종 방어 프로토콜, '오메가 코드(Omega Code)'를 강제로 활성화했습니다!"

강진혁의 얇은 입매가 서늘하게 호선을 그렸다.

"오메가 코드라."

"네! 이건 단순한 기지 파괴나 타워 폭파 수준이 아니에요! 신서울 전체의 생체 코어 에너지를 역류시켜 인공 블랙홀을 생성한 뒤, 도시 전체를 물리적으로 파쇄하여 차원 너머로 전송해 버리겠다는…… 이른바 '정화 및 폐기 작전'입니다! 진무극이 자신이 지배할 수 없게 된 세상을 자기 손으로 직접 끝내려 하고 있어요!"

강진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진무극은 마지막 순간까지 탐욕스럽고 오만했다. 자기가 독점하고 왕으로 군림할 수 없는 세상이라면, 그 안의 모든 생명과 함께 재로 만들어버리겠다는 비뚤어진 집착.

"송수연과 진세린에게 전해라. 니르바나와 특수전 후사대는 즉시 지상의 모든 시민과 무인들을 최하층 대피소로 이동시켜라. 타워의 붕괴와 차원의 왜곡은 내가 직접 막는다."

"하지만 진혁 님, 혼자서는 너무 위험해요! 그건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시공간의 물리 법칙 자체를 부수는 왜곡 에너지라고요!"

"법칙?"

강진혁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차갑게 중얼거렸다.

"법칙이란 부수고 새로 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는 바닥을 딛는 반동을 이용하지 않았다. 공간의 틈새를 마기로 짓눌러 딛는 순간, 그의 신형이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지하 5,000층에서 지상 대기권 근처까지, 수천 미터의 수직 거리를 메운 것은 기계의 추진력이 아니었다. 차원의 벽을 찢으며 도약하는 마신(魔神)의 궤적이었다.

신서울의 상공, 대기권 직전의 하늘에서 거대한 검붉은 차원 포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구름을 밀어내고 밤하늘의 시공간을 강제로 찢어놓은 거대한 상처와도 같았다. 포털의 검은 틈새 너머로 보이는 것은 금속과 광섬유로 이루어진 차가운 행성, '제네시스'의 기괴한 일면이었다. 포털 내부에서 출력 지수를 높인 수백 대의 차원 침투 함대가 신서울의 상공을 향해 수만 문에 달하는 플라즈마 주포를 겨누었다.

"저, 저게 대체 무슨……!"

지상에서 상공을 올려다보던 슬럼가의 시민들과 저항군 대원들이 절망 어린 비명을 질렀다. 도시 전체를 사통팔달로 덮쳐오는 강렬한 중력의 왜곡 현상이 시작되고 있었다. 굳건히 서 있던 마천루들이 기괴하게 삐걱거리며 공중으로 떠올랐고, 도로의 아스팔트와 티타늄 장갑판들이 종잇장처럼 휘어지며 공중에서 산산조각 났다.

그 절망의 한복판, 신서울 타워의 거대한 잔해 사이로 칠흑 같은 검은 섬광 하나가 직전으로 솟구쳐 올랐다.

강진혁이었다.

그는 대기권을 메운 함대의 빗발치는 플라즈마 탄막 사이를 마치 환영처럼 유영했다. 초고온의 융합 레이저가 그의 몸에 닿기 전, 스스로 개창한 [무상검막(無相劍膜)]이 허공에 펼쳐지며 쏟아지는 모든 난사 광선을 일그러뜨리고 반사해 버렸다.

"시시하군."

강진혁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칠흑의 마기가 붉은 이채를 띠며 한 자루의 묵직한 검의 형태로 응축되었다.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 - 천마일검(天魔一劍) : 허공파쇄(虛空破碎)]

단 한 번의 휘두름.

검기가 지나간 공간의 궤적마다 시공간이 유리창처럼 금이 가며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전술 예측 시스템으로 포격을 가하던 수십 대의 중장갑 함대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공간의 파쇄 현상과 함께 존재 자체가 소멸했다. 함대 뒤편의 메인 프레임에 상주하던 제네시스의 관리 프로토콜들이 경악에 찬 붉은 경고 로그를 쏟아냈다.

[Warning: 논리 연산 오류 발생.]

[Warning: 기존 물리 법칙 및 시스템 계산 범위를 벗어난 비규격 에너지 감지.]

[대상 식별: 피험체 07호 강진혁. 아니…… 해당 존재의 에너지 등급 정의 불가.]

강진혁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폭발하는 함대의 파편 사이를 꿰뚫고, 검붉은 차원 포털의 가장 깊숙한 중심부를 향해 직진했다. 그곳에서 자신을 한낱 통제 대상으로 여겼던 창조주들의 오만한 왕좌가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그의 등 뒤로, 상층부와 하층 슬럼가에서 그를 바라보는 수십만 명의 저항군과 시민들의 눈빛이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는 이제 결코 외로운 복수자가 아니었다. 신서울의 모든 이들이 그가 개척하는 새로운 시대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너희가 만든 기계 지옥을, 오늘 내 손으로 완벽히 끝내주마."

강진혁의 오른손에서 폭발한 마기가 신서울 하늘 전체를 까맣게 덮어나갔다. 그것은 단순한 파괴의 폭주가 아니었다. 세상을 옭아매고 있던 거대 기업의 불법 제어 코드를 강제로 덮어쓰고 재구성하는 완벽한 무도(武道)의 전개였다.

시스템이 꺼져가고, 차가운 기술의 지배 너머로 참된 새벽의 빛이 밝아오려 하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차원 포털의 가장 깊은 심연 속에서 기이하고 기분 나쁜 진동이 전해져 왔다. 오랜 침묵을 유지하던 제네시스의 중앙 관리자들이 강진혁이라는 존재의 위험성을 완전히 인정하고, 최종적인 '개체 숙청'을 발동한 것이었다.

포털이 폭발적으로 확장되더니, 그 안에서 형태를 단정할 수 없는 거대한 검은 구체 하나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ZERO 프로토콜 강제 가동.]

[최종 관리자 코드: '진무극'의 뇌 신경 데이터 및 '제네시스'의 차원 연산 능력이 완전 통합됩니다.]

강진혁의 흑안이 서늘하게 빛났다.

진무극.

타워 상층부에서 육체가 파괴되어 죽은 줄 알았던 자가, 자신의 정신과 데이터 코드를 차원의 메인 프레임으로 이전하여 훨씬 더 기괴하고 끔찍한 병기로 형태를 바꾸어 돌아온 것이었다.

강진혁은 손에 쥔 마검의 자루를 고쳐 잡았다. 이제 진정한 최종 결전이었다. 겉껍데기에 불과한 시스템을 부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스스로 신의 영역을 찬탈하려 했던 자본과 기술의 음모를 영혼의 뿌리까지 끊어내야 했다.

"죽어서도 기어 나오는가, 진무극."

강진혁의 차가운 목소리가 천지를 울렸다.

"좋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네놈의 데이터와 영혼의 잔재까지 완벽히 지워주마."

신서울의 운명을 건 최후의 사투, 그 참혹하고도 웅장한 서막이 대기권 상공에서 다시 한번 피와 마기의 소용돌이로 물들기 시작했다.

차원 포털의 균열을 뚫고 나온 검은 구체는 단순한 기계적 요새가 아니었다. 그것은 진무극이 자신의 자아와 영혼의 파동을 제네시스의 초대형 양자 연산 코어에 동기화하여 탄생시킨, 일종의 '차원형 생체 메카니즘'이었다. 구체 주변의 공간은 중력 상수가 무너지며 신서울 전체의 매개 물질들을 사정없이 끌어당겼다.

[가상 인격 동기화율 100%.]

[피험체 07호 강진혁. 너는 태어날 때부터 내 소유였다. 네가 완성한 신천마신공조차 결국 내 시스템이 제공한 마공 데이터의 부산물일 뿐이다! 다시 내 안으로 회귀해라!]

진무극의 목소리가 온 하늘을 찢으며 울려 퍼졌다. 그것은 더 이상 인간의 성대에서 나오는 음성이 아니었다. 수만 대의 초대형 서버와 소음 회로가 동시에 울리는 기계적인 합성음이었다. 검은 구체의 표면이 열리며, 군용 특수 나노머신과 검붉은 마기가 융합된 수만 가닥의 촉수가 강진혁을 향해 폭풍처럼 쇄도했다. 촉수가 지나가는 공간의 궤적마다 대기가 이온화되어 파괴되었고, 검붉은 플라즈마 폭풍이 불어닥쳤다.

강진혁은 물러서지 않았다.

"회귀? 오만한 착각이 끝이 없구나."

그가 오른손을 가볍게 쥐어틀었다. 그 순간, 강진혁을 중심으로 반경 수백 미터에 달하는 공간의 시간과 입자 흐름이 완벽히 정지했다. 초월적인 마신의 의지가 공간의 물리적 상수를 강제로 재설정한 결과였다. 진무극이 자신 있게 뿜어내던 수만 가닥의 촉수들은 강진혁의 코앞에서 마치 얼어붙은 고철 조각처럼 멈춰 섰다.

강진혁은 그 정지된 시공간의 틈새를 마치 한가로운 산책을 하듯 유유히 걸어 나갔다.

그의 손에 들린 마검의 검신에서 푸르스름한 뇌전과 칠흑의 마기가 기괴한 조화를 이루며 요동쳤다.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 제8식 - 파진멸세(破眞滅世)]

검이 허공을 가르자, 멈추어 있던 시공간이 얇은 유리 조각처럼 부서져 내렸다. 그 파편들은 단순한 공간의 잔해가 아니었다. 진무극의 연산 체계를 구성하는 데이터 알고리즘 자체를 파괴하는 마기(魔氣)의 정교한 칼날이었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차원 구체가 끔찍한 폭음과 함께 비틀렸다. 진무극의 비명인지, 서버의 심각한 시스템 오류 메시지인지 구분할 수 없는 기괴한 소음이 신서울 전역을 뒤흔들었다. 구체의 표면이 수직으로 갈라지며, 그 내부에서 진무극의 거대한 환영이 떠올랐다. 반은 금속 회로로 덮이고, 반은 마기의 잔재로 일그러진 뒤틀린 형상이었다.

"강진혁! 미천한 실험체 따위가 무엇을 안다고 나서느냐! 이 세상은 거대한 자본과 기술의 통제 없이는 단 하루도 유지될 수 없는 허약한 구조다!"

진무극의 환영이 손을 차원 아래로 뻗자, 신서울 지상의 건물들과 대지가 거대한 파도처럼 솟구쳐 올랐다. 그는 도시 전체의 에너지를 억지로 끌어다 쓰는 동시에, 강진혁의 목과 손목에 옅게 남아 있던 개조 회로 흔적을 향해 역해킹 신호를 쏘아 보냈다.

"시스템 셧다운! 피험체 07호, 강제 동기화 및 자아 정지 명령 실행!"

지지직!

강진혁의 온몸에 남아 있던 은빛 회로 선에서 강렬한 붉은 경고등이 켜졌다. 그가 1부와 2부를 거치며 상쇄했다고 믿었던 프로토콜의 잔재 마이크로 칩들이 진무극의 마스터 코드에 반응하여 강제로 폭주하려 했다. 혈관 속에 미세하게 남아 있던 극소량의 나노머신들이 통제를 벗어나 진혁의 심장과 내장을 찢발기기 시작했다.

몸이 찢겨나가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덮쳐왔다. 시야가 붉게 물들고 생체 코어의 출력이 일시적으로 요동쳤다. 그러나 강진혁의 차가운 눈동자는 단 한 순간도 흔들리지 않았다.

"착각하지 마라, 진무극."

진혁은 입가로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내지도 않은 채,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나를 움직이고 초월하게 만든 것은 네놈들의 하찮은 시스템 코드가 아니다. 오직 내 안에서 스스로 벼려낸 통찰과 의지다."

그는 자신의 단전을 향해 왼손을 얹었다. 그리고 나노머신의 보조 연산이 아닌, 육체와 내공의 극한 수련을 통해 터득한 1,000년 무도의 본질인 마혈(魔血)을 역류시켰다.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 - 만법귀마(萬法歸魔)]

진무극이 쏘아 보낸 최고 등급의 역해킹 코드는 강진혁의 몸에 도달하는 순간, 정교하게 운기된 마기에 역으로 침식되어 완전히 분해되었다. 그리고 오히려 진혁의 마기가 그 해킹 신호의 데이터 흐름을 타고 진무극의 본체 코어로 역류해 들어갔다.

[Warning: 메인 프레임 관리 권한 강제 탈취 당함.]

[Warning: 진무극의 자아 코어, 시스템 연산 기지로부터 강제 분리 개시.]

"뭐, 무엇이……! 내 연산망을 역으로 침식한다고?! 말도 안 된다! 한낱 인간의 내공 따위가 어떻게 양자 컴퓨터의 계산을 넘어선단 말이냐!"

진무극의 환영이 절망과 공포에 질려 일그러졌다. 강진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허공을 딛고 도약했다. 차원 포털의 가장 깊은 중심, 제네시스와 진무극이 결합해 있던 심장부를 향해 전신을 한 자루의 검으로 변형시켰다.

"이제 네놈의 오만한 데이터 놀음도 끝이다."

강진혁의 마검이 진무극의 본체인 차원 구체의 핵을 깊숙이 관통했다.

검신에서 폭발한 마기와 현대 기술을 뛰어넘는 고주파 진동 파쇄의 융합 에너지가 진무극의 존재를 구성하던 수억 개의 데이터 코드를 순식간에 산화시켰다. 1,000년의 역사를 오용하려 했던 대기업의 오만함, 300화에 걸친 참혹한 인체 실험, 신서울을 지배하던 자본의 독재. 그 모든 모순된 사슬이 강진혁의 일검 아래 한순간에 무(無)로 돌아가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앙-!

차원 포털이 빠른 속도로 닫히기 시작했다. 강진혁은 추락하며 데이터 조각으로 산산이 부서져 가는 진무극의 잔영을 차갑게 내려다보며 읊조렸다.

"기억해라. 너희가 만든 그 어떤 정교한 코드보다, 역경 속에서 스스로 깨달은 진리가 훨씬 더 강력하다는 것을."

눈부신 빛의 폭발과 함께 대기권을 찢고 있던 검붉은 차원 포털이 완전히 소멸했다.

신서울의 밤하늘에는 더 이상 거대한 차원 함대도, 괴물 같던 진무극의 구체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산산이 부서져 흩어지는 빛의 잔해들만이, 길고 길었던 어둠이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알리는 축복의 불꽃놀이처럼 도시의 밤을 아름답게 비추고 있었다.

투웅-.

강진혁은 지상으로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그의 검은 옷은 전장의 파편과 피로 너덜너덜해져 있었고, 전신에서는 과부하된 에너지가 옅은 증기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차가운 흑안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깊고 명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뒤편에서 윤아영, 송수연, 진세린을 비롯한 저항군과 무인들이 달려왔다. 그들의 얼굴에는 거대한 악을 무찌른 승리의 기쁨과 안도감, 그리고 신서울의 새로운 지존으로 올라선 강진혁을 향한 경외감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었다.

"진혁 님……! 해내셨군요……!"

윤아영이 눈물을 글썽이며 다가왔다. 강진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신서울을 지배하던 티타늄 그룹의 네온사인은 다시 켜지지 않았다. 하지만 하층 슬럼가와 상층부 곳곳에서, 주민들이 저마다의 손에 든 작은 조명과 희망의 불꽃으로 밤을 밝히기 시작했다.

그것은 거대 자본이 강요하던 차가운 통제의 빛이 아니었다. 인간 고유의 의지와 자유가 만들어낸, 참된 새벽의 시작이었다.

강진혁은 맑아진 신서울의 밤하늘을 조용히 올려다보았다. 차원의 막은 이제 완벽하게 고요해졌다. 자신을 괴롭히던 시스템의 환영도, 창조주를 자처하던 자들의 오만한 왕좌도 모두 무너졌다. 그러나 그의 예리한 감각은 알고 있었다. 이것으로 그의 여정이 완벽히 끝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차원 너머의 넓은 세상에는 여전히 수많은 위협이 존재할 것이고,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참된 천마(天魔)'의 길은 이제 막 새로운 시작을 맞이했을 뿐이었다.

그는 자루에 검을 갈무리하며 낮고 묵직하게 읊조렸다.

"이것이…… 나 강진혁의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이다."

그의 낮게 깔린 목소리와 함께, 신서울 전체의 배전망과 통신 회로가 정갈하게 재부팅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특정 기업이나 독재자의 명령이 아닌, 신서울 모든 시민들의 자유로운 의지와 평등한 권리에 따라 작동하는 새로운 제어 시스템이었다. 강진혁은 묵묵히 그 따스한 풍경을 바라보며, 자신이 걸어가야 할 다음 경지를 담담히 응시했다.

그의 등 뒤로, 고대 마교의 전설이자 현대 기술마저 뛰어넘은 거대한 마신(魔神)의 형상이 온화하면서도 압도적인 기세로 겹쳐 보였다. 그것은 더 이상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아닌, 무너진 디스토피아를 부수고 참된 자유를 세운 유일무이한 신화였다.

이제 '강진혁'이라는 이름은 전설 그 자체가 되어, 영원히 이 신서울의 밤과 들판을 수호하는 신천마로 기억될 것이었다.

[시스템 메시지: 천마 프로토콜(HEAVENLY DEMON PROTOCOL) 완전 삭제 및 박탈 완료.]

[새로운 세계의 무도(武道) 및 생체 법칙이 주체적으로 기록됩니다.]

그렇게, 신서울의 기나긴 잔혹했던 디스토피아의 밤은 완벽한 종막을 고했다. 그리고 강진혁의 위대한 전설은 이제, 시스템의 한계를 완전히 탈피한 신화의 영역에서 다시금 힘차게 쓰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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