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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183화목차

제183화 역천(逆天)의 운기조식

진무극의 육신이 잿더미로 변한 자리에 감도는 것은 비릿한 오존 냄새와 타버린 금속의 악취였다. 하지만 강진혁의 시선은 그 폐허에 머물지 않았다.

그의 눈앞, 허공에 떠 있는 파란색 홀로그램 창이 미친 듯이 깜빡이고 있었다.

[경고: 시스템 루트 권한 박탈.]

[경고: 외부의 강력한 데이터 침입 감지. 나노머신 동기화율 0%로 강제 하락.]

[Warning: 심장 구역 마기 폭주 위험도 99%. 사용자 생체 신호 소실 직전.]

진무극은 죽었다. 그러나 그가 죽기 직전 심어놓은 마지막 독은, 시스템이라는 껍데기를 씌운 채 진혁의 신경망을 갉아먹고 있었다.

"하아, 하아……."

진혁의 입에서 검은 피가 쏟아졌다.

나노머신은 더 이상 그의 의지를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혈관 속에 남은 미세 기계들이 서로 엉겨 붙으며 진혁의 근육을 끊어내고, 뼈를 조각내기 시작했다. 마치 스스로가 만든 무기에 의해 몸이 내부에서부터 붕괴하는 형국이었다.

‘시스템이 죽었다고 해서, 내가 죽을 이유는 없지.’

진혁은 비틀거리며 검을 바닥에 꽂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1,000년 전의 천마가 시스템 따위의 도움을 빌려 강해졌을 리 없다는 것을. 시스템은 그저 진무극이 편의를 위해 만들어낸 족쇄이자, 자신을 관찰하기 위한 렌즈였을 뿐이다.

진혁은 눈을 감았다.

심장 부근,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생체 코어가 비명처럼 고주파를 내뱉고 있었다.

[시스템: 제어권 회수 절차 진행 중. 30초 후 생체 반응 영구 정지.]

“닥쳐.”

진혁이 낮게 읊조렸다.

그는 단전을 향해 의식을 집중했다.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기를 정방향으로 순환시켜 심법을 운용했겠지만, 지금의 진혁은 달랐다.

‘역천(逆天).’

하늘을 거스르는 운기.

진혁은 단전의 회전을 인위적으로 멈췄다. 그리고 그 반대 방향으로, 억지로 내공을 뒤틀어 분출시켰다.

콰아아아!

체내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울렸다. 혈관을 타고 흐르던 나노머신들이 역류하는 마기에 의해 비명을 지르며 파괴되었다. 전신의 피부 위로 핏줄이 불거져 나왔고, 살점이 찢겨 나갔다. 고통은 차라리 감각을 마비시킬 정도로 극심했다.

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 진혁은 선명한 '길'을 보았다.

기존의 마공은 시스템이 짜놓은 알고리즘에 맞춰 정해진 혈도만을 통과했다. 그러나 지금, 혈관이 파괴되고 나노 회로가 녹아내리며 진혁의 몸 안에는 '새로운 혈로'가 생겨나고 있었다.

[경고: 혈관 파괴율 40% 도달.]

[경고: 신체 구조 붕괴 중.]

“붕괴가 아니라, 재구성이다.”

진혁의 눈이 다시 떠졌다. 흑안(黑眼) 속에서 붉은 마광이 소용돌이쳤다.

그는 백무현과의 전투에서 남은 여파, 타워의 플라즈마 코어에서 흘러나오는 잔류 에너지, 그리고 진무극이 남긴 데이터의 파편을 전부 흡수하기 시작했다.

‘만법귀마(萬法歸魔).’

모든 법은 마로 돌아간다.

진혁은 타워 최상층을 가득 채운 고주파 진동과 플라즈마 열기를 마기와 함께 나노 회로 속으로 강제로 끌어들였다. 원래라면 폭사할 에너지였으나, 역천의 운기조식은 그 모든 파괴적인 힘을 진혁의 근육과 골격을 강화하는 연료로 바꾸어버렸다.

“크윽…!”

진혁의 등 뒤에서 검은 안개가 형상화되었다.

단순한 기의 발현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혁의 존재 자체가 차원의 법칙을 비틀며 뿜어내는 '마압(魔壓)'이었다.

공기가 무거워졌다. 타워의 강화 유리들이 견디지 못하고 비산했다.

밖에서 보던 슬럼가의 민중들과 티타늄 그룹의 잔당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신서울의 밤하늘이 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구름이 소용돌이치며 타워 꼭대기를 향해 빨려 들어가고, 거대한 검은 오라가 신서울 전체를 압도했다.

[SYSTEM: 오류… 오류… 데이터 해석 불가능.]

[SYSTEM: 사용자의 생체 반응이 임계치를 돌파했습니다.]

시스템의 창이 드디어 노이즈와 함께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다.

진혁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검기가 타워의 콘크리트 벽을 종잇장처럼 잘라냈다. 이제 그는 인공지능의 보조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스스로가 연산기였고, 스스로가 무공의 정점이었다.

“이것이… 진짜 천마의 경지인가.”

진혁은 검을 들어 올렸다.

그의 몸 주변을 감싸던 은빛 나노 회로들이 이제는 검은 마기와 융합되어 보랏빛 전기를 띠고 있었다.

그때였다.

타워의 벽면을 뚫고, 차원의 균열이 생겨났다. 그곳은 진무극이 있던 곳과는 차원이 다른 공포를 품고 있었다.

[실험체 07호, 규격 외 변수 확인.]

균열 너머에서 들려오는 금속성 음성.

진혁은 그 목소리를 향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변수?”

진혁이 발을 구르자, 타워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요동쳤다.

“아니, 이제부터가 진짜 본편이다.”

진혁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음속을 돌파하며 차원의 균열 속으로 몸을 던졌다. 시스템이 만들어준 안락한 실험장이 아닌, 신들이 사육하는 진짜 사냥터로 직접 뛰어든 것이다.

검은 마기와 뇌전이 뒤섞인 검기가 균열을 가로질렀다.

그것은 단순히 물질을 베는 것이 아니었다. 공간 그 자체를 찢고, 그 너머에 숨어 진혁을 관찰하던 '눈'들을 도려내는 일격이었다.

콰아아앙!

균열 너머에서 들려온 것은 신들의 비명이었다.

진혁의 몸이 균열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등 뒤로는 검붉은 뇌강으로 이루어진 삼두육비(三頭六臂)의 거대한 마신 환영이 실체화되어 있었다.

압도적인 마압이 지하 공간 전체를 짓눌렀다.

[Warning: 차원 구조 불안정.]

[Warning: 고위 실체 접근 중.]

진혁은 마신 환영의 팔을 휘둘러 차원의 벽을 통째로 으깨버렸다.

“기다리고 있었다. 내 운명을 멋대로 설계한, 오만한 주인님들.”

진혁의 손에 들린 검이 울부짖었다.

이제 시스템은 없다. 오직 강진혁이라는 하나의 존재만이, 신을 죽이기 위해 그들의 영토로 진입했을 뿐이다.

균열 너머, 어둠 속에 숨어 있던 거대한 눈동자들이 진혁을 향해 집중되었다.

진혁은 검을 고쳐 쥐었다.

마신 환영이 그와 똑같이 검을 들어 올렸다.

“하나씩, 전부 다 찢어주지.”

진혁의 일격이 공간을 소멸시키며 어둠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싸움이 아니었다.

이 세계를 설계한 자들과, 그 설계도를 찢어버린 '천마'의 전쟁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경고: 시스템 완전 소멸. 독립적 마신 모드 활성화.]

진혁의 눈에 비친 세상은 이제 코드가 아니었다.

모든 것이 그저 멸해야 할 적, 그리고 밟고 올라서야 할 밑거름일 뿐이었다.

그가 발을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균열 너머의 공간은 붕괴하며 비명을 질렀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진혁을 실험체 07호로 만든, 그 '근원'이 드디어 본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는 실체는 형태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신경망 덩어리였다. 닥터 베인이나 진무극이 다루던 나노머신과는 차원이 다른, 고차원의 정보 집합체. 그것이 균열의 가장자리에서 진혁의 영혼을 향해 촉수를 뻗어왔다.

[실험체 07호. 네 자아는 우리에 의해 설계된 데이터의 파생물일 뿐이다. 마신경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그 본질은 우리가 만든 '그릇'을 벗어날 수 없다.]

기계음이 섞인 오만한 지성이 진혁의 뇌리를 직접 두드렸다. 그들은 진혁을 무인으로 보지 않았다. 그저 오류를 일으킨 최상급 연산 장치로 간주할 뿐이었다.

"그릇?"

진혁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그릇이 깨지면 무엇이 남는 줄 아나?"

"내용물이다."

진혁이 검을 휘둘렀다. 그 단순한 궤적은 공간의 법칙을 무시했다. 마신 환영의 삼두육비가 동시에 움직이며 허공을 움켜쥐었다.

콰득, 콰드득!

신경망 덩어리가 비명을 질렀다. 진혁이 휘두른 검기에는 현대의 고주파 진동과 마기가 결합된 초월적인 절기가 담겨 있었다. 물리적인 타격이 아니라, 정보 그 자체를 베어버리는 '만법귀마'의 응용 기술이었다.

[오류! 데이터 손실! 존재 정의가… 부정당하고 있다!]

"정의? 네놈들의 정의는 내 단전 속에서 이미 잿더미가 되었다."

진혁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도약했다. 균열 너머의 공간은 중력이 제멋대로 뒤틀려 있었지만, 진혁은 마기를 발바닥에 집중시켜 허공을 지면처럼 딛고 질주했다.

그의 몸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공간이 균열을 일으키며 파편화되었다. 신들이 구축해 놓은 시스템의 경계가 진혁의 도래와 함께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저지하라. 07호의 마신경을 강제 재설정한다!]

균열의 심연에서 수백, 수천 개의 빛나는 안광이 떠올랐다. 그것들은 신서울을 지배하던 티타늄 그룹의 블랙 가드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압도적인 '위계'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행성을 소멸시킬 수 있는 고위 실체들의 분신이었다.

하지만 진혁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희열이 끓어올랐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그토록 갈망했던 '적'이었다.

"더 나와라."

진혁은 검을 버렸다.

검조차 필요 없었다. 그는 양손을 깍지 낀 채, 단전에 모인 800,000 MW의 출력을 전신으로 퍼뜨렸다. 나노머신이 사라진 혈관에는 오직 마기만이 혈액처럼 흐르고 있었다.

[마신경(魔神境) - 개방.]

그가 포효하자, 신들의 영토를 가득 채우던 데이터의 바다가 핏빛 마기로 오염되기 시작했다.

진혁의 피부 위로 검은 문양들이 뱀처럼 꿈틀거리며 떠올랐다. 그것은 단순히 무공의 흔적이 아니었다. 자신이 겪어온 모든 고통, 실험실에서의 비명, 짓밟힌 동료들의 의지, 그리고 진무극을 처단하며 얻은 깨달음이 하나로 응집된 '진리'의 각인이었다.

"이게 바로 너희가 그토록 찾던 '천마'의 정체다."

진혁의 주먹이 허공을 강타했다.

그 일격은 물리적인 충격파를 넘어서, 차원의 구조 자체를 일그러뜨렸다.

쾅-!

거대한 신경망 덩어리가 진혁의 주먹 한 방에 중심을 잃고 흩어졌다. 파편화된 데이터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진혁은 그 파편들을 손바닥으로 낚아채 흡수했다.

'이해했다. 너희들의 설계도.'

분석, 이해, 수련, 융합, 그리고 창조.

진혁은 그 5단계의 과정을 신들의 영토에서 즉석으로 재현하고 있었다. 눈앞의 적들이 사용하는 고차원적인 공격 방식을 실시간으로 읽어내고, 자신의 마기로 그 원리를 역설계했다.

[불가능하다! 어떻게 필멸자의 육체로 우리의 논리 회로를 복제하는가!]

"필멸자?"

진혁이 냉소하며 신들의 중심부를 향해 돌진했다.

"너희들이 나를 '실험체 07호'라 불렀을 때, 나는 이미 너희보다 위에 있었다."

진혁의 등 뒤에 있던 마신 환영이 거대한 손을 뻗어 진혁의 손을 감싸 쥐었다. 마신과 인간의 의지가 완전히 동기화되었다.

신들의 영토 중앙, 가장 거대한 '눈'이 진혁을 직시했다.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중압감이 차원을 짓눌렀다.

[실험체 07호. 네가 저지른 죄는 차원 전체를 붕괴시킬 것이다.]

"죄? 아니, 이건 해방이다."

진혁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단전을, 아니 자신의 존재 그 자체를 검으로 변모시켰다.

'신천마신공 제10식 - 만상멸세(萬象滅世).'

세상의 모든 형상을 멸한다는 뜻.

진혁의 일격은 찰나의 시간 동안 차원 전체를 정지시켰다.

모든 것이 흑백으로 변했다. 신들의 영토를 구성하던 데이터, 빛, 소리, 심지어는 시간마저도 진혁의 검기 앞에 복종했다.

"소멸해라."

사각!

단 한 번의 참격.

신들의 성채가, 그리고 그들을 지탱하던 차원의 근원이 진혁의 검 끝에서부터 시작되어 조각조각 부서지기 시작했다.

[아아….]

신들의 비명이 차원 너머로 길게 이어졌다. 그것은 더 이상 기계적인 노이즈가 아니었다. 진정으로 '존재'가 사라지는 자들의 단말마였다.

진혁은 피비린내 나는 어둠 속에서 홀로 서 있었다. 그의 온몸은 신들의 피—데이터와 마기가 뒤섞인 보랏빛 액체—로 젖어 있었지만, 그 표정만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했다.

[SYSTEM: …?]

죽은 줄 알았던 시스템의 잔재가 진혁의 머릿속에서 희미한 노이즈를 냈다.

[사용자 강진혁, 차원 경계 돌파. 고위 실체 42개체 소멸 확인. 마신경(魔神境) 최종 단계 도달.]

진혁은 그 노이즈를 향해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아직도 살아있었나."

[아니오. 저는 당신이 창조한 '신천마신공'의 파생 데이터일 뿐입니다. 당신이 지배하는 이 영역에서, 저는 당신의 일부로 남을 것입니다.]

시스템의 목소리가 바뀌어 있었다. 차갑고 무기질적인 보이스가 아닌, 진혁의 의지를 반영하는 거울과 같은 목소리로.

진혁은 검을 거두었다.

균열 너머, 신서울의 하늘이 보였다.

그는 이제 자신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싸워왔는지 더 이상 정의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을 구속했던 모든 사슬을 끊어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진혁은 차원의 틈새를 딛고 현실 세계로 귀환했다.

타워의 꼭대기, 폐허가 된 집무실로 돌아온 그의 발치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윤아영.

그녀는 진혁을 보며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었다. 진혁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압은 이미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 있었다.

"진혁… 씨?"

진혁은 그녀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윤아영의 뒤편, 신서울의 밤하늘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차원의 균열은 닫혔지만, 그 틈새로 더 거대한 무언가가 신서울을 응시하고 있었다. 신들을 사멸시킨 대가로, 더 상위의 '눈'들이 진혁을 새로운 '변수'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었다.

진혁의 눈에 붉은 빛이 일렁였다.

"아영아."

"네, 네?"

"준비해라."

진혁은 자신의 손을 쥐었다 폈다.

"이제부터 진짜 전쟁이다."

그의 말과 동시에 신서울의 모든 전자기기가 일제히 마비되었다. 하늘 위로 거대한 차원의 함대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시스템을 부순 대가는 가혹했다.

하지만 진혁은 두렵지 않았다.

그는 이미 모든 법칙을 넘어선 '천마'였으니까.

그가 다시 검을 뽑아 들었다.

[마신경 - 신천마신공.]

하늘을 가르는 검기가 다시 한번 신서울의 밤하늘을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전설의 종말이 아닌, 새로운 신화의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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