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3화 신마교(新魔敎)의 싹
콰구구구—!
신서울의 상공을 뒤덮었던 차원 함대의 잔해가 유성과도 같은 궤적을 그리며 추락했다. 수천 킬로와트의 출력을 뿜어내던 중장갑 함선들이 단 한 사람의 손짓에 의해 고철 덩어리로 변해버린 광경. 그것은 자본과 기술이 절대적인 법칙으로 군림하던 이 디스토피아적 세계에 내려진 거대한 종말이자, 동시에 새로운 시원의 서막이었다.
지상의 대지 위에 우뚝 선 강진혁의 몸에서 은빛 회로들이 잦아들었다. 더 이상 그의 시야에는 인공지능이 띄워주던 차가운 푸른빛의 HUD 창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시스템의 족쇄는 이미 완전히 부서졌고, 그가 내뱉는 숨결 하나, 손가락 끝의 미세한 떨림 하나가 곧 신서울의 중력과 기류를 결정짓는 절대적인 법칙이 되었다.
"……."
정적. 티타늄 타워의 붕괴와 함께 신서울 전체를 감싸고 있던 거대한 긴장감은, 역설적으로 그 어떤 때보다 무겁고 압도적인 침묵 속으로 침잠했다.
하층 슬럼가의 구석진 골목, 빛이 닿지 않는 영원한 밤의 구역인 구(舊) 3구역의 아스팔트 바닥 위로 무수한 눈동자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곳에는 반(反)기업 저항군 '니르바나'의 전사들뿐만 아니라, 하루에도 몇 번씩 생체 코어의 부작용으로 피를 토하며 쓰러지던 하층민들과 구무림의 은거 고수들, 그리고 티타늄 그룹의 철권통치 아래 버려졌던 수많은 개조 무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보았다. 자본이라는 이름의 신(神)들이 지배하던 세상의 왕좌를 단숨에 도륙하고, 차원 너머에서 내려온 괴물들을 단검 한 자루로 짓밟아버린 초인의 뒷모습을.
털썩.
누군가 먼저 무릎을 꿇었다. 낡고 녹슨 3세대 생체 코어를 가슴에 박은 채, 하층 슬럼가의 늙은 노동자가 바닥에 이마를 처박았다.
"……오, 마신(魔神)이시여……."
그것은 종교적 맹신이 아니었다. 지배받는 자들의 오랜 피와 눈물이 만들어낸, 본능적인 경배였다.
잇따라 무수한 이들이 바닥에 엎드리기 시작했다. 니르바나의 총수 송수연이 가죽 재킷의 옷자락을 부여잡은 채 전율 어린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고, 해커 집단의 거점인 '화이트 섀도'의 모니터 너머로 윤아영의 숨소리가 거칠게 요동쳤다. 티타늄 그룹의 후계자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진세린마저 두 손을 모은 채 진혁의 등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저벅, 저벅.
강진혁의 군홧발이 아스팔트 바닥을 울릴 때마다 수만 명의 군중이 숨을 죽였다. 그가 걸어가는 길목마다 차가운 마기(魔氣)가 안개처럼 피어올랐으나, 그것은 상대를 압살하는 살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수천 년 동안 대지를 짓누르던 거대 자본의 중력장을 지워버리는, 해방의 파동이었다.
진혁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칠흑 같은 흑안이 신서울의 밤하늘을 가득 메운 군중을 스쳤다.
"일어나라."
낮고 묵직한 음성. 하지만 그 목소리는 신서울 전역의 메인 브로드캐스팅 회로를 타고 모든 하층민들의 고막 속에 직접 울려 퍼졌다.
"네……?"
맨 앞줄에 엎드려 있던 늙은 개조 무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고개를 들었다. 진혁의 차가운 눈빛이 그를 향했다.
"나를 섬길 필요는 없다. 이곳은 너희를 지배하던 티타늄의 타워가 아니니까."
진혁의 손가락 끝에서 한 줄기 미세한 은빛 마기가 흩어졌다. 그것은 단순히 공기를 가르는 검기가 아니었다. 그의 몸속에서 역동적으로 회전하는 마혈회로(魔血回路)의 궤적이 군중들 각자의 심장 부근에 박힌 폐급 생체 코어의 잔류 노이즈를 정화하고, 막혀 있던 기혈을 억지로 뚫어주는 경이로운 기권(氣圈)의 파동이었다.
쿠두두둑-!
"크으윽……!"
"몸이…… 몸이 가벼워진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것은 고통의 비명이 아니었다. 티타늄 그룹이 하층민들의 수명을 갉아먹기 위해 이식해 둔 구형 코어의 리미터가 진혁의 마기에 의해 강제로 해제되는 순간 발생하는, 경락(經絡)의 재구성이었다.
단 몇 초 만에, 수천 명의 하층민들이 품고 있던 만성적인 코어 거부 반응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들의 눈동자에 서려 있던 공포와 체념의 빛이 거치고, 그 자리에 생생한 활력이 채워졌다.
"이것은…… 내공(內功)?"
구무림의 마지막 전승자 중 하나인 노검객이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기계 개조를 거부하고 낡은 도포를 고수하던 그는 진혁이 펼쳐낸 힘의 본질을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보았다.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의 육체와 의지만으로 체내의 에너지를 다스린다……! 잃어버린 구(舊) 무림의 비법조차 아득히 뛰어넘은…… 참된 무도의 극의!"
그것은 과거 1,000년 전 마교의 지존들이 추구했던 마공의 본질이자, 현대의 나노머신 공학과 완전히 융합된 새로운 형태의 무예였다. 자본으로 사고파는 힘이 아니라, 스스로의 통찰과 수련으로 쟁취하는 절대적인 무력.
송수연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진혁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의 손에는 저항군의 상징인 대형 도검이 들려 있었다.
"강진혁! 티타늄 타워는 무너졌지만, 신서울 전역에는 아직 그들이 남겨둔 잔당들과 수만 개의 자동 방어 시스템이 남아 있어. 그리고 무엇보다…… 차원 너머의 그 괴물들이 다시 올 거야."
진혁은 감흥 없는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남겨둘 필요 없다."
"……뭐라고?"
"티타늄의 잔재도, 그들이 부리던 하수들도, 그리고 차원 너머의 창조주라는 자들도 전부 같다. 자본의 이름으로 인간을 가축처럼 부리던 모든 법칙을 오늘부로 파기한다."
진혁의 검지 손가락이 허공을 향해 가볍게 그어졌다.
지지직-!
공간 자체가 종이처럼 찢어지며 그 안에서 거대한 검은 회오리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신마신공 제2식 [만법귀마(萬法歸魔)]의 응용. 신서울 전역에 흩어져 있던 티타늄 그룹의 잔여 네트워크 서버와 자동 방어 병기의 에너지원들이 일제히 역류하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콰콰방!
원거리의 빌딩 숲 사이에서 티타늄의 보안 드론들과 메인 서버들이 차례대로 폭발하며 불꽃의 장관을 연출했다. 단 한 번의 손짓으로 신서울의 음지에 남아 있던 적대 세력의 뿌리가 완전히 도려내어진 것이다.
그 압도적인 무력 앞에, 구무림의 고수들과 니르바나의 전사들, 그리고 슬럼가의 개조 무인들 사이에서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
"천마(天魔)! 천마 만세!"
누가 먼저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자본의 매캐한 매연과 피비린내가 진동하던 신서울의 지하에서 자연스럽게 피어오른 자발적인 결집이었다. 기업의 로고 대신 마기(魔氣)의 회로가 새겨진 깃발들이 슬럼가의 마천루 꼭대기마다 걸리기 시작했다.
과거 티타늄 그룹이 실험체들을 가두기 위해 만들었던 지옥 같은 음지가, 이제는 새로운 무인들이 무예를 연마하고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는 거대한 무림(武林)의 요람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 강진혁이 있었다.
"마교(魔敎)."
진세린이 진혁의 곁으로 다가와 복잡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하층민들과 개조 무인들, 그리고 구무림의 잔당들이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어. 티타늄의 지배에 맞서는 자들의 새로운 무림, '신마교(新魔敎)'라고."
진혁은 멀리 신서울의 최상층, 이제는 폐허가 된 티타늄 타워의 잔해를 바라보았다. 그곳은 더 이상 인간을 실험체로 사육하던 자들의 왕좌가 아니었다. 차가운 밤바람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무인들이 단련하는 기합 소리가 신서울의 지하 골목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SYSTEM INFO: 경고. 외부 차원 영역 '제네시스'로부터 미확인 관리 코드가 포착되었습니다.]
[SYSTEM INFO: 프로토콜의 잔류 찌꺼기가 아닌, 새로운 법칙의 간섭이 시작됩니다.]
진혁의 흑안 속에 깊고 서늘한 빛이 스쳤다. 시스템의 족쇄를 부수고 스스로가 법칙이 된 그에게, 차원 너머의 진짜 창조주들이 보내오는 신호는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다.
"오라고 해라."
진혁이 낮게 읊조리며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에서 자라난 검강(劍剛)이 신서울의 밤하늘을 두 갈래로 갈라놓았다.
"그들이 어떤 법칙을 들고 오든, 내가 세운 새로운 법도 아래 모두 으스러질 테니."
신서울의 음지에서 피어난 신마교의 싹은, 이제 대지를 넘어 차원 너머의 왕좌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교주님!"
니르바나의 총수 송수연이 숨을 몰아쉬며 진혁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눈빛에는 경외와 함께 급박한 정보가 서려 있었다. 전신에 나노머신을 두른 저항군의 정찰병들이 타워 주변의 통신망을 해독하며 가져온 데이터 패킷이 공중 홀로그램으로 펼쳐졌다.
"신서울 전역의 메인 브로드캐스팅 회로를 차단하고 남은 잔당들을 소탕하는 건 끝났지만…… 문제가 생겼어. 티타늄 그룹의 본사 서버가 완전히 붕괴하면서, 그들이 숨겨두었던 2차, 3차 비상 기지들의 위치가 동시에 드러났어."
"비상 기지?"
"그래. 단순히 지상에 있는 연구소들이 아니야. 신서울 지하 5,000층 아래, 과거 인류가 태동하기도 전에 파묻혔던 고대 지하 도시 '프로메테우스'의 구역이야. 거기엔 진무극 이놈이 처리하지 못한…… 아니, 처리하려다 실패했던 엄청난 양의 생체 무기들과 군용 사이보그 군단이 잠들어 있어."
송수연의 말에 진세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 역시 티타늄 그룹의 후계자로서 타워의 핵심 기밀에 접근해 본 적이 있었지만, 지하 5,000층의 프로메테우스 구역은 아버지인 진무극조차 출입을 극도로 제한했던 금단의 영역이었다.
"거긴…… 안 돼. 그곳의 시스템은 티타늄의 중앙 서버와 연동되어 있지 않아. 독립된 자율형 인공지능 '제로(ZERO)'의 통제를 받지. 만약 그 밑에 잠들어 있는 생체 병기들이 지상으로 올라오면, 겨우 안정을 되찾은 신서울의 하층민들은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전부 도륙당할 거야."
진세린의 경고에도 진혁의 표정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의 흑안은 여전히 차갑고 고요했다. 시스템의 족쇄를 끊어내고 마신경(魔神境)의 정점에 오른 그에게, 지하 5,000층의 자율형 AI 따위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다만, 그것은 완전히 부수어야 할 티타늄의 마지막 찌꺼기에 불과했다.
"지하 5,000층인가."
진혁이 낮게 속삭였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세한 마기(魔氣)가 주변의 대기를 잘게 진동시켰다. 수천 킬로와트의 출력을 자랑하던 티타늄의 전함들을 고철로 만들었던 그 압도적인 파동이 다시 한번 대지를 울렸다.
"그곳에 무엇이 있든, 내가 직접 내려가 그 뿌리를 뽑아버린다."
"교주님, 혼자서 가시게요? 프로메테우스 구역은 일반적인 나노머신이나 코어 출력으로는 접근조차 불가능한 고압 방사능 구역이자, 중력 제어 장치가 고장 나 공간 자체가 뒤틀려 있는 심연이야!"
송수연이 다급하게 말렸지만, 진혁은 이미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가 향하는 곳은 무너진 티타늄 타워의 거대한 균열, 지하로 이어지는 시커먼 대공동(大空洞)이었다.
저벅, 저벅.
진혁의 군홧발이 땅을 디딜 때마다, 그를 따르던 수만 명의 하층민들과 신마교의 무인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 누구도 입을 열어 만류하지 않았다. 그들이 목격한 진혁의 무력은 이미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선 신화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아영아."
진혁이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통신망을 열었다. 화이트 섀도의 거점에서 화면을 바라보고 있을 윤아영의 목소리가 즉시 귓가에 파고들었다.
[진혁 씨! 나 여기 있어. 프로메테우스 구역의 메인 해킹 코드는 내가 어떻게든 뚫어볼게. 하지만 거긴 데이터의 흐름이 완전히 달라서 내 기술만으로는 한계가 있을지도 몰라…….]
"해킹할 필요 없다."
[……하? 해킹을 안 한다고? 거긴 자동 방어 포탑이랑 양자 방벽이 도배되어 있다고!]
"부수면 된다."
진혁의 입꼬리가 비틀리며 서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은 기계를 다루는 해커의 방식이 아니었다. 오직 압도적인 무력으로 물리 법칙과 데이터의 흐름 그 자체를 짓밟아버리는 천마(天魔)만의 방식이었다.
콰아아앙-!
진혁이 그대로 지하의 대공동을 향해 뛰어내렸다. 수천 미터에 달하는 수직 낙하. 그의 몸을 감싼 은빛 마혈회로(魔血回路)가 폭발적인 출력을 뿜어내며 공기를 이겨내고 아래로 낙하했다.
후우우우웅-!
지하 1,000층. 지하 2,000층. 지하 3,000층을 순식간에 돌파하자, 주변의 공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푸른빛의 방사능 노이즈가 유령처럼 떠돌고, 중력이 사방으로 뒤틀려 공간이 일그러지는 지옥의 심연. 그곳이 바로 티타늄 그룹이 숨겨둔 절대악의 요람, 프로메테우스 구역이었다.
지하 5,000층의 거대한 철문 앞에 진혁의 발이 닿았다.
콰구구구구궁-!
철문 안쪽에서 기괴한 기계음과 함께 수만 개의 붉은 눈동자 같은 적외선 센서가 일제히 켜졌다. 그곳에는 인간의 형상을 한 생체 병기들과, 진무극이 이 세상에 남겨둔 마지막 사육 실험체들이 진혁을 향해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SYSTEM INFO: 경고. 프로메테우스 자율 방어 프로토콜 가동. 침입자를 말살합니다.]
자동으로 울려 퍼지는 기계음. 그러나 진혁의 시야에는 더 이상 그 어떤 상태창도, 시스템의 보조 HUD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눈에 비치는 것은 오직 눈앞의 고철 덩어리들과, 그 뒤에 숨어 있는 창조주들의 추잡한 잔해뿐이었다.
진혁이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끝에서 공간이 일그러지며 눈이 멀 정도로 찬란한 칠흑빛 검강(劍剛)이 피어올랐다.
"법칙을 정하는 것은 시스템이 아니다."
진혁의 낮고 묵직한 음성이 지하 5,000층의 심연을 가득 채웠다.
"나다."
콰아아아아아아-!
신마신공 제10식, 만상멸세(萬象滅世). 그 한 번의 손짓에 프로메테우스의 거대한 철문과 그 안에서 튀어나오던 수만 개의 생체 병기 군단이 단 한 줌의 먼지로 증발해 버렸다. 자본의 심장이 영원히 멎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