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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18화목차

제18화 진무극의 눈길

신서울의 밤은 언제나 화려한 네온사인과 독성을 품은 스모그로 얼룩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최상층인 100층,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티타늄 타워의 마스터 루프탑은 지상의 더러운 공기조차 닿지 않는 완벽한 통제 구역이었다. 강화 세라믹과 방탄 강화유리로 격리된 공간. 그곳의 거대한 홀로그램 스크린 위로 피비린내 나는 영상이 연달아 재생되고 있었다.

콰아아앙—!

영상 속에서 강진혁은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블랙 실드의 장갑복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그의 검 끝에서 피어오르는 검붉은 마기는 단순한 기계적 출력을 아득히 초월한 채, 방탄 합금을 두부처럼 썰어냈다.

영상은 화질이 거칠어질 정도로 격렬한 전투 궤적을 쫓았다.

단전에서 치솟는 7,300 MW의 가공할 출력. 그 에너지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살인병기들을 도살하는 소년의 얼굴에는 광기와 냉정함이 기이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

홀로그램의 빛이 은발의 중년 신사, 진무극의 눈동자에 붉고 파랗게 반사되었다.

티타늄 그룹의 회장, 신서울의 군주나 다름없는 절대자.

그가 천천히 와인잔을 기울이며 입술을 열었다.

"놀랍군. 정말로 놀라워."

나직하고 우아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환희와 탐욕이 들끓고 있었다.

진무극의 등 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회장실의 구석에서 가죽 전투 수트를 차려입은 냉미녀가 걸어 나왔다.

티타늄 그룹의 후계자이자 특수전 후사대 대장, 진세린이었다.

그녀의 미간이 뼛속까지 시린 듯 잘게 찌푸려져 있었다.

"아버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 말이다, 세린아."

"저 실험체…… 강진혁입니다. 07호 폐기 대상이었던 잡종이 하층가를 완전히 박살 내고 이 타워 밑바닥까지 기어올라 오고 있습니다. 블랙 가드도, 드레이크의 특수부대도 전부 저자에게 격파당했습니다. 지금 당장 방위 시스템을 최대 개방하여 원거리 플라즈마 포격으로 가뿐히 재로 만들어야 합니다."

진세린의 목소리에는 프라이드 높은 후계자로서의 분노와 초조함이 서려 있었다.

자신의 친위대와 기업의 최정예 병기들이 한낱 실험체 따위에게 짓밟히는 것을 더는 좌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무극은 잔을 내려놓으며 나지막하게 웃었다.

딸그랑.

유리 테이블과 잔이 부딪치는 청아한 소리가 넓은 회장실에 울려 퍼졌다.

"재로 만들다니. 아아, 이 아비의 노고를 그렇게 몰라주어서야 쓰나."

"아버지……?"

"세린아, 너는 저 소년이 왜 저토록 강해졌다고 생각하느냐? 단순히 우연일까? 아니면 저 버려진 하층민의 육체가 원래부터 특출났기 때문인가?"

진세린은 대답하지 못했다.

데이터상으로 강진혁의 신체 능력은 애초에 3계급 하층민의 폐기 처분 직전의 육체에 불과했다. 그런 자가 어떻게 단숨에 7,000 MW를 넘나드는 마기를 뿜어내며 특수부대를 도륙하고 있는지, 그녀의 연산 머신으로도 도저히 해독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진무극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통유리창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시선은 아득히 아래, 마천루의 불빛들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 줄기의 어둡고 거대한 검붉은 기운을 향하고 있었다.

"프로토콜이다."

진무극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걸렸다.

"천마 프로토콜. 그건 단순히 고대 무공을 데이터화하여 주입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천 년 전,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다 비참하게 스러진 구시대의 마교 지존, '천마'의 육체적 밸런스와 마기 운용의 궤적을 완벽하게 복제하기 위한 궁극의 그릇 양산 프로세스지."

"그렇다면…… 저자는 그저 실패품이 아니었단 말입니까?"

"실패품? 하하하! 세린아, 오해하지 마라. 처음부터 저 아이는 '그릇'으로 설계되었다. 결함이 있었기에 가치가 있었고, 고통 속에서 발버둥 치며 스스로 기혈을 뚫어내야만 완성이 되는 그런 그릇 말이다."

진무극의 눈빛이 탐욕스럽게 빛났다.

"네가 보기에 지금 강진혁이 강해 보이지? 뼈를 깎고 혈관을 터뜨리며 마기를 흡수할 때마다, 저 소년의 단전과 나노머신 회로는 가장 완벽한 천마의 육체로 빚어지고 있다. 내가 원했던, 영원불멸의 왕좌를 강림시킬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器)로 말이지."

"……!"

진세린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진실은 그녀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잔혹하고 거대했다.

강진혁이라는 인간은 복수를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 아니었다. 태어날 때부터 거대한 괴물의 제단 위에 올려진 제물에 불과했다.

"그럼……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저자의 폭주를 방조하신 겁니까? 일부러 더 강해지도록 내버려 두신 거라고요?"

"방조가 아니다. '육성'이다."

진무극이 고개를 돌려 딸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일점의 자비도 없었다.

"더 강해져야 한다. 더 많은 에너지를 흡수하고, 더 지독한 살육을 겪으며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부수어야 하지. 그래야만…… 내가 그 육체를 강탈했을 때, 완벽한 '천마(天魔)'로 거듭날 수 있으니까."

소름이 돋는 진실이었다.

진세린은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렇다면…… 당장 저자를 사살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물론이지. 오히려 네가 나서서 저 아이의 길목을 적당히 막아주어라. 너무 쉽게 타워에 올라오면 그릇이 채워지기 전에 금이 가버릴 테니까. 충분한 시련을 주고, 더 강한 절기(絕技)를 끄집어내게 만들어라. 강진혁이 죽음에 몰릴수록, 내게 올 육체는 완벽해질 것이다."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진세린은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아버지의 광기 어린 집착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티타늄 그룹의 후계자로서 그녀에게 주어진 권한과 임무는 절대적이었다.

그 시각.

티타늄 타워 80층을 돌파한 강진혁의 눈앞에는 거대한 시큐리티 존이 가로막고 있었다.

찌지지직-!

푸른색 고주파 레이저 격벽이 공간을 가르며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그 뒤편으로 티타늄 그룹의 최종 방어선이자, 군용 바이오 코어를 장착한 정예 사이보그 중대가 중화기를 겨누고 있었다.

진혁의 숨소리는 거칠었지만, 그의 흑안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SYSTEM INFO: 경고]

[현재 단전 출력: 7,350 MW]

[나노머신 동기화율: 86.4%]

[경고: 과도한 마기 운용으로 인해 좌측 상완부 혈관 회로에 미세 균열 발생.]

[즉각적인 운기조식을 권장합니다.]

머릿속에 떠오른 시스템의 HUD 경고창을 진혁은 무심하게 짓밟았다.

손에 쥔 천마검의 프로토타입에서 흘러나오는 검붉은 마기가 허공을 태우듯 일그러졌다.

"운기조식?"

진혁이 낮게 뇌까리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런 건 지옥에 가서나 하지."

그의 발끝에서 [마광신보]의 궤적이 폭발했다.

빛의 잔상조차 남지 않는 극한의 가속.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진혁의 형체가 레이저 격벽을 그대로 통과해 사이보그 중대의 한가운데로 파고들었다.

콰아아아궁—!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거대한 마검기가 폭풍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최첨단 장갑을 두른 로봇들의 상체를 두 토막 냈다.

흘러나오는 바이오 코어의 에너지를 [흡원천공]으로 강탈하며 진혁의 출력이 한 단계 더 도약했다.

타오르는 복수심과 뼛속까지 스며드는 통증 속에서, 강진혁은 오직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진무극.

그 괴물이 기다리고 있는 100층을 향해.

타오르는 마기는 멈출 줄 몰랐다.

디스토피아의 밤을 가르는 천마의 검격이, 신서울의 심장부를 향해 무자비하게 포효하고 있었다.

타워의 80층을 지키던 시큐리티 존은 강진혁의 검 끝 앞에서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최첨단 합금으로 제작된 방어벽은 검붉은 마검기 앞에 두부처럼 갈라졌고, 고출력 바이오 코어를 탑재한 사이보그들의 잔해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진혁은 숨을 고를 새도 없이 터져 나오는 피를 삼켰다.

지나치게 끌어올린 출력 탓에 혈관을 감싼 나노머신 회로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 통증마저도 지금의 그를 막아설 수는 없었다.

진혁의 흑안이 살기로 붉게 물들었다.

"더 올라간다."

그가 중얼거리며 81층으로 향하는 고속 엘리베이터 샤프트로 몸을 날렸다.

수직으로 뻗은 철골 구조물을 발판 삼아 [마광신보]를 전개하자, 그의 잔상이 어둠 속에서 짐승의 궤적처럼 요동쳤다.

그 시각, 티타늄 타워 90층의 중앙 통제실.

거대한 모니터 화면을 통해 진혁의 살육 행보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진세린의 얼굴에 싸늘한 서리가 내려앉았다.

그녀는 아버지 진무극의 명령을 되새겼다.

‘너무 쉽게 타워에 올라오면 그릇이 채워지기 전에 금이 가버릴 테니까. 충분한 시련을 줘라.’

진세린의 입꼬리가 비틀리며 차가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제법 날뛴단 말이지…… 잡종 07호."

그녀는 통제실의 마스터 콘솔에 손을 올렸다.

단순한 기계적 방어로는 저 괴물을 막을 수 없다. 진무극이 의도한 ‘시련’이자, 진혁의 단전을 더 완벽하게 압박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

진세린의 손가락이 화려한 홀로그램 키패드를 두드리며 명령을 하달했다.

띠릭- 콰아앙!

90층 전체의 비상 방화벽이 일제히 내려앉았다.

사방에서 기계음이 울리며 공기의 흐름이 급변했다. 그것은 단순한 차단이 아니었다.

산소 공급을 인위적으로 차단하고, 고압의 중력 제어장을 가동하여 침입자의 신체에 가해지는 부하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살인적인 방어 프로토콜이었다.

콰득!

89층을 뚫고 90층으로 진입하던 진혁의 발걸음이 돌연 무거워졌다.

몸을 짓누르는 압력의 강도가 순식간에 몇 배로 치솟았다.

[SYSTEM INFO: 경고]

[중력 제어장 가동: G-포스 5.2배 상승.]

[산소 농도 급감: 폐부 조직의 나노머신 산소 공급 효율 40% 저하.]

[경고: 단전의 마기 운행 궤도에 교란 발생.]

"크윽……!"

진혁의 입에서 검붉은 핏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단순한 물리적 방어가 아니었다. 공간 자체를 왜곡하여 내공의 순환을 방해하는 티타늄 그룹 특유의 초중력 압박실이었다.

사방의 벽면에서 은빛 총구가 일제히 회전하며 진혁을 조준했다.

슈우우우— 팟!

초고주파 플라즈마 레이저가 사방에서 빗발치듯 쏟아졌다.

퇴로도, 피할 곳도 없는 완벽한 사격 킬존(Kill Zone).

하지만 진혁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입가에 짙고 잔인한 미소가 번졌다.

"이런 걸로…… 나를 막을 수 있을 것 같나."

진혁의 두 눈이 번뜩였다.

그는 [만법귀마]의 연산 회로를 극한까지 개방했다. 눈앞에 쏟아지는 플라즈마의 주파수, 중력 제어장의 파동, 그리고 벽면 레이저의 발사 타이밍. 그 모든 복잡한 데이터가 그의 뇌리에 실시간으로 박혀들었다.

기계가 계산하지 못하는 영역.

오직 수많은 사지를 넘나들며 체득한 실전의 감각과, 고대 마공의 궤적이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맞물렸다.

콰아아아아앙!

진혁의 전신에서 폭발적인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단순한 방어막이 아니었다. 주위의 중력 파장을 거스르고 공기를 진동시키는 초고압의 마기 소용돌이였다.

[마기 실드]와 [천마무상체]가 동시에 극한의 출력으로 동기화되었다.

지지직- 쾅!

플라즈마 레이저가 진혁의 마기 실드와 충돌하며 눈이 멀 정도로 찬란한 섬광을 토해냈다.

장갑복이 미세하게 타들어 가고, 피부가 찢어지는 고통이 온몸을 할퀴었지만, 진혁은 그 에너지를 그대로 놓치지 않았다.

"흡원천공(吸元天功)!"

진혁의 손바닥에서 거대한 인력(引力)이 소용돌이쳤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플라즈마와 중력 제어장의 에너지가 역류하며 그의 손바닥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기계의 에너지를 마기로 정제하여 단전으로 흡수하는 미친 짓.

두두두두구궁—!

진혁의 심장이 미쳐 뛰었다.

단전의 출력이 한계치를 아득히 넘어서며 폭발적으로 치솟았다.

[SYSTEM INFO: 경고]

[단전 출력 돌파: 8,100 MW를 기록합니다!]

[나노머신 동기화율: 91.2% (강제 동조)]

[경고: 신체 한계치를 초과했습니다. 폭주 위험 34.5%]

"아직 멀었다……!"

진혁의 목구멍에서 짐승 같은 고함이 터져 나왔다.

7,300 MW에서 단숨에 8,000 MW를 돌파한 폭발적인 에너지가 전신의 혈관을 타고 맹렬하게 요동쳤다.

피부 표면으로 은빛 회로와 검붉은 마기가 뒤엉켜 기괴한 문양을 그려냈다.

그가 천마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검신을 감싼 검붉은 마기가 주변의 중력장을 찢어버릴 듯 거대하게 팽창했다.

스으으으——.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한 기괴한 정적.

그리고 다음 순간, 진혁의 검이 90층의 중앙을 향해 무자비하게 내리꽂혔다.

콰아아아아아궁—!

천마일검(天魔一劍)의 초입 궤적이 구현된 참격이 중력 제어장의 코어와 90층의 방화벽을 단칼에 두 토막 냈다.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사방의 콘크리트 벽이 무너져 내리고, 통제실의 홀로그램 장치들이 일제히 스파크를 튀기며 박살 났다.

사방이 먼지와 연기로 자욱해진 그곳에서, 진혁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흑안은 이미 인간의 그것이 아니었다. 차갑고 잔인한 마신의 눈빛으로 90층의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통제실의 깨진 모니터 너머로, 진세린의 서늘한 눈동자가 그 모습을 똑같이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설치한 함정이 그저 저 소년을 더 강하게 만드는 양분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괴물…… 같은 놈."

진세린이 이를 악물며 통제실을 벗어나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진혁의 귀에는 이미 그녀의 미세한 발소리와 심장 소리가 고스란히 박혀 있었다.

"도망칠 곳은 없다."

진혁의 입가에 찢어질 듯한 미소가 걸렸다.

그의 발밑에서 [마광신보]가 다시 한번 터지며, 잔상은 부서진 90층의 파편을 뚫고 더욱 높은 곳, 최상층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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