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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191화목차

제191화 진세린의 결단

티타늄 타워 99층, 작전통제실은 죽음보다 깊은 정적에 잠겨 있었다.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모니터들은 끊임없이 붉은색 경고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었다.

[Warning: 마스터 제어권 오류]

[Warning: 하층부 연결 시스템 전면 붕괴]

[Critical: 개체 ‘07호’의 생체 반응, 측정 불가]

진세린은 떨리는 손으로 홀로그램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녀의 손끝에는 미세한 나노 입자가 휘날리고 있었다. 아버지 진무극이 이 타워의 심장부에 심어둔 강력한 통제 프로토콜. 그것을 강제로 해킹하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아버지, 당신은 틀렸어요.”

그녀의 나지막한 중얼거림이 고요한 통제실을 울렸다. 진세린은 티타늄 그룹의 후계자였다. 그녀의 혈관 속에는 고성능 나노머신이 흐르고, 심장에는 세계 최고 등급의 생체 코어가 박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가 느끼는 것은 차가운 금속의 감각이 아닌, 뼛속까지 스며드는 파멸의 예감이었다.

갑자기 통제실의 출입문이 비명 같은 소리를 내며 뒤틀렸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굳게 닫혀 있던 강화 티타늄 도어가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그 사이로 스며 나온 것은 살기(殺氣)였다. 단순히 기계적인 출력치가 아닌, 인간의 감정이 극에 달해 빚어낸 살인적인 기운.

강진혁이었다.

“강진혁……!”

진세린은 권총을 겨누려 했으나, 그보다 먼저 진혁의 검은 잔영이 그녀의 눈앞에 맺혔다. 살기가 닿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따끔거렸다. 진혁의 흑안은 이전보다 더욱 깊고 공허했다. 그 안에는 시스템의 인공지능이 흉내 낼 수 없는, ‘천마’의 의지가 서려 있었다.

“정보를 가져왔나.”

진혁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진세린은 겨누던 총을 천천히 내렸다. 이 남자와 싸우는 것은 무의미했다. 아니, 애초에 체급이 달랐다.

“……최상층, 비밀 연구소야.”

진세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프로토콜: 제네시스’를 최종 가동할 준비를 하고 있어. 네 육체를 강제로 동기화해서, 아버지의 정신을 이식하려는 거야. 그 이식 수트는 너와 똑같은 주파수를 가진 ‘더미’ 데이터를 바탕으로 설계됐어. 네가 거기 도착하는 순간, 넌 네 몸의 제어권을 잃게 될 거야.”

진혁은 말없이 그녀를 응시했다. 시스템 창이 그의 시야에 팝업되었다.

[SYSTEM: 경고! 인근 구역의 나노머신 군집이 ‘진무극’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재구조화되고 있습니다.]

[SYSTEM: 강제 동기화 프로토콜, 실행 준비 단계 진입.]

진혁은 차갑게 웃었다. 시스템의 경고가 시끄러웠다. 이제는 그런 경고 따위, 자신의 의지로 짓눌러버릴 수 있었다. 그는 진세린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타워 최상층을 바라보았다.

“그 수트, 나보다 강한가?”

“……무슨 뜻이야?”

“내가 가진 ‘마공’까지 계산에 넣었냐고 물었다.”

진혁의 몸에서 검은 마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주변의 기기들이 마기에 눌려 스파크를 튀기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진세린은 뒷걸음질 쳤다. 이것은 데이터로 정의할 수 있는 무력이 아니었다.

“진세린.”

“……말해.”

“너는 이제 티타늄 그룹의 후계자가 아니다. 그냥 살아남아라. 이 타워가 무너질 때, 같이 죽고 싶지 않다면.”

진혁이 발을 내디디자 바닥의 강화 합금이 움푹 패였다. 그의 모습이 잔상도 남기지 않은 채 통제실을 빠져나갔다. 진세린은 멍하니 그가 사라진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경고: 시설 내 방어 시스템이 ‘강진혁’을 제거 대상으로 지정했습니다.]

[자동 방어 모듈, 가동.]

사방에서 총구가 튀어 나왔다. 하지만 진세린은 시스템의 경고를 무시하고 메인 프레임을 향해 자신의 액세스 코드를 꽂아 넣었다.

“아버지, 당신이 만든 괴물이…… 드디어 당신의 목을 치러 가요.”

그녀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렀다. 그 눈물조차 나노머신과 섞여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타워 최상층, ‘천마의 방’이라 불리는 비밀 연구소.

진무극은 은발을 정갈하게 넘기며 모니터 앞에 서 있었다. 그의 등 뒤로 수십 개의 케이블이 연결된 거대한 캡슐이 놓여 있었다. 캡슐 안에는 강진혁과 똑같이 생긴 신체가 나노 액체 속에 잠겨 있었다.

“드디어 오는군. 나의 가장 완벽한 그릇이.”

진무극의 얼굴에는 광기 어린 미소가 번졌다. 그는 강진혁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계획의 일부였다. 진혁이 스스로를 단련하고, 마공을 완성하고, 마신경의 경지에 다다를수록 그 육체는 더욱 견고해진다. ‘프로토콜: 천마’의 완성은 곧 진무극 자신의 불멸이었다.

그때, 거대한 연구소의 정문이 박살 났다. 폭음과 함께 먼지 구름을 뚫고 걸어 들어오는 남자. 칠흑 같은 검은 옷, 옅은 은빛 회로가 흐르는 목덜미. 강진혁이었다. 그의 뒤로는 수많은 블랙 가드들이 쓰러져 있었다. 팔다리가 잘리고 코어가 파괴된 채, 그들은 인간 병기가 아닌 고철 덩어리가 되어 나뒹굴고 있었다.

“진무극.”

진혁이 검을 쥐었다. 검은 마기가 칼날을 타고 흘러나와 공간을 일그러뜨렸다. 진무극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캡슐 앞에 섰다.

“어서 와라, 진혁아. 네가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 네가 흘린 그 모든 피와 땀이, 이제 내 불멸을 완성하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진혁은 대답 대신 검을 고쳐 잡았다.

[SYSTEM: 마신경(魔神境) 모드, 활성.]

[Warning: 상대가 ‘마스터 코드’를 입력하고 있습니다.]

[Warning: 강제 동기화율 15%... 30%... 50%...]

시스템의 경고음이 귓가를 찢을 듯 울렸다. 진혁의 혈관 속 나노머신들이 통제를 잃고 요동쳤다. 몸이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굳어가는 듯한 기분. 진무극이 손가락을 튕겼다.

“자, ‘천마 프로토콜’의 제어권을 반환받겠다. 07호, 네 몸의 주도권을 내놓아라.”

강렬한 데이터 파장이 연구소를 가득 채웠다. 강진혁의 시야가 붉게 점멸했다. [Access Denied]라는 문구가 그의 망막을 가득 메웠다. 시스템이 그의 의지를 배신하고 있었다. 몸 안의 마기가 역류하며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다.

“으윽……!”

진혁이 무릎을 꿇었다.

“봤느냐? 시스템은 결국 내 것이다. 너는 그저 나를 위해 길러진 가축에 불과해.”

진무극의 조소가 연구소에 메아리쳤다. 진혁은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단전을 확인했다. 시스템은 멈췄다. 나노머신은 더 이상 그의 의지를 따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 다 멈췄군.’

진혁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진무극은 당황한 듯 눈썹을 찌푸렸다.

“왜 웃지? 네 의지마저 시스템에 먹히고 있는 건데.”

“아니.”

진혁은 천천히 일어섰다. 몸 안에서 역류하던 마기가, 시스템의 통제 없이 자신의 심법을 따라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인공적인 알고리즘이 아닌, 1,000년 전 천마의 본질을 꿰뚫는 순수한 기(氣)의 흐름이었다.

“네가 빼앗아 간 건, 나를 가두던 ‘감옥’뿐이다.”

진혁의 눈동자가 암흑보다 더 깊은 심연으로 변했다. 그의 주변에서 공간이 찢겨 나가기 시작했다. 시스템의 HUD가 완전히 꺼져버린 암흑의 시야. 그곳에서 오직 자신만의 감각이 깨어났다.

“네가 말한 그 ‘그릇’. 내가 부수고 새로 빚어주지.”

진혁의 검이 진무극의 캡슐을 향해 쇄도했다. 속도는 음속을 넘어섰고, 공기는 비명을 질렀다. 진무극의 표정이 처음으로 경악으로 물들었다.

“불가능하다! 시스템 없이 그 정도의 출력을 낼 리가 없어!”

“계산하지 마라.”

진혁의 검끝이 캡슐에 닿기 직전, 그는 낮게 읊조렸다.

“무공은 계산이 아니라, 의지(意志)다.”

쿠구구구―!

타워 전체가 비틀거렸다. 진무극의 발밑에서부터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진혁의 일격은 이미 기술의 영역을 넘어섰다. 그것은 차원을 가르고, 법칙을 비트는 ‘신천마신공’의 서막이었다. 진무극은 급히 캡슐의 보호막을 가동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진혁의 검기(劍氣)가 보호막의 주파수를 공진시켜, 단 한 번의 타격으로 안쪽에서부터 분쇄해버렸다.

파앗―!

연구소 내의 모든 기계 장치가 멈췄다. 정적이 찾아왔다. 그 정적 속에서 진혁이 진무극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자, 이제 시작하자.”

진무극의 눈앞에 드리운 것은 신(神)을 참살할 준비를 마친, 진짜 천마의 눈이었다. 다음 순간, 진혁의 발밑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가 연구소의 천장을 가루로 만들며 하늘로 치솟았다. 신서울의 밤하늘이 검은 마기로 뒤덮였다. 그것은 파멸의 시작이자, 새로운 지배자의 강림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진무극의 얼굴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그의 완벽한 계산, 수십 년간 다듬어 온 데이터의 정점이 강진혁이라는 변수 하나에 의해 찢겨 나가는 현장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럴 리가 없다. 마스터 코드가…… 내 명령이 듣지 않는단 말인가!”

진무극이 급히 손목의 제어 단자를 조작했다. 하지만 허공에 떠오르던 홀로그램 화면은 지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붉은 경고등만 점멸할 뿐이었다. 강진혁이 시스템의 족쇄를 끊어낸 순간, 그에게 연결되었던 모든 디지털 회로는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게 변해버렸다.

진혁은 그저 서 있었다. 하지만 그가 서 있는 것만으로도 공간의 압력이 달라졌다. 숨을 쉴 때마다 주변의 나노 입자들이 진혁의 기운에 눌려 비명을 지르며 산화했다. 그것은 현대 기술의 산물인 나노머신이 고대 마공의 진원(眞元)에 굴복하는 현상이었다.

“진무극. 너는 기술을 믿었지.”

진혁이 천천히 발을 옮겼다. 한 걸음마다 바닥의 강화 세라믹이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자본으로 육체를 사고, 데이터로 정신을 복제하면 신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네가 간과한 게 하나 있다.”

진혁의 눈에 서린 것은 광기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지독한, 극도의 이성(理性)이었다. 시스템이 지워진 자리에 진정한 자아가 들어섰다. 1,000년 전의 천마가 그토록 갈구했던, 육체와 정신이 온전히 하나 된 절대의 경지.

“무공은 사람을 짓밟는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를 완성하는 진리라는 것을.”

진혁의 검 끝에서 검은 섬광이 피어올랐다. 단순히 에너지를 방출하는 것이 아니었다. 공간 그 자체를 굴절시켜 물리 법칙을 붕괴시키는 파멸의 일격.

[천마일검(天魔一劍) - 허공파쇄(虛空破碎)]

그가 검을 휘둘렀다. 궤적은 없었다. 검이 움직인 것이 아니라, 검이 닿는 공간이 존재하지 않게 된 것과 같았다. 거대한 연구소의 강화벽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진무극은 황급히 전신 수트의 방어막을 전개하며 뒤로 물러섰다.

콰아아앙―!

연구소 중앙이 폭발하며 진무극을 보호하던 나노 장갑이 불꽃과 함께 산산조각 났다. 방어막은 진혁의 일격 앞에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진무극은 허공을 날아 연구소 구석에 처박혔다. 그의 완벽했던 은발은 헝클어졌고, 입가에는 푸른색 합성 혈액이 흘러나왔다.

“으윽……!”

진무극이 신음하며 일어서려 했으나, 진혁은 이미 그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진혁이 손을 뻗어 진무극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자, 이제 네가 만든 지옥의 끝을 볼 시간이다.”

진혁의 손끝에서 마기가 뱀처럼 뻗어 나와 진무극의 전신을 휘감았다. 진무극의 몸 안에 이식된 최고급 생체 코어가 비명을 질렀다. 진혁이 흡원천공을 발동하자, 진무극의 코어 속에 쌓여 있던 막대한 에너지가 거꾸로 진혁의 단전으로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 돼! 그건…… 내 불멸의 재료다!”

“아니, 그건 내가 이 도시의 슬럼가에서 훔쳐온 생명들의 저주다.”

진혁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진무극의 눈동자가 점점 흐려졌다. 수십 년간 쌓아 올린 지식, 자본, 권력, 그리고 데이터들이 허무하게 진혁의 몸속으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진무극은 자신의 존재가 서서히 소멸해가는 것을 느끼며 몸부림쳤다. 그때, 저 멀리서 진세린의 외침이 들려왔다.

“진혁아! 멈춰! 타워 전체의 자폭 시퀀스가 가동됐어! 아버지의 코어가 과부하되면 이 타워는 신서울 전체를 덮칠 거대한 플라즈마 폭탄이 될 거야!”

진혁은 진무극을 쥔 채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거대한 타워의 아래쪽, 신서울의 야경이 평화롭게 빛나고 있었다. 자신이 지키려 했던 사람들, 자신의 복수를 기다리던 이들이 그곳에 있었다.

진혁은 잠시 눈을 감았다. 시스템의 HUD가 사라진 눈앞에, 대신 독고운이 말했던 ‘검의 의지’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기계는 계산하지만, 인간은 선택한다.

“……세린.”

“뭐야!”

“이 타워의 코어를 내 몸으로 받아내겠다.”

진세린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미쳤어? 그건 네 몸이 버틸 수 있는 출력이 아니야! 넌 산산조각이 날 거라고!”

“아니.”

진혁이 진무극을 완전히 흡수하며 그의 단전을 파괴했다. 진무극의 몸이 재가 되어 흩어졌다. 이제 타워 전체의 에너지가 진혁의 몸을 향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나는, 이 도시의 새로운 법칙이 된다.”

진혁이 연구소의 중심부, 코어 제어 장치에 손을 얹었다. 타워 전체가 거대한 빛의 기둥에 휩싸였다. 신서울의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푸른 섬광. 그것은 파멸이 아닌,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전설의 서막이었다.

[SYSTEM INFO: 제어권 상실. 데이터 동기화 완료.]

[기록: 신천마, 마침내 스스로의 법칙을 세우다.]

진혁의 몸이 빛 속에서 투명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제 모든 복수는 끝났다. 그리고, 진짜 전쟁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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