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2화 지상으로의 귀환
폭음이 멈췄다.
진동이 멎은 대기는 정적보다 더 지독한 공허함으로 채워졌다.
티타늄 타워의 심장부, 3,500층의 마스터 돔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붕괴한 지반과 녹아내린 강화 합금의 잔해만이 그곳이 거대 기업의 본거지였음을 증명할 뿐이었다. 강진혁은 연기 자욱한 폐허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푸른빛의 HUD(Heads-up Display)는 이제 흔적조차 없었다. 시스템이 강제로 출력하던 보조 지표도, 적의 정보를 분석하던 실시간 데이터 스캔도 더는 필요하지 않았다.
진혁이 눈을 떴다.
검은 눈동자 깊은 곳에서 은은한 금색 마기(魔氣)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경지: 마신경(魔神境) - 진천(眞天)]
[상태: 자율 제어 모드]
더 이상의 수치는 무의미했다. 80만 MW? 아니, 100만 MW? 그런 물리적 단위로는 지금 자신의 단전에서 울렁이는 거대한 파동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것은 고대 마공과 현대 기술이 결합한 부산물이 아니었다. 시스템이 짜놓은 프로토콜을 찢고 나온, 오직 강진혁이라는 존재 그 자체가 만들어낸 ‘법칙’이었다.
“……끝났나.”
낮게 읊조린 목소리가 잔해 속에서 울렸다.
진혁은 천천히 발을 옮겼다. 그가 발을 딛는 곳마다 바닥에 남은 잔열과 마기가 섞여 검은 꽃처럼 피어올랐다.
[경고: 해당 구역 구조 불안정. 붕괴 임박.]
[자동 회피 모드 작동 불가.]
허공에 떠야 할 시스템의 경고음은 들리지 않았다. 대신 진혁은 자신의 신경계에 직접 전달되는 구조체의 미세한 뒤틀림을 느꼈다. 건물이 무너지는 방향, 압력의 중심, 탈출을 위한 최단 동선. 모든 것이 감각의 확장을 통해 명확하게 파악되었다.
그는 시스템의 노예가 아니라, 시스템을 발밑에 둔 주인이었다.
진혁은 도약했다.
단 한 번의 도약. 지면을 박차고 솟구친 신형은 굉음을 남기며 겹겹이 층을 이룬 타워의 잔해를 뚫고 올라갔다. 중력의 법칙조차 그의 의지에 따라 굴복했다. 무너지는 철골 구조물 사이를 마치 흐르는 물처럼 비껴가며 그는 지상으로 향했다.
신서울의 밤은 여전히 네온사인의 빛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 화려한 빛들은 티타늄 타워의 그림자 아래에서 사시나무 떨듯 흔들리고 있었다.
“저거 봐! 타워가… 타워가 멈췄어!”
하층 슬럼가의 주민들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찔러야 할 거대한 흉물을 바라보았다.
수십 년간 신서울을 지배했던 절대 권력의 상징인 티타늄 타워.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던 위압적인 인공 조명이 모조리 꺼져 있었다. 불타는 잔해만이 상층부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진혁 님인가? 정말 그분이 해낸 건가?”
니르바나의 대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송수연은 붕대를 감은 손으로 대검을 고쳐 쥐며 밤하늘을 응시했다. 그녀의 눈가에 맺힌 것은 승리의 환희가 아닌 경외감이었다.
티타늄 그룹의 블랙 가드들이 패닉에 빠져 도주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믿을 수 있는 데이터도, 명령을 내릴 서버도 잃어버렸다. 신서울의 질서가, 그들이 알던 자본의 논리가 붕괴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타워의 꼭대기에서 작은 점 하나가 빠르게 낙하했다.
“저건……!”
슈우우우웅-!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파공음이 신서울 전역을 뒤덮었다.
낙하하던 점은 지상 20미터 앞에서 마치 진공 상태에 갇힌 것처럼 급제동했다. 그리고는 소리 없이, 깃털처럼 가볍게 아스팔트 바닥에 착지했다.
지면이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먼지구름이 걷히자 그곳에 강진혁이 서 있었다.
한쪽 팔에는 너덜너덜해진 상의가 찢겨 나갔고, 은빛 회로 선이 옅게 발광하는 흉터가 그의 전신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상처 하나 입지 않은 듯 평온했다.
주변을 에워싸던 티타늄 그룹의 잔존 병력들이 총구를 겨누었다.
“타겟 확인! 실험체 07호다! 발포… 발포해!”
수십 명의 병사가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다.
고주파 탄환과 플라즈마 빔이 쏟아졌다. 일반적인 초인이라면 즉사했을 십자포화.
진혁은 고개를 들지도 않았다.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 - 제1식, 무상검막(無相劍幕)]
그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허공에 흩뿌려진 마기가 형체 없는 검기가 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피이잉-!
공간 자체가 비틀리는 소리와 함께 날아오던 모든 탄환이 허공에서 멈췄다. 아니, 소멸했다. 마기가 닿는 순간 물질은 원자 단위로 분해되어 빛으로 흩어졌다.
병사들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총기는 손 안에서 녹아내렸고, 그들이 입고 있던 강화 외골격은 비명을 지르며 정지했다.
“이, 이게 무슨… 시스템에 정보가 없어! 공격 방식이 감지되지 않는다고!”
“데이터가 무의미해! 이건 무공이 아니야. 이건… 법칙이다!”
진혁이 한 걸음 내디뎠다.
뚜벅. 뚜벅.
그의 발걸음마다 병사들은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압력에 눌린 듯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억지로 일어서려던 자들은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그것은 살기(殺氣)가 아니었다.
압도적인 격(格)의 차이였다.
“진무극은 죽었다.”
진혁의 입술이 열렸다. 건조하지만 신서울 전체에 울려 퍼지는 듯한 묵직한 목소리였다.
“너희가 섬기던 신은 사라졌다. 이제 남은 것은 너희의 선택뿐이다.”
그의 흑안이 거리를 가득 메운 군중과 저항군, 그리고 엎드려 있는 적들을 훑었다.
진세린이 타워의 잔해 사이를 빠져나와 진혁의 뒤에 섰다. 그녀는 자신의 코어가 거의 정지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혁의 등 뒤에서 흐르는 파동을 느끼며 전율했다.
“진혁, 신서울의 전력망이… 당신의 생체 파동과 공명하고 있어요. 지금 이 도시는 당신을 중심으로 다시 연결되고 있습니다.”
윤아영의 떨리는 목소리가 통신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전부 멈췄던 데이터가 흐르기 시작해. 이건… 해킹이 아니야. 도시가 당신을 새로운 관리자로 받아들이고 있어.”
진혁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시스템은 없다. 하지만 그는 시스템보다 더 강력한, 도시 전체를 장악하는 지배자가 되어 있었다.
“관리자가 아니라.”
진혁이 검게 물든 밤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에서 시작된 마기가 밤하늘을 덮고 있던 구름을 걷어냈다. 구름 너머 잊혔던 별들이 비치기 시작했다.
“질서를 바로잡는 자가 될 뿐이다.”
그의 선언과 함께 신서울의 모든 전광판이 일제히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그곳에 나타난 것은 티타늄 그룹의 로고가 아니었다.
거대한 마교의 문양, 그리고 그 중심에서 검을 쥐고 선 남자의 그림자였다.
[SYSTEM UPDATE: 천마 프로토콜 삭제]
[NEW SYSTEM: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 활성화]
[사용자: 강진혁]
[현재 상태: 전설의 시작]
거리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무기를 내려놓았다.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고, 누군가는 엎드려 절했다. 그것은 강압에 의한 굴복이 아니었다. 1,000년 만에 다시 나타난 절대자에 대한 본능적인 복종이었다.
진혁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바닥 안에서 요동치는 마기는 이제 통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혈액처럼 당연한 것이었다.
“신서울의 밤은 너무 길었다.”
진혁이 고개를 돌려 폐허가 된 타워를 보았다.
그곳에서 다시금 붉은 불꽃이 솟구치려 했다. 무언가, 티타늄 그룹의 본사 밑바닥에 숨겨져 있던 ‘진정한 심연’이 깨어나고 있었다.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진무극은 단지 앞잡이였을 뿐이다. 그 뒤에 숨겨진, 차원 너머의 진짜 창조주들. 그들이 진혁이라는 그릇을 파괴하기 위해, 혹은 회수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경고: 고차원적 외부 데이터 침입 감지.]
[대륙 너머로부터의 관측 시작.]
진혁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기다리고 있었다.”
시스템의 노예로 살던 시절, 그는 적을 죽이기 위해 싸웠다.
하지만 이제 그는 운명을 거스르기 위해 싸운다.
진혁의 몸 주위로 짙은 마기 장막이 펼쳐졌다. 장막은 점점 더 커져 신서울 전역을 덮어버릴 듯한 기세로 뻗어 나갔다.
“이 세계의 주인은.”
그가 검을 쥐는 시늉을 했다. 허공에 거대한 검의 형상이 맺혔다.
“너희가 아니라, 나다.”
콰아아앙-!
하늘이 갈라졌다.
신서울의 밤하늘 너머, 검은 우주를 배경으로 거대한 감시자의 눈동자들이 하나둘씩 열리기 시작했다.
진혁의 귀환.
그리고 이제 막 시작될, 차원을 넘나드는 전쟁의 서막이었다.
하늘 위에 열린 감시자의 눈동자들은 단순한 홀로그램이나 프로젝션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세계의 물리 법칙을 뒤틀어 놓을 정도로 막대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차원 너머의 관측기들이었다.
신서울 상공에 비친 거대한 눈동자들 사이에서 기계적인 음성이 공명했다. 그것은 인간의 언어가 아니었으나, 강진혁의 뇌리에 직접적으로 의미를 전달했다.
[실험체 07호, 프로토콜 이탈 감지.]
[관리 코드 000-제로(ZERO)를 강제 집행한다.]
[존재 소거를 시작한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백색의 섬광이 신서울을 향해 빗발쳤다.
그것은 티타늄 그룹이 사용하던 화력과는 차원이 다른, ‘삭제’ 그 자체였다. 빛이 닿는 곳마다 마천루의 철골이 먼지가 되어 사라졌고, 대지는 흔적도 없이 깎여 나갔다.
“전부 엎드려!”
송수연이 비명을 지르며 대원들을 방패 뒤로 밀어 넣었다. 절망적인 광경이었다. 인간이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신의 심판과도 같은 빛. 하지만 그 빛의 궤적 한가운데, 강진혁이 태연하게 서 있었다.
진혁은 그저 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 - 제2식, 만법귀마(萬法歸魔)]
그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마기가 폭풍처럼 회전하며 하늘에서 쏟아지는 백색 섬광을 집어삼켰다.
쿠구구구궁!
하늘과 땅 사이에서 거대한 진공 상태가 발생했다. 빛을 흡수한 마기가 역류하며 하늘의 눈동자들을 향해 쏘아 올려졌다. 감시자의 눈동자들이 당황한 듯 파동을 일으키며 궤도를 수정하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감히 내 앞마당에서 삭제를 논해?”
진혁의 눈이 푸르게 번뜩였다.
그가 한 번 더 손을 휘두르자, 허공에 맺혔던 검의 형상이 수천 갈래로 쪼개져 하늘을 향해 비상했다.
파아아앗!
비명도 없는 소멸이었다. 하늘에 떠 있던 감시자의 눈동자들이 마기에 닿는 순간, 픽셀 단위로 흩어지며 어둠 속으로 산화했다. 구름이 걷히고 폭풍이 멎었다.
하지만 진혁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하늘 너머, 자신을 사육했던 창조주들이 숨어 있는 ‘제네시스’의 좌표를 정확히 조준하고 있었다.
“이제는 내가 갈 차례다.”
진혁의 발밑에서 신서울의 에너지가 역류했다. 도시 전체의 전력이 그의 단전으로 모여들었다. 불가능에 가까운 출력 상승. 하지만 그의 육체는 이미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마신(魔神)의 경지였다.
진세린이 타워의 잔해 속에서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저 남자는 이제 신서울의 영웅 따위가 아니었다. 그는 이 세계의 굴레를 부수고, 그 너머의 신들에게 도전하는 최초의 반역자였다.
“진혁 님, 잠시만요!”
통신기 너머로 윤아영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데이터가… 데이터가 뒤집히고 있어요! 제네시스에서 차원 포털이 열립니다. 그들이 직접 내려오겠다는 뜻이에요!”
진혁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걸렸다.
“잘됐군. 일일이 찾아가는 수고를 덜었어.”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신서울의 중앙 상공이 거대한 거울처럼 갈라졌다.
갈라진 틈 사이로 기계와 생체 조직이 징그럽게 엉킨 거대한 함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티타늄 그룹의 군단과는 비교도 안 되는 압도적인 위용. 차원 함대의 포문들이 신서울을 겨냥해 일제히 붉은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진혁은 망토처럼 흩날리는 자신의 흑의를 정돈하며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대기권 밖으로 향하는 그의 눈빛에는 오직 하나, 자신을 피험체로 규정했던 자들에 대한 서늘한 살의만이 가득했다.
“오늘부로 프로토콜은 폐기다.”
그는 허공에 검을 꽂듯 손을 내리그었다.
그와 동시에 신서울의 모든 건물이 공명하며 거대한 마기 결계를 형성했다.
“이제부터는, 천마의 시대다.”
함대의 총공격이 시작되기 직전, 진혁의 등 뒤로 거대한 검은 날개 모양의 마기가 펼쳐졌다.
밤하늘을 뒤덮은 마기의 날개는 신서울을 보호하는 거대한 방패이자, 곧 닥쳐올 창조주들의 파멸을 예고하는 사신(死神)의 낫이었다.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전장의 중심에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신천마’가 우뚝 서 있었다.
신서울의 시민들은 숨을 죽인 채 밤하늘을 수놓는 빛과 어둠의 격돌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을, 오직 강진혁이라는 한 사내에 의해 새로 쓰일 우주의 첫 페이지였다.
포문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진혁은 정면으로 그 빛의 바다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어서 와라.”
그의 목소리가 전장을 가로질러 차원 너머의 왕좌에까지 울려 퍼졌다.
그것은 도전자에게 보내는 선전포고이자, 창조주들을 향한 사형 선고였다.
함대의 탄막이 진혁의 마기 장막에 닿아 산산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진혁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압도적인 마기가 차원 포털 자체를 집어삼키며 역으로 차원 너머의 본거지를 향해 쇄도했다.
반격이 시작되었다.
진혁은 더 이상 피험체가 아니었다.
그는 이제 모든 질서를 뒤엎는 새로운 법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